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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으로 남편 떠나보낸 이휘향의 슬픔

“남편은 알면 알수록 좋은 사람… 좋은 곳에서 편안히 쉬고 있을 거예요” “남편은 알면 알수록 좋은 사람… 좋은 곳에서 편안히 쉬고 있을 거예요”

중견 탤런트 이휘향의 남편 김두조씨가 지난해 9월 30일 폐암으로 사망했다. 분당서울대학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한 김씨는 자신의 죽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때문에 김씨의 죽음은 49재를 지낸 후에야 일부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기침 증세 심해 걱정했지만 폐암일 줄이야…
지난해 9월 30일 탤런트 이휘향의 남편인 고 김두조씨가 분당서울대학병원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64세. 그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다간 고인이지만, 떠나는 길은 너무나 조용했다. “가능한 한 조용히 장례를 치러달라”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 장례식이 무척 간소하게 진행된 것이다.

슬픔은 고스란히 남겨진 이휘향의 몫이었다. 저 세상으로 떠난 남편의 뜻에 따라 그녀 역시 아픈 가슴을 드러내놓고 내색하지 못한 채 혼자서 스스로의 가슴에 슬픔을 묻어야 했다. 이런 이유로 김씨의 죽음은 49재까지 끝난 뒤인 11월 말에야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지게 됐다.

조용히 세상을 떠난 김두조씨와 미망인이 된 이휘향, 그리고 이들 부부의 측근들을 통해 두 사람의 못다한 사랑과 조용한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사연을 들었다.

고 김두조씨는 최근 몇 년 동안 서울 소재의 집에서 지내왔다. 그동안 이들 부부는 각자의 일로 떨어져 지내야 했다. 김씨의 경우 포항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고 이휘향은 연기 활동을 위해 주로 서울에 머물렀다.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어 서로의 마음은 더 애틋했을 것이다. 이는 김씨가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인 ‘주말부부’의 노랫말에 그대로 담겨 있다. 주중에는 떨어져 지내고 주말에만 만날 수 있는 주말부부의 애환을 그린 이 노래는 김씨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 하지만 김씨가 몇 년 전부터 포항 현지의 사업을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두 사람은 서울 소재의 보금자리에서 함께 지냈다.

포항을 떠나 서울로 올라온 김씨는 평범한 나날을 보냈다. 가깝게 지내던 연기자 유퉁과 함께 가끔 몽골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평소에는 집 근처 메리어트호텔 커피숍에서 지인들을 만났다. 물론 김씨와 가깝게 지내던 이들 상당수가 포항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서울에도 복싱계 후배와 연예 관계자 등 그를 믿고 따르던 이들이 여럿이었다.

김씨의 병이 확인된 것은 지난해 5월. 이미 상당 기간 병마에 시달려왔지만 암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 “기침 증세가 있어 포항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지만 별 이상이 없었다”는 이휘향은 “그런데 기침은 그치지 않았고 결국 지난해 5월 서울에서 폐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벌써 간까지 암세포가 전이되어버린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이렇게 불치의 병을 얻었지만 김씨의 부인 이휘향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결혼 이후 김씨는 이휘향의 연기 활동을 돕는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줬고 종종 촬영 현장을 직접 찾아 응원하기도 했다. 이런 응원 행보의 마지막은 투병 생활 중이던 지난 여름에 이뤄졌다. 아픈 몸을 이끌고 영화 ‘사랑을 놓치다’를 촬영 중이던 이휘향을 만나기 위해 전주 촬영현장을 찾은 것. 스크린 데뷔작을 준비 중인 이휘향을 가까이서 응원하고 스태프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등 김씨는 아내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즈음 김씨는 이미 본인의 죽음을 예감한 듯, 하나하나 주변 정리를 시작한 상태였다고 전해진다.

이미 포항을 오랜 기간 떠나 있던 김씨가 마지막까지 애정을 갖고 있던 곳은 포항권투체육관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마지막으로 포항을 찾은 김씨는 트레이너였던 제해철씨에게 관장 자리를 물려준 뒤 체육관에서도 완전히 손을 뗐다.

