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서진의 마이애미의 누드 비치를 찾아서

프런트 에세이

작가 서진의 마이애미의 누드 비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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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 아내와 함께 신혼여행을 떠났다. 결혼식은 작년 11월 부산의 광안리 앞바다에서 전통 예식으로 치렀다.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굳이 결혼식을 치른 이유는 그곳이 우리가 살던 동네고 늘 산책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둘 다 부산에서 태어나서인지 반경 30분 거리 내에 바다가 없으면 답답해서 견딜 수 없다. 바람과는 달리 날씨도 흐리고 바람도 많이 불어 고생을 했다. 다행인 것은 쏟아질 것 같았던 비가 결혼식이 끝난 직후 내렸다는 것이다. 결혼식 날 비가 오면 잘산다는 말이 정말이라면 우리는 억쑤로(‘많이’의 경상도 사투리) 잘살 것이 틀림없다.

[프런트 에세이]작가 서진의 마이애미의 누드 비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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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시간에 얽매이는 직장인이 아니라서 결혼 직후 신혼여행을 갈 필요는 없었다. 나도 원고 마감을 하느라 바빴고 아내도 디자인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8년을 함께 살면서 여행을 많이 다녔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가지 않는다고 하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나중에 간다고 둘러댔다.

아무튼 신혼여행 없는 신혼을 지내다 대학 시절 동창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회사가 미국 업체와 함께 하드웨어를 만드는데 그곳에서 기술적 배경을 가진 통역자가 급하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초짜 소설가이지만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소설 소재를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을 자주 드나들다 보니 외국인과 자연스럽게 대화 정도는 할 수 있다. 급여도 나쁘지 않았고, 아내의 부추김도 있어서 결국 친구가 함께 일하는 회사가 있는 미국 워싱턴DC로 날아가게 되었다. 아내의 속셈은 내가 일을 마치면 자기가 미국으로 날아와서 함께 신혼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번 돈으로.

통역일은 생각보다 쉽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다. 영어로 대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실시간으로 우리나라 말과 영어를 번갈아서 서로에게 전달하는 것은 굉장히 피곤한 일이었다. 마치 뇌의 각각 다른 부분을 동시에 쓰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오후 5시 정도에 일이 끝나고 나면 녹초가 되어 다른 일을 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숙소에서 맥주를 마시며 평소에 잘 만나지 못했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많았다. 함께 갔던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결혼을 해서 벌써 두 명의 아이가 있다. 5년 전부터 아내가 계속 직장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는 둥, 외국으로 이민을 가자는 둥, 직종을 바꾸라는 둥의 압력이 심해진다고 투덜거렸다.

이번 해외 업무를 자청한 것도 외국에서 생활을 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어서라나. 하긴, 우리나라의 엔지니어들은 회사에서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것이 일상처럼 되어 있어서 가족과의 단란한 시간은 꿈도 꾸지 못한다. 반면, 미국 회사의 직원들은 비슷한 일을 하는데도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웠다. 우리와 함께 일했던 나이 지긋한 프로그래머는 오후 4시 반쯤 되면 학교를 마치는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며 일을 서둘러 마치곤 했다. 규모가 작고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술회사라 유연한 작업 스케줄을 가지고 있다 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면서 왜 직장인들이 주말과 휴가를 고대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일을 하는 내내 이 일을 모두 마치고 신혼여행 가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어디로 갈 건지는 미리 정해두지 않았다. 막연히 플로리다의 마이애미가 가까우니까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와이는 이미 함께 가본 적이 있고, 뉴욕은 아내 혼자 일주일 정도 일찍 와서 돌아다닐 예정이었다. 기상 이변으로 날씨가 추워지면서 좀 더 남쪽, 바다와 해변이 있는 곳으로 가자는 생각은 점점 굳어졌다. 일이 끝나고 아내와 상봉한 뒤에는 아무 고민 없이 마이애미로 행선지를 정했다. 따뜻하고 바다가 있는 가까운 곳이라면 어디든지 좋았으니까. 우리가 마이애미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는 거라고는 미국 드라마 ‘CSI 마이애미’에 나오던 풍경 정도였다. 멋진 해변이 있고, 늘씬한 여인들도 많은 화끈한 도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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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웬걸, 이상기후는 마이애미도 예외는 아니라서 기온이 그리 높지 않았다. 바닷가에 들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많았으며 며칠은 비가 오기도 했다. 그래서 차를 빌려 미국의 최남단인 키웨스트까지 가보기로 했다. 수천 개의 섬이 이어져 있는 최상의 드라이빙 코스라지만 나지막한 해먹나무와 악어떼가 나올 것 같은 늪, 옥빛으로 색깔은 예쁘지만 수영은 하기 힘든 바다가 보일 뿐이었다. 중간에 머문 ‘마라톤 키라’는 마을에는 낚시꾼들을 위한 배만 가득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더 남쪽으로 달려가는 것뿐이었다. 바다 위에 길게 세워진 세븐마일 브리지는 굉장했다. 남미 사람들만 가득하고 동양 사람은 별로 없어서 왠지 오지 못할 곳에 온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키웨스트에서는 헤밍웨이의 생가를 방문했다.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 영감을 받으려고 했지만 발이 여섯 개 달린 고양이의 사진만 잔뜩 찍어왔다. 아내는 배탈이 한 번 났고, 숙소는 형편없이 비쌌고, 음식은 맛이 없었다. 둘 다 말을 입 밖으로 자주 꺼내지는 않았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하와이나 갈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최소한 수영할 수 있는 따뜻한 바다가 있고, 물속에서 산호와 열대어를 쉽게 볼 수 있으며, 매일 싱싱한 참치회도 먹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렇게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5일이 훌쩍 지나갔다. 열흘 정도가 우리가 계획한 기간이었는데, 뭔가를 하지 않으면 이렇게 투덜거리다가 우리나라로 돌아가야 할 판이었다. 다시 마이애미로 돌아와, 높고 화려한 빌딩 숲 사이로 롤러코스터처럼 운행되는 무인 모노레일을 타고 다운타운을 구경했다. 빈 공장을 갤러리 구역으로 변화시킨 와인우드 지역, 작고 오래된 호텔과 레스토랑이 즐비한 사우스 비치를 걸었다.

