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보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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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보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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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메이트’ 조진국 작가의 가을 단상


나는 가을이 싫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눅눅한 여름과 건조한 겨울 사이, 늘어지는 더위와 엄습하는 추위 사이에서 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상기후 탓으로 돌리고 가을은 소멸됐다고 선언할 즈음 그 얼굴을 보여준다. 그것도 아주 잠깐. 하지만 그 잠깐의 가을의 기억은 너무 치명적이다. 타들어가는 단풍, 검버섯처럼 쓸쓸한 낙엽 사이를 오가며 인생의 시작과 막장을 상징처럼 보여준다. 그래서 가을을 맛본 이들에게 가을을 떨쳐버리기란 너무 힘든 것이다.

[프런트에세이]‘사랑이 보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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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찬란한 순간에 마음을 담갔던 사람은 배신 뒤에도 사랑 주위를 계속 배회하듯이, 가을을 느꼈던 사람들은 가슴에 다시 가을을 담기를 갈망한다. 온몸이 빨갛게 타들어가는 나뭇잎처럼 사람들은 갑자기 가을에 타들어간다. 얼마뿐인 찬란하게 물드는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늦은 밤 술을 자작하고, 서점을 배회하고, 쓰러진 사랑의 추억을 되씹고, 고독한 유행가를 흥얼거려야 하는 걸까. 그런 비생산적이고 퇴폐적인 가을의 낭만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얼마만큼 유익하게 작용할까. 나는 그런 무기력한 가을이 너무 싫다.

그래서 차라리 겨울을 빨리 맞아들이기로 했다. 추위에 바짝 긴장해서 살아갈 힘을 더욱 느끼게 만드는 겨울이 유약한 가을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어서다. 옷장을 열어 가을옷 사이에다 겨울옷을 끼워 걸어두었다. 목을 두 바퀴 반을 감고도 남을 만큼 긴 머플러와 가죽 장갑도 챙겨놓았다. 그렇게 묵은 짐을 뒤지다가 발견한 빛바랜 주머니 하나. 어릴 땐 실내화를 넣어 다녀서 ‘신주머니’라고 불렀던, 홑겹으로 되고 양옆에 끈이 달려 있어서 당기면 닫히게 되어 있는 주머니. 그녀가 주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내게 준 선물. 사랑한다고 말하기 훨씬 전이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 달아나지 않을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달아나지 않을까 사랑이 불확실하던 때 그녀가 내게 내밀었던 주머니였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물었다. ‘취미가 뭐예요?’
참 재미없는 질문이었지만, 그런 질문조차 방울토마토처럼 반질하고 도톰한 입술을 가진 그녀의 입에서 나오면 맛있는 질문으로 변했다. “이어폰 끼고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거 좋아해요.” 참 시시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웃으면서 말을 받아주었다. “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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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날 점심시간에 회사 로비로 찾아온 그녀가 주머니를 내밀었다. 운동할 때 입을 반바지와 티셔츠를 넣으면 딱 알맞을 크기였다. “열심히 운동해서 팔뚝에 힘줄 같은 거 만들어주세요” 그녀의 입술을 닮은 방울토마토 색깔의 천에는 하얀 나이키 문양이 날렵하게 새겨져 있었다. 너무 예뻐서 죽을 것만 같았다, 그녀가. 참 사랑했었는데…. 그 후로도 오랫동안 참 힘들어했었는데. 그녀에 대한 추억에 한참 그 주머니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추억의 느낌이 참 묘했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집 앞으로 가겠으니 나오라는 가까운 후배의 전화였다.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요즘 들어 가을을 타는 지인들이 새벽에 홍대까지 찾아오는 경우가 부쩍 늘어났다. 서로를 마주보기가 뭐해서 그와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나란히 높은 의자에 걸터앉았다.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는 코코아를 마시고, 그는 깊게 담배를 태웠다. ‘그 여자는 말이죠.’ 그가 지금 만나고 있는 그녀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나를 찾아온 건 내 생각이 나서가 아니라 그녀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나의 조언을 듣고 싶다고 했다.


