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원고? 세상을 뒤엎는 특별한 판결 이야기

법 이야기

당신도 원고? 세상을 뒤엎는 특별한 판결 이야기

법 없이도 사는 사회가 온다면 그보다 좋은 세상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사고는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법. 법을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다. 이번 법 이야기는 수백억원을 사회에 환원한 어머니를 한정치산자로 몬 아들의 이야기와 ‘4’자 기피 현상으로 보증금을 떼이게 된 사연 등을 소개한다.

입영통지서, 아파트 경비원이 전달해도 적법
엄꼼수씨는 아파트 경비원으로부터 현역 입영통지서를 전달받았다. 그러나 정당한 이유 없이 입대하지 않아 기소됐다. 엄꼼수씨는 병역법 6조 1항을 들어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병역법에서는 ‘병역의무자에게 통지서를 교부하거나 우편 등을 이용해 송달하도록 하고 있으며 의무자가 없는 경우 세대주, 가족 중 성년자, 고용주 혹은 본인이 선정한 수령인에게 전달’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는 “통지서가 세대주나 성년인 가족 등에게 전달돼야 하는데 경비원이 전했기 때문에 적법한 송달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병역법 위반죄의 주체는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고 엄씨가 해당 서류를 수령한 이상 죄가 성립된다”고 설명했다. 또 “통지서가 송달됐으며 최종 전달자가 법에 열거된 인물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엄씨가 통지서를 받은 사람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엄씨에게 징역 1년 6월 실형을 선고했다. 입영통지서를 본인, 가족 등을 제외한 제3자에게 맡겼더라도 당사자가 이를 받았다면 적법하게 통지된 것이라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 병역법 위반 88조
입영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응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수백억원 기부하는 어머니, ‘말려주세요’
이말년 여사는 1950년대 사업가로 성공한 뒤 수백억원대 재산을 잇달아 사회에 기부해왔다. 슬하의 두 아들도 모두 대학교수로 키워 유산도 일부 물려준 상태다. 이말년 여사는 “평소 마음먹었던 일”이라며 최근 사회복지 단체, 대학교 등에 거액을 기부하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몰래 지원해왔다. 그러나 맏아들 구만해씨가 제동을 걸었다. “어머니가 심신 박약 상태에 있어 재산을 잃을 수 있다”는 이유로 한정치산 선고를 법원에 청구한 것이다. 한편 차남은 이말년 여사의 뜻에 따르겠다며 어머니 편에 선 상태. 장남 구만해씨는 “어머니 재산 관리를 내가 맡겠다”며 재산 처분을 법원에 요청해 받아들여지자 이말년 여사는 즉시 항고했다. 크게 분노한 이말년 여사는 한때 언어 곤란 증세까지 겪었고 “재판이 끝날 때까지 큰아들이 집 근처에 접근하는 것을 막아달라”며 구만해씨를 상대로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이말년 여사는 병원에 입원해 정신 감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결과는 정상. ‘치매도 아니며 정신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판정이 나왔다. 이는 이말년 여사가 한정치산을 선고받아야 할 정도로 ‘심신 박약’ 상태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됐다. 재판은 이말년 여사 쪽으로 기울어졌고 패색이 짙어지자 구만해씨는 소송을 취하했다. 돈에 대한 욕심이 가장 가까운 가족 관계까지 위협하는 소송 사례다.

※ 미성년자, 한정치산자, 금치산자란?
법률행위를 할 수 없는 지위나 자격을 행위무능력자라고 명명한다. 이에 미성년자와 한정치산자 그리고 금치산자 세 종류가 있다. 미성년자는 말 그대로 만 20세에 달하지 않은 자로 친권자, 후견인 순으로 미성년자의 법정대리인이 된다. 한정치산자는 심신이 박약하거나 재산의 낭비로 자신이나 가족의 생활을 궁박하게 할 염려가 있는 자를 말한다. 최근 드라마를 통해 익숙한 용어가 된 금치산자는 심신 상실의 상태에 있는 자, 즉 거의 의사능력이 없는 자에 대해 가정법원의 선고로 결정된다. 한정치산자가 판단력은 불완전하지만 어느 정도 사리 분별이 가능한 자라고 한다면, 금치산자는 판단력이 아예 없는 자라고 생각하면 구별이 쉽다.

