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지현의 겨울 나뭇가지에게

프런트 에세이

소설가 김지현의 겨울 나뭇가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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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나뭇가지들이 겨울바람에 휘둘린다. 찬바람이 오고가는 하늘은 시퍼렇게 벗겨져 눈이 시리지만, 나뭇가지는 외려 그것을 치받듯 뻗어 있어 강단이 있고 씩씩해 보인다. 잎이 떨어지고 알몸을 드러낸 가지들은 숨을 죽인 채 혹한을 견뎌내는 중이다. 인고의 시간이 지나면, 앙상한 가지들은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래서 나목에게 영하의 바람이 지배하는 시간은 일종의 성장의 시간인 셈이다. 고통과 눈물, 인내와 탄식으로 얼어붙은 시간의 이면에는 오기와 열정, 희망 따위들로 농익은 생명의 기운이 감지된다. 때문에 모진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제 몫을 다하며 존재하는 것에는, 숭고한 열기와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법이다.

[프런트 에세이]소설가 김지현의 겨울 나뭇가지에게

[프런트 에세이]소설가 김지현의 겨울 나뭇가지에게

6년 전 겨울, 혹독한 추위로 바짝 얼어붙어 있던 12월의 새벽녘, 치매를 앓고 있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앙상한 육체로 고단한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엄마 또한 그 곁을 오롯이 지키며 인내의 시간을 살았다. 엄마는 할머니와 20년을 살았으면서도, 할머니가 치매를 앓고 돌아가시기까지의 3년 만을 종종 입에 올린다. 나는 할머니의 허물어져가는 육체와 그 모습을 내내 목격해야 했던 엄마의 눈을, 그 눈빛을 기억한다. 안타까움과 두려움, 혐오감과 서글픔, 생에 대한 환멸로 몸서리치듯 흔들리던 엄마의 눈동자를 결코 잊을 수 없다.

이른 봄, 예정보다 일찍 만개한 라일락 향기가 골목길 가득 퍼져나가던 밤. 신발장 곁에 쪼그리고 앉아 컴컴한 골목길을 하염없이 내다보던 할머니를, 엄마는 한 시간째 관찰하고 있었다.

“참 이상하단 말이야. 밤마다 저러고 앉아 애비를 기다린 지 두 달째야.”
약국을 하는 아버지가 문을 닫고 집에 도착하기 세 시간 전부터, 할머니는 웅크린 자세로 꼼짝도 하지 않고 밖을 내다보고 있던 터였다. 대학원에 갓 입학한 나는 옥탑방에 틀어박혀 시간표 짜기에 골몰하던 중이었다. 할머니의 기행이 눈에 들어올 턱이 없었다. 나는 의혹에 차 가늘어진 엄마의 눈초리를 가볍게 넘기고, 평소처럼 커피 물을 불 위에 올려놓기 바빴다. 그때였다.

“석~탄 백~탄 타는데 연기가 펄석 나네. 이내 가슴 타는데 연기도 김도 안 나네~.”
할머니는 느닷없이 그녀의 18번을 흥얼거렸다. 작고, 가늘고, 여리게 떨리기까지 하는 음색. 그 기이하고도 간지러운 음성에 엄마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 피식 웃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할머니의 노랫가락을 따라 흥얼거리며 각자 할 일로 돌아갔다. 하지만 우리의 노래는 5분을 넘기지 못했다. 약국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신발을 벗은 순간 할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치마가 펑 젖도록 오줌을 쌌다. 무안해서였을까. 할머니는 배시시 웃다가 이내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공포감과 당혹감이 가족을, 엄마를 옥죄었다. 지린내가 라일락 향기를 뒤덮었다. 엄마는 망연자실 거실 바닥에 번져나가는 오줌줄기를 지켜볼 뿐이었다. 힘겨운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잔인한 봄밤이었다.


온 가족이 할머니 시중에 집중한다고 해도, 종일 그녀 곁에 붙어 있는 사람은 엄마가 유일했다. 점점 빈약해져가던 할머니의 다리가 어느 순간 맥없이 반으로 접힌 후로, 할머니는 영원히 앉은뱅이가 되어버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자리에서 용변을 보는 그녀 때문에, 엄마는 홀로 할머니를 끌어안고 욕실로 향할 때가 다반사였다. 집 안에 지린내가 진동했다. 할머니에게 기저귀를 채워도 변은 흘러나와 할머니의 몸에 옷에 이불에 묻었다. 부엌에서는 연일 할머니를 위해 끓인 곰국과 닭죽이 구린내를 풍기며 끓어올랐다. 벽과 방바닥과 가구에 고약한 냄새가 스며들었다. 누구든 숨을 들이쉬면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느라 눈시울이 벌게져야 했다. 할머니에 비해 몸집이 작은 엄마는 그녀를 끌고 끙끙대다 곧잘 뒤로 옆으로 자빠지곤 했다. 그러고 나면 할머니 몸에 묻은 용변이 엄마의 몸에 묻었고, 두 여자 몸 어딘가에 동시에 멍이 들었다.

