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회, 멸치쌈밥 먹고 멸치축제 구경까지
지금 바닷가 시장에 가면 마치 봄 바닷속을 훤히 들여다보기라도 하듯 푸른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해산물들의 비릿하지만 경쾌한 냄새와 활기찬 생명력이 사방으로 퍼진다. 부산 기장시장에는 그 명성에 걸맞게 멸치도 천국이다. 부산 기장시장은 봄에는 미역과 멸치로, 가을에는 갈치로 유명하다. 올봄에도 여느 봄처럼 좌판마다 미역과 멸치가 넘쳐난다. 기장시장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10분만 가면 멸치잡이로 유명한 대변항이다. 매년 4월에 멸치축제가 열리는 기장 대변항에서 생산되는 왕멸치는 국내 생산량의 65~70%를 차지할 정도로 수확량이 많다.
대변항에서 잡히는 멸치는 멸치볶음을 해 먹는 잔멸치가 아니라 회로 먹고 찌개 끓여 먹고 쌈 싸 먹는 대멸치. 대변항 인근으로 60, 70개의 멸치횟집이 즐비한데 보통 항구의 횟집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횟집이 멸치회와 무침이 메인 메뉴다. 멸치회는 다른 생선회와 달리 구수한 맛이 일품이고, 멸치회무침은 새콤달콤한 양념과 미나리 등의 아삭한 봄 채소가 생멸치의 구수한 맛과 잘 어우러져 입이 호강한다. 회무침에 갖은 양념과 채소를 섞어 넣고 밥 한 그릇 삭삭 비벼 먹는 맛도 일품이다. 멸치를 갈치조림처럼 고춧가루 넣고 자작하게 조려서 깻잎이나 상추에 싸 먹는 멸치쌈도 놓칠 수 없다. 이때 막걸리나 소주는 멸치에 곁들이는 음료가 아니라 아예 멸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최고의 궁합을 자랑한다.
이맘때쯤 기장 대변항을 거닐다 보면 오후부터 해 질 무렵까지 꾸준히 들어오는 멸치어선을 만나는 일도 흔하다. 멸치어선 선원들의 멸치털이 한판을 보는 것은 살살 녹는 멸치회를 입에 넣는 것만큼이나 기장 봄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멸치회 먹으며 봄 바다를 느끼고 다양한 멸치 관련 체험도 할 수 있는 기장 멸치축제는 오로지 봄에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죽도횟집 부산 기장군 기장읍 연화 1길 215, 051-721-2411 남항횟집 부산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 447-6, 051-721-2302
거북이횟집 부산 기장군 기장읍 기장해안로 593-1, 051-721-4600
도다리 쑥국
모름지기 생명체는 제철에 가장 많은 영양을 간직해 싱싱함을 자랑하게 마련이다. 제철 음식이 충분히 보약과 견줄 만한 이유다. 양지 바른 들녘을 향긋한 봄 향기로 채우는 쑥과 통영 도다리가 만났다. 이름 하여 도다리 쑥국. 봄의 별미 중 별미다.
도다리는 양식이 없다. 수족관에서는 키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통영여객터미널 뒤로 넓게 자리 잡은 서호시장은 통영 시민의 먹을거리 장터일 뿐 아니라 길손의 발길을 묶는 통영의 명소다. 3, 4월에 제철을 맞는 도다리며 멸치며 사시사철 볼 수 있는 볼락과 도미, 끝물인 아귀와 간재미를 비롯해 광어와 우럭, 농어, 방어와 같은 횟감까지 바다의 생명력이 펄떡거린다.
도다리 쑥국은 원래 쑥에 마른 멸치나 조개를 넣어 끓여 먹곤 했는데, 우연찮게 봄철 생선인 도다리로 대신했다가 그 맛에 반해 지금에 이르렀다. 통영과 인근 섬에서 나는 쑥은 해풍을 받아 향긋함이 육지 것보다 진하다. 여기에 도다리의 시원한 맛이 어우러져 맑고 깨끗하면서도 시원하고 개운한 것이 도다리 쑥국의 특징이다. 도다리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가는 도다리 쑥국은 지리로 맑게 끓여낸다. 묵은지와 청양고추를 넣어 시원함에 얼큰한 맛을 더하기도 한다. 맑은 국물이 흐려지지 않도록 묵은지는 물에 씻어서 넣는다. 도다리는 쑥보다 먼저 건져내는데 도다리의 살이 워낙 물러서 퍼져버리기 때문. 4월 말에 가장 통통하게 살이 오르는 도다리는 1월 중순이면 나오기 시작해서 6월까지 맛이 좋지만 쑥과의 궁합을 생각하면 3, 4월이 가장 맛있다.