다음으로 어디를 갈까 궁리를 하던 참에 여행 안내서에 누드 비치가 근처에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건 분명히 말해두지만 그 사실에 흥분한 건 내가 아니라 아내였다. 꼭 그곳에 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아내였다. 나는 단지 착한 새신랑으로 아내의 부탁을 들어주려고 최선을 다했던 것뿐이다. 첫날에는 누드 비치를 찾지 못했다. 여행 가이드에 설명된 해변에 가봤지만 옷을 벗고 있는 사람을 아무도 발견할 수 없었다. 옷을 입고 있는 사람에게 누드 비치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기에는 부끄럽기도 하고, 날씨도 좋지 않아 다음날로 미루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치인 마이애미 사우스 비치에 머무르면서 한참 북쪽에 있는 누드 비치를 찾는다는 게 웃긴 일이지만 인터넷으로 정확한 위치를 알아냈다.

다음날 오후에 도착한 누드 비치에서 사람들이 진짜로 옷을 벗고 있는 걸 발견했다. 맙소사, 이건 인적이 드문 이름 없는 해변에 유럽에서 온 몇몇 할머니들이 옷을 벗고 누워 있는 것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국가가 정해놓은 공원에 공식적으로 ‘여기서부터는 옷을 입지 않아도 됩니다’라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고개를 마음대로 돌릴 수도 없어 쭈뼛쭈뼛 구경하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피부가 검고 쭈글쭈글한 할아버지였다. 옷을 다 벗고 모자만 쓴 채로 사진을 찍어달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나체 사진을 찍어줄 수밖에 없었다. 아,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닌데…. 몇몇 남아 있던 사람들은 해가 낮게 드리우기 시작하자 서둘러 짐을 싸서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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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날, 자신감이 생긴 우리는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일찍 누드 비치로 향했다. 날씨도 맑고 따뜻해서 많은 사람들이 누드 비치에서 선탠을 즐기고 있었다. 커플로 온 사람도 보이고 친구들끼리 비치 의자에 둥글게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도 보였다. 심지어는 누드로 비치 발리볼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날아가는 공보다는 점프를 할 때 몸에서 덜렁거리는 것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누드 비치 한쪽 끝에는 남자들만 모여 있었는데 무지개 깃발로 보아 게이 아저씨들의 영역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어색하게 자리를 깔고 앉았다. 아내는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치 동네 마실 온 것처럼 이 사람 저사람 인사를 나누며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고, 맥주를 잔뜩 사다놓고 선탠을 즐기는 무뚝뚝한 남자도 있었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걷고 있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등 해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단, 옷을 모두 벗었다는 점을 빼고는 말이다.
한참을 보고 있으려니 시시해졌다. 어차피 해변에서는 옷을 거의 벗고 있지 않는가? 낯선 사람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 본다고 하더라도 충격적이거나 에로틱하지 않은 것이다. 그것도 한 시간 정도를 보고 있으면 그냥 신체의 일부로 보일 뿐이다. 문득 나도 옷을 벗고 싶어졌다.

“자기는 안 벗어?”
누드 풍경이 지루해졌는지,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아내에게 물었다.
“누구 좋으라고. 자기나 벗어.”

