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정희의 삶의 맛

프런트 에세이

소설가 한정희의 삶의 맛


겨울과 봄 사이에 드디어 걸려버린 감기. 꼬박 보름 동안 잿빛 공기를 마시며 체온 38도 5부 언저리에서 식욕을 잃고, 며칠 내내 한밤중에 깨어나 기침하고, 콧물 흘리며 눈물샘 쥐어짜듯 눈물 줄줄 쏟다가 어느 날 아침 문득 허파꽈리 속으로 스며드는 환한 봄의 기척에 끌려 밖으로 나선다.

[프런트 에세이]소설가 한정희의 삶의 맛

[프런트 에세이]소설가 한정희의 삶의 맛

이젠 바람이 불어도 목덜미를 감아 내려오던 긴 생머리도 없고, 휘날리는 치마도 걸치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나선 산책길에 영춘화가 노랗게 울타리를 이루고 땅 위엔 제비꽃이 심심찮게 피어 있다.
좀 늦게 핀 매화 향이 너무 좋아 그만 발을 헛디디고 만다.


그때 문득 생각 하나가 떠오른다.
디지털 체온계에 떠 있던 38도 5부는 어디에선가 나도 모르게 독한 바이러스와 싸우다가 죽어가는 내 안의 작은 생명들이 보내던 신호였던 것이다. 내 안에 살고 있는 수백억 생명들이 날 위해 바이러스와 싸우고 면역체를 만들어내느라고 몸뚱이에 일으켰던 신열들이 가신 몸 안에 확 지펴지는, 이 강한 살아 있음을 진하게 들이마신다.

이렇게 이어지는 삶인데도 나는 한때 살아 있는 자신이 너무도 거추장스러운 적이 있었다. 작은 눈 까맣게 뜨고 나만 바라보는 내 아들 딸의 눈망울을 마주하면서도, 인생의 모퉁이에 숨어 있는 함정에 빠질 때마다, 매혹처럼 떠오르는 죽음에 대한 기억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그 순간에는 내 몸 밖에 있는 내 새끼들도, 내 안에 살고 있는 다른 생명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향해 뭘 찾는지도 모르면서 죽기 살기로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삶을 경멸하던 시간이었다.

대학 시절 미당 서정주의 시를 읽으며 ‘마흔다섯 살은 귀신이 눈에 보이는 나이’라는 구절을 접하고 ‘마흔 살이란 얼마나 끔찍한 나이일까’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과연 살아 있기나 할 것인가 싶을 정도로 요원해 보이던 그 나이도 훨씬 지나 지금 이 자리에서 느끼는 이 살아 있음에 대한 강렬한 기쁨이 순간 당혹스러워진다.


10여 년 전, 일찍 죽은 남자 후배의 장례식에 갔을 때였다. 그 친구는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 둘과 아직 귀신같은 건 보이지도 않을 나이인 새파란 부인을 두고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는 유난히 형제 많은 유명한 집안의 막내였다.

졸지에 당한 초상인지라 잘나가던 누나와 형들은 모두 외국 출장지에서 잇단 전화만 걸어올 뿐 참석하지 못했고 그의 맏형과 팔순 넘은 어머니만 묘지 앞에 서게 되었다.

그날 그의 늙은 어머니는 전혀 막내아들을 앞세운 분처럼 보이지 않았다. 울기는커녕, 매장 과정을 일일이 체크하고 묘지까지 따라온 손님들에게 대접할 차까지 신경 쓰는 모습을 보고 우리 모두는 늙으면 저렇게 감정이 메말라서 슬픔 같은 것도 고이지 않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늙는다는 것이 더욱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더 살아서 피부는 주글주글해지고, 가깝던 사람들은 다 기억의 갈피 속으로 차곡차곡 쌓여가는 그 시점에서도 이처럼 살아 있다는 환한 기쁨을 똑같이 느끼고 있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자 조금 우울해진다.