통영의 도다리 쑥국이 맑은 된장 국물에 쑥만을 넣는 반면에 삼천포의 경우 된장을 직접 넣어 진한 맛이 나고 다양한 봄나물과 채소가 들어간다. 살이 오른 두툼한 참도다리 한 마리를 숭덩숭덩 손질해 봄동, 냉이, 쑥, 된장을 넣어 단순하고 명쾌한 도다리 쑥국을 만든다.
원조물횟집 경남 사천시 목성길 97, 055-833-1261 터미널횟집 경남 통영시 통영해안로 227-3, 055-641-0711
7번 국도 따라가는 대게 맛 기행
강원도 묵호항에서 시작해 삼척을 거쳐 경북 울진과 대게의 고장 영덕 강구항에 이르기까지, 동해 7번 국도 라인의 항구 어디에서나 매년 3, 4월이면 속이 꽉 찬 싱싱한 대게를 맛볼 수 있다. 대게는 몸집이 크기 때문에 대게라고 이름 붙였을 것 같지만 실은 8개의 다리가 대나무처럼 곧게 뻗었다고 해서 대게다. 일단 껍질을 만져봤을 때 빈 곳 없이 살이 꽉 찬 것이 싱싱하고 좋은 게다. 살이 꽉 차고 싱싱한 대게일수록 게장(게의 내장)의 색이 황색에 가깝다. 하품은 게장의 색이 시커먼 흑장이고 상품일수록 녹장, 황장 순으로 게장 색이 밝아진다. 또 살이 꽉 차지 않은 대게일수록 짠맛이 더하다. 게딱지 안에 살 대신 바닷물이 들어차기 때문인데 대게가 죽으면서 그 물이 더 짜지는 것이다.
대게 하면 반사적으로 영덕이 떠오르지만 동해의 다른 항구에서도 얼마든지 실한 대게를 먹을 수 있다. 실제로 동해의 묵호항이나 울진의 죽변항과 후포항, 영덕의 축산항과 강구항으로 들어오는 대게잡이 배들은 같은 연안에서 조업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상대적으로 수요가 높은 영덕 강구항으로 많은 양이 유입되는 것이다.
굳이 비싼 횟집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현지의 위판장이나 노점에서 다리가 한두 개 떨어져 상품성이 없는 대게 몇 마리를 저렴하게 사서 쪄 먹어도 된다. 묵호항 묵호시장에는 찜만 쪄주는 집이 모두 14개다. 쪄주는 값이 1만원, 거기에 1인당 2, 3천원 정도의 초장 값을 더 내면 채소 등이 함께 나온다.
7번 국도를 따라 내려온 울진 죽변항에는 항구 앞에 일렬로 늘어선 80여 곳의 대게집이 있고, 후포항 인근에도 백암회센터, 후포수산물센터 등 5, 6개의 대게 타운이 띄엄띄엄 있다. 영덕 강구항은 그 규모부터 다른 항구와는 사뭇 다르다. 20톤 이상의 큰 배들이 며칠씩 조업을 나갔다가 돌아오면 큼지막한 대게를 1천여 마리씩 쏟아낸다. 저렴하게 먹는 것이 목적이라면 항구 끝자락으로 가자. 동광어시장빌딩 1층에서는 대게를 저렴하게 팔고 2층과 4층에서는 1만원을 내면 사온 대게를 쪄준다. 울진 후포항과 영덕 강구항에서는 매년 4월경 울진 대게축제가 열린다.
묵호항 삼부자회식당 강원도 동해시 묵화 시장길 7-2, 033-535-5849 죽변항 신흥상회 경북 울진군 죽변항길 117, 054-782-5145 후포항 삼풍수산 경북 울진군 울진대게로 201, 054-788-2026
알차게 먹는 참꼬막 찾아가는 곳
‘핏기만 가시도록 데쳐낸 겨울 꼬막은 쫄깃쫄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하다’라는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의 묘사처럼, 꼬막의 맛이란 살아 있는 남도의 맛이다. 벌교역 바로 앞에 있는 벌교시장에서는 4, 9일에 벌교장이 열리는데, 이 장에는 시장 주변으로 무시로 난전이 펼쳐진다. 산지의 제철 음식을 먹는 것은 여행자의 특권. 꼬막은 11월부터 4월까지가 제철이다. 벌교시장에서는 할머니들의 꼬막 좌판이 주인공이다. 개흙이 그대로 묻어 있는 가무잡잡한 참꼬막과 하얀 새꼬막, 그 옆으로 크기가 참꼬막의 몇 배나 되는 피꼬막도 다소곳이 담겨 있다.