음, 아내의 누드가 누구에게 좋은 일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용기를 내서 셔츠와 반바지, 그리고 팬티까지 모두 벗어버렸다. 처음엔 아랫도리가 허전해서 어색했지만 점점 익숙해졌다. 사람들이 죄다 나를 쳐다볼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몇몇 게이 아저씨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관심이 없었다. 점점 자신감이 생겨서 자리에서 일어나 해변을 걸었다. 반시간 정도 걷다 보니 기분이 가뿐해졌다. 겨우 몇 십 그램밖에 안 되는 팬티 한 장을 벗었을 뿐인데 수 킬로그램 정도 되는 두꺼운 옷을 벗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옷을 벗고 있는 것과도 다르고, 많은 사람들과 목욕탕에서 함께 벗고 있는 것과도 달랐다.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거대한 해변에서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많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옷을 벗고 있는 것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누구 좋으라고 옷을 벗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자기 좋으라고 옷을 벗는 것이었다.

“자기도 옷을 벗어봐, 기분이 좋아져.”
이런 식으로 아내를 유혹해봤지만 절대로 응해주지 않았다. 겨우 상반신을 벗고 엎드린 채로 노트북을 두드리는 게 다였다. 대신 아내는 누드로 만세를 부르는 나의 사진을 몇 장 찍어주었다.

열흘을 다 채우고 우리는 다시 광안리로 돌아왔다. 여행 모드에서 일상 모드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예전 같으면 사나흘 정도면 시차도 극복하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텐데 이번에는 일주일이 지나도 뭔가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매일 밥과 김치도 먹을 수 있고, 음식점에서 팁을 안 줘도 되고, 평행주차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뭔가 허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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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 비치 때문이야.”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내가 대뜸 그렇게 대답한다. 설마….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아내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광안리에 누드 비치가 생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곳에는 수치심과 상식을 가뿐히 뛰어넘은 자유가 있었다. 요가나 마음 수련을 할 필요도 없이 옷만 벗으면 되는 것이다. 입고 있는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버리고 그냥 햇빛과 바람과 바다에 몸을 맡기면 된다.

P.S. 친구는 통역했던 일이 잘 풀려서 이제는 워싱턴DC로 자주 해외 출장을 간다. 그러나 아내가 종용했던 중대한 결단은 아직 내리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나면 마이애미의 누드 비치에 가서 생각을 정리해보라고 조언할 예정이다.

서진 작가는…
2007년 장편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제12회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하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인디 문화 잡지 「보일라(VoiLa)」의 편집장을 지냈고 대안출판 프로젝트 ‘한페이지단편소설’을 운영하며 쉼 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작으로는「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가 있다. 개인 홈페이지 (3nightsonly.com)를 찾으면 그가 건네는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편집 후기
오늘 아침에도 그 버스를 봤다. 매끈한 모습으로 고가도로를 쌩 달려 집 앞을 지나는 6015번 버스를 볼 때면 항상 걸음을 멈추게 된다. 공항으로 향하는 이 버스가 저마다 기대의 크기만큼 잔뜩 싸매어놓은 가방을 든 승객들을 태우고 다시 출발할 때까지, 도무지 발걸음이 다시 떼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버스의 뒤꽁무니까지 다 배웅한 다음에야 ‘후’ 한숨을 한 번 내쉬고 퍼뜩 정신을 차려 갈 길을 재촉한다. 당장이라도 공항행 버스에 오르고 싶지만 발목을 붙잡는 일상의 무게에 그저 꿈만 꾸곤 한다. 그리고 또 한 번 ‘언젠가는 다 버리고 떠날 거야’라는 다짐을 하게 된다.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찌 보면 지금이 너무 간절하기 때문이다. 풀어낼 수 없을 것만 같이 엉켜 있는 일상이 버겁고, 나에게 붙여진 수많은 이름표가 무겁고, 우리를 둘러싼 예의와 의무가 갑갑하기 때문일 거다. 낯선 곳에서는 한없이 자유로울 수 있고 새로운 희망을 그릴 수도 있을 것만 같아서다.

‘일상’의 반대말은 ‘떠남’이 아닌데도 그 두 단어는 마치 완벽한 대척점에 서 있는 것만 같다. 떠나 있으면 일상을, 일상 속에 있으면 떠남을 갈망하게 된다. 요즘 걸음을 멈추고 6015번 버스를 바라보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는 것을 보니 내 생활을 한 번 돌아볼 때가 됐나 싶다. 서진 작가의 이야기처럼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나의 ‘누드 비치’를 한번 찾아봐야 할 것 같다.

■글 / 서진 ■진행 / 이연우 기자 ■사진 / 이연우,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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