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잔해’와 ‘정나미’는 국내 최고 시설을 자랑하는 S호텔에서 결혼식과 피로연을 치렀다. 첫날밤도 호텔에서 묵었다. 총비용은 약 4천6백만원이 청구됐다. 호텔 계약서에는 두 사람이 반반씩 비용을 내는 것으로 기재돼 있었다.
조잔해는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다. 그는 재혼이었기 때문에 부모님과 친구 2명밖에 초대를 하지 않았는데 2천만원 이상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새삼 억울했다. 돈 문제로 사이가 틀어진 두 사람은 남은 비용 지불을 계속 미뤄왔다. 결국 법원은 조잔해에게 ‘절반을 부담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조잔해는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한 의사 표시가 없는 이상 각자의 하객 수에 따라 비용을 부담하는 게 관습이 아니냐”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원은 ‘그런 관습은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조잔해가 정나미와 함께 호텔에 가서 결혼식 예상 견적서에 양가에서 50%씩 부담하기로 표시했기 때문에 절반을 부담해야 한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또 조잔해는 “따로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두 사람이 함께 호텔에 가서 견적서를 받았고 실제로 결혼식을 치렀으며 예약금과 일부 잔금을 지불한 것으로 볼 때 계약서 작성 여부와 관계없이 계약이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10억원의 위자료 각서 무효
‘배재라’와 ‘의심여’는 결혼정보업체의 소개로 만났다. 둘 다 ‘돌싱’ 처지인데다 경제적 여건과 취향도 비슷해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둘은 3개월 만에 동거를 시작했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뿐이었다. 동거한 지 두 달이 흐르자 배재라는 밤늦게 갑자기 외출했다가 연락이 끊기는 등 수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의심여는 배재라가 잠든 사이 그의 휴대폰에 남겨진 낯선 여성의 메시지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의심여는 깜짝 놀랐다. 배재라가 또 다른 결혼정보업체의 회원으로 가입해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의심여는 “학원 등에 복잡한 여자 관계를 알리겠다”고 격분하며 배재라에게 ‘다시 부적절한 행동을 하면 위자료 10억원을 주고 헤어진다’는 각서를 쓰게 하고 공증까지 받았다.
그러나 배재라는 이틀 뒤 마음을 바꿔 “위협을 받아 쓴 각서는 효력이 없다”며 결별을 선언했다. 의심여는 약속한 10억원을 내라며 약정금 청구 소송을 냈다. 그러나 재판부는 ‘각서의 공정성이 없어 무효’라며 여심여의 청구를 기각했다. ‘여자 관계를 폭로한다는 말이 교육업 종사자인 배재라에게 큰 위협이 된 것으로 보이며 3개월이 채 안 되는 짧은 동거 기간 때문에 10억원을 부담한다는 것은 상당한 재력이 있음을 감안해도 지나치다’고 설명했다. 부정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해 쓰게 된 위자료 각서는 공증 등 법적 절차를 거쳤다 해도 효력이 없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 각서 공증, 법적 효력 없다
만약 부부가 이혼을 할 경우 어떻게 하겠다는 합의서를 작성하더라도 정작 이혼을 할 시점에서 한쪽이 합의서의 내용을 지킬 의사가 없다면 합의서는 법적으로 아무런 효력이 없다. 공증을 받더라도 말이다. 즉 굳이 법적 효력이 없는 합의서를 돈 들여 공증받을 필요 없이 자필 서명을 받고 인감증명서를 받는 편이 낫다. 그 역시 법적 효력은 될 수 없지만 소송시 유책이나 양육 의사에 관한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
섹스광 남편, 이혼 사유 된다
‘왕대근’(49)과 중국 여성 ‘하지마’(25)는 결혼소개소를 통해 만난 뒤 혼인신고를 했다. 그리고 곧 한국에서 살림을 차렸다. 그러나 하지마는 낯선 곳에 적응도 하기 전에 왕대근의 끈질긴 성관계 요구에 시달려야 했다. 일반적인 성관계가 아니라 변태적인 행위를 요구받을 때도 적지 않았다. 왕대근은 성기 확대수술을 받고 집 안에서 나체로 지내기도 했고 하지마가 성관계를 거부할 때마다 화를 내곤 했다. 결혼 한 달여 만에 하지마가 남편이 출근한 틈을 타 집을 나오면서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끝이 났다. 이후 하지마는 남편에게 이혼과 위자료 2백만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하지마의 손을 들어줬다. ‘두 사람이 이혼하고 남편은 하지마에게 위자료 1백만원을 주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잘못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있지만 결혼 파탄의 직접적 책임은 남편에게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요일 시험, 종교의 자유 침해?
지난해 ‘왕신자’는 교사 임용시험 응시원서를 냈다. 그런데 서울시 교육청이 공립중등학교 교사임용 1차 시험일을 11월 8일 일요일로 정해 공고하자 시험에 응시하지 않고 헌법소원을 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왕신자는 일요일에는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종교적 의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그의 소원을 기각했다. ‘수많은 교원 임용시험 수험생들의 응시 편의를 도모하고 시험 장소의 확보와 시험 관리 등을 쉽게 하기 위해 일요일로 시험일을 지정한 것은 목적의 정당성과 방법의 적절성이 인정된다. 즉 종교의 자유나 평등권을 침해했다고 할 수 없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석연치 않은 학사장교, 또 군 입대행
‘나말뚝’은 중국 베이징의 한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곤 육군 소위로 임관해 2년 6개월간 복무한 뒤 중위로 전역했다. 그런데 또 입영 통지서가 날아왔다. 국방부가 ‘나말뚝이 졸업한 대학이 중국 정부의 공인을 받은 4년제 대학이 아니기 때문에 장교 지원 기준인 학사 학위 취득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임관 취소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군대를 두 번 다녀와야 할 처지에 놓인 나말뚝은 당황했고 소송을 냈다. 그러나 패소했다.
재판부는 ‘학위가 인정되지 않는 외국 대학 졸업장을 이용해 장교로 군 복무를 했기 때문에 사병으로 다시 입대하라’고 판결했다. ‘국가에서 학사 학위를 인정하지 않는 대학 졸업장을 제출한 것을 사관 후보생 자격을 갖추지 못한 행위로 보고 장교 임용 무효 명령을 내린 것은 적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나말뚝은 군대를 두 번 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 사례 내의 사람 이름이나 지명으로 쓰인 표기는 모두 해당 사건과 관계가 없습니다.
■정리 / 이유진 기자 ■사진 / 이성원 ■자료 제공 / 대법원 종합법률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