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고 닳은 타이어를 교체하고 나니 배터리가 문제이고 그걸 교환하고자 들른 터에 제너레이터의 이상이 발견되고 그러고도 또 엔진 음이 수상해서 물으니 실은 각종 벨트가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라는 답을 듣는 식. 자동차라는 물건에는 실로 엄청난, 다양한 부품이 들어 있었다. 그것들이 차례로, 기다렸다는 듯 문제를 일으키는 것만 같았다. 만 9년, 햇수로 10년째, 16만km를 넘어섰으니 그럴 때도 되었지만.
그 다음 차례는 집이었다. 가을장마가 지루하게 이어지던 어느 저녁, 막 집 안 정리를 마치고 들어선 서재의 바닥이 흥건했다. 천장 한가운데, 전등 사이 어느 어름에서 물이 똑, 똑 떨어지고 있었다. ‘나 원 참….’
물을 닦아내고 바가지를 대놓고 나니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다음날 불러 온 기술자는 “옥상에서 죄어 든 물이다. 옥상 방수에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내 집 천장을 뜯어야 하는 작업은 아니니 고마운 일이었으나 빌라 내 열다섯 가구의 동의를 얻어 옥상 공사를 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다. 비용 또한 만만찮게 들었던 건 물론이다.
요 며칠 날이 추워졌어도 보일러 가동을 망설이고 있었던 건, 짐작했겠지만 작동되지 않을까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보일러 따위, 고장이 나면 수리하면 그뿐’이라 생각할 수도 있으나 지난해 겨울 무슨 스위치 교환에도 적잖은 비용이 들어간 터였다. 기온이 뚝 떨어진 어느 날 냉골이 된 집에서 떨다 조심스레 스위치를 올렸더니 역시나…. ‘칙, 치직’ 이상한 소리를 내던 보일러는 금세 조용해졌다. 먹통이 된 보일러를 몇 번 두들겨 패다 수리공을 부르고 기다리고 고치고…. 시간이 또 깨졌다. 새집일 때부터 골칫거리였던 화장실 누수, 현관 인터폰 고장, 부엌 환풍기 고장, 세탁기 고장 등 나를 골탕 먹이기로 작정한 듯 집과 집 안의 집기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말썽을 부렸다. “어휴, 사모님 댁 빼고는 전부 다 교체했어요. 도배 안 하고 칠 다시 안 한 집은 이 댁뿐이에요.” 입주 때부터 경비실을 지키는 아저씨가 말했다. 준공 10년 차, 집이 문제를 일으키는 건 이제 시작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강아지. 모처럼 강의가 없는 날이었다. 느긋하게 신문을 읽고 차를 마시다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있는 강아지가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 기운 없어 보이는 녀석은 사랑아, 다정하게 불러도 여느 때처럼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지 않았다. 언니 오빠와 터울이 많은, 혼자 자라는 막내를 위해 데려온 시추종이었다. 다른 식구들이 다 집에 있어도 내가 오지 않으면 현관 앞에 납죽이 엎드려 기다리는, 실로 충성도 높은 녀석이었으며 남들처럼 산책시키고 씻기고 놀아주지 못해도 말썽 없이 잘 자라는, 착하고 기특한 녀석이었다. “너 왜 그래, 어디 아프냐?” 건성으로 물으며 들여다본 강아지의 눈이 세상에나, 거의 감겨 있었다. 개를 씻기고 (동물병원에 데려가기도 창피한 몰골이었으므로) 목줄을 찾아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야말로 중요한 문제가 발생했으니 다름 아닌 도우미 아줌마였다. 막내 돌 때부터 이틀 걸러 오는 가족 같은 아줌마였다. 그 아줌마가 결석 수술을 한다고 일주일을 비우더니 당분간 못 나온다고 폭탄선언을 한 것이었다.
일찍이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여자가 자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방-나만의 방-이 필요하다”라고. 그건 맞는 말이지만 나는 그보다 백 배 더 중요한 것이 내 아이처럼 아이들을 돌봐주는 마음 착한 도우미 아줌마라고 생각한다. 그런 아줌마도 없이 무슨 수로 직장엘 다닌단 말인가. 울프처럼 하녀가 청소하고 시중들어주는 시절의 사람은 모르는 일이겠지만.
