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하우스 농작물의 발달로 요즘은 봄나물로 불리는 채소들을 사시사철 맛볼 수 있지만 겨우내 간직한 기운을 담아 단단한 땅을 뚫고 자라난 봄나물 특유의 향취는 제철이 아닌 시기에 나는 봄나물과는 비교 불가다. 짧은 봄에만 맛볼 수 있는 찰나의 묘미 때문인지 요리하는 사람들에게 봄나물은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계절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봄, 배우 김호진이 봄나물 향내보다 진한 봄나물 이야기를 전한다. 아울러 입맛 잃은 가족을 위해 우리 땅에서 자란 쌉싸래하면서도 향기로운 봄나물로 이탤리언 샐러드도 만들어봤다.
[김호진의 Delicious Life]봄기운 가득한 이탤리언 샐러드
봄의 맛으로 사랑을 느끼다
한낮의 따뜻한 햇볕이 봄이 머지 않았음을 알리고 있다. 꽃샘추위가 아직 남았지만 마트에만 가도 채소 코너에 냉이, 달래, 원추리, 유채, 돌나물, 두릅 등 봄기운을 가득 담은 봄나물이 즐비한 것을 보니 봄이 오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장 좋아하는 계절로 겨울을 꼽았다. 어렸을 때는 겨울이 끝나는 것이 싫어 봄이 오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봄마다 가족과 함께 개나리와 진달래 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한 창경궁에 나들이 갔을 때 꼬마 김호진은 봄이 참 예쁘다는 것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봄의 아름다움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봄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은 20대 때 탤런트로 활발하게 연기 활동을 하던 무렵 여의도 벚꽃축제 기간 동안의 교통체증으로 퇴색되고 말았다. 당시 일터나 마찬가지였던 방송국에 갈 때마다 차가 막혀 짜증 내기 일쑤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만 더 마음의 여유를 가졌더라면 봄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김호진의 Delicious Life]봄기운 가득한 이탤리언 샐러드
요리를 배우면서 봄나물의 쌉싸래한 향기가 그리워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연두 빛깔로 어린 새순이 올라오는 그 순간, 창가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큼 행복한 일상도 없다. 두꺼운 외투를 벗어던지고 따뜻한 햇볕을 쬐는 것도 좋고, 들과 산에 핀 알록달록한 꽃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새순은 어느새 파란 잎사귀로 바뀌어버리니 아름답기만 한 봄의 풍경은 참으로 짧다 할 수 있다. 요리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지방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알게 된 것이 우리나라 남도의 논밭은 1월부터 봄기운을 풍긴다는 것이다. 황량하기만 한 서울의 빌딩 숲에 찬바람이 몰아칠 때도 남도의 들과 밭은 푸른 채소로 물들어 있었다. 서울에서 가장 먼 제주도가 비행기로 고작 1시간이면 날아갈 수 있는, 작고 작은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했는데, 서울과 남도의 봄이 오는 속도의 차이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나라도 참 크다는 생각이 든다.
[김호진의 Delicious Life]봄기운 가득한 이탤리언 샐러드
음식이 주는 봄에 대한 기억도 있다. 중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3월의 어느 날, 한 친구가 달걀말이를 도시락 반찬으로 싸왔다. 노란 달걀말이에는 잘게 다진 파란 풋고추가 섞여 있었는데, 부드러운 달걀과 상큼한 풋고추 맛의 조화가 일품이었다. 당시 풋고추는 초여름에나 맛볼 수 있는 채소였으니 얼마나 귀한 맛이라 할 수 있겠는가. 또 어렸을 때부터 봄에만 맛볼 수 있는 냉이를 참 좋아했다. 요리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이 가장 손질이 까다로운 채소 중 하나가 냉이라는 사실이다. 들과 노지에서 나는 냉이는 묻은 흙을 털어낸 다음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꽃이나 꽃대, 싱싱하지 못한 이파리들을 모두 제거하고 나서야 요리를 할 수 있다. 냉이 반찬만 있으면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우는 아들을 위해 봄이 되면 귀찮음을 마다하지 않고 냉이무침과 냉이된장국을 정성껏 만들어주신 엄마를 생각하면 어린 시절 봄은 사랑의 계절이 아니었나 싶다.
[김호진의 Delicious Life]봄기운 가득한 이탤리언 샐러드
봄나물, 이탤리언 샐러드로 변신하다
추운 날씨 탓에 겨우내 움직임이 적다 보니 살이 찐 듯해 얼마 전부터 운동과 식단 조절을 통해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다이어트를 하는 동안 주로 드레싱을 넣지 않은 샐러드와 닭가슴살을 먹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이요법이 곤혹스럽다고 말한다. 하지만 재료가 갖고 있는 특유의 맛과 향의 조화를 찾으면 따로 간을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맛있게 다이어트식을 즐길 수 있다. 봄을 맞아 다이어트를 계획하고 있는 「레이디경향」 독자 여러분을 위해 제철 봄나물로 만드는 이탤리언 샐러드를 제안한다. 채소 특유의 향을 살려 만든 봄나물 샐러드는 봄볕으로 나른해진 우리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입맛을 살려 식욕을 돋우게 할 뿐 아니라 바게트나 커피, 달걀오믈렛과 곁들이면 브런치 메뉴로도 그만이다.