[프런트 에세이]소설가 김지현의 겨울 나뭇가지에게

[프런트 에세이]소설가 김지현의 겨울 나뭇가지에게

“도저히 못해먹겠다! 이거야 원, 방법을 찾든가 해야지.”
몸살로 얼굴이 상기된 엄마가 젖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오늘도 할머니와 엄마의 옷을 집어삼킨 세탁기가 몸체를 떨며 돌아가고 있었다. 엄마는 하루에도 수차례 샤워를 했다. 엄마에게서 비누 냄새가 아닌 파스 냄새가, 때론 바짝 마른 풀 냄새가, 때론 덜 익은 채소에서나 풍기는 비릿한 풋내가 날아왔다. 그것은 엄마가 가슴 밑바닥에 쌓여가는 감정들을 삭이고 있음을 암시하는 냄새, 이 지긋지긋한 간병 생활을 오기로 버티고 있음을 드러내는 냄새였다.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엄마는 분노와 원망으로 몸부림치다가도, 맏며느리라는 위치에서 비롯된 책임감, 생각하기를 멈추고 기계적으로 헌신만을 강요하는 그 책임감 앞에서 두 손을 들어버렸다. 하지만 이내, 20년 동안 억세고 냉엄한 시어머니의 등 뒤에서 뚱한 표정으로 서성거려왔던 세월이 억울해서, 그 억울함에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오기가 치솟았고 엄마의 눈빛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나는 엄마의 지친 표정 뒤에 숨은 그 이상한 열기를 느끼며, 그녀에게 이끌려 도배지 가게로 향했다. 엄마는 비닐을 두 마 정도 끊었다.

“할머니 엉덩이 밑에 깔아놓자. 그리고 속옷을 갈아입히자. 비닐은 씻어 말리기도 편하니까.”
엄마는 할머니 엉덩이 밑에 비닐을 깔았다. 할머니가 몸을 뒤척일 때마다 악취가 풍겼다. 엄마가 할머니의 속옷을 끌어내리자 먼저 오줌으로 묵직해진 기저귀가 보였다. 기저귀를 걷어내자, 나는 반사적으로 숨쉬기를 멈췄다. 엄마는 뒤로 몸을 빼는 나를 세게 끌어당겼다. 나는 꼼짝없이 엄마와 나란히 앉아 지난날 아버지를 낳고 고모들을 낳았던, 할머니의 벌어진 가랑이 사이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충격이었다. 허옇게 말라비틀어진 곳으로 흘러나오는 것이라고는, 농도 짙은 누런 오줌과 오래된 핏빛을 띤 변이 전부였다. 할머니 몸속의 모든 것이 물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죽어가는 것은 모두 이렇게 물이 되어가는 걸까.

물이 되어 대지로 흘러드는 때를 꿈꾸는 것인가. 거무칙칙하게 짓무른 피부, 음식물을 받아들일 수 없는 입, 무의미하게 열린 눈, 닻이 뽑혀버린 눈동자. 할머니는 지금 당신 몸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몰랐다. 그저 나를 막내고모로 부르고 엄마를 당신의 친어미로 부르고 아버지를 여덟 살 아이로 불러댔다. 할머니의 영혼은 이미 이곳에 없었다. 모든 것이 드러나고 해체된 육체, 엄마와 나는 그 죽어가는 몸을 닦고 감싸며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그 순간,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반드시 흙으로 돌아갈 몸뚱이로 살아간다는 것. 사는 동안 한없이 겸손하고 서로 사랑하고,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주어진 시간을 열정을 다해 살아낼 것. 아이러니하게도 할머니의 죽어가는 몸은 엄마와 내게 생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옥상 빨랫줄에 커다란 비닐이 내걸렸다. 엄마는 볕이 좋은 날이면 비닐을 깨끗이 씻어 옥상에서 그것을 말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비닐이 바스락거렸다. 그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가을날 낙엽 밟는 소리와 흡사했다. 엄마와 나는 바스락 소리를 들으며 낮잠에 빠져들곤 했다. 금방 속옷을 갈아입힌 할머니도 잠이 들었다. 우리는 점점 악취에 익숙해져갔고, 할머니 곁에 붙어 앉아 꾸벅꾸벅 조는 날도 더러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의 낮잠을 무참히 깨우는 일이 벌어졌다. 오랜만에 고모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이웃에서 오셨소… 밥 먹고 놀다가… 한잠 자고 가소.”
할머니는 어눌한 음성으로 고모들을 맞이했다. 고모들은 먼저 그 음성에 놀라고, 그녀들을 못 알아보는 그 퀭한 눈에 놀라고, 허공을 휘젓는 그 앙상한 팔에 놀랐다. 놀라움 끝에는 악취에 민감해진 코를 문질렀고, 냄새의 근원을 엄마의 관리 소홀로 돌렸다. 엄마는 두 눈을 꼭 감고 그녀들의 책망을 듣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엄마와 고모들, 애초부터 서로 다른 곳을 보고 말을 하는 그들이었다.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기가 불가능한 관계. 무엇이 그들 사이를 벌려놓은 걸까. 각기 다른 욕심 때문인가, 가부장을 중심으로 꾸려온 가족제도 때문인가. 고모들은 자꾸만 야위어가는 할머니 앞에 갖고 온 음식들을 풀어놓았다. 숯불 닭고기와 고구마튀김, 카스텔라, 호박떡 등. 할머니가 아프기 전에 즐겨 먹던 음식들이었고, 또 현재 모두 소화시키기 어려운 음식들이었다.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 엄마는 당장 그 음식들을 치우라고 했고, 고모들은 엄마가 할머니에게 음식을 가려 먹여 이 꼴로 만들어놓았다고 원망했다. 고모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엄마도 핏대를 세우며 맞섰다. 참다못한 내가 나서서 소리를 꽝, 질렀다가 본전도 못 찾고 야단만 들었다. 막말이 오가고 그 사이로 내지르는 고함이 집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렇게 정신없는 가운데, 그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푸,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순간 싸움이 중단됐다. 끌끌대는 웃음에 가르랑거리는 숨소리가 뒤섞인. 할머니가 웃고 있었다. 그 바람에 할머니 입에서 튀어나온 까만 음식물이 사방에 흩뿌려졌다. 할머니는 눈물 콧물을 흘리며 오랜 시간 웃어댔다. 고모들 중 누군가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할머니는 웃고, 고모들은 울었다.

