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희 작가의 우리 모두는… 그렇게 컸다

프런트 에세이

윤성희 작가의 우리 모두는… 그렇게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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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분만 눈을 붙여야지, 하고 낮잠을 잤는데 눈을 뜨니 해가 지고 있다. 그런 날이 일요일이라면 억울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쓸쓸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또 어린아이처럼 짜증을 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베개를 잘못 베었는지 목은 뻐근하고 냉장고에는 먹을 게 하나도 없다. 나는 맨발에 운동화를 구겨 신고 밖으로 나간다. 백 미터만 걸으면 가게가 있지만 될 수 있으면 느릿느릿 걷는다.

[프런트 에세이]윤성희 작가의 우리 모두는… 그렇게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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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고를 때도 신중하다. 매운 맛인지 순한 맛인지 짜장 라면인지 비빔 라면인지 결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너무 어렵다. 어떤 라면을 먹을지를 결정하고 나면 또 어떤 맥주를 마실 것인지를 신중하게 고른다. 아, 계산할 때 포인트 적립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다시 백 미터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놀이터에 잠깐 앉아서 아이들이 미끄럼틀을 타고 그네를 타는 것을 구경한다. 줄넘기를 하는 아이도 있다. 줄넘기를 마지막으로 해본 게 언제쯤인지 생각해보다가,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그 느낌을 좋아했는지 싫어했는지를 생각해보다가, 어느 집에서 압력밥솥의 추가 딸랑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어린 시절의 기억을 접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라면을 끓여 먹는다. 맥주도 한 잔 마신다. 그러고는 이제 완전히 해가 진 창밖을, 가로등 불빛이 서서히 켜지는 도로를, 오랫동안 바라본다. 낮잠을 자다 일요일 오후를 잃어버리던 어린 시절에서 한 치도 자라지 않은 나를, 창에 비친 내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본다.

많은 사람들은 어른이 된 뒤에(특히 부모가 된 뒤에)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금방 잊는 것 같다. 부모들은(이모와 고모들은, 삼촌들은,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모두 그들의 아이들에게 “행복하니?”라고 묻는다. “행복한 아이가 되어라!”라고 말한다.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가족 여행도 떠나고, 다 같이 둘러앉아 게임도 하고, 받아쓰기 시험에서 백점을 맞았을 때는 “너는 최고야”라고 칭찬도 한다.

물론, 우리는 태어난 이상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으니 그걸 위해 어른들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우리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하루 종일 행복할 수는 없다(하루 종일 행복을 느낄 수도 없다). 그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를 알려면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나 사랑해?”를 거듭 묻는 애인과 하루에 오십 번씩 통화를 해보면 알 것이다.

어린아이였을 때 우리를 사로잡은 첫 번째 질문은 ‘아마도 나는 어디서 왔을까?’일 것이다.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려 했다. 그 눈물의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면서. ‘내가 사라져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거야’라는 비장한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톰은 자기가 죽을병에 걸려 앓아누운 모습을 그려보았다. 이모가 고개를 숙이고 한마디라도 좋으니 용서의 말을 해달라고 간청하겠지. 하지만 나는 벽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아무 말 없이 숨을 거두리라. 아, 그럼 이모 심정이 어떨까? 그 다음에는 강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어 집으로 실려 오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머리카락은 온통 물에 젖었을 테지만 이 쓰라린 가슴에는 평화가 찾아오겠지. (중략) 이처럼 감정의 사치를 한껏 부리며 슬픔에 젖다 보니 경박한 생각이나 속된 즐거움이 끼어드는 걸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것들이 끼어들기에는 지금의 이 감정은 너무도 성스러웠다.’

「톰 소여의 모험」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이모에게 설탕 단지를 깼다는 오해를 받은 톰은 자신이 죽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상상한다. 그 상상 끝에 톰은 눈물을 흘린다. 혹시 어렸을 때 가출을 하려고 가방을 싸본 적이 있다면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아이들은 항해를 위해 칫솔과 장난감 곰을 준비한다. 세계 일주를 위해 짝이 맞지 않은 양말 한 켤레, 소라딱지 하나, 온도계 하나로 무장하고’(존 치버의 「존의 슬픔」 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을 상상한다. 어렸을 때 나는 톰이 자신이 죽은 후 슬퍼하는 이모를 상상하는 장면을 좋아했다. 그런데 조금 더 커서 다시 이 책을 읽으니 그 다음 문장에 더 눈길이 갔다. 그 슬픔이 너무 성스러워 즐거움이 끼어드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말. 우리 안을 똑바로 쳐다보면 이처럼 여러 가지 감정은 늘 복잡하게 섞여 있다. 그 경계선을 나눌 수는 없다. 아이들의 감정 경계선은 어쩌면 어른들보다 더 말랑말랑할 것이다. (울다가 금방 웃을 수 있는 아이들을 보라!) 그렇기 때문에 어린아이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쓸쓸한 감정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이다.