[김호진의 Delicious Life]봄기운 가득한 이탤리언 샐러드
서양식 샐러드는 어찌 보면 우리나라의 나물 요리와 비슷하다. 가장 큰 차이라고 하면 나물을 생으로 먹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겉절이 요리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끓는 물에 데쳐 잎을 부드럽게 한 뒤 고추장이나 간장, 된장 등 향이 강한 소스류로 나물을 무쳐 먹는다. 마트의 채소 코너를 가득 채운 봄나물을 보고 이러한 한식 조리법만 떠올린다면 이탤리언 드레싱을 봄나물에 무쳐보라고 권하고 싶다. 흔히 이탤리언 샐러드를 만들 때 양상추나 로메인, 어린 새싹, 비타민 등의 채소를 생각하기 쉬운데 우리나라 봄나물에 이탤리언식 드레싱만 곁들이면 얼마든지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날것 그대로 채소의 아삭한 식감을 살리는 서양식 샐러드의 특징을 떠올려 참기름 대신 올리브유를, 고추장이나 된장 대신 소금이나 발사믹식초, 꿀, 이탤리언식 젓갈인 안초비 등으로 향을 더해보자. 한 가지 나물도 좋지만 향의 매치를 고려해 2, 3가지 봄나물을 섞어 샐러드로 만들어도 좋고 과일이나 삶은 달걀, 닭가슴살 등을 함께 내어도 좋다.
[김호진의 Delicious Life]봄기운 가득한 이탤리언 샐러드
예를 들어 냉이를 깨끗이 손질해 뿌리는 제거한 뒤 올리브유와 소금으로 간을 하고, 그라나파다노 치즈가루를 뿌리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봄나물을 더 섞는다면 냉이의 강한 향을 고려해 세발나물을 더하면 좋을 듯하다. 달래의 경우 특유의 향을 중화하기 위해 은은한 향을 가진 참나물과 짝을 짓고, 양송이버섯, 방울토마토와 함께 허니 레몬드레싱으로 버무려보자. 부드러운 식감의 돌나물은 달콤한 맛과 향이 일품인 딸기와 함께 샐러드의 재료로 사용해도 좋다. 과일의 향을 가미해 드레싱을 만드는 것도 좋다. 레몬즙과 올리브유, 소금에 유자청과 건더기를 더하면 향긋한 유자드레싱이 완성된다.
김호진의 행복 요리 제안
[김호진의 Delicious Life]봄기운 가득한 이탤리언 샐러드
허니 레몬드레싱 달래 토마토샐러드
재료
어린 달래 2줌, 참나물 1줌, 양송이버섯 5개, 방울토마토 10개, 허니 레몬드레싱(올리브유 3큰술, 꿀·레몬즙 2큰술씩, 소금 1/2 작은술)
만들기
1 달래와 참나물은 흐르는 물에 여러 번 씻은 다음 물기를 뺀 뒤 달래는 5cm 길이로, 참나물은 3cm 폭으로 썬다. 2 방울토마토는 2등분하고 양송이버섯은 모양을 살려 슬라이스한다. 3 작은 볼에 분량의 허니 레몬드레싱 재료를 넣고 고루 섞는다. 4 볼에 ①과 ②의 채소를 담고 ③의 허니 레몬드레싱을 뿌려 고루 섞은 다음 접시에 담는다.
[김호진의 Delicious Life]봄기운 가득한 이탤리언 샐러드
딸기와 청포도를 곁들인 돌나물샐러드
재료
돌나물 2줌, 딸기 12개, 청포도 20알, 발사믹드레싱(올리브유 2큰술, 꿀·발사믹식초 1큰술씩, 소금 1/2작은술)
만들기
1 돌나물은 흐르는 물에 여러 번 씻어 물기를 뺀다. 2 딸기는 2등분한 뒤 청포도, ①의 돌나물과 함께 볼에 담는다. 3 작은 볼에 분량의 발사믹드레싱 재료를 넣고 고루 섞는다. 4 ②의 볼에 ③의 발사믹드레싱을 고루 뿌려 섞은 뒤 접시에 담는다.
냉이 세발나물샐러드
재료
냉이 2줌, 세발나물 1줌, 올리브유 2큰술, 소금 1/2작은술, 그라나파다노 치즈가루 적당량
만들기
1 냉이는 뿌리를 썰어내고 손질해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고 세발나물은 흐르는 물에 여러 번 씻어 물기를 뺀다. 2 볼에 ①의 냉이와 세발나물을 담고 올리브유와 소금을 뿌려 고루 섞는다. 3 접시에 ②를 담고 그라나파다노 치즈가루를 고루 뿌린다.
[김호진의 Delicious Life]봄기운 가득한 이탤리언 샐러드
■기획 / 이서연 기자 ■글&요리 / 김호진 ■사진 / 원상희 ■제품 협찬 / 소니코리아(1588-0911) ■장소 협찬 / 샤이야99(02-3789-4408), 올가홀푸드 방이점(02-418-6255) ■헤어&메이크업 / 이순철, 지미(순수 청담설레임점, 02-518-6221) ■스타일리스트 / 문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