고인이 사망하기 3일 전 만남의 기회를 가졌던 복싱계의 후배 이 아무개씨는 “이미 돌아가실 것을 알았는지 내게 비싼 양말을 사달라고 부탁해 두 켤레를 사 들고 찾아뵈었다”며 “아마도 떠나실 때 신으려 했던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리곤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달라. 장례식도 가능한 조용히 치러주길 바란다”는 유언을 남긴 채 김씨는 지난 9월 30일 조용히 눈을 감았다.

절친한 연예인들, 김씨 죽음에 안타까움 토로
이휘향은 고인의 유언에 따라 간소하게 장례절차를 진행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에는 탤런트 유동근, 전인화 등 절친한 몇몇 지인들만이 참석했다. 이런 분위기는 해인사에서 치러진 김씨의 49재까지 이어졌다. 이날 역시 이들 부부의 지인 20여 명만 참석해 조용히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김씨의 사망 사실이 포항에 알려진 계기는 지역신문에 실린 부고 때문이었다. 하지만 부고를 보면서도 대다수의 포항 시민들은 부고의 주인공이 그들이 알고 있던 김두조가 아닌 동명이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포항지역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인 김씨의 죽음이 너무나 조용히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는 다만 일반 시민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포항 지역에 살고 있는 김씨의 측근들 역시 한참 뒤에야 김씨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포항권투체육관에서 만난 제해철 관장 역시 “직접 연락 받지는 못했고 신문 부고를 통해 소식을 접하게 됐다”며 김씨의 죽음에 대해 비통한 심정을 밝혔다. 또 다른 측근 인사인 ‘아시아위클리뉴스’의 이무식 대표 역시 김씨가 세상을 떠난 뒤 수일이 지나서야 그 소식을 들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그의 평소 성격으로 볼 때 죽은 뒤 자신의 얘기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김씨와 평소 가깝게 지내던 지인 대부분이 사망 소식을 뒤늦게 접하게 되면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경우도 많았다. 김씨와 절친한 사이였던 가수 설운도는 “형님과 오랜 인연을 가져왔는데 연락조차 받지 못하다니, 아무리 유언이라지만 너무 섭섭하다”며 “형수가 형님과 절친했던 사람들은 안 부르고 형수가 친한 연예인만 부른 것 같아 서운하다”고 했다. 역시 절친한 사이였던 탤런트 유퉁은 당시 외국에 있어 그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당시 내가 몽골에 있는 바람에 소식조차 듣지 못했다. 돌아가시기 전에 꼭 한 번 뵙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너무 안타깝다”고 얘기했다.

이런 주변의 반응에 대해 이휘향은 “유언에 따라 가족 외에는 일체 남편의 별세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면서 “많은 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하고 애도의 뜻을 표해줘 감사할 뿐”이라고 얘기했다.

고인, 좋은 곳으로 떠났을 것으로 믿어
장례식을 치른 뒤 해인사로 들어가 50여 일 동안 산사에서 생활하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한 이휘향은 49재를 치른 뒤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그 이후에도 이휘향은 남편의 사망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는 데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기자와의 몇 차례 통화에서도 이휘향은 이 같은 입장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하지만 기자들의 취재 공세가 계속되자 결국 이휘향은 몇몇 기자들에게 당시의 정황과 현재의 슬픔에 대해 입을 열었다.

세상을 떠난 남편에 대해 “‘우리 아빠’는 알면 알수록 좋은 사람이었다”며 “그 사람도 나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이 없다”는 말로 고인이 좋은 곳으로 떠났을 것이라는 믿음을 드러냈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 법. 특히 고인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사랑을 놓치다’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렇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휘향은 “지난해 봄 남편이 투병생활을 시작한 뒤 병원에서 ‘사랑을 놓치다’ 대본을 봤다”며 “함께 대본을 본 남편이 좋은 영화 같다며 꼭 하라고 격려해줘 시작했다. 그런데 결국 영화를 보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는 말로 가슴속에 남아 있던 아쉬움과 회한을 드러냈다.