그러나 금방 어디선가 물오르는 나무들의 가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지천으로 피어나려는 꽃들의 다툼 소리에서 봄을 뒤집어쓰고 그대로 숲 속 호젓한 벤치에 조용히 앉는다. 마음이 금세 가라앉으며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 하나씩을 속으로 짚어가기 시작한다.


[프런트 에세이]소설가 한정희의 삶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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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교 시절이었을 것이다.
아주 멋쟁이 여선생님이 계셨다. 독일어를 담당하시던 그분은 옷 잘 입고 멋쟁이라고 우리가 다 인정했는데 웬일인지 어깨 한쪽이 완전히 기울어져 있었다. 명문 여고 출신이었는데 그분은 지금 생각하면 그다지 나이도 많지 않으셨을 텐데 ‘내 젊었을 때는…’이라는 말이 붙지 않으면 대화를 잇지 못했다. 지금 유추해보니 그분은 공부를 계속해서 모교인 대학에 남지 못한 것을 몹시 후회하셨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찌되었건 나는 선생님의 회한이 잔뜩 묻어나는 그 화법이 싫어서, 마음속으로 나는 ‘내가 젊었을 적에…’ 라는 접두문을 결코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 말을 습관처럼 쓰는 친구와는 같은 자리에 앉아 있기도 싫었다. 현재에 충실하면 됐지 과거나 회상하면서 흘러간 영화를 되씹고 앉아 있다는 것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그렇게 몸에 밴 탓일까. 무의식적으로도 내가 젊어서는 어쨌다는 회고담 같은 것은 되도록 늘어놓지 않는 편인데 얼마 전부터 나도 모르게 ‘아, 우리 때는 이랬어’라는 회상이 튀어 나온다.
그렇게 말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문득 슬퍼지고 만다.


어린 시절 함께 살던 외할머니는 문맹이었다.
머리가 새하얗고 한여름에는 유난히 모시 적삼을 깨끗하게 차려입으시던 할머니는 자주 한밤중에 일어나 긴 담뱃대를 물고 어둠을 응시하면서 앉아 계셨다. 담배 냄새에 깨어난 내가 대청으로 나가면 할머니는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나, 내 새끼”라고 반기며 놋재떨이에 쨍한 소리를 내며 담뱃재를 털었다.

외할머니는 가끔 초등학생인 나를 불러 대전에 사는 외숙모에게 편지를 쓰라고 했다. 그러면 나는 할머니의 마음이 되어 외숙모와 외사촌 오빠를 야단치는 할머니 어투로 제법 생생하게 편지를 썼던 것 같다. 다 쓴 편지를 읽어드리면 할머니는 어쩜 그렇게 내 마음을 그대로 나타냈냐고 좋아하셨다. 할머니는 가끔 혼잣말처럼 사는 게 지루하다고 하셨다. 나는 그런 할머니를 보면서 ‘아, 할머니도 글을 알면 책을 읽어서 지루하지 않으실 텐데’ 싶어서 내가 글자를 가르쳐드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 속으로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니까 내 노년은 지루하지 않을 거라고 막연하게 안도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결국 나도 전자기기의 문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게임 세상에서처럼 맘대로 가상해서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 그것을 체험하는 세대와 무슨 감정을 공유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 여러 가지 불편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어느 날 소리 없이 내린 눈이 세상을 얇게 덮은 광경을 바라볼 때, 문득 들려오는 모차르트의 선율에 귀를 기울이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사람이 생각나서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지난날 한숨 고르느라고 밤새 잠 못 이루게 했던 사람. 하루 종일 뇌 속에 타르처럼 붙어 있던 그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마주앉아 마지막 찻잔을 비울 때까지 말없이 속으로 삭이고 삭인 생각을 그 자리에 고스란히 두고 일어설 때 사방에 썰물 빠지듯이 아찔하던 적막. 일순 마음속에 숨어 있던 온갖 파인 곳들이 뒤집히듯 솟았다가 천천히 내려앉는다. 칼바람으로 내리치는 듯하던 그 사람의 뒷모습. 그렇게 아픈 기억도 겨울 풀처럼 바싹 말라버렸다.