참꼬막은 새꼬막보다 훨씬 고급으로 친다. 맛도 엄연히 다르다. 마치 기와지붕의 굴곡처럼 조개의 돌기가 더 두드러지고 단단한 참꼬막은 톱니바퀴 같은 입을 앙다물고 있다. 조개치고 꽤 비싼 가격을 당당히 붙이고 있는데다 그마저도 없어 못 파는 지경이니 늘 귀한 대접을 받는다. 탱글탱글한 참꼬막은 새꼬막 가격의 2, 3배를 쉬이 넘는다. 둘은 겉모습에서 풍기는 포스도 다르지만 속살의 ‘때깔’에도 확연한 차이가 있다. 참꼬막은 ‘뻐얼건’ 피를 가득 품고 있다. 삶을 때 그 육즙을 잘 간직하도록 하는 것이 참꼬막을 맛있게 먹는 비결이다.
좌판에서 참꼬막에 묻은 뻘을 씻어내지 않고 파는 것은 참꼬막의 육즙과 신선도를 지키기 위한 것. 참꼬막에게 공기와도 같은 개흙이 씻겨버리면 금방 말라버리기 때문이 참꼬막은 민물에 해감을 너무 많이 하거나 많이 씻어내지 않는다. 많이 씻어내면 육즙이 빠져나갈 수 있다. 물이 팔팔 끓으면 차가운 물 한 컵을 부어 식혀준 다음 바로 꼬막을 넣고 불을 줄인다. 꼬막 살이 한쪽 껍데기에만 붙도록 한 방향으로 저어주면 2, 3분이 지나 꼬막이 한두 개 입을 연다. 그때 바로 꺼내야 제대로 된 맛을 즐길 수 있다. 꼬막 입이 다 벌어져버리면 육즙이 빠져나가고 질겨져서 맛이 없다. 불에 몇 초만 더 있어도 알맹이가 쪼그라들면서 입을 바로 벌리기 때문에 꼬막을 데칠 때는 유난히 신경 써야 한다. 삶은 꼬막에는 바로 찬물을 끼얹는다. 껍질에 남아 있는 열로 꼬막이 더 익을 수 있기 때문이다. 꼬막은 그만큼 다루기 어렵고 예민하다. 데치는 것만 해도 간단해 보이지만 몇 초 차이로 맛이 확 달라지니 꼬막 삶는 손에 따라 꼬막 요리의 질도 달라진다.
벌교역과 시장 주위로는 꼬막정식을 파는 식당들이 많다. 꼬막정식은 삶은 꼬막, 꼬막무침, 양념꼬막, 꼬막된장국, 꼬막전 5가지가 어느 식당이나 비슷하게 기본으로 나오고 가격도 1만5천원선으로 맞춰져 있다.