[프런트 에세이]윤성희 작가의 우리 모두는… 그렇게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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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나는 조카가 학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에 가족 모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카는 초등학교 3학년인데, 그 아이에게 칭찬할 때면 나도 다른 어른들처럼 “최고야!” 따위의 단순하고 과장된 말을 사용한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을 하게 된다.

학원에서 만든 로켓을 한손에 들고 조카는 아주 천천히 걸어왔다. 누군가 멀리서 자기가 걸어오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채. 조카는 보도블록의 가장자리만을 밟아가며 걸었다. 고개를 숙였지만 그렇다고 풀이 죽은 모습은 아니었다. 조금은 쓸쓸한 표정이었는데 그것은 조카가 그날 슬픈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은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 나는 담장 위에 앉아 있기를 좋아했다. 그 담장 위를 걷는 것을 좋아했다. 오른발 왼발 천천히 일직선이 되도록 걷는 일. 그럴 때면 누구나 그런 표정이 된다. 나는 조카가 그 기분을 마음껏 즐기도록 그냥 멀리서 바라보았다.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다.

한참 후, 마침내 조카가 나를 발견하고는 이를 드러내며 환히 웃으며 달려왔다. “언제부터 날 보고 있었어요?” 하고 묻고 싶지만 참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은 삼십 년 전 내가 자주 짓던 그런 표정과 흡사했다.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가면서 일부러 신발주머니를 바닥에 끌던 일, 담벼락 사이에 핀 이름 모를 풀들을 밟아보던 일, 그래놓고 길 가던 개미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조심하던 일. 마침내 고개를 들어보면 저 멀리서 엄마가 혹은 아빠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 어린 나는 신발주머니를 힘차게 흔들어 보인다. 등굣길 혹은 하굣길…. 그 짧은 사이에도 나를 지나쳐간 수많은 감정들. 작가가 된 지금 그 감정들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싶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소설의 한 장면을 대신 소개해본다.

김소진 소설가의 마지막 단편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서, 소설 속 주인공인 ‘나’는 눈 내리는 어느 날 아침 항아리를 깨고 만다. 오줌이 마려워서 화장실을 가던 중에 눈 속에 파묻혀 있던 ‘빠루’라는 연장을 밟는 바람에 욕쟁이 할멈의 짠지 단지를 깬 것이다. 금이 간 항아리를 바라보던 ‘나’는 그 항아리를 눈사람으로 만들어버릴 생각을 한다. 마침 눈은 찰기가 좋아 잘 뭉쳐졌다. 항아리를 눈사람으로 덮어버리면서 이웃집 남자에게 방학 숙제로 눈사람 만들기를 했다는 일기를 써야 한다는 거짓말까지 한다. 그리고 ‘나’는 가출을 한다(해가 떠오르면 눈사람은 곧 녹게 마련이니까).

‘그 하루 동안 나는 주로 더러운 곳만 골라서 돌아다녔다. 개똥 천지인 돌산길을 돌아 나와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시장거리, 연탄재가 어지럽게 뒹구는 인수교회 뒤쪽의 좁은 골목들을 혼자 떠돌다 딱총용 화약이 숭숭 박힌 종이를 두 장 사서 차돌로 터뜨린 다음 콧방울을 벌름벌름하며 한껏 화약내를 맡았다.’

항아리를 깬 아이는 가출을 한 후 일부러 더러운 곳만 골라서 돌아다녔다. 그것이 어린아이가 고통을 견디는 힘일 것이다. ‘나’는 매춘부들이 건네주는 오징어 튀김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다. 배가 고팠지만. ‘나중에 떨어질 매와 꾸지람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다른 것은 다 더럽혀져도 자존심만큼은 더럽힐 수 없었다’라고 ‘나’는 결심한다. 슬픔은 그것이 온전히 나만의 것일 때 더 순도가 높아진다. 항아리를 깬 나의 감정은 그 항아리를 발견한 어른들의 감정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침내 큰 용기를 내어 집으로 돌아갔을 때, ‘나’의 예상과는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 사이에서 나는 울음을 딱 그쳤다. 그러고는 어른처럼 땅을 쿵쾅거리면서 뛰쳐나와 이 골목 저 골목을 헤집으며 어딘가를 향해 가슴이 터져라 마구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컸다.’