그는 그녀가 싫다고 했다
브라운관에서 가슴선이 보이는 옷을 입고 연기를 하는 그녀가 싫다고 했다. 섹시한 연예인 순위에서 그녀의 이름을 발견하는 게 싫고, 댓글에서 그녀를 연모하는 남자들의 짙은 농담이 싫다고 했다. 무엇보다 지금 사귀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그녀가 싫다고 했다. 그렇게 싫으면서도 그녀가 좋다고 했다.

죽을 것 같다고도 했다. 차 안에서 피곤해서 잠든 그녀의 얼굴이 안타까워서 죽을 것 같고, 그녀가 직접 차려준 맛없는 밥상이 맛있어서 죽을 것 같고, 그녀가 손으로 직접 쓴 철자법이 엉망인 편지가 사랑스러워서 죽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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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녀도 죽을 만큼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그날은 밸런타인데이였다. 처음 만나고 다음날, 우리는 명동의 어느 카페에서 두 번째 만났다. 나는 초콜릿이라도 챙겨 나가야 하나 망설이다가 그냥 나갔다. 만난 지 이틀밖에 안 된 시점에서 초콜릿을 내밀면 그녀에게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소심증이 발동해서였다. 너무 일찍 ‘당신에게 반했어요’란 항복 카드를 내보인 탓에 순식간에 그녀의 노예로 전락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반발심도 작용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소심한 나랑은 달랐다
의자에 앉자마자 가방에서 조그마한 종이상자를 꺼내서는 풀었다. 하얀 크림이 하트 모양의 초콜릿을 감싼 케이크였다. ‘저 인기 많아요, 회사에서 남자 후배가 주더라고요. 근데 그 사람이 아니라 내 앞에 있는 사람하고 먹고 싶어서 갖고 왔어요’ 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케이크 반을 잘라서 옆 테이블에 앉은 우리보다 어려 보이는 커플에게 주었다. 귀여운 친구 누나 같은 미소였다. “맛있겠죠. 드셔보세요.”

나에게 자신의 감정을 또렷하게 전달하고, 다른 사람까지 챙겨주는 그녀는 그렇게 쾌활하고 거침없고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나는 그날 그녀가 공수해온 '그녀를 사모하는 남자 후배의 케이크'를 녹여 먹으며 그녀에게 완전히 녹아들고 말았다. 죽을 만큼 그녀가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왜 사랑스러운 여자와 죽을 것 같은 여자는 항상 동의어가 되는 걸까.
왜 사랑스러운 여자는 결국엔 항상 죽고 싶은 고통을 주는 걸까. 늦은 밤 나를 찾아온 후배에게 내가 조언해줄 말은 딱히 없었다. 사랑이 일어나는 곳에는 관찰자와 관망자만 있을 뿐이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내 역할은 다했다고 생각했다. 내 사랑은 추억이 됐지만, 너의 사랑은 영원한 현재진행형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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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전혀 다른 모양새를 한 두 남자가 자신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간지러운 짓도 다 가을이 부린 장난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났다. 가을은 참 약해빠진 계절이구나 싶었다. 후배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벌여놓은 옷장을 마무리하면서 내가 정말로 가을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아버린 것 같았다. 그래, 가을은 안 그래도 마음이 약한 나를 한없이 약해빠진 놈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그녀와 나를 알았던 사람들이 왜 헤어졌느냐고 물어보면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사랑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사라졌는지 설명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냥, 그렇게 됐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사랑이 식었기 때문에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나의 약함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녀가 신주머니를 선물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팔뚝의 핏줄은 아무리 재촉해도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다. 나의 재능 또한 그녀가 친구들에게 자랑할 만큼 뛰어나지 않았다. 나는 모든 게 가을을 닮은 약한 남자였던 것이다.

