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작가의 겨울, 속초에는 청어구이와 국수가 있었다

프런트 에세이

박찬일 작가의 겨울, 속초에는 청어구이와 국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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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백석의 시 ‘국수’ 중에서

[프런트 에세이]박찬일 작가의 겨울, 속초에는 청어구이와 국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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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시는 평안도 사투리를 많이 써서 지금도 그 의미를 정확히 알아내기 힘들다. 그렇지만 그냥 그 한겨울 동치미 같은 짱짱한 시어와 구수한 국수의 미각이 고루 씹힌다. 한겨울, 국수 한 그릇이 그리울 때면 백석의 시가 그토록 사무칠 수 없는 것이다. 시가 딱 어떤 식의 국수를 말해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평양식의 냉면이나 온면인 듯하다. 동티미(동치미)가 나오고, 거기에 꿩 고기가 등장하니 말이다. 지금은 다양한 방법으로 냉면 육수를 내는데, 원래 평양식은 동치미에 닭이나 꿩, 그 밖에 고기 삶은 물을 섞는 게 철칙이다. 그래서 냉면은 여름 국수가 아니라 겨울이어야 맞는다. 여름에는 동치미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 냉면 마니아는 동치미 없는 여름냉면은 ‘냉면인 척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게 그리도 딱 들어맞는 설명이 아닐 수 없다. 하긴, 요즘은 겨울냉면이라고 어느 집에서 제대로 된 ‘동티미’를 만들어 육수를 낼 것이겠냐만. ‘동치미 맛’의 요상한 국물에 인공조미료 맛이 고작인 경우가 많아 진짜 냉면을 먹었던 평안도 출신 노인들이, 백석이 부럽다.

2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때 내게는 한 친구가 있었다. Y였다. 그는 얼굴이 맑고 하얘서 소주 한 잔을 마시면 투명한 실핏줄이 볼에 가득 찼다. 술잔을 잡은 손가락은 하얗다 못해 소주잔처럼 투명했다.
냉동 꽁치는 비렸다. 간장에 살점을 적셔 먹었다. 소주로 헹구지 않으면 썼다.

“청어가 먹고 싶어.”
그 겨울은 백석의 국수는 아니어도 청어는 흔했다. 청어라니. 반짝이는 비늘 갑옷을 입은 늘씬한 유선형의 몸매에 푸른빛 눈동자의 청어라니. Y가 입은 것은 청어의 등뼈를 닮은 헤링본 코트였다. Y의 옷맵시는 생선 등뼈처럼 가늘고 곧았다. 마장동에서 진부를 넘어가는 마지막 버스를 탔다. 거진에서 생태찌개를 먹었다.

“청어 떼는 모두 남하했을까.”
거진 앞바다에서 청어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부두에 매어둔 배들이 심상치 않은 밤바람에 쓸리며 우드득 삐걱, 관절 꺾는 소리를 냈다. 그 시절에는 아직 명태잡이 배들이 출어를 했다. 만선을 기원하는 부적 같은 깃발들이 배에서 나부꼈다. 갈매기 한 마리가 낮게 날아서 어둡고 먼 바다로 사라졌다.
이북 사투리를 쓰는 주인이 내어준 방에서는 군인의 양말 냄새가 났다. 버석거리는 이불을 덮고 누웠더니 코가 시렸다. 그 시절에는 윗목에 놓아둔 자리끼가 얼던 때였다. 청어가 사라지기 전이었다.

아침에 안주인은 뜨거운 물을 대야에 가득 부어주었고, 고양이 세수를 마친 우리가 7번 국도를 타고 속초 쪽으로 내려온 것은 다음날 오전이었다.

속초 앞바다는 사납게 파도를 백사장에 실어 날랐다. 간장 종지처럼 작고 위태로운 가자미잡이 배 두어 척이 멀리 수평선에서 자맥질하듯 시선에 잡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Y의 볼은 더 붉어졌다. 바람이 Y의 따귀를 갈겼다.

“이젠 청어를 먹어야지.”
바닷가 한쪽의 작은 포구에 을씨년스러운 천막을 두른 막횟집 서너 곳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잡어 서너 마리에 오징어를 섞어 횟감 한 채반을 만들어 팔았다. 횟감들이 들어 있는 함지박 한쪽에 비늘이 반짝이는 고기가 한 무더기 놓여 있었다.

