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여덟에 식칼을 든 남자, 광고장이 출신의 늦깎이 요리사…. 바다 요리 전문점 ‘해장금’의 오시환 셰프 앞에 붙는 수식어다. 3년 전, 잘나가던 광고인에서 소박한 밥집 주인장으로 변신해 화제가 된 남자. 다시 만난 그는 여전히 ‘해장금’을 지키며 해물 요리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광고인 출신의 늦깎이 요리사
하지만 광고업계의 치열한 경쟁과 끊임없는 창조의 작업은 그를 지치게 했고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 미국행을 결심하게 만들었다. 오시환씨가 선택한 제2의 직업은 바로 요리사. 플로리다의 초밥집과 뉴욕의 퓨전 레스토랑에서 쿡 헬퍼로 일하면서 3년간 곁눈질로 요리를 배웠다. 귀국 후 해장금을 열고 화려한 광고장이 대신 소박한 요리집의 주인장이 됐다.
아침 9시, 오시환 셰프는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콧수염과 은빛 머리카락, 범상치 않은 외모는 예전 그대로였다. 반갑게 악수를 건넨 뒤 장보기에 동행했다. 그는 해장금을 시작한 이후 이틀에 한 번꼴로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는다고 한다. “시장에선 살아 있는 삶의 냄새가 나서 좋아요. 해물을 주제로 요리하다 보니 현장감이 중요한데, 계절별로 바뀌는 싱싱한 해물을 보고 있노라면 아이디어가 떠오르죠. 이젠 시장 사람들과도 제법 가까워져 정보도 많이 얻는 편이에요.” 광고 일을 할 때도 주로 걸을 때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랐다는 그는 시장에서 발품을 팔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요리를 구상하는 듯했다.
“그러니까 틈새시장을 공략하신 거군요?”라고 되묻자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예전엔 입에 달고 다니던 경제용어가 이젠 어색해요. 그런 딱딱한 말을 쓰면 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죠. 요리를 하는 사람은 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손님과 정감이 통해야 맛도 배가되는 법이죠.” 해장금을 연 지 3년째, 그는 어느새 예민한 광고인이 아니라 손맛 좋고 마음 넉넉한 요리사로 변해 있었다.
재료
길조개 3개, 마요네즈 2큰술, 날치알 1작은술
만들기
1 길조개는 한쪽 껍질을 떼어내고 속살을 물에 살짝 헹군다.
2 볼에 마요네즈와 날치알을 넣고 고루 섞는다.
3 길조개의 속살에 ②를 올린다.
4 ③을 그릴이나 오븐에 넣고 마요네즈가 노릇해질 때까지 굽는다.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 있는 담백한 해물 요리
자리를 옮겨 3년 만에 다시 찾은 해장금은 바로 옆 골목으로 이전한 상태였다. 소박한 인테리어, 감미로운 재즈 음악, 손님이 남기고 간 폴라로이드 사진….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느낀 편안함은 그대로 간직한 채 공간만 넓어져 있었다. “벌써 재작년에 이곳으로 옮겼어요. 가게를 넓혀 보람도 있지만 손님과 교감을 나누고 손님끼리도 친해지던 예전의 분위기가 그립기도 합니다.” 새로워진 해장금의 곳곳을 둘러보는 사이, 그의 요리가 시작됐다.
오시환 셰프가 가장 먼저 내온 요리는 ‘길조개 그릴구이.’ 보통 구이 재료로 가리비를 즐겨 쓰는데 오늘은 길조개가 물이 좋아 즉석에서 구입했다. 길조개에 마요네즈와 날치알을 섞어 올린 뒤 그릴에 구운 요리인데, 맛을 보니 조갯살의 짭조름한 맛과 부드러운 마요네즈의 조화가 일품이다. 특히 마요네즈의 담백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마요네즈는 오븐에 구우면 기름이 분리돼 느끼한 맛이 줄어들어요. 여기에 날치알을 섞으면 입 안에서 씹히는 재미도 더할 수 있죠.”
다음으로 나온 요리는 그의 대표작인 ‘해물 누룽지탕.’ 흔히 누룽지탕이라고 하면 중식 누룽지탕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오시환표 누룽지탕은 철저히 한국식이다. 돌솥에 지은 밥으로 직접 만든 누룽지에 싱싱한 해물과 채소, 홍합 우려낸 물을 더해 끓이는데, 시원하고 담백한 맛이 속풀이용으로 그만이다. “시판 누룽지를 사용하면 절대 제 맛을 낼 수 없어요. 집에서 즐기고 싶다면 번거롭더라도 누룽지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세요. 또 이 요리는 식탁 위에서 끓여가며 먹는 것이 좋아요.