이 고백의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나는 ‘어떻게 해서 어른이 되었는지’를 스스로에게 자문해보곤 했다. 일부러 더러운 길을 골라 걷는 것, 하찮은 물건들을 가방에 담으며 가출을 상상하는 것, 내가 죽으면 모두 슬퍼할 거라고 상상하는 것, 보도블록의 경계석을 따라 하염없이 길을 걷는 것. 이런 것들이 어린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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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어린 시절을 되돌려보면 이처럼 행복했던 기억보다는 쓸쓸했던 기억이 더 많을 것이다. 그것은 불행과는 다른 것이다. 이 감정을 어른이 된 후에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것이 타인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 “나, 너 이해해”라는 말처럼 공허한 말도 없다. 조금 더 정직하게 말하면 나조차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랑할 수는 있다. 최선을 다해 산다는 것은 최선을 다해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말이다. 최선을 다해 사랑한다는 말은 최선을 다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내가 누군가가 죽도록 미워진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저 사람도 외로운 아이였겠지! 저 사람도 쓸쓸한 아이였겠지!”

어린아이였던 우리들은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어떻게 했을까. 친구들과 만나서 수다를 떨었을까? 엄마 아빠에게 고백을 했을까? 아니다. 그때 우리들은 그 감정을 오랫동안 내 안에 감춰두었다. 그리고 때때로 아주 멋진 공상을 했다. ‘빨간 머리 앤’처럼 말이다. 앤이 무뚝뚝한 마릴라 아주머니에게 자기 이름을 말할 때의 장면을 떠올려보자.

앤은 마릴라에게 자신을 코델리아라고 불러달라고 말을 한다. 언제나 자신의 이름이 코델리아였으면 하고 상상했다고. “그런데 굳이 앤(Ann)이라고 부르시겠다면, 제발 끝에 이(e)가 있는 앤(Anne)으로 불러주세요” 하고 앤은 말한다. “만약 끝에 이(e)가 있는 앤으로 불러주신다면 코델리아라는 이름을 단념해보도록 애쓰겠어요.” 이렇게 앤이 자기소개를 할 때 나는 단박에 앤이라는 아이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앤은 쓸쓸할 때마다, 힘이 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는 끝에 이(e)가 있는 앤이야. 그러니 걱정하지 마.” 앤의 말처럼 우리는 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단단하게 만든다. 그런 시간을 견뎌서 어른이 되었다. 비록 남들이 보기에는 시시한 어른이라 할지라도.

가끔 인터넷을 하다가 잔인한 악플을 읽을 때면 나는 늘 이런 의문에 사로잡혔다. ‘우리는 왜 이렇게 타인에게 잔인할까’ 하는.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볼 능력이 내겐 없으니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진단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이런 소박한 의견을 하나만 제시해보고 싶다. ‘그때마다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을 한 번만 상상해보자’라고.

어린아이들은 때론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잔인한 면을 보인다. 그러나 그 잔인함은 대체로 순진함을 동반한다. 순진함 혹은 소심함. 그것이 두려움을 낳고 그 두려움이 잔인함을 낳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순진함이 빠진 어른들의 잔인함은 무엇일까? 그것을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 모두는 다 그냥 그렇게 컸다. 어른의 눈으로 봤을 때는 시시했던 일들 때문에 가슴 철렁하면서. 길 한가운데 서서 내 그림자를 보며 ‘나는 언제 어른이 될까’ 하고 상상하면서. 정말로 누군가 미워진다면 지금 얼른 밖으로 나가자. 그리고 담장 위를 아슬아슬 한번 걸어보거나, 정글짐 꼭대기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거나, 바닥에 버려진 사탕 주위로 몰려드는 개미 떼를 쪼그리고 앉아 구경해보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중얼거려보자. “우리는 모두 그렇게 컸겠지. 나도 그 사람도.” 만약 그래도 그 사람이 미워진다면 그때 미워하자.

