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삶의 주인은 ‘나’다

성형 완전정복

내 얼굴, 내 삶의 주인은 ‘나’다

ㆍ성형 ‘광풍’에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

언젠가부터 성형 수술은 우리의 일상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수술 여부를 숨기고 쉬쉬하던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연예인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성형 수술을 택했다고 당당히 밝힌다. 길을 걷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 성형 관련 광고를 마주할 수 있고, 큰 건물들이 즐비한 번화가에는 성형외과가 넘쳐난다. 이제 성형 수술은 더 이상 ‘예뻐져야만 하는’ 사명을 갖고 있는 몇몇 여성들만의 비밀이 아니다. 외모가 경쟁력이 되고 인생의 가장 큰 가치로 통하는 시대다. 그렇다면 성형을 언제까지나 그저 개인의 판단 범주에만 넣어둘 수 있는 것일까. ‘성형 권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로 한다.

[성형 완전정복] 내 얼굴, 내 삶의 주인은 ‘나’다

[성형 완전정복] 내 얼굴, 내 삶의 주인은 ‘나’다

# 얼마 전 막을 내린 KBS-2TV 드라마 ‘동안미녀’는 숨겨진 재능과 성실성은 있지만 외모, 학벌, 집안, 나이 그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여주인공이 주변의 핍박과 무시 속에서도 성공과 사랑을 쟁취하는 이야기를 그려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은 유난히 ‘동안’인 얼굴 덕에 동생의 이름을 빌려 그나마 취업에 성공하지만 결국엔 들통 나게 되고, 온갖 시련을 겪으며 결국 세상 속에서 ‘얼굴’이 아닌 진정한 ‘자신’을 보여주게 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드라마는 우리 사회의 ‘동안’ 신드롬을 적극 반영한다. ‘동안’인데다 게다가 ‘미녀’이기까지 하다. 어리고 예쁘다는 것이 얼마나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젊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하나의 계급이 될 수 있는지를 이 드라마는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제 ‘동안’ 열풍은 일시적인 신드롬을 넘어 하나의 고정된 가치가 됐다. 사회 곳곳에서는 틈만 나면 ‘어려 보이는’ 얼굴 가꾸기의 노하우들을 전파하고, “동안이네요”라는 말은 타인에게 건네는 최고의 칭찬으로 사용된다. 모두가 조금이라도 더 젊고 어려 보이길 원한다. 심지어 제 나이 그대로 보이거나 혹은 더 성숙해 보이는 얼굴을 가졌다면 제대로 자기관리를 하지 못한 사람으로 비춰질 정도다. TV만 틀면 곧잘 나오는 ‘최강 동안’으로 불리는 연예인들을 보면서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얼굴의 변화에 대해 지나치게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2001년 미스월드대회에서 우승한 18세의 나이지리아 여성 아그바니 다레고는 당시 나이지리아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 전까지 자국 우승자가 매번 미스월드대회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자 나이지리아 미인대회 심사위원들은 ‘세계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을 뽑는 것으로 선발 기준을 바꾸었다. 그렇게 뽑힌 ‘세계적 미인’이 바로 아그바니 다레고다. 그녀가 미스월드 타이틀을 거머쥔 뒤 나이지리아의 잡지와 광고에 등장하면서부터 젊은 나이지리아 여성들의 미의식은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녀를 영양 부족 상태라고 평가했지만, 점차 자신들도 그런 날씬한 몸을 원하게 됐다. 결국 전국적으로 굉장한 다이어트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한 번도 없었던 획기적인 일이었다.

‘날씬한 몸’에 대한 동경과 추종은 우리 사회에서 이제 더 이상 특별할 것조차 없는 ‘당연한’ 현상이다. 지금도 이 땅의 수많은 여성이 온갖 방법의 다이어트를 시도하고, 마른 몸을 가진 이를 보며 남몰래 한숨쉬고 있다. 어린아이들조차 ‘몸매 관리’를 염두에 두고 젓가락질을 하며 ‘S라인’ 되는 법, ‘몸짱’ 되는 법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는다. 뚱뚱한 사람은 곧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이라는 말과 동일시된다.