전쟁과도 같은 날이 시작되었다. 아침이면 일어나기 무섭게 밥을 안치고 분초를 다투는 와중에도 번개같이 방을 치우고 나갔건만 돌아오면 집은 예외 없이 아수라장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애들 좀 시키지, 딸아이들인데.”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바쁜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그런 말을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엄마 없이도 제 밥 챙겨 먹고 시간 맞춰 학원 가는 중학생 막내에게? 수행평가며 과제며 제 앞가림에도 경황없는 그 안쓰러운 아이에게? 때마침 졸업 작품전 준비로 늘 기절 직전의 몰골로 돌아오기에 말 한마디 건네기도 조심스러운 큰딸에게? 게다가 나는 그동안 자유로운 상상력을 기르게 하겠노라, 정리정돈보다 중요한 덕목이 있노라 믿으며 아이들이 방을 어질러도, 온 동네 친구들을 몰고 다니며 늘어놓고 마구잡이로 헤집어도 나무라지 않는 주의였으니. 지난날을 땅을 치며 후회해봤자 소용 있는 일이 아니었다. 홀로 지내다 주말에 간신히 집에 오는 남편 역시 도움을 청할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릇 몇 개 씻어주면 감지덕지, 빗자루 들면 황망해지는 것이었다.
황망하면, 고마우면 그렇다, 표현하면 될 터이나 오히려 퉁명스러워지는 건 대체 무슨 까닭인지. 주말마다 남편과 한 차례씩 말다툼을 벌이는 건 일단 피곤이 주요 원인일 거다. 피곤하면 ‘피곤하다’ 하면 될 것을 그러지 못하는 것, ‘이것 좀 해주라’ 부탁하면 될 것을 그러지 못하는 것. ‘종일 학교 갔다 온 내가 이처럼 일하는데 자기는 컴퓨터 들여다보고 싶을까’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것. 그건 자존심일까, 아니면 섣부른 슈퍼우먼 콤플렉스일까.
방방마다 쌓여 있는 빨래거리를 거두어 세탁기를 돌리고, 세 여자가 경쟁하듯 흘려놓은 머리카락이 무성한 바닥을 보다 못해 청소기를 돌리고, 시늉만의 물걸레질을 하고. 파김치가 되어 서재로 들어와 앉으면 곧장 졸음이 밀려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한술 뜨는 둥 마는 둥 하던 밥을 왜 꼭 먹어야만 한다는 느낌이 드는지, 늘 가득 차 있던 냉장고와 ‘남다 남다’ 버리기 바빴던 반찬통들은 어찌 그리 자주 비는지, 먹는 것도 없는데 음식물 쓰레기통은 어쩌면 그리 자주 차는지.
그런 고로 이즈음의 나는 말대로 일에 치이며 살고 있다. 학교에 가고 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개고 ‘에고, 늦겠다’ 서둘러 병원으로 달려갔다가 학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고 가고, 그리고 이처럼 새벽에 서재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바쁘면, 바빠지면 생각이 없어지는 것이 정한 이치일 법한데 실은 그 반대이니 이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차는 달리라고 만든 것이니 제대로 달리는 게 당연하다는. 집이란 것이, 방이라는 것이 말썽 없는 게 당연하다는. 남들이 뭐라건 아이들에게 나름 최선을 다했으니 큰소리 치는 것이 당연하다는. 도우미 아줌마가 일 해주니 고마우나 내 돈 지급하니 당연하다는. 그저 거기 계시는 것이고 당신들 스스로 건강을 챙기시는 부모님이니 당연히 오래오래 사실 것이라는. 내 생각들이 실로 잘못되었다는 걸 아프게 깨닫는 거다. 그러니까 나는 바쁜 척 살았으나 진짜 바쁜 것이 무언지 몰랐던 것일지도.
진짜 바빠지면서 나는 좀 뻔뻔해졌다. 약속을 잊고서도 “어머, 잊었네요”라고 태연히 말했으며 살뜰히 챙기던 경조사를 잊지 않고도 무시해버리는 경우도 생겼다. 또 나는 이해심이 깊어졌다. 누군가 약속을 어겨도, 내게 중요한 일을 상대가 잊어도 ‘아, 바빴던 게지’ 하고 너그러워졌다.