채소와 해물은 오래 끓이면 질겨지므로 살짝 데쳐 먼저 먹고 누룽지는 오랫동안 뭉근히 끓여 구수한 맛을 즐기는 게 이 요리의 포인트예요.” 그가 마지막으로 내온 ‘허브 알밥’ 역시 여느 밥집의 알밥과는 다르다. 김치나 단무지 대신 여러 가지 허브 채소가 들어가고 날치알도 듬뿍 들어간다. 먹어보니 생채소의 향과 날치알의 톡톡 튀는 신선한 맛이 꽤나 잘 어울린다. 오시환표 요리에 화려한 테크닉은 없다.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으로 미각을 즐겁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가 추구하는 요리 스타일이다.
미국에서의 쿡 헬퍼 생활까지 합하면 올해로 요리 경력 6년째로 접어든 오시환 셰프. “요리사로서 초보는 면한 것 같아요. 여태껏 제 요리를 두고 일식이다, 퓨전이다 말이 많았죠. 사실은 남들이 안 하는 요리를 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이제 본격적인 색깔을 드러낼 때가 온 것 같아요.” 그는 요리사로서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바다의 해물과 산천의 나물을 접목한 새로운 스타일의 ‘해물 한정식’이 앞으로 선보일 요리의 테마라고. 그동안 요리보다는 독특한 이력으로 더 주목받았던 오시환 셰프. 그가 이제 그만의 색다른 해물 요리로 다시 한번 세간의 관심을 끌길 기대해본다.
재료
밥 2공기, 날치알 6큰술, 겨자잎·적겨자잎·신선초잎·비트잎·케일 2장씩, 치커리 4~5장, 로즈 1장, 날치알 2큰술, 무순·김 약간씩, 참기름·통깨·초고추장 적당량씩
만들기
1 채소는 모두 깨끗이 씻어 물기를 털고 얇게 채썬다.
2 그릇에 밥을 담고 ①의 채소를 보기 좋게 돌려 담은 뒤 날치알을 올린다.
3 ②에 참기름을 두르고 통깨를 뿌린 뒤 무순과 김가루로 장식한다.
4 입맛에 따라 초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는다.
재료
밥 1공기, 새우 2~3마리, 그린홍합 3개, 주꾸미 3마리, 배춧잎 2~3장, 쪽파 2~3대, 숙주 2줌, 팽이버섯·느타리버섯 1줌씩, 양파 1/2개, 애호박 1/4개, 홍고추 1개, 청양고추·쑥갓·홍합 국물·고추냉이 간장 소스 적당량씩, 소금 약간
만들기
1 팬에 밥을 펼쳐 깔고 물을 자작하게 부은 뒤 약한 불에서 구워 누룽지를 만든다.
2 새우, 그린홍합, 주꾸미는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는다.
3 배춧잎은 한입 크기로 썰고 쪽파는 5~6cm 길이로 썬다.
4 숙주는 물에 두어 번 씻어 껍질을 정리한 뒤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5 팽이버섯은 밑동을 자르고 느타리버섯은 먹기 좋게 손으로 찢는다.
6 양파는 굵게 채썰고 애호박은 반달 모양으로 썬다.
7 홍고추와 청양고추는 어슷썰고 쑥갓은 억센 줄기 부분을 자른다.
8 전골냄비에 누룽지, 숙주, 배춧잎을 차례로 담고 팽이버섯, 느타리버섯, 양파, 애호박을 보기 좋게 돌려 담은 뒤 새우, 그린홍합, 주꾸미를 얹는다.
9 ⑧에 홍합 국물을 적당히 붓고 센 불에서 끓이다가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10 ⑨에 청양고추와 홍고추, 쑥갓을 올리고 고추냉이 간장 소스를 곁들여 낸다.
바다 요리 전문점
해장금
생선을 제외한 다양한 해물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담백한 요리를 선보인다. 대표 메뉴는 해물 누룽지탕. 직접 만든 우리식 누룽지로 만들어 시원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이외에도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롤과 상큼한 샐러드, 직접 만든 데리야키 소스로 맛을 낸 볶음류 등 다른 집에서 맛볼 수 없는 독특한 맛의 메뉴가 가득하다. 저녁에는 주방장 특선 모둠 세트도 즐길 수 있다. 위치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사옥 뒤편 문의 02-741-8435
■진행 / 성하정 기자 ■사진 / 원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