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매킨토시를 개발 중이던 스티브의 말에, 존은 잠시 당황했다. 스티브 역시 자신이 뭔가 실수를 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잠시 동안의 불편한 침묵이 지나간 후 존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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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트 에세이]황경신 작가의 타자기
훗날 존 바에즈는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그 질문의 답이 무엇인지는 둘 다 빤히 알고 있었다. 한동안 둘 다 말이 없었고 기운이 쭉 빠졌다”라고 얘기했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 전기에 나오는 에피소드이다.
스티브 잡스가 구닥다리라고 일축한, 그래서 존 바에즈에게 시대의 변화와 세대의 차이를 확실하게 각인시켜준, 결국 두 사람 사이의 ‘미래는 없음’을 상기시킨 타자기도 한때는 한 시대를 뒤흔들 운명을 품고 태어난 세기의 발명품이었다.
최초의 타자기는 1873년, 무기 제조와 농기구, 재봉틀을 생산하던 미국 레밍턴사에 의해 만들어졌다(스티브 잡스가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차고를 본거지로 애플사를 차린 것은 1976년으로, 불과 100년 후이다). 레밍턴사는 새로 출시한 타자기를 마크 트웨인에게 보냈고, 그것을 이용해 작품을 써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레밍턴사가 타자기를 대량생산하기 이전, 즉 19세기에도 아마추어 발명가들이 여러 가지 모양의 타자기를 고안했다. 어떤 발명가는 자신의 타자기에 ‘글씨 쓰는 피아노’라는 이름까지 붙여주며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한 가지 문제는 손으로 쓰는 것보다 타자로 치는 속도가 오히려 느리다는 것이었다. 타자기에 대한 연구는 이후에도 꾸준히 계속되어, 레밍턴사는 인쇄업자이자 발명가인 숄즈의 연구를 바탕으로 마침내 성능이 괜찮은 타자기를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됐다. 숄즈는 ‘52번째 사람’이란 별칭으로 불렸는데, 52번째 연구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타자기가 제 기능을 갖추었음을 말해준다.
이젠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그래서 앤티크 스타일의 카페 같은 곳에서 소품으로나 이용하는 타자기를, 나도 한때 가지고 있었다. 그리 날렵하거나 세련됐다고는 할 수 없는 디자인의 묵직하고 시커먼 그 타자기는, 주로 밥상 역할을 겸하는 앉은뱅이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책상 옆에는 푸른색 철제로 짠 책장이 위태롭게 서 있었고, 그 옆에는 턴테이블이 딸린 조그마한 오디오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남은 공간에 일인용 담요를 펴면, 겨우 한 사람이 누울 정도의 자리가 만들어졌다.
내가 혼자 지내던 그 방은 번듯한 방들이 들어서고 난 다음, 어쩌다 생긴 자투리 공간에 어설프게 비집고 들어선 것이라서 네모반듯한 형태가 아니라 두 개의 긴 빗변을 가진 사다리꼴, 그러니까 모서리가 둥근 형태의 메트로놈 모양이었다. 창문이 없었기 때문에 방문을 닫으면 작은 상자 안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세상과 통하는 창을 가진 컴퓨터는 머나먼 세계의 우주선 같은 존재였고 스마트폰은커녕 집 전화도 없었으며 텔레비전은 누가 그저 준대도 들여놓을 공간이 없었다. 그곳에서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준 유일한 친구는 책이었고 유일한 도구는 타자기였다.
책의 경우에는 읽고 싶은 것을 한 권 골라 펼쳐드는 것만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다른 세계로 편입되는 것이 가능하다. 책이 안내하는 길로 따라가면 되고, 그 길에서 만난 것들에 대해 떠오르는 대로 상상하면 된다.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보여주는 대로 보고, 보이는 만큼 보는, 다소 소극적인 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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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트 에세이]황경신 작가의 타자기
손끝으로 가볍게 터치하는 것만으로 작동이 되는 컴퓨터의 키보드와는 달리 타자기의 자판은 손가락에 제법 힘을 싣고 두드려야 글자를 찍어낸다. 행을 옮길 때마다 오른쪽에 달린 손잡이를 꾹 눌러 힘껏 밀어줘야 하고, 한 장의 종이가 가득 차면 그것을 빼내고 다른 종이를 끼워야 한다. 오자가 나면 수정액으로 그 부분을 지운 다음 조심스럽게 제자리를 찾아 활자를 다시 쳐넣을 수 있지만(물론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하다), 문장을 고치고 싶다면 지금까지 작업한 것들을 파기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불편하고 까다로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차라리 종이에 펜으로 글씨를 쓰는 쪽이 편하다.