초저녁 무렵, 광저우 아시안게임 중계방송을 보며 손톱을 깎았다. ‘아이구’ 싶을 만큼 손톱은 길고 군데군데 흠집이 나 있었다. 손가락 끝에 도톨하니 잡힌 물집이, 이건 말로만 듣던 주부습진인가 싶기도 했다. 아줌마가 다시 나올 날은 기약이 없고 때마침 김장철이니 내 손은 더 바빠질 것이고 물집은 더 깊어질 것이었다.
나는 정성을 들여 손톱을 깎고 무색의 매니큐어를 발랐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벗겨질 것이지만 상관없는 일이다 싶었다. 내 차는 앞으로도 거듭 공장행이 필요할 것이며 집은 갈수록 문제를 일으키겠지만 그 또한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다 싶었다. 고장 나면 고치고, 다시 고장 나면 또 고치고…. 폐차될 때까지 이 차를 탈 작정이다. 물이 새면 막고, 수리공이 필요하면 부르며 언제까지고 이 집에서 살리라 생각했다. 집과 함께 병들고 늙어가는 사랑이, 그 착한 짐승이 죽는 날까지 함께하리라 생각했다. 종종걸음을 치며 살더라도 아줌마가 다시 나오는 날까지 다른 도우미를 절대로 청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고장 나야 비로소 그 중요함을 알고, 편찮으시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달으니. 어쩌면 나는 여태도 자라고 있는 중일까.
편집 후기 따지고 보면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인간은 누구나 주연배우가 된다. 해가 뜨고 ‘오늘’이라는 무대의 막이 오르면, 연기가 시작된다. 어둠의 장막이 내리고 비로소 온전한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하기까지, ‘나’에게 역할이 주어진 이상 우리는 그 역할에 맞는 모습을 세상에 선보이며 살아간다. 사실 이따금 잠시 멈춰 내 자신을 ‘모니터링’해보면 ‘그래도 꽤 훌륭한 연기력을 갖춘, 팔색조처럼 수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좋은 배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어떤 식으로든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그들이 내게 기대하는, 혹은 내가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적절한 표정과 대사를 선보이며 ‘물오른’ 연기력을 과시했다. 임박해오는 마감에 정신이 멍해오기는 하지만, 다행히 아직은 내 자신이 컨트롤될 만큼 이성이 남아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적당히 웃었고 적당히 친절했으며 적당히 싹싹하게 오늘의 분량을 소화해냈다. 오늘은 ‘한 달에 두 번 아빠께 먼저 전화해서 잘 지내고 있는지를 확인시켜드리겠다’는 약속을 수행한 딸이었고, 생애 첫 독주회를 열게 된 친구에게 잊지 않고 격려를 전한 세심한 친구였고, 자기 사정밖에 모르는 야멸찬 취재원에게 부글부글 열 받아 하면서도 “그러실 수도 있죠”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보낸 기자로 바쁘게 아니 ‘바쁜 척’ 하루를 보냈다. 사실 이건 나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개인에게는 더욱 다양한 역할이 요구되면서, 요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연의 모습 대신 그때그때 가면을 바꿔 쓰고서는 고군분투한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원만하고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오를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서하진 작가의 에세이를 보면서 열심히, 안간힘을 쓰며, 울면서도 웃으며, 웃으면서도 울며, 내키지 않지만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렇게 모두들 살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원래 그런 것이라면, 조금은 여유롭고 편안하게 이 무대 여건을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먹게 됐다. 일상이란, 우리의 삶이란, 어쨌든 계속 이어지는 것일 테고 몇 장면쯤 ‘발연기’를 한다 해도 꾸준히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으로 만회하면 될 테니 말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연기할 맛 난다. |
서하진 작가는…
담담하고 세련된 문체로 일상의 틈을 파고드는 소설가 서하진은 1994년 단편 ‘그림자 외출’로 월간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그동안 소설집 「책 읽어주는 남자」, 「사랑하는 방식은 다 다르다」, 「라벤더 향기」, 「비밀」, 「요트」와 장편소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등을 펴냈다.
■글 / 서하진 ■진행 / 이연우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