고모들이 돌아가고, 엄마는 잘 익은 홍시를 들고 할머니 방으로 향했다. 할머니는 엄마의 부축을 받아 엄마 가슴에 기대어 앉았다. 엄마는 차 스푼으로 홍시를 조금씩 떠 할머니 입속에 넣어주었다. 할머니는 그것을 달게 받아 먹었다. 할머니의 치매가 중증으로 치달을수록 엄마의 눈동자는 차분해졌고, 힘을 얻었다. 할머니도 엄마도 둘 다 몸이 야위었지만, 할머니를 부둥켜안은 엄마의 팔뚝만은 힘줄이 불거져 나올 만큼 단단하고 굵어졌다. 파스를 덕지덕지 붙인 엄마의 팔뚝. 순간 홍시를 받아먹던 할머니가 엄마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잠시 후,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 떨어졌다. 할머니는 온몸을 떨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 서러워서 그래. 어머니… 뭐가 그리 서러워.”
엄마는 손등으로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할머니는 울며 뭐라고 우물우물 말하고 있었지만, 엄마는 모두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엄마를 쿡쿡 찌르며 뭐라시는데, 재차 물었으나 엄마는 대꾸하지 않았다. 엄마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모든 것을 열어 보인 할머니의 몸이, 엄마의 닫혀 있던 무언가를 활짝 열어젖힌 듯했다. 두 여자는 최초로 마주본 사람들처럼, 서로를 오래 쳐다보았다. 비로소 둘 사이에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 순간은 앞으로 생을 살아갈 엄마에게, 중요한 깨달음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지금까지도 그날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이야기한다. 특히 아버지와 대화가 막혔을 때나 이웃들과 언쟁을 벌여야 했을 때, 이모들과 마찰을 빚을 때, 엄마는 푸념 끝에 그날의 일을 떠올리고는 날이 선 마음을 돌려 세우곤 한다. 분명 그날의 깨달음은 엄마가 살아가는 데 힘이 되고 있다.

[프런트 에세이]소설가 김지현의 겨울 나뭇가지에게

[프런트 에세이]소설가 김지현의 겨울 나뭇가지에게

나는 창밖 앙상한 나뭇가지를 바라본다. 그리고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할머니와 그녀를 보듬기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엄마를 생각한다. 고통과 눈물의 시간에 던져졌던 두 여자를 기억하는 일. 내게는 반목보다 소통을, 좌절보다 희망을, 불가능보다 가능을 생각하게 하는 힘이다. 나는 겨울 나뭇가지에서 꽃이 피는 설렘보다, 꽃을 피우기 위해 찬바람을 견뎌가는 가지의 결연한 의지를, 그 훈훈한 힘을 사랑한다.

Profile 소설가 김지현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과정을 마쳤다. 200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사각거울」로 등단했으며, 2007년 가을, 첫 창작집 「플라스틱 물고기」를 출간했다.

진행 / 두경아 기자 글 / 김지현 사진 / 민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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