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이 눈물처럼 톡 떨어지던 밤에
T.S. 엘리엇은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잔인한 달은 단연 12월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니라고요? 제 이야기 한번 들어보세요. 저도 20대에는 4월, 그러니까 봄이 잔인했던 거 같아요. 봄에는 만물이 소생하는데 제 인생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거든요. 날씨는 이리도 좋은데 갈 곳은 없고,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도 사람도 없고. 참, 우울했죠.
저는 서른 살이 되니까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일종의 포기냐고요? 그건 아니고, 아, 그랬던 것도 같은데, 돌이켜보면 막상 닥치니까 별거 아니었다는 거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잖아요. 사람들이 반복해서 하는 말에는 위로뿐 아니라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답니다. 아무튼 1월이 오면 새해 계획이다 뭐다 해서 바쁘고 다시 희망을 정비하는 데 반해 12월은 왠지 초조하고 서글퍼지죠. 추워서 그럴지도 모르죠.
한 해가 추운 겨울에서 시작되어 겨울에 끝나는 건 아이러니합니다. 12월의 잔인함이 절정에 달하는 건 크리스마스 때문일지도 몰라요. 무슨 이야기인 줄 아시죠. 모르신다면 당신은 운이 좋은 거예요. 서양 영화에서는 가족이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에 많이 모이더군요. 이 시기를 홀리데이 시즌이라고 한다던데 선물 때문인지 상점의 매출도 부쩍 뛰어오른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우리의 추석이나 설 명절 같은 거겠죠.
크리스마스가 우리 집의 가족 행사였던 시절은 제가 기독교 계통의 유치원을 다녔던 그때뿐이었던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이브에 연극도 하고 무용도 하고, 가짜 산타클로스가 선물도 나눠줬어요. 그날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커다란 인형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여러분은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걸 언제 아셨나요? 저는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믿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크리스마스에는 산타클로스에게 선물 소원을 빌었죠. 어릴 때 받고 싶던 선물 중 8할은 인형이었어요.
저는 지금도 여전히 인형을 좋아하는데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인형이 그리워질 때가 있어요.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인형 중 하나는 마론 인형인데 그 인형과 늘 목욕을 했어요. 그리고 엄마가 손바느질로 만들어준 인형도 있었답니다. 그 인형들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면 참 재밌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인형들이 제게 있었던 기억들은 있는데 없어진 기억은 도무지 나질 않아요. 우리는 뭐든 쓸모없어지면 버리기 좋아하고, 나이를 의식해서 그 나이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죠. 어쩌면 그래서 그 인형이 지금 저에게 없는 거겠죠. 나이에 어울리는 삶, 그것 때문에 12월에는 허무해지고 쓸쓸해지는 거 아닐까요?
크리스마스가 우리나라에서는, 아니, 적어도 저에게는 연인들의 날처럼 여겨져요. 아님, 애인 없는 친구들이 모여서 밤 새워 노는 날이거나요. 이런 날이면 혼자인 사람들은 괜히 배가 아프고 서글퍼지죠. ‘로맨틱 홀리데이’라는 영화 기억나세요? 독신자들이 집을 바꾸는 영화였는데, 때때로 12월이면 모든 것을 바꾸고 싶어집니다. 1년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고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겠죠. 그래도 12월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변하지 않는 것 때문에 흐뭇해지기도 할 겁니다.
인생은 희로애락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2008년도 기쁘고 노엽고 슬프고 즐거운 일의 점철이었죠. 당신에게 2008년은 어떤 해였나요? 저는 바쁘고 정신없고 사납고 어수선한 한 해였어요. 올해는 지난 1월에 했던 계획들 중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사정이 나빴고 저로서는 몹시 힘든 한 해였거든요.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더 이상 나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 두려웠지요.
그 나쁜 상황 중에서 제가 한 선택은 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었어요. 저한테 제일 중요한 일은 소설을 쓰는 것과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변명일 수도 있지만 다른 건 아무것도 못했어요. 운동도, 그림이나 사진을 배우는 일도,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일도, 모두 다 2009년의 계획이 되어버렸네요. 그러니까 2009년 1월에 저는 따로 새해 계획을 세울 필요조차 없어졌답니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겠죠. 끝과 시작이 만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12월이 아닐까요.
