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마치고 돌아오는 길가 황혼에 눈길을 주다 보면 저 멀리 풍경이 강가에 다리 놓는 모습 보입니다
며칠에 한번쯤 통장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신은 자꾸 자리를 만들고 허문다는 생각입니다
많은 당신들도 지워졌으므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당신은 당신들의 장엄한 일들을 해야 합니다
당신도 목숨 걸고 자본주의의 풍경이 되는 일을 합니까
한 풍경이 등짐을 지고 일 갔다 돌아옵니다
자꾸 먼 데를 보는 습관이 낸 길 위로 사무치게 사무치게 저녁은 옵니다
다녀왔습니다
#1마포대교인지, 성산대교인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알려고만 하면 지금이라도 알 수 있는 이름인데 굳이 알아보지 않은 것은 그 다리를 어떤 특정한 이름으로 가둬놓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멋진 여행 엽서의 사진 같던 그 다리의 풍경이 흔해 빠진 도시의 지명이 되는 순간, 꿈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그날의 기억이 일기장 속 현실이 될 것 같아서다. 그와 동시에 기약 없는 어떤 기대들도 ‘세상엔 체념해야 할 것도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어른의 사고에 맞춰 사라질 것만 같아서다.
4년 만이었다. 각자 다른 시기에, 각자 다른 이유로 고향을 떠나온 두 사람이 ‘서울의 중심’이라는 곳에서 우연히 만났다. 흘러 흘러 들었던 상대방의 근황은 이미 몇 년 전의 것이어서 그마저도 지난날이 되어 있었다. 그다지 친하지도, 그동안의 생활을 알고 있지도, 지금의 고민을 알고 있지도 않지만, 그랬기 때문에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가까이 있던 이들에게는 오히려 이해시킬 수 없었던 ‘나’를 보여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참 이상하게도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리고 상대는 무작정 이름도 모르는 다리를 같이 건너자고 했다. 힘들 것 같아서 싫다고 했더니, 힘들기 때문에 건너고 싶다고 했다. 저녁 내내 어느 정도 답을 알고 있는, 그렇지만 모르고만 싶은 것들에 대해 얘기한 뒤였다. 비슷한 종류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이가 있다는 데, 그리고 그 사람이 내게 그것을 내게 보여줬다는 데 마음이 움직였다. 마음이 열심히 헤엄쳐 가고 있었다.
#2 건너고 싶은 것은 저 너머의 목적지만은 아니다. 가 닿고 싶은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다. 가 닿고 싶은 것은 잘 살고 싶은 현실과 ‘잘’ 살고 싶은 이상 사이의 거리다. 서로 그리워만 하는, 그렇지만 결코 건널 엄두가 나지 않는 그 깊은 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둥을 놓고 손을 내뻗으며 다리를 놓는 장엄한 일을 해야만 한다. 쉼 없이 헤엄치다가는 금방 지쳐버릴지도 모르기에 다리를 놓아야만 한다. 끝까지 다리를 완성하지 못했어도 자꾸만 마음과 마음을, 풍경과 풍경을, 삶의 조각들을 잇는다.
#3 ‘저녁 풍경 너머 풍경’은 이병률 시인의 뒤바뀐 일상 속에서 태어난 시다. 영화사를, 방송사를, 출판사를, 기획사를, 전 세계를 전전(轉轉)하던 그가 퇴근길 전동차 레일 위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처럼 매일 저녁 풍경을 바라보면서 쓴 것이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생활을 하게 됐는데, 일은 좋았지만 오래 떠돌던 제가 낯선 생활습관에 적응하려니 비애감이랄까 엄살이랄까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그 무렵 자유로를 따라 파주 출판단지로 가는 길 강가 한쪽에 일산대교 공사를 하고 있었거든요. 매일 보는 그 모습이 정말 장엄했습니다. 마치 멋진 그림 한 장을 보는 기분이었지요.”
평소 다리 놓는 일을 무척 멋지고 거룩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시인은 아침저녁으로 그 다리가 놓이는 모습을 보며 그것을 위안 삼아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그림 같은 그 멋진 풍경에서 자신을 다독이는, 그 시절을 위로해주는 무언가를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다리가 마침내 개통되던 날, 혼자서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는 것만으로도 멋진 여행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제 다리 놓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상실감도 들었고요. 그리고 제 마음에 어떤 선 하나를 놓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것도 같네요.”
시인은 말한다. 거대한 시간을 견디는 자가 할 일은 그리움이 전부, 저 건너가 그립다고. 그리고 다리를 놓아 서로 그리워하는 것들의 맥을 잇는 일은 시 쓰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가 놓은 ‘시’의 다리를 ‘고맙게’ 건너보려 한다. 헤엄치는 것은 이제 힘이 들기에.
그리고, 끝
스무 번째 시를 마지막으로 「레이디경향」의 ‘시인과 함께 읽는 시’는 막을 내린다. 그동안 이 기사를 진행하면서 시를 통해, 시인의 자음과 모음을 빌려, 나의 마음을 썼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이 아주 약간의 위로를 느껴보길, 마음의 접붙임을 경험하길 바랐다. 부디 단 한 사람만이라도 시인과 함께 시를 읽으며 심장을 포개본 사람이 있었기를 기대한다.
이 기사를 맡은 내내 나의 ‘말’과 ‘글’이 부족함에 아파했다. 글을 쓰는 날에는 그토록 속상하고 아픈 날이 없었다. 특히나 나를 가장 좌절케 했던 시인, 이병률의 ‘시인들’이란 시를 끝으로 이 코너를 마친다. 시인들이 원래 그렇지, 뭐.
1. 나이 먹어서도 사람을 친근하게 못 맞아주더니 못된 놈처럼 자기만 아느라 독기로 밀쳐만 내더니 시인이라고 소개하는 이 앞에선 마음이 열리고 바다가 보인다 술 한 잔 오가며 - 시인들이 원래 그렇죠, 뭐 낯선 이의 말 같다 싶은 말에 편 하나 끌어들인 기분 되어 진탕 마시고 마시다가 바다 앞에 선다 - 우리 잘하고 있는 거지? 처음 본 사인데 말까지 놓으면서 길에 핀 꽃대를 걷어차면서도 히히덕거리는 시인들의 저녁식사 유난히 쓸쓸해져 걸어 돌아오면 빈집 가득한 바람 누군가 왔다 갔나 킁킁거리면 늦은 밤 택시 타면서 밤길 잘 가라고 손 흔들던 시인 언제 들렀다 간 건지 바다 소리 들리고 무릎까지 들어온 갈대밭에 발자국이 찍혀 있다 2 어찌 사는가 방에 불은 들어오는가 쌀은 안 떨어졌는가 살면서 시인에게만 들었던 말 나도 따라 시인에게만 묻고 싶은 말 부모도 형제도 아닌 시인에게만 묻고 한사코 답 듣고픈 말 어찌할 것도 아닌데 지갑이 두둑해서도 아닌데 그냥 물어서 괜찮아지고 속이 아무는 말 옛 애인을 만나러 가다 말고 시 쓰는 이의 전화를 받고 그 길로 달려가서는 대뜸 묻는 말 어찌 사는가 방에 불은 들어오는가 쌀은 안 떨어졌는가 |
■글&사진 / 이연우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