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당신도 원고? 세상을 뒤엎는 특별한 판결 이야기

법 이야기

④당신도 원고? 세상을 뒤엎는 특별한 판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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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없이도 사는 사회가 온다면 그보다 좋은 세상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법을 알아야만 한다. 법을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다. 이달 법 이야기는 동반 자살 실패 후 살아남은 자의 자살방조죄, 공무원 품위 유지법, 카트 운전 미숙으로 유죄를 선고 받은 캐디의 이야기다.

‘아내의 자살방조’ 남편, 항소심도 무죄
[법 이야기] ④당신도 원고? 세상을 뒤엎는 특별한 판결 이야기

[법 이야기] ④당신도 원고? 세상을 뒤엎는 특별한 판결 이야기

‘나몰라’는 고질적인 우울증을 앓고 있는 ‘심란해’를 아내로 맞았다. 부모님의 반대를 우려해 그녀의 병은 숨긴 채로 결혼한 ‘나몰라’는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다니며 혼신의 힘을 다해 치료에 매달렸다. 그러나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고 둘은 부부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우울증에 걸린 아내 ‘심란해’는 “같이 죽어버리자”고 도발했다. 감정이 극에 다다른 ‘나몰라’는 수면제를 먹고 목을 맸다. 아내 역시 목을 맸다. 결국 ‘심란해’는 세상을 떠났고, ‘나몰라’는 정신이 돌아와 살아남게 되면서 검찰에 ‘자살방조죄’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나몰라’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나몰라’씨가 같이 죽자는 아내의 말에 먼저 목을 매는 등 자살 시도를 한 점을 비춰보면 유죄의 의심도 든다. 하지만 아내의 우울증 증세나 자살 시도 전력을 숨기면서 결혼 허락을 받은 점이나 아내의 우울증을 극복하려고 노력한 점을 종합해볼 때 자살방조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 재판부는 “‘나몰라씨’가 자살 시도를 하다가 의식을 잃지 않았더라면 당연히 아내의 자살 시도를 말렸을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의 이유를 덧붙였다.

※ 자살방조죄란?
형법 252조 2항. 사람을 교사 혹은 방조해 자살하게 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다. 자살을 교사하거나 방조해 자살이 이뤄지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처벌을 받는다. 중요한 점은 동반 자살 역시 타인의 자살을 방조했다는 행위로 엄연한 범죄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서로 ‘함께 죽자’는 합의가 있더라도 죄는 성립된다. 자살에 실패해 어느 한 사람이 살아남았다 해도 그는 미수범으로 처벌된다.

법원장배 축구대회 부상, 업무상 재해
지방법원 공무원인 ‘공지기’는 주말에 ‘서울고등법원장배 축구대회’에 참가해 경기를 치르던 중 왼발을 접질리는 부상을 당했다. ‘공지기’는 공무원연금공단에 요양을 신청했다. 그러나 공단은 ‘해당 축구대회는 친목 도모 행사로 공무와는 인과관계가 없다며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승인을 거부했다. ‘공지기’는 억울했다. 물론 공무원 간의 상호 친목 도모를 위한 경기였지만 사실 법원장들이 모두 참석하고 점수까지 매겼다. 반드시 법관 혹은 사무관급 이상 선수가 2명 출전해야 하는 경기라 차출돼 참가했기 때문이다. 정말 일할 때와 같은 심정으로 경기에 임했다. 결국 ‘공지기’는 연금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행정법원은 “공무상 부상이 인정된다”며 ‘공지기’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장들이 모두 참석했다면 전반적인 과정이 기관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결이유를 밝혔다. ‘공지기’는 이번 소송을 통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게 됐다.

※ 업무상 재해의 범위는?
근로자나 공무원은 업무상 부상 등 기타 재해를 입은 경우 법에서 정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면 그 종류와 상태에 따라 요양급여, 휴업급여, 장해급여, 유족급여 등 일정한 경제적 지원을 받는다. 문제는 체육대회나 야유회, 회식 등에서 생기는 부상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되느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법원은 그 행사나 모임의 주최자, 목적, 내용, 강제성, 비용 부담 등의 사정을 기초로 사회통념상 그 행사의 전반적인 과정이 사용자의 지배, 관리를 받는 상태인지를 가려 판결을 해왔다.