[법 이야기]당신도 원고? 세상을 뒤엎는 특별한 판결 이야기

[법 이야기]당신도 원고? 세상을 뒤엎는 특별한 판결 이야기

2m 음주운전, 면허 취소 부당 판결
조금만씨는 술을 마신 뒤 대리운전 기사를 호출했다. 그는 단순한 생각으로 대리운전자가 자신의 차를 찾기 쉽도록 2m가량 후진하다가 그만 접촉사고를 내고 말았다. 혈중 알코올 농도 0.134% 상태였던 조금만씨는 운전면허가 취소되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한 마음에 그는 경찰청장을 상대로 자동차운전면허 취소가 부당하다는 소송을 냈다. 그리고 승소했다. 법원은 조금만씨가 차량을 도로에 진입시킨 이상 운전한 것은 인정했다. 그러나 “그가 차량을 후진 주차하면 대리운전 기사가 차를 찾기 쉬울 거라고 판단한 점 그리고 운전거리가 불과 2m 정도라는 점에서 면허 취소는 부당한 처분”이라고 판시했다. 또 “음주 후 30~90분 사이에 수치가 최고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점으로 비춰봤을 때 음주 후 38분이 경과한 이후에 측정한 것으로 면허 취소 수치로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참고로 혈중 알코올 농도 0.1 이상일 때 면허 취소 처분을 받는다.

‘♥’ 표시 성희롱 아니다?
한 여대의 전임강사로 일하고 있는 독거인씨는 제자에게 보낸 문자가 문제가 되어 강사직을 해임당했다. 그 문자의 내용은 ‘무서워… 네가 안아주면 모를까… 무서버!’, ‘♥네가 너무 보고 싶다’, ‘네가 자꾸 생각나서♥’ 등이었다. 특히 ♥ 문자는 학생에게 언어적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독거인씨는 해임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교수가 제자에게 보내기에는 과한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실은 인정되나 학생과 서로 친밀감을 가지고 일상적인 내용의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 문제가 됐던 하트 문자에 대해서는 “친밀감을 나타내는 기호며 문자 메시지 내용 전후의 학생 반응을 살펴볼 때 성적 동기나 의도로 보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원고 승소 판결로 독거인씨는 해임 처분이 기각될 수 있었다.

※ 언어적 성희롱이란?
언어로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성적인 불쾌감과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다. 언어적 성희롱의 가장 일반적인 유형은 듣는 사람이 불쾌해하는데도 음담패설을 하는 것. 특정한 대상을 상대로 성관계나 데이트를 암시하는 말을 해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도 언어적 성희롱이다. 또 이런 암시적인 말을 유포해 피해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게 만드는 것도 포함된다.

* 외모에 대한 성적인 비유나 평가를 하는 행위
* 성적인 사실 관계를 묻거나 성적인 내용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행위
* 성적인 관계를 강요하거나 회유하는 행위: 데이트 강요, 잠자리 요구 등

‘4’자 기피 현상, 보증금 떼인 황당 사연
만상해씨는 4층짜리 빌라 4층에 보증금 1천3백만 원에 임대차 계약을 하고 입주했다. 계약서에는 현관문에 적힌 호수대로 502호로 기재했다. 이대로 전입신고도 하고 주민등록상 주소도 바꿨다. 그러나 문제는 건물주가 금융기관에 빌린 돈을 갚지 않아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발생했다. 만상해씨는 경매 절차가 진행되자 임차인으로서 권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낙찰금 배당에서 제외됐다. 등기부와 주민등록상 호수가 달랐기 때문이다.

즉 숫자 4를 꺼리는 우리나라 정서상 4층 주택을 500대 호수로 표기하는 관습 때문에 벌어진 황당한 일이었다. 만상해씨는 “현관문, 우편함에 502호라 적혀 이대로 전입신고를 할 수 밖에 없었다”며 배당 이의 소송을 냈다. 소송에는 503호, 505호 이웃도 참여했다. 그러나 법원은 만상해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공동주택에서 주민등록상 동, 호수가 등기부와 다르게 기재된 경우 그 주민등록은 공시방법으로 유효하지 않다”는 대법원의 판례를 적용한 것이다. 황당하지만 법은 법이다. 주택 계약시 등기부등본과 실제 동, 호수가 일치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건이었다.

■정리 / 이유진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자료 제공 /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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