국일식당 전남 보성군 벌교읍 태백산맥길 35-3, 061-857-0588 원조수라상꼬막정식 전남 보성군 벌교읍 채동선로 278-2, 061-858-0505
거시기꼬막식당 전남 보성군 벌교읍 채동선로 270 중앙상가 1층, 061-858-2255
주꾸미 머릿속 톡톡 터지는 쌀밥 먹는 재미
3, 4월에 잡히는 주꾸미는 알이 꽉 차고 살이 올라 1년 중 가장 맛있다. 낙지처럼 8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지만 낙지는 다리 길이가 최대 70cm에 달하는 데 비해 주꾸미는 10~20cm 정도로 다리가 짧은 것이 특징이다. 봄철 서해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데, 봄에 수온이 올라가면서 주꾸미의 먹이가 되는 새우가 바다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이때 주꾸미가 먹이를 찾아 연안으로 몰려들어 어획이 좋고 맛도 절정을 이룬다. 매년 이맘때면 서해 각 지역에서는 주꾸미축제가 열려 다양한 주꾸미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주꾸미를 먹으려면 충남 서천이나 대천, 보령이 제격이다. 주꾸미는 수놈은 살결이 연하고 암놈은 머리에 그득한 주꾸미 알인 일명 ‘주꾸미 쌀밥’ 씹는 재미가 일품이다. 싱싱한 회로 먹으면 산낙지와는 또 다른 별미를 느낄 수 있다. 삶아서 초고추장을 찍어 먹거나 볶음, 조림 등 여러 가지 요리에 두루 잘 어울린다. 낙지보다 연하고 육질이 부드러워 샤부샤부로 먹을 수도 있다. 조개 국물에 봄나물과 버섯을 썰어 넣고 주꾸미를 살짝 데쳐 먹는 샤부샤부도 감칠맛이 난다. 주꾸미 먹물이 풀어진 샤브샤브 국물에 칼국수를 삶아 먹는 맛도 끝내준다. 쫄깃한 식감의 주꾸미 살은 물론 탱글탱글 씹는 맛이 일품인 알은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우게 한다. 주꾸미는 필수아미노산인 타우린이 풍부해 주꾸미 한 마리면 웬만한 피로 해소 음료 한 병 못지 않은 타우린을 섭취할 수 있다.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효과도 있어 예부터 몸에 기운이 없고 나른함을 자주 느끼는 봄철 음식 중 으뜸이다.
너뱅이등대횟집 충남 서천군 홍원길 133, 041-951-7870
향긋한 봄 바다 내음 간직한 멍게
경남 통영 바다에는 봄이면 붉은 꽃이 흐드러진다. 주황의 멍게꽃이다. 딱딱한 껍데기를 가르자마자 흘러나오는 주홍의 속살은 싱그러운 바다 향 그 자체다. 꽃보다 향기롭다. 멍게는 크게 돌멍게, 붉은멍게, 꽃멍게로 나뉘는데, 이 중 통영에서 양식하는 꽃멍게의 향이 좋다. 멍게는 2월 말부터 수확하며 5월에 잡은 것을 최고로 친다. 4월부터 살을 찌워 5월이 돼야 속이 꽉 차기 때문. 1970년대 이전까지 멍게는 무척 귀한 식재료였는데, 통영을 포함한 남해안 지역에서 멍게 양식이 시작된 1974년 이후 전국에 유통되는 멍게 중 70%가 통영과 거제 앞바다에서 난다.
멍게는 봄철에 향과 맛이 가장 그윽하다. 잃어버린 입맛을 찾는 데 멍게만 한 것도 없다. 멍게는 지방질이 거의 없어 해삼, 해파리와 함께 3대 저칼로리 수산물로 꼽혀 다이어트 음식으로도 좋다. 노화 방지와 숙취 해소에도 좋다고 알려졌다. 멍게는 뿔이 많고 몸통이 빵빵한 것이 맛있다. 회나 젓갈, 비빔밥, 초밥 등 다양한 요리로 즐길 수 있는데, 그중 멍게비빔밥은 누구든 무리 없이 즐길 수 있으면서도 한 끼 식사로 손색없다. 멍게를 넣고 쓱쓱 밥을 비벼 먹으면 나른한 봄철의 별미다. 멍게비빔밥은 원래 통영·거제 지역에서 주로 먹던 향토 음식으로 일주일간 숙성시킨 멍게가 들어간다. 제맛을 살리려면 비비는 것이 중요한데, 밥알 하나하나에 멍게가 잘 녹아들어 밥알이 노란색이 되도록 비벼야 한다. 밥 한 톨 한 톨이 전부 노란 빛깔로 변해야 완성. 다진 멍게를 밥 위에 올려 장이나 다른 것을 올리지 않고 먹어야 가장 맛있는 비빔밥이 된다. 멍게비빔밥에는 초장이나 간장처럼 자극적인 양념이 들어가지 않고 참기름과 깨만 넣는다. 채소를 살짝 곁들이기도 한다. 멍게가 내뿜는 특유의 싱그러운 향과 참기름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일품이다. 한편, 멍게를 옅은 소금물에 살살 씻어 숙성시킨 ‘멍게 젓갈’은 별다른 반찬이 없어도 밥 한 그릇 뚝딱 비우게 하는 밥도둑이다.
■기획 / 노정연 기자 ■글 / 이송이(여행작가)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노정연 ■사진 제공 / 이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