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아무런 과거(科擧)를 보지 않으니, 글을 읽어 무엇 합니까?”
시목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독서를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그럼 싱크탱크(Think Tank) 일이라도 못하시나요?”
“싱크탱크 일은 본래 배우지 않았는 걸 어떻게 하겠소?”
“그럼 연설 자문이라도 못하시나요?”
“자문은 그 후보를 딱히 지지하지 않는 걸 어떻게 하겠소?”
은하가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글을 읽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싱크탱크 일도 못한다, 자문도 못한다면, 한국의 가련한 시민들을 위해 큰 도둑놈의 집권을 막는다는 차악의 명분도 불가한가요?”
결국 시목은 읽던 책을 덮어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글 읽기로 10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7년인 걸….”
탄식하고 우리의 귀국길에 동행하게 된 것이다.
시목의 논문 지도교수 모데르니시모(향년 92세)는 음성학과 유산균에 있어 세계적 권위자였는데 동양에서 온 애제자의 전향에 살짝 빈정이 상해 충동적으로 파문을 선고한다. 바로 다음날 마음을 고쳐먹고 시목의 건승과 복귀를 바라는 글을 블로그에 올리던 중 새로 온 가정부가 교수의 알레르기 여부를 깜빡하고 브런치 요거트에 복숭아를 넣는 바람에 사망한다. 결국 시목은 스승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의 문하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패륜 제자가 되어버린 것. 당시의 허탄한 심정을 시목은 종로 모 노래방에서 예전 가수 이태원의 노래에 의탁해 읊었다고 한다.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
날으는 솔개처럼 /
푸른 하늘 높이 구름 속에 살아와 /
수많은 질문과 대답 속에 지쳐버린
나의 부리여
혼탁한 대선 정국 속에서 막상 시목은 제대로 뜻을 펼칠 수가 없었다. 계파 바깥의 여론에 귀를 막고 녹슨 인맥이나 벼려 기존의 울타리를 지키자는 세력은 그간 홀대받았던 노동자 대중에 대한 반성과 비전을 고민하지 않았고, 언어를 바꾸고 구조를 바꾸자는 젊은 세력은 아직 미약했다. 상대 정당의 의혹 많은 후보가 결국 대통령에 당선한 후, 시목은 표표히 캠프를 떠났다. 이튿날 그 뜻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멘션 몇 개가 이제 막 계정 등록한 그의 SNS에 떴다가 얼른 삭제됐는데, 그 통절의 마음을 목격한 누군가의 완벽하지 않은 캡처를 조합하면 다음과 같은 문단이 나온다.
메아리가 없는 발성에 그저 자족해온 것은 아닌가. 기실 우리 편은 없다. 그 전에 우리도 없다. 아니 애초에 편 자체가 없다. 너와 나는 아직 동력 아닌 현상.
이후 ‘경상도 방언의 악센트와 영세 자영업자의 자기 모순적 투표 전술’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려던 시목은 예상치 않은 분야에서 특수를 누린다. 2009년부터 발동이 걸린 각종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의 기획 자문을 도맡은 것이다. 속세의 명리에 초연한 그가 케이블의 러브콜에 적극적으로 응한 것은 일견 모순돼 보일 수도 있지만, 평소 ‘언어가 현실을 규정한다, 음성이 언어를 규정한다, 음성은 소리 반 공기 반이 규정한다’라는 3단 콤보 신조를 갖고 있던 그였기에 어쩌면 이 모두가 거시적인 대국민 계몽 전략이라는 해석도 있다. 마침 보컬 트레이너로 전업해 그와 콤비를 이루었던 박은하가 부연하길 “오디션 참가자들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발성 코치가 시청자 일반에게 자연스레 회자되면, 그렇게 ‘소리 반 공기 반’의 요결을 습득한 국민의 달라진 언어 생활이 ‘자유 반 평등 반의 정치적 선택’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포부가 시목에겐 있었다”라고도 한다.
그런 시목의 삶에 박지원(20대)이 등장한 시점은 2010년이었다. 새로이 론칭하는 서바이벌 토론 프로에 시목을 영입하려던 한 방송국 관계자가 여당 성향의 변호사와 함께 여의도에서 그에게 대작을 청했고 이어 서로 개인과 구조의 책임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던 것이다. 분위기를 식히려던 방송국 중역은, 한국의 접대문화를 혐오하는 시목의 성향을 모른 채 술집에 여성 도우미를 청했다. 이에 안색이 변한 시목이 일어나 자리를 파투 내려는 순간, 당시 10대인 나이를 감춘 채 보도방 영업을 뛰고 있던 가출 소녀 지원이 걸쭉하게 온갖 욕을 싸지른 것이다. 그 모든 적나라한 어휘를 차마 그대로 옮길 순 없고, 다만 시목이 도우미 페이를 안 내려고 수작 부리는 것이라 오해한 지원의 막말 중에 가장 유한 부분이 “거지 똥구멍의 콩나물을 뽑아 먹을 졸라게 덕후 새끼”였다는 정도만 밝혀두자. 그녀가 뱉은 욕설의 내용보다 천박한 어휘력, 갈라진 발성, 엉망인 발음에 상처받은 시목은 방금까지 구조와 언어의 문제를 놓고 다투던 이들과 희대의 내기를 한다.
