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나야, 나라고… 혹시 날 잊은 건 아니겠지?
어느 소설책에서 읽었어. 사람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더라. 왜냐하면 마음을 털어버리고 나면 우리는 보다 가난하고 보다 고독하게 되는 까닭이래. 근데 난 어째서 이맘때가 되면 너를 떠올리는 걸까? 너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자꾸만 가을 하늘을 쳐다보게 돼. 그래서 오늘은 용기를 내었지. 가난하고 고독해지더라도 나는 내 이야기를 할 참이야. 게다가 이 계절에 추억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쩐지 직무유기처럼 느껴져. 난 불성실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내 가슴속 깊은 곳에 처박혀 있던 방(房) 하나를 떠올려보고 있어. 언제부턴가 그 작은 방의 창문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거든.
추억하는 방, 위로하는 방, 밥 먹는 방, 라디오를 듣는 방… 세상엔 무수히 많은 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스무 살 이전이었어. 그러니까 열다섯 혹은 열여섯 살의 어느 날 밤이었지. 그때 우리 집은 기찻길 옆에 있었어. 기억하고 있니?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채 홀로 서 있는 외딴집 말이야. 거기 사는 동안 우리 형제들은 모두 한 방에서 잠을 잤지. 방이 두 개였는데 다른 하나는 부모님 차지였고 남은 한 개의 방 안에서 나와 내 형제들이 잠을 잤단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형제들 중 누군가의 발가락이 내 발에 닿는 것을 느끼며 기차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지금 누워 있는 방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방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어. 우린 지금 지도에도 없는 방 안에 누워 잠을 청하는 거라고. 그러면 세상이 얼마나 멀게 느껴지는지, 또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작게 느껴지는지 몰라. 우리가 누워 있는 바닥은 언젠간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질 것처럼 늘 불안했어. 호남선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그 진동으로 방바닥에 금이 가는 것 같았거든. 그래서 늘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잠들지 않으려고 애를 썼어. 방바닥이 갈라지면 그 벌어진 틈 속으로 빠지지 않으려고 말이야. 그러면서 속으로 원망을 했지. 내 부모는 어째서 나에게 예쁜 창문이 달린 방을 주지 못하는가, 하고. 친구들은 제각각 방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데. 밤이 되면 모두 제 방에 옹송그리고 앉아 사모하는 이에게 편지를 쓰거나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거나 시험공부를 한다는 것을 나는 아는데.
나는 내 방이 없다는 것에 절망하며 다짐했지. 스무 살이 되면 이 시끄러운 기차 소리와 누추한 생에서 탈피해 혼자 조용히 살 수 있는 곳으로 떠나리라고. 나처럼 제 방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좀 더 나이를 먹고 나서였으니까.
내 방과 불 켜진 창, 나만의 체취가 밴 이불과 베개. 그런 것들이 갖고 싶어서 나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단다. 종이 위에서라도 나만의 방을 가져보고 싶어서 말이야. 가난하다는 것이 부끄러운 적은 없었지만 서러운 적은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나는 고백해.
열다섯 혹은 열여섯의 내가 아직도 그 방 안에 서성이고 있을까? 기억나는 것이라곤 귀를 먹먹하게 울리던 기차 소리와 마당에 피어 있던 주홍빛 능소화 그리고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내 형제들의 때 묻은 운동화 같은 것뿐인데.
나는 일찍 그 방을 떠나고 싶었어. 윗마을 사내아이들은 스무 살도 되기 전에 하나 둘 집을 떠난다는 말을 들었거든. 어릴 때부터 기적 소리를 듣고 자라온 아이들은 어딘가로 일찍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어. 밤마다 머리맡을 쿵쿵 울리며 지나는 호남선 기차가 붙잡지도 못할 기적 소리만을 남겨두고 저 멀리 터널 속으로 사라져버리곤 했으니까. 그러면 아이들은 안타까이 사라지는 기적 소리를 붙잡으려고 손바닥을 쥐었다 펴보는 거야.
언제부터였는지 몰라. 여름과 가을 사이, 좀 더 일찍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들 몇몇이 빈주먹을 허공에 대고 휘두르며 홀연히 어두운 골목길로 사라지더라는 얘기들이 내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던 것은. 그런 얘길 들을 때마다 나 역시 가출하고 싶어서 목이 타는 것 같았어. 고독하고 비밀스럽게 집을 떠나는 일, 그것만이 스무 살 이전의 내가 꿈꿔왔던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면 믿을 수 있겠니?
