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뒤엎는 특별한 판결 이야기

법 이야기

세상을 뒤엎는 특별한 판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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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없이도 사는 사회가 온다면 그보다 살기 좋은 세상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사고는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법. 법을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다. 이번 법 이야기는 생활고로 손자를 버려 법정에 선 할머니, 사실혼 관계에서의 위자료 문제, 인터넷을 통해 이웃을 비방한 사람에 대한 처벌 등 다양한 사연을 소개한다.

실수로 잘못 배달된 우편물, 집배원 책임?
[법 이야기]세상을 뒤엎는 특별한 판결 이야기

[법 이야기]세상을 뒤엎는 특별한 판결 이야기

지방개발공사는 공동혁신도시 개발 예정지에 있는 만석군의 땅을 수용하기로 했다. 만석군은 이 땅을 모 저축은행에 근저당을 잡히고 대출을 받은 상태였다. 이에 개발공사는 땅의 근저당권자인 저축은행에 보상 관련 통지서를 보냈다. 그러나 통지서를 작성하면서 실수를 하고 말았다. 수취인은 저축은행으로 하고 주소는 만석군의 집으로 적어 보낸 것이다. 등기우편은 주소대로 만석군의 집으로 배달됐다. 만석군은 이를 보고 보상금을 받기 위해 은행에 재빨리 돈을 갚고 근저당을 말소시켰다.

이 때문에 저축은행은 통지를 받지 못하고 수용 보상금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된 것. 저축은행 측은 개발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5천9백여 만원의 손해배상금이 지급됐다. 개발공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집배원이 등기 우편물의 수취인 확인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집배원을 고용한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등기 우편물 배달 사고에 따른 위자료를 청구하려면 집배원의 고의나 중과실이 있어야 한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봉투에 수취인으로 개인 이름 없이 은행 이름만 적혀 있었고 또 실제 수령인이 “남편이 저축은행에 근무한다”고 말해 집배원으로서는 만석군에게 배달된 우편물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인정한 것이다.

이웃 주민 비방죄, 벌금 2백만원?
해고지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입주자 모임 인터넷 카페에 ‘나영이 사건 범인 신상 공개’라는 제목으로 이항당의 사진과 주소, 전과 기록 등을 게재했다. 이항당은 해고지의 이웃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나영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것이다. 해고지는 아파트 입주자 모임에서 이항당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돌자 그를 폄하하기 위해 나영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하고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황당한 이항당은 해고지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부는 해고지에게 벌금 2백만원을 선고했다. ‘피고인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며 이와 같이 판결했다.

※ 사이버 명예훼손
(형법 제307조) 명예훼손은 ‘공연히 사실이나 허위 사실을 적시(摘示)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를 말한다. 특히 사이버 명예훼손은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61조에서도 관련 규정을 두고 있다. 특히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허위 사실을 유포했을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 정지 혹은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또 그것이 공연히 사실일지라도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혹은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생활고로 손자를 길가에 버린 할머니, 집행유예?
아들 부부의 별거로 손자 두 명을 홀로 맡아 키우게 된 나모라 여사. 어린 손자와 함께 버스를 타고 한 주택가 골목에서 내린 뒤 손자에게 “우유를 사올 테니 잠시 기다려라”라고 말하고는 혼자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이후 3년 뒤 나모라 여사는 손자의 초등학교 입학통지서를 받게 되자 유기 사실을 숨기려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고 경찰은 며칠 뒤 한 보육원에서 손자를 발견해 여사에게 인계했다. 경찰은 나모라 여사가 3년 만에 실종 신고를 한 경위가 수상해 조사하자 나 여사는 “형편이 어려워 돈을 벌어야 하는데 애들을 돌보느라 일을 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손자를 버렸다”며 선처를 요청했다.

나 여사는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나모라의 행위로 손자는 가족으로부터 버려졌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고 유기 기간 동안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지 못한 것이 인격적인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엄벌이 불가피하다’며 처벌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유는 ‘자녀 보호의 1차 책임을 가지는 부모의 별거로 인해 나모라가 어쩔 수 없이 손자를 맡게 됐고 생활고를 겪은 점, 손자가 무사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다행히 손자는 이 일을 계기로 부모가 재결합해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사실혼 관계에서 바람을 피우면?
이바람은 정부인을 소개받아 교제를 하다 동거를 시작했다. 이후 두 사람은 결혼식도 올리고 신혼여행도 떠났다. 그러나 여행 중에 이바람은 정부인에게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했고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상태로 지냈다. 게다가 이바람은 수년간 연락을 주고받으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오던 대학 후배에게 하루에 수차례 전화를 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를 눈치 챈 정부인은 둘의 관계를 캐물었지만 이바람은 대답을 회피했다. 이바람이 외박을 할 때마다 정부인의 의심은 날로 커졌다. 이바람에게 대학 후배를 만나지 않겠다는 맹세와 그간 나눈 편지나 사진을 없애라고 했지만 그도 지키지 않았다. 정부인은 자인서나 각서 등을 받으며 가정을 지키려 했지만 결국 두 사람은 결혼 1년도 되지 않아 갈라섰다. 정부인은 이바람의 잘못으로 사실혼 관계가 파탄 났다며 위자료를 요구했다. 이바람은 지지 않고 정부인이 지나친 의심과 사생활 침해로 문제가 생겼다며 맞소송을 했다.

법원은 정부인의 손을 들어줬다. ‘이바람이 사실혼 기간에도 수년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대학 후배와 하루에 수차례 통화하는 등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부인을 냉대했다’며 ‘갈등 해결을 위한 별다른 노력 없이 사실혼 파기를 통보한 점 등을 감안할 때 주된 책임은 이바람에게 있다’고 판시했다. 이에 이바람의 청구 내용은 기각되고 ‘사실혼 관계였던 정부인에게 위자료 3천5백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괜찮다”는 어린이의 말에 떠난 차, 뺑소니?
무채김은 차를 몰다 골목길에서 뛰어나온 어린이(9세)를 치었다. 무채김은 사고가 난 후, 탑승한 채 “괜찮으냐?”고 물었다. 차량 우측 모서리에 부딪친 어린이는 “괜찮다”고 했고 무채김은 그대로 현장을 떠났다. 사고 후 병원에 간 어린이는 발목 염좌 2주 진단을 받았다. 그는 뺑소니 혐의로 기소되고 벌금 3백만원이 선고됐다. 억울한 무채김은 “사고 후 B군이 조수석 쪽 창문으로 와 괜찮다는 말을 한 뒤 곧바로 뛰어갔고,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 현장을 떠난 것”이라며 항소했다. 하지만 2심에서도 무채김의 항소는 기각됐다.

재판부는 ‘나이 어린 학생들은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시간이 지난 다음 통증을 호소하기도 하므로 운전자는 우선 차에서 내려 피해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연락처를 교부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단순히 “괜찮다”는 어린아이의 말만 믿고 구호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경우 법적으로는 ‘도주의 인식’으로 인정된다니 운전자들은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정리 / 이유진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자료 제공 /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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