편집후기
처음이었다. 살면서 그렇게 원초적인 공포와 허무를 느꼈던 적은. 따져보면 어떠한 특별한 계기도, 원인도 없었다. 그저 어느 날 아침 문득 ‘언젠가는 내가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 올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나’라는 존재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나’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이 사라져버리는, 그리고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나’의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는 ‘그때’를 떠올리는 순간, 격하게 뛰는 심장에 ‘독고진’처럼 심장을 부여잡고 숨을 골라야 했다. 뭐가 뭔지는 제대로 알 수 없었지만 ‘나’라는 사람이, 내 ‘인생’이라는 것이, 사람들과 나의 ‘관계’라는 것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처음으로 실감하게 된 것이었다.

스스로도 믿기 어렵지만, 사실 그때 내 나이는 열 살이었다. 아직도 그런 생각을 떠올리게 된 이유는 찾을 수 없지만, 그 순간의 ‘장면’만큼은 생생히 기억난다. 학교에 가기 위해 겨우 침대를 박차고 나와 머리를 감으려 막 샤워기 물을 틀었을 때였다. ‘쏴’ 하고 물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그 ‘무서운’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고, 갑자기 ‘멍’한 상태로 시간이 멈췄다. 그리고 빨리 씻어야 한다며 재촉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서 나는 문을 박차고 나가 엄마를 부여잡고 “엄마, 죽지 마. 나도 죽기 싫어”라며 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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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였다. 마냥 즐겁고 신나기만 했던 매일의 일상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과 생각들이 끼어들기 시작한 것은. ‘나름’ 건강하고 낙천적인 성격에다 어린 시절부터 집안의 유일한 ‘아이’로 관심 받으며 컸(다고 생각한다)기에 늘 행복하게(혹은 행복하고자 노력하며) 지냈었다. 하지만 그 행복의 아래에는 실은 쓸쓸함도, 외로움도, 두려움도, 패배감도 함께 있었다. 다만 직접 데여보기 전까지는 불의 뜨거움을 알 수 없듯, 이전에는 그 실체를 알아채지 못했을 뿐. 명확하게 경계를 나눌 수는 없겠지만 수많은 감정들은 우리의 삶 전체에 촘촘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윤성희 작가가 보내온 글을 읽으며 나는 어떻게 해서 어른이 되었나(사실 ‘어른이 되었나?’부터 잘 모르겠다)를 자문해본다. 복잡하게 줄타기를 하던 수많은 감정들을 어떻게 다독여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견뎌왔는지를 생각해본다. 그녀가 일부러 더러운 길을 걷고, 하찮은 물건을 가방에 담으며 가출을 상상하는 것과 같은 크기와 밀도로 내가 행했던 일들은 무엇인지 떠올려본다. 대부분 ‘피식’ 웃음이 날 만큼 유치하고 시시한 것들이다. 하지만 작가의 말대로 그러한 순간들을 거쳤기에 나는 이제 아주 조금 단단해졌다.

그러나 아무리 온 몸에 철갑을 두른 어른이 되었다고 해도 외로움, 쓸쓸함, 두려움, 패배감 따위는 지금도 쉽게 맞서 싸우기 힘든 감정들이다. 아니 오히려 세상과 부딪힐수록, 좌절과 포기가 반복될수록, 악몽 같은 꿈이 길어질수록, 그 부피가 커져 감당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어린 시절 느꼈던 미묘한 감정들을 잊지 말고 자주 꺼내보아야 한다. 이해하려 최선을 다하고, 사랑하려 애쓰면서 생의 에너지를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비록 ‘비온 뒤 쑥쑥 자라는 죽순 같은 성장기’는 지났지만, 그래도 우리는 비를 맞으며 조금씩 진짜 어른이 되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만이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

윤성희 작가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잔잔한 공감과 따뜻한 감동을 이끌어내는 윤성희 작가는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레고로 만든 집’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느릿하지만 감각적이고, 아담하지만 독특하고, 심플하지만 웃음이 깃들어 있다. 현대문학상·이수문학상·올해의예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지난해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서로의 삶의 ‘구경꾼’이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은 첫 장편소설 「구경꾼들」을 내놓으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펴낸 책으로는 「레고로 만든 집」, 「거기, 당신?」, 「감기」 등이 있다.

■글 / 윤성희 ■진행 / 이연우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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