생각해보면 나는 굳이 타자기를 쓸 일이 없었다. 그때 나는 대학생이었으므로 깨끗한 종이에 깔끔한 서류를 만들 일도 없었고, 리포트를 타자기로 작성해오라는 교수님도 없었다. 가난한 자취생이었으니 새하얀 A4 용지와 타자기 리본을 구입하는 것도 가뿐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타자기 자체도 ‘어디 한번 사볼까’ 하고 터덜터덜 걸어가서 넙죽 사 안고 올 수 있을 정도의 만만한 가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타자기가 좋았다. 뭐가 좋았는지 설명해보라면 잘 못할 것 같지만, 좌우지간 그걸 가지면 뭔가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더러 글을 쓰라고, 원고를 마감하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 후로도 꽤 오래 없을 것 같았지만, 조금씩 모은 돈으로 중고 타자기 하나를 구입했을 때는 제법 감회가 어렸다(꽤 긴 세월이 흐른 후 내가 갖게 됐던 최초의 컴퓨터 혹은 불과 1년쯤 전에 손에 넣었던 스마트폰과 비교하자면, 열 배 정도 큰 감회였다).
나는 그 타자기로 시를 썼다.
이렇게 쓰고 보니 잠시 숙연한 심정이 된다. 동시에 이런 문장을 써도 괜찮은 것일까, 망설여진다. 그때 내가 쓴 것을 과연 시라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나는 나의 진심과 열정을 시에 바쳤노라고 단언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스물한 살, 그리고 스물두 살이었기 때문에. 나는 외로웠기 때문에. 나는 모든 것을 갈망하는 동시에 모든 것을 밀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사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세상에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나는 가난했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와 이별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나의 미래는 너무나도 불투명했기 때문에. 나는 가진 것이 없었고, 그래서 무엇이든 만들어내야 했기 때문에. 그것이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는,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유일한 이유였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시를 썼다.
삶의 모든 색채가 날아가버린 듯한 새하얀 종이 앞에서 캄캄한 어둠을 끌어안고, 주저하는 열 개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힘을 주어, 초성과 중성과 종성을 눌러 하나의 글자를, 단어를, 문장을 만들어냈다. 그럴 때면 종이 박스 같은 내 작은 방은 깊은 바닷속을 유영하는 잠수함이 되기도 하고, 무한한 우주를 탐사하는 우주선이 되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고요하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리고 나 혼자이긴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녹이 슨 철제 책장과 곰팡이가 잠식해 들어가는 벽지의 세계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세계 안에서 타닥타닥, 소리가 울렸다. 그건 세상과 내가 공명하는 소리,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소리였다. 그리하여 타자기는 단순한 타자기가 아니라 나의 시였고 나의 노래가 됐다.
얼마 전,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을 접한 직후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그가 세상에서 이룬 일들이 고맙고 그 덕을 우리가 누리고 있지만, 고요한 시간을 도무지 가질 수 없게 된 것이 가끔 슬퍼. 이제 조금 느리게 세상이 흘러갔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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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트 에세이]황경신 작가의 타자기
그리고 내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외부 세계가 채워놓은 가벼운 약속들, 허황된 소문들, 뿌리 없는 꿈들이다. 돌아보면 어디에도 진정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이토록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계 속에서 먼지처럼 떠돌아다니는 무의미한 존재를 직면하라고, 고요한 시간은 강요한다. 그것을 인정하고, 무(無)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 만큼 용감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니 아마 그런 것이었으리라. 내가 나의 작은 방에서 오로지 타자기만 가지고 어떤 세계 하나를 창조할 때, 타자기가 내게 제공한 것은 빅뱅 이전의 우주만큼이나 텅 빈 무(無)였다. 내가 그 세계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순종하고 그것을 견디어냈던 것은 내가 용감했기 때문이 아니라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스티브 잡스 식으로 말하자면, 그곳에는 단지 하드웨어만 존재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세계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것이 비록 어설프고 가치가 없다 해도 어찌 됐거나 내가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익숙해지자 고요한 시간은 더 이상 견디어내야 할 것이 아니라 즐거이 누릴 수 있는 것이 됐다.
내 인생 최초이자 최후의 타자기는, 기억나지 않는 어느 시기에 사라졌다. 글을 쓰는 일이 내 직업이 됐으나 나는 더 이상 시를 쓰지 않는다. 깊은 밤, 잠에서 문득 깨어난 시간, 우주에서 홀로 있는 것 같은 그 시간을 견디는 대신 스마트폰을 켜고 다른 사람의 세계를 탐색한다. 그것이 나를 채워줄 거라는 기대도 없이. 결국은 조금 더 쓸쓸해질 것을 잘 알면서. 그렇게 하여 나는 세계가 안겨주는 혹은 스스로 세계라고 우기는 어떤 허상이 안겨주는 그림자 안에서 다시 외로워진다.