하지만 그건 사실이야. 그리고 난 정말로 그 집을 떠났단다.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이사를 해버렸거든. 비록 가출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 집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무척 기쁘게 했다는 것만은 기억해. 이사를 한 뒤에는 나도 내 방을 갖게 되었거든. 그때처럼 행복했던 적이 또 있을까? 창문이 달린 작은 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온종일 손에 걸레를 들고 방바닥을 닦고 또 닦았어.
생애 처음으로 가져본 방, 그 방에서 나는 무얼 하며 살았는지 몰라. 새벽까지 라디오를 듣다 잠들기도 했을 테고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시험공부를 하기도 했을 테지. 아마도 대부분의 시간은 편지를 썼을 거야. 그땐 무슨 편지를 그리도 많이 썼는지. 이미 쓴 편지와 앞으로 써야 할 편지 때문에 잠이 모자랄 지경이었으니까. 조금이라도 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친구가 생기면 곧바로 편지지에 내 마음을 옮겨 적곤 했어. 하지만 한 번도 그 편지를 부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도 가끔씩 내가 쓴 편지를 받아보았다는 친구가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니? 세상엔 이상한 일들이 참 많기도 해. 어쨌든 난 내 방을 갖게 된 이후로는 더 이상 가출을 꿈꾸지 않았어.
3 세 번째 방 이야기
스무 살. 그 시절을 떠올리면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낯선 도시의 후미진 골목길을 서성이고 있는 내가 보여. 광주의 한 전문대학에 입학한 뒤의 일이었지. 열여섯의 어느 날에 했던 다짐처럼 나는 고향집을 떠날 수 있게 되었어. 환멸의 도시. 그때까지만 해도 고향은 나에게 그런 곳이었어. 진절머리 나게 싫어서 도망치고 싶은 곳.
하지만 정작 고향을 떠나오자마자 나는 어리둥절해졌어. 솔직히 겁이 났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방들이, 있었다니! 이상하게도 견딜 수가 없더구나.
매번 그 도시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의기소침해졌어. 억양이 다른 사투리와 도시의 골목골목까지 샅샅이 길을 알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그 도시와 한 몸인 것 같았고 그래서 그들이 무엇을 해도 당당하게만 보이더라. 심지어 길거리에 침을 뱉어도 그들의 도시이기에 괜찮은 것 같았어. 그들을 만나고 돌아오면 나는 내가 고아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지. 나는 거기서 그냥 아무것도 아닌 사람. 스쳐 지나는 바람처럼 향기도 형체도 없는 사람.
스무 살이 되고 나서부터는 모든 게 너무도 빠르게 지나가버렸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말이야. 그 시절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머릿속은 어떤 문장들로 가득 차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어. 그래서 밤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자취방에 앉아 일기를 쓰고 또 썼지. 그것만이 낯선 도시에서 내가 견뎌낼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듯이. 그때 쓴 일기와 편지와 의미 없는 낙서들, 지금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나는 바람처럼은 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태어났으니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지. 아니면 내 안의 어떤 허영심이 나를 끊임없이 충동질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다. 나는 남보다 허영이 많고 공상을 좋아하지. 그래서 늘 꿈꾸는 듯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거야. 현실은 잘 보이지가 않고 멀고도 먼 미래의 내 모습만 또렷이 보이는 거지. 불가능할 것 같은 나의 꿈!
나는 그대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어. 그걸 깨달은 순간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어. 가방 안에 연필과 종이를 챙겨 넣고 자취방을 나가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그 시절의 나는 그런 아이였어. 언제든 떠나고 싶으면 천막을 걷고 일어나 길을 나서는 거지. 일정한 목표도 계획도 없이 말이야.
스무 살 언저리. 그 시절을 생각하면 아직도 어떤 사나운 벌레 같은 것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지.
4 네 번째 방 이야기
네가 내 일기장을 가지고 있다니 다행이야. 언젠가 꼭 한 번 만나서 그 일기장을 읽어보고 싶구나.