나이 드니 참 좋구나.
어쩌면 세상을 지배하는 시간 앞에서 맞설 수 있는 힘이 달리 없는 영혼들이 택하기 쉬운 쓸쓸한 방법으로 노년을 예찬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감히 ‘지금에야 이 땅에 다녀가는 존재의 의미를 침착하고 즐겁게 새기는 데 충실하게 되었다’고 말하겠다.

마흔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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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마흔다섯은
귀신이 와 서는 것이
보이는 나이.


참 대 밭 같이
참 대 밭 같이


겨울 마늘 낼
풍기며,
처녀 귀신들이
돌아와 서는 것이
보이는 나이.


귀신을 길를 만큼 지긋치는 못해도
처녀 귀신 허고
상면(相面)은 되는 나이.


죽기 살기로 달려왔다고 생각하는 삶의 여정이란 어떻게 보면 보이지 않게 자라온 죽음의 또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허약한 영혼이 질척이는 우울을 밀어내며 삶의 저점을 위태롭게 통과하고 있다. 어쩌면 삶에 스며들어 보이지 않게 자라온 죽음이 나에게 너무도 무례하고 거칠게 대해서 나는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삶을 이해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무언가 새로운 것, 미지의 것이 가슴속에 물 밀려오는 순간들이 있다.

지금 나는 마지막까지 시를 쓰며 오래 살다 간 미당이, 33세에 요절한 천재 시인 이상보다 한 수 위라는 어느 문학 평론가의 의견에 102퍼센트 동조한다. 기억의 거울 속엔 세상의 모든 소리와 색깔은 다 어디 가고 조각구름만 떠다니는 빈 하늘처럼 늘 조용하다. 비디오테이프처럼 되감아보는 기억은 가위질할 수 없는 흑백의 시간으로만 남아 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제일로 잊지 말고 골라잡고 갈 삶의 맛은 바로 죽고 싶은 시간을 견디어낸 후 맞이하는 노년의 삶의 맛 아닐까.

삶을 살아낸다는 건…
결국 산다는 것은 견딘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가슴에 손이 간다.

편집 후기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다. 대학생활도, 사회생활도 그 친구를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 친구와 친했나?’ 할 정도로 생경한 사이가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서운한 마음이 점차 쌓이면서, 어느 순간 그와의 긴 인연의 끈을 놓아버렸기 때문이다. 서운한 마음이 컸던지 그 친구는 내게 ‘지우고 싶은 얼룩’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때는 충분히 잊고 싶은 존재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부재로 인한 허전함뿐 아니라, 그에 대한 서운함이나 야속함까지도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좋은 점이 있다. 예전 일들이 본질보다는 순화되어서, 좋은 기억으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 영원히 아웃되었던 그 친구에 대한 생각도 좋은 추억 위주로 가끔 떠오른다. 돌이켜보면 내가 왜 그때 그렇게 서운해했는지, 왜 그토록 원망했는지 그 이유가 너무 하찮기도 하다.

나도 작가 한정희만큼의 나이 혹은 서정주가 말하는 마흔다섯 살이 되면 그 친구에게 먼저 연락해 화해의 손을 내밀 수 있으려나. 아니, 지금이라도 우연한 장소에서 만나 그가 나를 알아본다면 버릇처럼 웃으며 건조한 말 몇 마디 어렵지 않게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나이를 먹어 좋은 건 이런 것이로구나.



소설가 한정희는…
1950년 경기도 강화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으로 등단했으며, 소설집 「불타는 폐선」, 「유리집」, 「브리지 파트너」를 펴냈다.

진행 / 두경아 기자 글 / 한정희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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