[프런트 에세이]박찬일 작가의 겨울, 속초에는 청어구이와 국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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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다!”
방파제 앞에 아낙이 화로를 놓아주었다. 트라이포드 더미가 어깨로 바람을 받아내고 있어서 따스하고 아늑했다. 칼집을 내고 굵은소금을 뿌려 청어를 구웠다. 기름이 치익, 칙 숯불 위에 떨어져 연기를 피워 올렸다. 청어 살은 부드럽고 달았다. 가늘고 탄력 있는 청어의 가시가 드러났다. Y의 헤링본 코트에 청어 연기가 뱄다. Y는 드라이클리닝을 하지 않았는지, 서울에서도 청어 냄새가 났다.

달콤한 무에 버무린 물가자미회도 좋지만 그 겨울에는 단연 청어구이였다. 관광객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뻔한 생선회를 먹고, 현지인들은 청어를 굽는 게 포구의 겨울 풍경이었다. 청어가 없으면 가자미도 굽고, 노가리도 구웠다. 숯불이 아니라면 번개탄이라도 피우고 기침을 하면서 나무젓가락질을 했다. 고개를 돌리면 멀리 눈을 인 설악이 보였다.

한동안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던 청어 떼가 강원도 앞바다에 돌아왔지만 이제 그 포구에 청어 굽는 풍경은 없다. 번듯한 회센터가 생기고 관광객의 자가용이 줄을 잇는다. 고단한 아주머니들의 호객하는 손짓만 요란할 뿐 청어의 맛은 없다. 어느 포구는 포장마차를 싹 걷어내고 무슨 현대식 건물을 얹었는데, 이게 기가 딱 막힌다. 건물의 멋까지는 아니어도 수수한 기운은 있어야 하는데 오직 손님을 왕창 받아서 재빨리 회전하는 데 머리를 쓴 흔적만 남았다.

딱 사각형의 홀은 시장통처럼 시끄럽고, 피곤한 아르바이트생이 거칠게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른다. 풍류까지는 아니어도, 사람 사는 맛까지는 아니어도 우리가 바라는 소박한 서정까지 싹 지워버렸다. 나는 홧술을 마시듯, 소주병을 비워버리고 울분을 토할 데가 없어 바다만 바라보았다. 바다는 그대로인데, 청어도 돌아왔는데 정 따위는 없어져버린 그 바다가 무엇이랴. Y는 못내 섭섭해서, 울상이 된 것이 지난해의 어느 날이었다.

청어가 돌아왔으나 그걸 먹으러 속초로 가지는 않는다. 어디 구울 데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이 도시의 한 구석에서 소시민적으로 청어를 먹는다. 얼마나 많이 잡히는지 작년 초겨울에는 기십 마리가 들어 있는 한 상자를 만원짜리 한 장이면 살 수 있었다. 그걸 잡은 어부에게 미안한 값이었다. 어획이란 양식과 달라 예측을 못하니 그리 되었겠지만 스무 해나 넘게 새침하게 사라져버리더니 이렇게 마구 쏟아질 건 또 뭐냐 싶다. 적당히 존재를 잊지 않도록 그렇게 사람에게 잡혀주면 안 되는 것일까.

청어는 튀김도 맛있다. 가시가 연해서 와작와작 씹으면 고소하기 이를 데 없다. 회도 물론 좋다. 가시가 많아 손질이 어렵지만 숙달된 요리사의 칼끝을 만나면 감칠맛과 혀에 닿는 촉감이 뛰어난 횟감이 된다. 일본에서는 대접받는 초밥 거리이기도 하다. 칼집을 잘 내서 쪽파를 뿌려 초밥을 만들면 묘한 맛을 낸다. 누구는 청어회에서 부싯돌 냄새가 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화이트와인과 아주 잘 어울릴 것이다. 기름지니 상쾌한 화이트와인과의 궁합이 좋을 수밖에 없다. 회로도 맛있으나 나는 구우면 더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기름이 많은 생선이라 구우면 자글자글하게 기름이 배어 맛이 기막히다. 특히 알이라도 배면 그 고소한 알집 맛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 서민의 캐비아라고 불러도 될 맛이다. 강원도에는 세 가지 ‘알 맛’이 있다고 생각한다. 명태알, 가자미알, 청어알이다. 모두 기막힌 맛이지만 나는 청어의 손을 든다. 어디 청어알젓이 있다는데, 워낙 귀한 것이라 맛을 보지 못했다. Y에게 물어봐야겠다.