그럼, 올해 힘든 가운데 썼던 소설 이야기를 잠깐 할까요? 그 소설에는 30대가 되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여자가 나옵니다. 저는 지나온 서른이 얼마나 두려우며 의미심장하며 새로울 수 있는가를 상상하면서 그 소설을 썼어요. 지나왔으나 제게는 없던 시간이었죠. 무엇이 될까 고민해본 적이 없던 저는 어떻게 살까를 생각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 혹은 잘 사는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면 내가 행복할까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죠. 사람들은 늘 당신은 누구인가를 묻습니다. 이제 와서는 제가 소설가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소설을 쓰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부터 책을 읽으면서 살았습니다. 올해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소설을 쓴 시간이 더 길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소설을 생각하는 시간이 아주 많았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소설가처럼 살지는 않지만 적어도 수면 시간만큼은 전형적인 상상에서 벗어나지 않아요.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에 잠들기 일쑤니 아침 풍경은 저에게 너무나 먼 얘기죠. 그런데 그 습관은 사실은 글을 쓰기 훨씬 전부터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밤잠을 자지 않아서 아빠가 어린 저를 데리고 심야 영화를 보러 다니고는 했답니다. 어쩌면 그 탓인지도 몰라요. 저는 밤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거든요. 그런 저도 가끔 아침을 구경할 때가 있어요. 대부분 밤을 새고 어쩔 수 없이 외출해야 할 때이긴 하지만. 한 달에 많아야 두어 번 보는 풍경이니 늘 새로운 감각적 충격을 주죠. 하루의 시작인 아침 풍경은 늘 제 삶을 돌아보고 처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심장이 흔들릴 만큼 지금 이 시간을 다시 생각하게 되더군요. 사실 운동은 제가 해마다 결심하면서도 몇 해 동안 미뤄온 일이었거든요. 20대 때는 숨쉬기 운동만으로도 충분했는데 30대가 되니 해마다 운동이 꼭 해야 할 일 목록에 들어가게 되더군요. 저도 언젠가는 마라톤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사실 제가 잘하는 건 백 미터 달리기예요. 다 같은 달리기지만 오래 달리기는 너무 힘이 들고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래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냐면 당신이 30대라면 이제는 오래 달리기를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는 인생을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하죠. 하지만 그 기회는 쉽게 오지 않지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엇을 바꿨나요?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요? 그래서 서른은 의미심장하죠. 하지만 40대가 되면 저는 다른 이야기를 할지도 몰라요. 그게 원래 그런 거 아닌가요? 마흔에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불행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튼 지금 상상으로는 마흔은 나이 드는 법에 대해 생각해야 할 시간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지금과 다른 인생을 상상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가끔 내 어머니의 다른 인생을 생각해봅니다. 어릴 때 다락방에서 어머니가 그린 스타일화를 발견했어요. 그리고 가끔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가 패션디자인을 공부했음을 알았어요. 그 모든 꿈을 포기하고 어머니가 나의 어머니가 된 것은 그녀가 서른 살이 됐을 때죠. 어쩌면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어머니이기 위해서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인지도 몰라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저도 소설가이기 위해 무언가를 포기했어요. 우리가 포기한 것 때문에 우리가 불행해졌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아마도 자신에게 처음에는 없었고 지금은 있는 무언가 때문에 행복해지는 거 아닐까요?
어떤 나이가 되면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생각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아직 그러기에는 좀 이를지도 모르죠. 하지만 죽음은 느닷없이 찾아오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요즘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는 건 사실 삶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12월이기 때문일까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상상, 죽음에 대한 기억이 때론 저를 조급하게 합니다. 제가 엄마가 돌아가신 나이만큼 산다면 남은 인생이 살아온 시간보다 적죠. 그런데 다행인 것은 이제는 제가 원하는 것을 예전보다 잘 안다는 거죠. 시간을 낭비하게 될지라도 그것조차 제가 원하는 시간일 거란 겁니다.
한 해가 지나가고 또 한 살 나이를 먹는다는 건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이야기죠. 조부모가 죽고 애완동물이 죽고 부모가 죽고 언젠가는 친구가 죽는 나이가 되겠지요. 살아간다는 건 죽음의 기억이 늘어난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 할 일을 생각하기에 이르다면 12월은 또 유사 연습이 가능하죠. 올해가 가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어쩌면 그 일은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하는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일지도 모르죠. 생각해보세요. 아니, 반드시 생각해보셔야 할 겁니다.
12월마다 우리는 한 해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언젠가는 오고 말 인생의 진짜 마지막을 연습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끝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이 시작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지만 쉽지 않기 때문이죠. 저는 제 소설에 이렇게 썼어요. 시작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지만 계속하는 건 어렵다고. 이젠 이렇게 말해야겠어요. 잘 마무리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고요. 그러니까 12월이 잔인한 진짜 이유는 마지막이기 때문이에요.
인생은 소리 없이 저물고 계절은 어느덧 바뀌고 한 해는 그렇게 덧없이 가버린답니다. 2008년을 어떤 해로 기억할 수 있느냐는 이제 남은 12월로는 바꿀 수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버리게 되죠. 기왕 이렇게 되어버린 것 12월은 그냥 보내고 내년부터 시작하는 거야, 라고.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달려갑니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인생의 마지막을 상상해보세요. 2008년이 며칠 남지 않았을지라도 결정적으로 무언가를 바꿀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그냥 이대로 그만둘 수는 없을 겁니다. 저는 누구와도 나를 바꾸지 않을 생각이지만 지금보다 나은 나로 바꿀 수 있기를 늘 바랍니다. 지금보다 나은 나, 2008년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꽤 괜찮은 추억, 어쩌면 오늘 하루로도 충분할지 모르죠. 우리가 멈추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2009년에도 삶은 계속될 거지만 2008년 12월은 한 번뿐이고 누군가에게는 없는 시간일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제 이야기는 남은 2008년을 잘 보내셔야 한다는 겁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Profile 소설가 박주영은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시간이 나를 쓴다면’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2006년 장편소설 「백수 생활백서」로 제30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2008년 장편소설 「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를 출간했다.
편집 후기
아직도 가슴 깊이 남아 있는 12월의 마지막 밤이 있다. 20대의 마지막 날이었다. 서른 살을 몇 시간 앞두고 있던 나는 정류장 앞 커피숍에 앉아 마시지도 않을 차를 시켜놓곤 눈물을 뚝뚝 흘렸다. 서른 살은 그렇게 무섭게 다가왔다.
서른 살이 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나는 그 나이의 무게에 짓눌려 숨을 쉴 수 없었다. 저금통장은 너무나 가벼웠고, 이력서는 여전히 내세울 것 없었으며, 이루지 못할 꿈들은 영원히 나에게 작별을 고하는 듯했다.
그 나이에서 몇 살 더 먹었다고 달라진 것은 없다. 나이에 대해 무심하게 보이려고 노력했을 뿐. 박주영 작가의 에세이처럼 12월은 잔인하다.
■진행 / 두경아 기자 ■글 / 박주영 ■사진/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