중학교 때 쓴 내 일기장을 네가 갖고 있다는 얘길 들었을 때 기분이 참 이상했어. 뭐랄까, 어린 시절의 내가 어른이 되어 있을 나에게 한꺼번에 미리 부쳐둔 편지를 받은 것처럼 어리둥절했지. 그때 난 왜 일기장 같은 걸 너에게 선물로 주어버렸을까? 내가 그렇게까지 한 걸 보면 너를 참 많이도 좋아했었나보다. 그러고 보면 우리도 참 많이 자랐지? 아니, 이젠 어른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런 말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몰라. 어쨌든 그동안에 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니 정말 재밌다. 너도 그리고 나도, 이렇게 어른이 되어 있을 줄이야!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공평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에게 준 일기장 말고 그때 쓴 다른 일기장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냐고? 그건 네 번째 방에서 나올 때 모두 두고 나왔단다. 네 번째 방, 내 청춘의 마지막 방이 되어버린 그 곳에 말이야.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나는 서울로 올라갔지. 짐이라곤 달랑 가방 하나였어. 뭐 다른 게 필요했겠어? 나는 다만 글을 쓰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또 다시 방이 문제였지. 며칠 동안은 친구의 자취방에 머물고 며칠 동안은 가까운 친척집에 머물기도 하면서 서울 거리를 돌아다녀봤지만 내가 들어앉아 글을 쓸 수 있는 방은 어디에도 없었어. 그렇다고 그 지긋지긋한 고향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어. 나에게는 한 번 떠나온 곳에는 다시는 가지 않으리라는 이상스런 고집이 있었거든. 약간은 무모하고 어리석은 고집 말이야.
결국 나의 네 번째 방은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야. 서울의 방값이 그렇게나 비싼 줄 미처 몰랐거든. 나는 방 얻기를 포기하고 몇 달간 이모 집에 머물렀어. 거기서 나의 이종 사촌과 한 방을 쓰며 밤마다 꿈을 꾸었지. 아무도 없는 초원 같은 곳에 나만의 방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자유로이 글을 쓰는 꿈.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새벽까지 라디오를 들으며 책을 읽고 종이 위에 몇 개의 문장을 적어 보는 것, 그것이 나의 꿈이었어.
어느 날엔가는 무작정 서울의 밤거리를 쏘다녀보기도 했지. 서울의 밤, 무수히 많은 불 켜진 창들이 있는 도시. 그 중의 어느 한 곳도 가져보지 못한 채 나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했어. 나는 내 생에 복수하는 심정으로 그때까지 써온 일기장과 메모가 적힌 수첩과 몇 권의 책들을 모두 내 사촌 방에 두고 나와버렸지. 그리고 빈손으로 야간열차를 탔단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나는 밤의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어. 이건 패배가 아니라 일보 후퇴라고. 언젠가는 반드시 내 방을 갖게 될 거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동안의 내 생은 방을 갖기 위한 분투기였다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지금도 역시 방을 갖고 있어도 방을 그리워하는 이상한 버릇은 없어지지 않았어. 어느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다 보면 언젠가는 또 슬그머니 부려놓은 짐을 싸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거지. 그리고 그런 충동은 가을이 되면 절정에 달해. 나는 내 속에서 꿈틀거리는 벌레를 달래려고 너에게 말을 거는 거야.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다 보면 지금 살고 있는 방에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떠날 수가 없으니까.
아, 이제 마음이 한결 가볍군. 그러니 보다 가난하고 보다 고독해지고 싶거든, 너도 지금 여기서 너의 이야기를 해보렴. 그러면 너의 무겁던 생이 지금보다는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야.
편집 후기 여행은 낯선 숙소에 짐을 푸는 것부터 시작된다. 옷장 안의 옷걸이마다 옷을 걸어놓고, 욕실에는 비누, 샴푸, 치약 등을 늘어놓으며 탁자에는 시계나 책 따위를 아무렇게나 올려놓는다. 깨끗했던 방 안은 금세 내 물건으로 넘쳐난다. 낯선 숙소가 내 방이 되는 순간이다. 그때부터 그곳은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마주치고 낯선 음식을 먹으며 지친 나를 품어주는 유일한 공간이된다. 국적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용하는 호스텔이든 최고급 호텔이든, 상관없다. 내가 머물도록 허용된 그곳만큼은 내 방이 된다. 사춘기 소녀들에게 방은 자신만의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소녀들은 방 안에서 꿈을 꾸고, 그 방 안에서 사랑을 배우며, 그 방 안에서 상처를 보듬는다. 최민경 작가가 이야기하는 방은 꿈을 이루는 공간이다. 결혼해 가정을 꾸린 작가는 여전히 방을 그리워한다. 그것은 작가로서 끝없이 자신만의 이야기(방)를 완성해 나가야 하는 숙명이나 갈증과 같은 것이리라. |
1974년 전북 정읍에서 출생했다.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고, 2006년 진주신문 가을 문예 단편 「오래된 성탄」이 당선됐으며, 2009년 「나는 할머니와 산다」로 제3회 세계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했다.
■진행 / 두경아 기자 ■글 / 최민경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