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날씬해 보여도 체지방 검사를 하면 비만으로 나오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그러니 비만인지, 아닌지는 겉보기보다는 속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날씬해 보여도 기운이 없고 자주 피곤하다든가, 변비나 소화 장애가 심하면 결코 건강한 것이 아니다. 또 엄마가 되기에도 적합한 몸 상태가 아니다.
진단 결과,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비만으로 인해 담습(痰濕)이 생겼는데 특히 몸이 차가워지는 한습(寒濕)이었다. 먼저 기혈순환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장세척과 한약, 부항, 침 치료 등을 병행했다. 평소 생리양이 적고 생리주기가 불규칙한데다 생리통이 심해 고생이 많았던 환자는 치료과정에서 의외의 결과가 나와 무척 놀라워했다. 기혈순환 치료 후 첫 번째 생리를 할 때 아주 많은 양의 흑색 어혈 덩어리가 뭉클뭉클 나왔으며, 전혀 피곤하지 않아 신기해할 정도였다고. 또 생리를 마친 후에는 변비 환자가 시원하게 변을 본 듯한 ‘배설의 쾌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환자의 증상은 이 생리를 계기로 극적으로 호전돼, 편두통이 없어졌고 피곤함이나 몸이 무겁던 증상도 사라졌으며 잠을 푹 잘 수 있게 됐다.
몇 달 후, 필자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바로 그녀의 임신 소식이었다. 중학생인 첫아이 밑으로 둘째를 갖고 싶었지만 시험관 시술마저 여러 번 실패해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비만 치료를 하다가 임신까지 하게 됐다며 행복해했다.
윤희씨의 증세가 심각했던 요인 중 하나는 자궁이었다. 한방에서 여자의 자궁은 간맥(肝脈)과 깊은 연관이 있는데, 간은 피로를 푸는 장기라고 알려져 있으며 혈(血)을 저장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환자처럼 간장 맥이 원활히 작용하지 못하면 피의 양도 줄어들고 순환이 잘 되지 않아 하복부가 점점 차가워지면서 단단한 어혈이나 덩어리가 생긴다. 이런 상태에서 장세척을 하니 숙변이 제거돼 하복부에 정체돼 있던 기운이 순환하게 된 것이다. 자궁에 누적되었던 어혈이 생리를 통해 배출되자 그녀를 괴롭히던 증상도 사라졌다. 그 다음 한약을 통해 차가운 하복부를 따뜻하게 해주고, 등에 부항을 떠 양기의 순환을 도와줌으로써 몸 전체에 기혈이 제대로 돌게 되었던 것이다.
두 번째 요인은 비만이었다. 살이 찌는 것은 우리 몸에 쓰고 남거나, 아니면 아예 쓰이지 못한 에너지가 쌓이기 때문이다. 즉, 소화, 흡수, 저장 기능이 강하거나 소모, 배설 기능이 떨어지면 비만해지는 것이다.
몸속에서 제대로 쓰이지 못한 에너지는 노폐물이 된다. 한방에서는 이것을 담습이라고 한다. 체내에 담과 습이 생겨 기와 혈의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당뇨병, 고혈압, 심장병 등 다양한 질병이 생기는데, 특히 여성은 자궁으로 가는 맥이 막혀 임신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또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점은 남성이 비만이면 불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아랫배가 불룩 나오고 허벅지에 살이 많으면 그 사이의 열에 약한 정자 생성 지대가 얼마나 갑갑하고 덥고 힘들겠는가? 그래서 과체중이 될수록 정자의 수가 감소하고, 체온이 올라가면서 정자의 활동성도 떨어진다. 부모가 되고 싶다면, 먼저 체중부터 정상 범위로 돌려놓아야 한다.
■글/정지행 한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