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성진 “입술만큼 감정을 풍부하게 하는 대상은 없죠”

작가 김성진 “입술만큼 감정을 풍부하게 하는 대상은 없죠”

댓글 공유하기

작가 김성진의 입술은 관능적이다. 성별이 모호한 두 입술의 키스, 반쯤 벌어진 입술, 혀, 그리고 때때로 그들을 덮고 있는 액체 때문이다.

작가 김성진 “입술만큼 감정을 풍부하게 하는 대상은 없죠”

작가 김성진 “입술만큼 감정을 풍부하게 하는 대상은 없죠”

그것은 침일 수도, 눈물일 수도, 물일 수도 있다. 제비꽃을 향해 벌어진 입술과 꽃잎을 핥을 듯한 혀는 노골적인 섹슈얼리티다. 여기까지가 일단의 반응이다. 그러나 김성진은 입술의 의미가 ‘관능’으로 한정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유일하게 인간의 속살이 겉으로 나와 있는 부분이 입술이에요. 입술만큼 사람의 감정을 풍부하게 드러내는 대상은 없죠.”

마주 앉은 사람의 마음을 읽고 싶을 때, 눈을 읽는 것보다 입술을 읽는 것이 효과적일 때가 있다. 입술은 눈보다 직설적이다. 하지만 화장으로 치장한 여성의 입술은 감정을 치장하고 은밀한 소통에 열 올리는 현대인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같은 맥락에서, 제비꽃과 마주한 입술은 관능을 돌아 ‘순수’로 간다. 꽃은 꽃대로, 입술은 입술대로 뒀다. 치장하지 않았다.

“꽃과 입술의 관계 때문에 관능적으로 읽힐 수도 있죠. 그러나 제가 그린 입술은 립스틱도 바르지 않은, 순수한 여성의 입술 그 자체예요. 못생기면 못생긴 대로(웃음), 덧니도 있는 자연스러운 입술이죠.”

하이퍼리얼리즘은 김성진의 의도와 잘 맞아떨어진다. 있는 그대로 그린다. 사진처럼 보일만큼 세세하게 묘사했다. 하지만 다 보여주진 않는다. 극단적인 클로즈업은 선명한 그림 속에 숨은 의미를 궁금하게 만든다. 이 입술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키스하고 있는 두 입술은 남자와 여자인지, 아니면 둘 다 여자인지도 분명치 않다.

“하하, 원래 수염이 좀 더 있어야 하는데 그리면서 많이 죽였어요. 흉해서요(웃음). 열 개에서 다섯 개로 줄이고 2cm를 1cm로 줄이고 그랬죠. 수염은 남자의 입술을 상징하죠. 하지만 남자와 여자의 입술을 구분 지을 수 있는 차이는 모공과 털뿐이에요. 그거 없으면 별 차이 없죠.”

김성진은 대학 때부터 입술을 그렸다. 본인의 입술을, 각질과 여드름까지 ‘열심히’ 그렸다. 반응은 신경도 안 썼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반응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강렬하다”, “그로테스크하다”는 평을 들은 그는 ‘일단의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도톰한 입술’의 여동생이 모델로 나서기도 한다.

“대학 때는 워낙 관심 받기가 힘드니까요, 관심을 끈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했죠. 작품 하나로 끝내기가 아쉬워 모델을 여자로 바꾸고 나만의 기호를 찾아서 그리기 시작했어요. 하루에도 수십 가지 아이디어가 생각났죠(웃음).”

그림을 ‘읽을’ 필요는 없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나름의 재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은 아니다.

전시를 관람하고 나오는 길, 김성진 작가와 담배를 피웠다. 두 명의 남자가 팬이라며 명함을 건넸다. 지금 막 작품 한 점을 구입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남자는 “오랜 팬이다. 그림을 보는 순간 가슴이 떨리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어디선가 카페를 운영하는 젊은 사장이리라고 짐작했지만, 그는 그냥 회사원이었다. 그리고 구매한 그림은 “집에 걸어놓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담당/정우성기자

화제의 추천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TOP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