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네 몸이 손에 닿는 순간
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너는 다 마른 샘 바닥에 누운 물고기처럼*
힘겹게 파닥이고 있었다, 나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을 비비는 것처럼
너를 적시기 위해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비늘이 어둠 속에서 잠시 빛났다
그러나 내 두려움을 네가 알았을 리 없다
조금씩 밝아오는 것이, 빛이 물처럼
흘러들어 어둠을 적셔버리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시든 비늘 위에.
아주 오랜 뒤에 나는 낡은 밥상 위에 놓인 마른 황어들을
보았다.
황어를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나는 너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황어는 겨울밤 남대천 상류 얼음 속에서 잡은 것이라 한다.
그러나 지느러미는 꺾이고 빛나던 눈도 비늘도 시들어버렸다.
낡은 밥상 위에서 겨울 햇살을 받고 있는 마른 황어들은
말이 없다.
시인 나희덕은 196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시집 「뿌리에게」「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그곳이 멀지 않다」「어두워진다는 것」 등을 발표했으며,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출간했다.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나희덕 시인의 ‘마른 물고기처럼’
이제와 돌아보는 사랑의 쓸쓸함
지나고 보면, 사랑보다 쓸쓸한 것은 없다. 이제 당신을 만질 수 없다는 무력감, 내 품에 안았던 부피만큼의 상실보다 더 아픈 건 ‘당신은 사랑이었을까’라는 의심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또 암수가 결합하는 행위라는 것은 절멸(絶滅)에 대한 공포에서 오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동족을 퍼뜨리고, 또 다른 형태의 나를 지상에 남기려고 하는 생존 본능이 성적 결합이나 교미로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르죠.”
꺾인 지느러미로 밥상에 오른 황어처럼, 모든 삶의 방향성은 정해져 있다. 삶의 반대편 끝에 죽음이 있다는 사실로부터는 벗어날 수가 없다.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을 비비는 것처럼 / 너를 적시기 위해 자꾸만 침을 뱉’는 행위는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 연신 침을 뱉어주고 거품을 내는 황어 두 마리와 다르지 않다. 다 마른 샘의 바닥에서,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서. 거기에 ‘사랑’이라는 고상한 단어는 없다.
“어느 날 남대천의 민박집에서 황어포를 내 줬어요. 황어 모습 그대로 살아서 마른. 거기에 햇빛이 비추고, 죽어서 딱딱하게 말라 있는데 형태는 보존하고 있으니까, 생의 기억을 몸에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쓸쓸했죠. 이 두 마리가 물속에서 살아 있던 때를 유추할 수 있었어요. 민박집 주인은 그 황어를 남대천 상류에서 잡았다고 했는데, 남대천은 무척 맑고 깨끗한 시내거든요.”
시의 모티브는 장자(莊子)의 한 구절이다. 장자는 “샘의 물이 다 마르면 고기들은 땅 위에 함께 남게 된다. 그들은 서로 습기를 공급하기 위해 침을 뱉어주고 거품을 내어 서로를 적셔준다. 하지만 이것은 강이나 호수에 있을 때 서로를 잊어버리는 것만 못하다”고 썼다. 적어도 물속에서는 살 수 있다. 두려움을 사랑으로 가장하기보다는, 따로 떨어져 서로를 잊는 것이 낫다.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이 집착일 수도 있고, 서로에게 치욕스러운 어떤 것일 수도 있죠. 서로가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관능적으로 읽히는 1연을 지나면, 삶과 죽음이 황어의 몸을 빌려 밥상 위로 오른다. 햇빛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 시든 눈알, 꺾인 지느러미는 치욕적이지만 감출 수 없다. 그래서 관능으로 시작한 시는 2연에서 죽음과 만난다. 마른 황어의 이미지는 단절과 부재, 사라진 것에 대한 쓸쓸함을 환기한다.
“우리는 절박하게 마른 바닥에 파닥거리는 물고기처럼 서로를 필요로 하고 몸을 비비는 행위를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세월이 지나서 보면 두려움이었고, 생존을 돕는 행위였어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거죠.”
■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 ‘마른 물고기처럼’은 나희덕 시인의 2004년 시집 「사라진 손바닥」(문학과 지성사)에 수록돼 있다. “거기 있는 시들은 대부분 딱딱하고, 마른 것에 대한 시예요. 견고할 수도 있지만 생명을 잃어버린 거죠.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쓸쓸함이 시집 전체를 관류하고 있어요.” 시인은 마흔에 접어들며 쓴 시들을 모았다. 나이가 들면서 잃어버리는 것, 육체적인 것뿐 아니라 마음의 물기가 메말라가는 것에 대해서도 썼다. 시는 시인의 손을 떠난 순간 독자의 것이 된다. 어떻게 읽어도 관계없다. 하지만 시인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 싶다면, 시집 전체를 음미하는 것이 좋다. 각각의 시는 유기적으로 얽혀, 서로에 대한 이해의 단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