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 시인의 ‘노을 만 평’

시인과 함께 읽는 시

신용목 시인의 ‘노을 만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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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으로 지불하는 모두의 풍경


조용한 시선으로 자연의 진정성을, 그늘진 곳을 바라보는 신용목 시인은 2000년 ‘성내동 옷수선집 유리문 안쪽’ 외 4편이 「작가세계」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이 시대 서정시의 계보를 이어가는 젊은 시인으로 손꼽힌다. 시작문학상, 육사시문학상 젊은 시인상 등을 수상했고 현재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에 재학 중이다. 삶의 지난 흔적들을 거슬러 올라 바람의 언어를 담아내는 시를 쓴다. 시집으로는 모 에어컨 CF 카피로도 쓰였던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문학과 지성사)와 「바람의 백만 번째 어금니」(창작과 비평사)가 있다.


[시인과 함께 읽는 시]신용목 시인의 ‘노을 만 평’

[시인과 함께 읽는 시]신용목 시인의 ‘노을 만 평’

#1 최근 한동안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살 만한 곳을 찾아다녔는데 마음에 쏙 들면서 조건도 좋은 그런 집을 아직 찾지 못했다. 드넓은 서울 땅 위에 세워진 수많은 칸막이 속에 내 한 몸 편히 뉘일 데가 없다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서글퍼졌다. 이사를 나가기로 결정한 이상, 일을 마치고 들어가는 집도 이제 ‘내 집’이 아니라는 생각에 왠지 모를 이탈감마저 들 때도 있다. 그동안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평당 가격이니 등기부등본이니 역세권이니 재개발 같은 뾰족한 단어들을 자주 접하고, 집과 땅을 가진 혹은 가지고자 하는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도 듣게 된다. 골치가 아프다. 긴 세월을 살 집을 구하는 것도 아닌데 그저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하다. 대한민국에서 내 이름으로 된 땅을 갖고, 집을 갖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저절로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2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땅 위에 금을 그어놓고 값을 매겨 사고파는 우리의 모습을 저 세상에 있는 인디언들이 본다면 불쌍히 여길지도 모른다. 평생 집 하나를 얻기 위해 밤낮없이 일을 하고, 머리를 굴리고 허리띠를 졸라보지만 그렇게 얻은 차가운 콘크리트는 나의 등을 어루만져주지 않는다. 그나마도 이건 집값 전쟁 속에 운 좋게 한 귀퉁이라도 건질 수 있는 이들의 이야기다. 돈은 돈을 낳고, 또 돈을 만들어내기 위해 산을 깎고 늪을 메우면서 우리들의 삶도 마음도 벼랑 끝으로 밀어낸다. 고독한 인내와 피멍 맺힌 마음을 닫아걸고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3 강제로 땅을 사겠다며 자신들에게 땅을 팔길 요구하는 미국 정부에게 스쿼미시 부족의 시애틀 추장은 땅에 대한 절절한 마음이 담긴 편지를 보냈다. 반짝이는 소나무 잎, 바닷가 모래밭, 짙은 숲 속 안개, 수풀과 지저귀는 곤충 모두는 우리들의 가족이며 이 땅의 모든 것은 신성한 것이라는.

[시인과 함께 읽는 시]신용목 시인의 ‘노을 만 평’

[시인과 함께 읽는 시]신용목 시인의 ‘노을 만 평’

살아남기 위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지금, 달콤한 꽃향기가 실린 바람을 만져볼 잠깐의 여유도 없이 뛰어가는 지금, 시애틀 추장의 편지를 다시금 떠올려보게 된다. 누군가의 ‘것’이 될 수 없는 ‘것’들을 두고 아등바등 매일을 버려가고 있는 우리이기에. ‘갓난아이가 엄마의 심장 고동 소리를 사랑하듯이 이 땅을 사랑’한다는 시애틀 추장이 만약 이 시대를 살아간다면 80평짜리 ‘타워팰리스’ 대신 갈대가 휘청거리는 노을 만 평을 사두지 않았을까. 바람이 우르르 쏟아지는 폐염전 귀퉁이를 쓸어 내게 선물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파도의 끝이 붉게 물들어갈 때도 나와 그는 각자 그리움에 메어둔 연인을 꺼내 서로에게 보여주었을지 모르겠다.

#4 ‘너를 갖고 싶다’고 사랑을 고백하지만, 사실 누군가를 갖는다고 하는 건 무척이나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발상이다. 사랑이라기보다는 소유하고 싶은 하나의 욕망에 불과한. 그를 가질 수 없기에, 우리는 그를 존중하고 소중하게 대하게 된다. 평등한 너와 내가 만나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며 함께 손잡고 살아간다.

누군가의 마음도, 자연도 나 혼자만 손 안에 넣어두고 꺼내보며 살 수는 없다. 우리는 타인에게 손을 내밀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물기 어린 아침 공기, 한숨 섞인 바람, 낮잠 같은 오후 햇살과도 하나가 되어 소중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돈이 아닌 ‘숨’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을 귀하게 여기면서 말이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5 어떤 풍경은 그리움을 지불하고 사야 한다. 아련한 추억을 묻어둔 하동 벚꽃 길은, 후드득 별이 쏟아지던 지리산 밤하늘은, 설익은 바람이 거닐던 섬진강은 이제 내게는 그리움 없이는 떠올릴 수 없는 풍경들이다. 그리움이 바닥나 제값을 치르지 못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도 보지만, 한편으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그 풍경과의 관계가 계속 이어지기 위해서 그리움을 차곡차곡 모아둬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내 숨에 끝날까지’ 풍경과 교환할 수 있는 그리움이 남아 있다면 소중한 이들과 그 창가에 놀러가서 창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에필로그
“일을 그만두고 한동안 시흥 소래포구 폐염전 근처에 살았어요. 시간은 많고, 돈은 없고 한낮이면 폐염전 주변을 거닐다가 온 세상이 붉게 물들 즈음 발길을 돌렸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을 생각하며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미치지 않는 갈대들을, 바람의 잔뼈 같은 새떼들을 봤어요.”

시는 삶을 반영한다. 자신만이 느끼는 감정의 한 움큼을 담아 시를 쓰는 신용목 시인은 견고해져가는 세상의 틈을 파고드는 서정을 노래한다. 선동적인 문구 대신 자연에 담긴 본질로 구조화되고 딱딱해진 삶의 균형을 맞춰 나가고자 한다. ‘가장 위대한 텍스트는 자연에 있다’는 마음으로 순간순간 간절하게 시를 붙든다. 이 세상이 노을 지는 포구 끝에 숨겨놓았던 비밀을 슬쩍 털어놓는 경험속에서 시를 쓰는 신용목 시인의 시를 읽으며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바뀌는 그 찰나를 조용히 느껴보길 바란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원상희,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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