Y는 속초 출신은 아니었지만 워낙 그 동네를 자주 다녀서 아주 토박이 급이었다. 그의 서울살이는 곤란했으며, 배가 고팠다. 그는 술이 취하면 청어를 찾았다. 겨울 바닷가에서 아버지랑 구워 먹던 청어를 그리워했다. 아니면 한겨울 맛있는 김치를 찾았다. Y가 김치 얘기를 꺼내면 아무도 김치에 젓가락을 대지 않았다. 그런 건, 김치가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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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사람들은 김치를 산에 묻어. 김치를 꺼내려면 아버지가 끄는 리어카를 타고 산에 가는 거야. 두어 해 이상 묵은 김치가 그 산에 있어. 산이 김치를 익혀. 여름을 여러 번 넘겨도 김치는 짱짱해. 코가 빨갛게 얼어서 꺼내온 김치를 썰어 먹는 거야. 한겨울에는 김치에 살얼음이 얼어서 엄마가 부엌칼을 대면 서걱서걱, 소리가 나. 아버진 김치도 나오기 전에 그 김치 써는 소리에 벌써 소주를 한 병 마셨을 테고.”

청어가 살을 다 내어주고 가지런한 등뼈와 가시를 예쁘게 드러냈다. 술은 이미 얼큰했다. 선주후면이라고, 술을 마셨으면 국수를 먹는 게 순서였다. 국수는 중앙동이야. 그건 Y 아버지의 루트였을 것이다.

눈이 우르릉거리는 사나운 날엔 국수를 해 먹는다. 애곤지 알이 명태 머리 꼬리가 처박는 폭설. 된장을 푼 멸치 국물이 가스 불에 설설 맴도는, 까닭 없이 궁핍한 서울. 엉덩이 들고 홍두깨로 민 반죽을 칼질하고 밀가루 뿌려놓은 긴 국숫발. 바다 모래불 가 눈발을 그리는 20년 객지, 하며 창밖에 펄펄 날리는 하늘 눈사태 바라보는 나는 이런다,
이런 날은 이 조태 칼국수만이 저 을씨년하고 어두운 날씨를 이길 수 있다.
고형렬의 시 ‘조태 칼국수’ 중에서

조태란 주낙으로 잡은 명태라고 한다. 그물이 아니고 낚시로 잡은 것이니 살결이 미끈하고 상처가 없다. 그물 안에서 몸부림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생선은 살에 젖산이 쌓여 맛이 없다. 주낙으로 잡으면 생선의 질이 훨씬 좋다. 나는 조태 칼국수라는 걸 먹어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맛은 가늠이 된다. 속초 출신의 시인 고형렬은 이 국수를 그리워할 것이다. Y가 먹던 청어는 20년 동안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몇 해 전 다시 우리 바다에서 대량으로 잡히기 시작했다. 청어가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고형렬이 그리워하는 명태는 잡히지 않는다. 일본산 명태로 만들어도 맛은 비슷할지 몰라도, 고향 바다에서 명태가 사라졌다는 건 그에게 심리적 허탈감을 남겼다. 그의 마음이 무거운 건 ‘20년 객지’의 을씨년스러운 날씨 탓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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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의 뒤를 따라 중앙동에 갔다. 낮은 지붕의 냉면집 왁자한 실내는 외국어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가 가득했다. 서울의 냉면집에서는 평안도 사투리, 속초에서는 함경도 사투리가 제격이었다. 찌그러진 양은주전자에 담긴 육수가 구수했다. 누구는 국수야말로 혁명가의 음식이라고 했다. 목이 미어지게 재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건 차가운 국수, 냉면이라야 가능할 것인지도 몰랐다. 뜨거운 국수를 그렇게 빨리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Y는 냉면이 나오자 소주 한 병을 시켰다. 고명을 안주 삼아 소주잔이 빨리도 뒤집어졌다. 그것 역시 그의 아버지의 습관이었을 것이다. 속초의 냉면 고명은 독특했다. 편육 대신 붉고 촉촉하며 감미로운 무엇이 얹어 있었다. 홍어회도 아니고 가자미 맛도 아니었다. Y가 흐흐흐, 웃으며 말했다.

“명태회야. 명태에 양념을 쳐서 놓으면 이렇게 촉촉하고 꼬들꼬들한 맛이 된다네.”

명태로 칼국수 국물을 내고, 냉면 고명도 얹는다. 여름 오징어와 겨울 명태 없이 속초의 맛을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오징어며 명태며 도시에서 만만한 재료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Y를 따라 다시 중앙동으로 속초 앞바다를 가보고 싶다. 단단히 삐친 그가 마음을 쉬이 돌릴지 모르지만 그래도 속초에 가야 속초 맛이겠지.