기자들의 집요한 취재 경쟁으로 몇몇 매체와의 제한된 인터뷰를 통해 남편의 사망 사실을 외부에 알린 이휘향은 지난해 11월 말 이후 다시 칩거 생활에 들어갔다. 기자들이 알고 있던 휴대폰 번호를 바꾸고 외부 행사에서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이 여전히 그를 힘겹게 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81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이휘향은 연기경력 25년 만에 스크린에 데뷔한다. 데뷔작은 설경구 송윤아 주연의 영화 ‘사랑을 놓치다’. 이휘향은 고인의 권유로 출연한 스크린 데뷔작이 개봉될 즈음 다시 대중들 앞에 설 전망이다. 한편 유족으로는 외아들 도현 군이 있는데 현재 그는 영국에서 유학중이다.


김두조는 누구인가?

“인생은 담배 연기같이 금방 사라지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남과 더불어 살 수 있다면 항상 그러고 싶었다. 모든 게 하나님의 뜻이겠지.”(아시아위클리뉴스 48호 참조)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아프다는 얘기를 다른 이에게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던 김두조씨는 유언마저도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고 가능한 한 조용히 장례를 치러달라”였다. 담배 연기에 비유했던 그의 인생철학이 죽음의 순간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제는 고인이 된 김씨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우선 그는 인기 탤런트 이휘향의 남편이다. 두 사람이 결혼한 것은 지난 83년 2월. 82년에 MBC 공채 탤런트 시험에 합격한 이휘향은 탤런트로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김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휘향에게 한눈에 반한 김씨의 적극적인 구애에 결국 이휘향이 결혼을 승낙한 것. 이른 결혼으로 인해 이휘향의 본격적인 연기 활동은 다소 늦어졌지만 이후 김씨가 헌신적으로 연기 활동을 지원했다는 후문이다.

이렇듯 ‘연예인의 남편’으로 유명하지만 사실은 김씨 역시 앨범을 발표한 가수이기도 하다. ‘주말부부’ ‘아주까리 부두’ ‘영일만 디스코’ 등의 히트곡을 남긴 김씨는 앨범을 다섯 장이나 발표한 중견 가수에 속한다. 노래는 물론이고 스스로 작사와 작곡까지 한 싱어 송 라이터이기도 했다.

가수로 활동하며 작곡가 박성훈씨, 가수 설운도, 조영남 등 가요계 인사들과 두터운 친분을 쌓은 김씨는 부인 이휘향의 소개로 유퉁, 유동근·전인화 부부 등 연기자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그는 또 유명 ‘프로모터’로서 복싱계에도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포항에서 포항권투체육관을 운영하며 세계챔피언 백종권 선수를 배출해 낸 것. 복싱뿐만이 아니라 정통킥복싱, 경호체육(종합무술)에도 조예가 남달라 세계무술경호 경북본부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물론 김씨를 설명하는 가장 확실한 명칭은 ‘밤의 황태자’다. ‘경북매일신문’을 비롯한 지역 언론에서 그를 소개할 때마다 자주 사용하던 호칭이 바로 ‘밤의 황태자’였다. 이는 그가 젊은 시절 범죄의 세계와 밀접하게 지내왔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이들이 그를 포항을 대표하는 ‘밤의 황태자’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포항에서는 김씨를 또 다른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에게 붙은 또 하나의 호칭인 ‘사회봉사자’가 바로 그 숨겨진 모습이다. 포항 북부경찰서에서 만난 한 형사는 “이휘향씨와 결혼한 이후 김두조씨는 사회봉사자로 변신해 지역 사회 발전에 많은 이바지를 했다”고 얘기했다.

지난 2001년 30여 년 동안 수집해온 민속유물과 주유소, 휴게소 건물 등 40억 원 상당의 재산을 한동대학교에 기증해 화제가 된 바 있는 김씨는 늘 어려운 이들의 가까이에 있었다. 포항 성모자애원, 사랑의 아가페 등지에서 수십여 년간 봉사활동을 펼쳐왔고 청송감호소 등 교정시설에서 한 위로 공연을 주최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김씨는 세 차례나 법무장관 표창을 받았다.

포항에서 만난 김씨의 한 측근은 “안강 태생인 그는 혹독한 고생과 시련을 겪어 누구보다도 어려운 사람들의 사정을 꿰뚫고 있었다”며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들을 보면 늘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고 말했다.

글 / 신민섭(일요신문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아시아위클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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