한때 나는 그 외로움으로 시를 썼고, 텅 빈 나 자신을 품고 외로움의 밑바닥까지 내려갔고, 기꺼이 그것을 견디어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차오르기를 기다리면서, 내 방식으로 세계와 소통했다. 비록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해도 불편하고 까다로운 세계가 신중하고 친절하게 안내해준 길이었다.
이제 나는 고요한 시간을 얻기 위해, 아니 쟁취하기 위해 세계와 싸워야 한다. 한 그루의 꽃나무에 물을 주기 위해 실시간 뉴스와 검색어가 명멸하는 컴퓨터를 끄고, 한 권의 책과 대화하기 위해 자극적인 광고와 말초적인 드라마가 범람하는 텔레비전을 끄고, 하나의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생각을 하기 위해 속도가 최고의 가치라고 주장하는 세계를 끄는 일이 나의 투쟁이 됐다. 무(無)의 세계는 언제나 두렵지만 귀를 기울이면 그 텅 비고 고요한 세계에서 투박한 소리 하나가 들린다.
타닥타닥.
그것은 구닥다리인 내가, 구닥다리인 세계와 소통하는 소리이다. 서툴고 힘겹고 까다로운 방식으로. 그러나 누구도 앗아가지 못할 가치를 되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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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트 에세이]황경신 작가의 타자기
편집 후기 ‘방을 밀며 나는 우주로 간다(김경주, 우주로 날아가는 방 1)’라는 시인의 말처럼, 가끔 아니 자주 습관처럼 방 한가운데 오도카니 몸을 구기고 앉아 있곤 한다. 이때의 세상은 완벽하게 고요하고 완벽하게 적막해야 한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고양이의 갸르릉거림과 나뭇잎 사이를 스치는 바람의 숨소리 정도가 딱 알맞은 배경음악이다. 온통 적요한 세상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보는 것이다. ‘바닥에 누워 두 눈의 음을 듣는’ 외로움을 만끽해본다. 멀리 있는 것이 눈앞에 있는 것 같고 눈앞에 있던 것이 아득해지는, 꿈같은 시간을 맞이할 수 있다. “뭐 하고 있었어?” “그냥 있었어.” 가까이서 나의 생활을 궁금해하는 이는 자주 묻는다. 그냥 있는 게 대체 뭐냐고. 말 그대로 침묵 속에서, 어둠 속에서, 그냥 남아 있는 거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떠오르는 풍광을 따라 자박자박 걸어 다니는 거다. 그렇게 대답하고 나면 또 묻는다. 심심하지 않아? 외롭지 않아? 우울하지 않아? 그럴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도 사건도 기분도 채워줄 수 없는 고요한 시간 속의 충만함이 있다. 즐거움이 있다. 따뜻함이 있다. 저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버거운 일이다. 네 ‘곁의’ 사람들은 종종 ‘남’만도 못하고, 나의 ‘열심’은 자주 ‘악의’만도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앞으로, 앞으로, 자꾸만 밀어붙이는 세상은 버겁고 내 안은 자꾸만 허전해진다. 사람들은 그런 헛헛함을 채워줄 무언가를 찾아서 끊임없이 먹고 마시고 보고 만나고 쓰고 젖고 사고 뺏고 말하고 싸우는지 모른다. 어디선가 무서운 이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각자 마음속에 나만의 ‘산정’ 하나쯤은 마련해둬야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하루하루 떠밀려 나아가다 보면 어느 날엔가,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들을 비워내야 하는 임계점이 오고 만다. 그러나 기술과 문명이 아무리 발달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어가는 일을 도와줄 수는 없다. 오직 스스로 견디고 채워서 제 품으로 끌어안는 수밖에 없다. 12월, 한 해를 정리하며 찬찬히 나를 들여다본다. 지나온 시간들을 되새겨본다. 오늘 밤, 이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나는 몇 개의 말들을 가슴에 새기었다. |
황경신 작가는…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감성적인 글을 선보이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황경신 작가. 부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고 이후 「무크」, 「행복이 가득한 집」, 「이브」 등의 기자로 활동했다. 지금은 월간 「페이퍼」의 편집장으로 일하며 감각적인 문체와 독특한 스타일의 다양한 글들을 선보이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나는 하나의 레몬에서 시작되었다」, 「모두에게 해피엔딩」, 「그림 같은 세상」, 「초콜릿 우체국」, 「밀리언 달러 초콜릿」, 「세븐틴」, 「그림 같은 신화」, 「종이인형」, 「생각이 나서」, 「위로의 레시피」 등이 있다.
■글 / 황경신 ■진행 / 이연우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