편집 후기

이맘때쯤 가장 자주 먹는 음식은 단연코 김밥이다. 1년 중 오직 이 계절에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도, 각종 몸에 좋은 재료들을 사용해 맛깔 나게 버무려낸 고급 음식도, 보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이게 하는 ‘폼 나는’ 음식이 아니라 아쉽기는 하지만 어쨌든 사실이 그렇다. 불규칙한 취재 일정과 징글징글한 마감에 쫓기는 싱글녀에게 김밥은 쓰린 배 속을 채우기에 무척 적합한 음식이다. 마음이야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뜨끈한 국 한 대접에 야들야들 구운 고기 한 점, 쌉싸래한 나물과 풋풋하게 막 버무린 겉절이 한 젓가락을 입 안 가득 밀어 넣고 넘치게 황홀한 행복을 느껴보고 싶지만 현실은 결국 컴퓨터 앞에 앉아 은박지에 돌돌 말린 김밥 한 줄을 우물거리는 데 그치고 만다. 그나마 오늘은 김밥 속 밥이 따뜻해서 맛있게 느껴지니 다행. 바로 앞에 단체 주문이 있어서 준비해뒀던 걸 다 팔아버려서 새로 말아야 한다더니, 5분이나 기다린 보람이 있다.

지금이야 이렇게 투덜거리며 김밥을 먹지만, 사실 김밥은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놀러가는 날=김밥 먹는 날’이라는 공식이 있었던 그때, ‘김밥’은 뭔지 모를 두근거림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운동회나 소풍 가는 날에는 항상 비가 오지 않길 기도하며 잠들어서는 평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 도마 위에 놓인 김밥 끄트머리를 집어 먹곤 했다. 특히 엄마 대신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던 내 김밥 도시락은 친구들 모두 ‘맛있다’고 탐내는 것이라 점심시간이면 어깨가 으쓱하곤 했다. 잘게 다진 쇠고기를 양념한 뒤 바특하게 볶아 한 김 식힌 뒤 하얀 밥 위에 소르르 한 줄로 뿌리고 나머지 재료들(단무지며 시금치와 당근 같은 것들)을 차례로 올려 말아낸 ‘할머니표’ 김밥은 맛도 모양도 최고였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늘 “다른 애들은 뭐 먹드노? 젊은 엄마들은 맛있는 거 싸주겠제?”라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께서 성묘 가실 때 가져가는 촌스러운 찬합에 가득 담긴 그 쇠고기김밥이 나는 자주 먹고 싶었지만, 김밥을 싸는 날이면 할머니께서 늘 새벽에 일어나신다는 걸 알기에 늘 “먹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다.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던 김밥은 이제 가장 쉽게, 가장 흔하게 먹는 음식이 됐다. 집 앞에만 나가면 김밥으로 일구어진 ‘세상’도 ‘나라’도 ‘천국’도 있다. 하지만 더 이상 그토록 설레는 맛은 아니다. 단무지, 햄, 시금치, 달걀, 당근…. 들어갈 건 다 들어갔는데도 뭔가 부족한 맛이다. 아마도 ‘쇠고기김밥이 아니어서 그런가 보다’ 싶어 한동안은 주야장전 쇠고기김밥만 시켜 먹은 적도 있다. 하지만 아마 ‘16년 동안 김밥을 연구해온’ 달인이 만든 김밥에서도 그 달곰삼삼하면서 양감이 느껴지던 ‘할머니표 김밥’ 맛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소설가 성석제는 ‘음식은 추억의 예술’이라 말한 바 있다. 똑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누구와 먹는지, 어디서 먹는지, 어떻게 먹는지에 따라 각각 전혀 다른 맛으로 기억될 수 있다. 음식마다 기억과 그리움이 깃들 때, 인생은 더 맛있어진다.

그러고 보면 단순히 혀를 즐겁게 하기 위해 혹은 허기를 채우기 위해 하는 숟가락질은 무척이나 무의미하고 불행한 행위일지 모른다. ‘자주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김밥을,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매일 끼니때마다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결코 기쁘지는 않다. 다음 번에는 ‘김밥’이 아닌 ‘추억’을 먹고 싶다.

박찬일 작가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에서 소설을 전공한 뒤 잡지 기자로 활동하던 중 돌연 요리에 흥미를 느껴 유학을 떠나 이탈리아 피에몬테에 있는 요리학교(ICIF)를 다녔다. 시칠리아에서 주로 일하다 2002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청담동 등지에서 ‘뚜또베네’, ‘논나’와 같은 식당을 열어 성공했다. 지금은 홍대 앞 ‘라꼼마’에서 일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와인 스캔들」 등이 있다.

■글 / 박찬일 ■진행&사진 / 이연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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