이처럼 우리 주변을 둘러봤을 때 외모와 관련된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사실 남녀노소를 떠나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호감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세상 어느 누가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싫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오늘날의 이 과도한 ‘외모주의’는 단순히 개인의 호불호에서 비롯된 문제만은 아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자연스러운 선호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시스템으로 작용해 인간관계, 자아실현, 사회생활 등을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권력이 된 것이다. 일상 속에 스며 있는 외모지상주의의 영향 아래 우리는 알게 모르게 저절로 작동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몸은 충분히 멋지지만, 슬프게도 우리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우리의 몸이 각자의 출신을 드러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까지만 해도 서울, 상하이, 뉴욕, 밀라노의 여성들은 옷 입는 법, 걸음걸이, 제 몸에 깃들여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 한눈에 구별됐었다. 하지만 요즘은 몸에 대한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하얀 피부색, 서양인을 닮은 코와 쌍꺼풀 등이 우리가 자신을 치장하고 변형시키는 기준이다.

언어가 사라지는 속도만큼 빠르게 다양한 신체 종류와 표현이 사라지고 있다. 모든 사람이 글로벌 경제에 참여하면서, 자신도 현대사회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획일적인 특정 신체 방식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세상에 기여해야 하는 것은 외모가 아니라 서로 다른 재능과 감수성, 생각, 풍습, 그리고 각자의 지역문화 속에서 형성해온 서로 다른 지성이다.

정형화된 아름다움이 전 세계 모든 여성이 추구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어버린 것은 철저한 자본주의적 시스템이 사회를 지배하고 대중 매체가 이를 전파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구조의 자본주의는 우리의 얼굴과 몸도 하나의 상품으로 규격화시켰다. 외모에 대한 이미지는 인간과 분리되면서 시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판매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신체 변형은 사회적 활동으로 간주된다. 특정 형태의 몸을 획득하는 것은 현대사회와 경제에 온전하게 소속되는 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빚을 내어 성형 수술을 받는 것은 허황된 짓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다. 신체 변형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고 자신감을 높일 수 있다면 그것이 왜 나쁘냐는 생각은 언뜻 자유롭고 민주적인 듯하지만, 실은 선택이라는 허울 아래 모든 짐을 개인에게 지우는 것이다.

오늘날은 시각문화가 대세인데다 주변에 온갖 이미지들이 난무하니 아름다운 몸에 대한 생각이 스타일, 미용, 영화, 성형 수술, 다이어트 산업의 이미지들에 의해 형성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우리는 다양성과 차이라는 강점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는 외부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평가하고, 어느 부분에서 실패했는지를 확인한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이러한 문제 속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아름답고 날씬한 연예인이나 모델들의 모습조차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다. 사진으로 조작되고 기술로 집약된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만 얼굴과 몸을 개조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여성들이 스스로를 더 아름답게 느끼도록 도와주지는 않는다. 물론, 그 순간만큼은 평화와 만족을 갖도록 만들어주기는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불안감이 싹트는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고 몸에 대한 믿음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외모’에 대한 현재의 신념과 열망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외모를 거의 무한정 변형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수시로 우리의 불안감을 조장하는 산업과 관행의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몸에 대한 창조성을 전혀 발휘하고 즐기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재미를 느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즐거운 일이어야 한다. 치명적인 일이어서는 안 된다. 몸을 당연한 것이자 즐거운 것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얼굴’은 우리가 반드시 달성해야만 할 열망이 아니라 내 자신이 깃들여 사는 장소로 바꿀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각자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사랑스럽게 느끼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다양성, 우리의 독특함이기 때문이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이성원 ■참고 서적 /「몸에 갇힌 사람들」(수지 오바크,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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