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의 진화, 잃어버린 맛집

이진주 기자의 음식 이야기

‘먹방’의 진화, 잃어버린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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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한민국을 강타한 ‘먹방’에 이어 이제는 ‘쿡방’이 대세라지만, 먹방의 인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전국 팔도를 다니는 박진감 넘치고 군침 도는 영상을 어찌 포기할 수 있겠는가. 단, 쏟아져 나오는 먹방 속 맛집 정보에 수많은 맛객들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다.

[이진주 기자의 음식 이야기]‘먹방’의 진화, 잃어버린 맛집

[이진주 기자의 음식 이야기]‘먹방’의 진화, 잃어버린 맛집

여전히 먹방 홀릭 중
제철 식재료와 맛있는 향토 음식, 숨은 고수의 맛집을 소개하는 방송은 예전부터 있었다. KBS-2TV ‘생생정보통’, MBC-TV ‘찾아라! 맛있는 TV’ 등은 방송을 시작한 지 10년 이상 된 원조 먹방 프로그램이다. 방송의 포맷도 비슷하다. 3월에는 제철 식재료를 찾아 산지에 가서 싱싱한 도다리회와 향긋한 도다리 쑥국을 맛깔나게 먹는 장면이 전파를 탄다. 매년 비슷한 메뉴가 나와도 방송 이후에는 어김없이 해당 식당 앞이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뿐이랴. 이색 식재료나 보양 식재료가 소개되면 순식간에 동이 나 한동안 재래시장이나 마트에서 찾아볼 수 없는 희귀 상품이 된다. 국민을 들었다 놨다 하는 방송의 힘은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이러한 힘 때문인지 먹방을 통해 온갖 식재료와 조리법, 전통을 이어가는 식당과 색다른 맛집까지, 다채로운 식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또 지방과 접근성이 떨어지는 섬 맛집까지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소개하는 먹방은 그야말로 맛집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나가고 있다.

과대 포장된 먹방 속 맛집의 부작용
먹방의 부작용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난다. 평범하고 소박했던 입맛은 까다롭게 변하고 평범한 점심 메뉴조차 쉽사리 선택하기 어렵다. 이제 한 끼를 먹어도 이왕이면 유명하고 방송에 소개된 집을 찾아간다. 어쩌다 낯선 식당에 들어서면 방송이나 잡지에 나온 집은 아닌지 식당 안을 둘러보게 된다. 손님이 적고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 방문하면 왠지 손해를 본 것만 같아 울적해진다. 이는 먹방에 중독된 지인들의 공통적인 반응이다. 재미있는 것은 식당에 앉아 음식을 먹으면서도 방송에서 봤던 다른 맛집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다. 방송에 소개되지 않은 식당과 음식은 대화에 끼지도 못한다. 방송을 통해서만 미각이 살아나니 어찌된 조화일까.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또 업무적인 이유로 먹방에 소개된 곳들을 종종 방문하는데, 공통적인 것은 방송에 나온 식당들은 하나같이 줄 서기가 기본이라는 것이다. 개중에는 재방문 의사가 있는 맛집도 있지만 대부분 내 시간을 손해 본 것만 같은 평범한 집들이었다. 물론 그 평범함이 맛이 없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방문할 만큼 매력적이라기보다는 집이나 회사 근처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비교적 보편적인 맛이라는 것이다. 방송에 소개된 맛집에 찾아가 몇 시간씩 대기했다가 음식 맛에 실망해 상처받은 이들의 후일담은 각종 SNS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만의 맛집 찾기
개인의 경험과 취향이 절대적인 맛에 대한 평가는 과연 얼마나 공정성이 있을까. 쏟아지는 맛집들의 선정 기준은 무엇이며, 이러한 맛집 관련 정보들이 과연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문득 생각해보게 된다. 더불어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 나는 어떤 기준으로 이들 맛집을 방문했는지 아찔한 기분까지 든다.

맛은 역시 주관적이다. 모두가 좋아한다고 해서 만족할 수 있는 것의 문제는 아니다. 음식의 스토리, 재료, 산지, 만드는 방법 등에 관한 대화가 없는 오로지 소문만 무성한 음식은 재미가 없다. 이제 우리는 검증되지 않은 맛집 정보를 지뢰밭처럼 피해 스스로 만족할 만한 맛집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 성장해 유명세를 치르는 맛집 역시 처음에는 작은 규모로 주목받지 못한 채 시작한 곳들이 대부분이다. 좋은 식당은 방송에 나오지 않아도 입소문만으로 사람들이 모인다. 사람들이 모이는 식당은 유명해지고 다시 방송을 통해 소개된다. 우리는 이제 그런 작고 내공 있는 나만의 맛집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 맛은 방송이 평가하는 것이 아닌 나의 몫이자 즐거움이니까.

■진행 / 이진주 기자 ■사진 / 조인기(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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