경찰 부당 행위에 ‘양아치’ 욕설, 모욕 아니다
‘막걸자’는 지난 지방 선거 때 불법 현수막을 설치하다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이것만으로도 억울한데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리지 않았는데도 경찰은 ‘막걸자’의 손에 수갑을 채우려고 했다. 화가 난 ‘막걸자’는 해당 경찰에게 “이 양아치 XX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양아치란 거지나 품행이 천박하고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 경찰은 ‘막걸자’를 모욕죄로 기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막걸자’씨가 경찰에게 ‘자네 양아치인가’라고 말한 것은 수갑을 채우려는 데 항의의 뜻을 표시한 것으로 부당한 공무집행에 대한 소극적인 저항으로 사회통념상 정도를 넘어섰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시하고 ‘막걸자’의 행동을 정당행위로 인정했다. 이어 “수갑은 도주 방지나 신체·생명의 방어, 공무집행에 대한 저항 억제 등 최소한의 범위로 쓰게 하는 것으로 해당 경찰의 행동은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다만 ‘막걸자’는 불법 현수막 설치에 대한 처벌은 받게 됐다. 선거일 180일 이내에 특정 정당의 명칭이 표기된 현수막을 게시한 혐의로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골프 카트 운전 미숙, 캐디 유죄
‘캐여사’의 직업은 골프장에서 경기를 보좌하는 캐디다. 어느 날 골프장에서 손님 ‘조시매’를 카트에 태우고 가던 중 ‘조시매’가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두개골 골절상 등 전치 6주 진단을 받았고 ‘캐여사’는 카트 운전 부주의로 승객을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캐여사’는 조금 억울했다. 카트 내부에 ‘운행 중 안전손잡이를 잡아달라’는 경고문이 부착돼 있고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카트에서 떨어질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1, 2심 재판부 모두 그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캐여사’를 금고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골프 카트는 좌우 문이 없이 개방돼 승객이 떨어져 사고를 당할 위험이 커 운전자는 출발 전에 승객들에게 안전손잡이를 잡도록 알리고 이를 확인한 뒤 출발해야 하며 좌우회전을 하는 경우 충분히 서행해야 할 업무상 주의 의무가 있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캐여사’씨는 골프 카트를 운전하기 전에 승객들에게 안전손잡이를 잡도록 알리지 않았고 확인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했으며 각도가 70°가 넘는 우로 굽은 길을 속도를 충분히 줄이지 않고 급회전한 업무상 과실이 인정된다”며 실형을 판결했다.

애인에게 비밀 누설, 국정원 직원 해임
2000년 국정원 공무원으로 임용된 ‘전방탕’은 2008년 6개월간 국외에 체류하게 됐다. 입사 전 교제하던 ‘서리내’를 외국으로 불러내 정보 수집 활동에 동행했다. 6개월간 해외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전방탕’은 ‘서리내’에게 “1년 넘게 동거하던 여자가 있다”며 갑작스레 이별을 통보했다. ‘서리내’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국정원 홈페이지에 ‘전방탕’이 결혼할 것처럼 속여 성추행했고 정보 수집 활동을 같이 다녔다는 글을 남겼다. 이에 국정원은 지난해 6월 ‘전방탕’을 해임 처분했고 그는 “서리내에게 알려준 것은 비밀로서 가치가 없는 내용이었다”며 해임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냈다.

행정법원은 “해임 처분은 정당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신분을 위장한 채 국외 체류하던 중 ‘서리내’씨를 초청해 정보 수집 활동에 대동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직무 연수의 목적, 정보 수집의 대상과 방법, 수집한 자료 등은 직무상 비밀이며 이를 누설한 ‘전방탕’의 행위는 국가정보원직원법상의 비밀 엄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일방적인 결별 통보로 여자로 하여금 ‘혼인빙자간음죄로 처벌해달라’는 민원을 제기하게 하는 등 공무원으로서 품위 유지 의무도 저버렸다”라고 덧붙였다.

※ 공무원 품위 유지 의무는 무엇일까?
국가공무원법에는 제63조(품위 유지의 의무)가 있다. ‘공무원은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그 품위가 손상되는 행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이다. 이는 공무원의 단골 징계 사유이기도 하다. 특별한 기준을 설정해놓지 않아 위와 같은 사례처럼 품위 유지 의무 위반이란 것이 때로는 너무 추상적이기도 하다. 공무원 스스로가 일반인보다 엄격한 잣대를 감수하며 조심하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정리 / 이유진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자료 제공 /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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