더 이상 신주머니에선 그녀의 입술을 닮은 빨간 방울토마토 같은 색깔은 나지 않는다. 바래고 바래서 물이 빠진 천, 명료하게 도드라진 하얀 나이키 문양도 보이지 않는다. 서로에게 번쩍이며 눈이 맞았던 우리들은 그 번개 같은 날렵한 문양이 닳아 없어지도록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세월을 타고, 무심을 타고, 습관을 타고 완전히 어디론가 날아가버리도록 왜 방치하고 있었던 걸까.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내가 만지작거리고 있는 건 아픈 선물이 아니라, 문득 움켜쥐게 된 담담한 추억 한 움큼이니까.

가을이 다 끝나가도록 제대로 된 가을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죽을 만큼 사랑했어도 사랑이 무엇인지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사랑이 보일 때까지 사랑할 것이고, 사랑할 때까지 다음 가을을 맞이할 것이다. 가을이면 가을답게 사는 것이다. 아무리 짧아도 가을은 가을인 것이다. 미리 겨울을 준비할 필요도 없고, 지나간 여름을 담아둘 필요도 없다. 지금 이 사랑에 타들어가고, 지금 이 사랑에 젖으면 되는 것이다. 그냥 사랑이 보일 때까지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설령 영원히 볼 수 없다고 해도.

편집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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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아줌마가 된 것을 실감할까. 어르신이 ‘아가씨’라고 부르면서 도움을 청하면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친절해지는 나를 발견할 때, 그래도 농수산물은 재래시장이 대형 할인 마트보다 싸다며 양손 가득 장을 봐 낑낑대며 집에 돌아올 때, 모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앞집 중학생에게 어느새 ‘누나’가 아닌 ‘아줌마’라고 나 자신을 지칭할 때, 아찔한 미니스커트에 등이 시원스레 파인 톱으로 한껏 멋을 부린 아가씨를 보며 나도 몰래 ‘요즘 것들은 하여튼’이라고 혼잣말이 나올 때.

결혼 전 거금을 들여 구입한 슈트가 몸에 맞지 않거나 엘리베이터 거울을 통해서 새치를 발견하는 것보다 더 슬픈 건 세상에서 가장 절절한 사랑을 하고 있는 양 애달픈 대사를 주고받는 드라마 속 주인공을 보면서 ‘으이구 철딱서니 하고는’이라며 혀를 끌끌 찰 때였던 거 같다.

내가 언제 영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를 보며 훌쩍였던가. 하루 한 시간 미니시리즈 주인공의 이별 이야기에 오롯이 집중하는 것도 쉬운 노릇이 아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몇날 며칠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는 그녀를 지켜보는 것조차 고역이다. 빨래를 개키던 손을 멈추고 이내 ‘어서 빨리 툭툭 털고 일어나라’고 다그치고 만다. 아, 사치란 그저 밍크코트, 진주 목걸이, 명품이라 불리는 백을 사들이는 것만이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가을 냄새 물씬 풍기는 10월도 아니고, 송년의 무드에 들썩이는 12월도 아닌, 영 애매하다고만 여겼던 11월. 11월 하면 건스앤로지스(Guns N' Roses)의 ‘노벰버 레인(November Rain)’이라는 근사한 곡이 떠오른다. 어느 어두컴컴한 음악감상실에선가 처음 들었던 그 노래. 그 시절의 감성을 되살려줄 적임자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고마워요, 소울메이트」로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특별한 소울메이트가 있다고, 사랑은 믿어주는 만큼 그 힘을 발휘한다는 진리를 설파한 조진국 작가가 소설 「본드걸과 미미양의 모험」의 시나리오 작업으로 바쁜 와중에 사랑에 관한 글을 보내왔다. 한달음에 써내려갔음이 분명한 그의 글은 그래서 더욱 강렬하다. 사랑이 보일 때까지 사랑을 할 수 있는 가을이 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속내가 고스란히 전해지길 바라며.

진행 / 장회정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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