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을 지고 걸어온 글썽한 등의 굴곡
#1오랜만에 내려간 집에서 사진 몇 장을 발견했다. 모서리가 둥그렇게 닳은 사진 속 엄마는 스물두 살이었다. 남자친구들도 있고 지금도 만나는 대학 동기 아줌마도 옆에 계신 걸 보니 MT 사진쯤 되나 보다. 어디인지는 짐작할 수 없지만 어깨 너머로 강인지 호수인지가 넓게 펼쳐진 야외에 앉아 엄마는 기타를 들고 웃고 있었다. 엄마가 기타를 칠 줄 알았던가. 아니, 엄마도 봄이면 자전거를 타고 꽃놀이를 가고 여름이면 친구들과 계곡으로 물놀이를 하러 다녔었던가.
#2 이기적인 사람인지라 언제나 내 생각만 하고 살지만, 하루를 보내면서 가끔 부모님을 떠올릴 때가 있다. 즐거울 때보다는 힘이 들 때, 아침보다는 어스름 해가 지고 나서, 바쁠 때보다는 몸이 아프고 필요할 때.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가면서 ‘내 모습’보다는 내게 ‘알맞은’ 모습을 찾으려 애쓰며 살아간다는 생각을 한다. 시간의 강은 쉬지 않고 흘러 이제는 ‘그 때’의 자유로움이나 무모한 용기는 불가능한 것이 되어만 가고 지금의 위치에 ‘알맞은’ 역할을 받아들이게 된다. 가족과 사회가 요구하는 수많은 개인들의 희생. 때로는 내가 그것을 치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어디로 갔나, 그리고 ‘나’로 살고 싶어 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버렸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내 몸에도 조금씩 주름이 패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 ‘주어진’ 무게를 감당하게 될 것이다. 당신을 쏙 빼닮은 모습으로 젊음을 내려놓고, 꿈꾸기를 그만두고, 노래를 떠나보내게 될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분명 무수한 사연과 고단함과 슬픔과 상처를 새기게 되겠지. 거친 세상을 온몸으로 살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일 테니 말이다.
#3 많은 아들들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넘어야 하는 벽이기도, 화해해야 하는 두렵고 미운 존재이기도 하다. 근대가 강요해온 전형적인 ‘아버지’는 몸속 어딘가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 자국’을 새겨가면서도 밖으로 그것을 보이지 못하며 살아왔다. 억지로 숨겨야 하는 그 자국을 보지 못한 자식들은 ‘함부로 비난하거나’ 멀어져버린다.
“꽤 오랜 시간 아버지와 갈등이 심했어요. 원망하고 비난하면서 그걸 숨기지도 않았죠. 아버지가 간경화 말기 판정을 받고 병원에 누워 계실 때 아버지의 죽음이 현실로 느껴지면서 아버지가 없는 가족을 생각하는 게 두려워졌어요. 그리고 그 때 아버지 등에 시커멓게 죽어 있는 살을 봤어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특히 아들에게는 보이기도 물려주고 싶지도 않았던….”
손택수 시인은 병원에서 아버지를 돌보며 이 시를 썼다. ‘노름꾼 아버지의 발길질 아래 주저앉아 울던 어머니’를 떠올리고, 목욕탕에서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며 아버지를 원망했던 자신을 떠올리면서. 이제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렇게 꽁꽁 숨겨두었던 멍에를 아들 앞에 꺼내 보여야만 하는 아버지의 등을 밀면서 시인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시커먼 지게 자국은 한 인간의 상처였습니다. ‘남자다운’, ‘아버지로서의’ 삶을 살았던 고단한 한 사람이요. 그네들도 ‘살고 싶었던’ 뭔가가 있었겠지만 강요된 삶을 받아들여야 했겠지요. 아니 강요된 줄도 모르는 채 걸어왔겠지요. 해가 지면 달을 지고, 달이 지면 해를 지면서.”
등에 남은 지게 자국이 아니더라도 어딘가에는 멍 자국을 숨기고 있을 우리네 부모님을 떠올려보며 시를 읽는다면, 이 시가 그저 시인 개인의 용기 있는 가족사 고백에 그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감상에 젖은 전형적인 ‘부모상’에 대한 공감 또한 아니다. 시인은 한 사람의 아픔을 보았다. 그리고 강요된 생애의 무게를 고발하며 끌어안는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이주석,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