“내 저 말본새 숭악하기로 김꽃두레 저리 가라 하는 년을 6개월 내에 지상파 방송 아나운서 공채에 합격시키리라!”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진 못했으나, 도우미 수입에 준하는 페이를 받으며 주거광열비를 내지 않아도 되는 빌라에 머물 수 있다는 조건에 지원은 제안을 수락했고, 그 뒤 무지막지한 언어 교정 훈련이 이어진다. 이 트레이닝과 병행해 시목이 저술한 교습서는 후일 셰익스피어 「햄릿」 3막 2장(펭귄 클래식, 노승희 옮김)을 표절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처음엔 ‘간장공장 공장장은 강 공장 공장장이고 된장 공장 공장장은 공 공장 공공장이다’를 제대로 소리 내는 데에만 3주가 걸렸으니 그 고난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 기간 동안 엄혹한 스승 시목과 천방지축 지원의 서로에 대한 저주와 막말, 증오의 시선과 몸짓, 가령 ‘뻐큐 먹어 두 번 먹어’ 등의 동작을 누군가 동영상으로 담아 편집했다면 아마 파운드 푸티지 호러영화로 분류됐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다음 월요일 ‘밤섬 봄 벚꽃 놀이는 낮 봄 벚꽃 놀이보다 밤 봄 벚꽃 놀이가 더 좋다’를 단 1초 만에 읊는 데 지원이 성공한 이후 진도는 가속도가 붙는다. 워낙에 시목이 음성학, 음운론, 화용론의 국내외 최고 권위자이기도 했지만 지원 역시 의외로 영민한 처자였다.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버려 한숨을 나게 하더니 갑자기 다섯을 취하는 식의 굴곡으로 성큼성큼 발전하는 지원을 보며 그 까칠한 시목도 문득 미소를 짓다가 스스로 놀라곤 했다. 성과를 내기 시작한 지원을 위해 딱 한 번 함께 외출을 한 시목은 현빈 나온 영화를 원하는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평소 관심 있던 감독의 회고전을 보기 위해 동네 시네마떼끄로 향한다. 짐승처럼 툴툴대던 지원은 ‘안나’라는 이름의 여주인공이 객석을 응시하며 시작하는 영화의 첫 장면을 보더니 차츰 조용해졌다. 그리고 또르르 눈물. 이게 무슨 사변인가 놀라면서도 모른 척하는 시목의 표정. 돌아오는 길의 모퉁이에 있던 빨간 우체통을 보며 지원은 뜬금없는 농담도 건넨다. “우체부가 색맹이면 어쩐대.” “형태로 알겠지, 방금 우리가 본 흑백영화에서도….” “(말을 끊으며) 그냥 운율이에요, 나는 운율.”
한편, 지원의 빠른 성장에는 복식호흡과 사교 매너를 가르치기 위해 합류한 보컬 트레이너 박은하의 공도 컸다. 미션 시한을 1주 정도 남긴 시점에서 지원은, 즉흥적으로 주어진 다섯 개 단어만으로 한 시간짜리 뉴스 멘트를 완벽하게 토해낼 뿐 아니라 그 팩트의 배경과 논리 관계까지 완전 숙지·분석하는 수준이 되었다. 스승의 핀잔에 입을 삐죽거리는 지원의 버릇은 여전했지만 언제부턴가 시목을 바라보는 그녀의 뺨은 붉고 두 눈엔 정이 담겨 있었다. 그런 둘을 바라보는 은하의 마음은 눅눅하기가 장기하 원룸 장판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묘한 커플의 탄생을 축원하는 마음도 있었고 오히려 시목만 그런 두 여인의 마음을 모른 채 그저 지상파 공채 기출문제 분석에 혈안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1주일 후, 막 성년이 된 지원은 거짓말처럼 한 지상파 방송국에 이론 실기 모두 최고 성적으로 합격한다. 그 소식에 저도 모르게 부둥켜안으며 환호성을 지른 두 사람은 무슨 연속극 클리셰처럼 헛기침을 하며 얼른 몸을 떼고 그때 이미 시목도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 지원이 오롯이 자리 잡은 걸 눈치 챈다. 그러나 오히려 지원의 고민은 시작된다. ‘이제 게임이 끝났고 지금의 내 캐릭터는 스승의 피조물인데 정녕 그가 사랑하는 건 인간 박지원인가, 그가 탄생시킨 내 캐릭터인가, 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이며 과연 이렇게 관계를 시작한 남녀가 펄펄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다울 수 있는 것일까.’
각설하고 ‘면목동 박꽃두레’라는 무섭게 발랄한 소싯적 닉네임은 뒤로한 채 라디오 시보, 아침 프로, 저녁 프로, 예능 프로, 9시 뉴스 등을 거치며 무섭게 경력을 쌓은 지원은 강남 졸부의 아들 혹은 정확한 업종을 알 수 없는 재미교포 사업가 등으로부터 숱한 구애를 받지만 손사래 치며 일에 매진한다. 그녀의 연정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오디션 프로 기획, 그러니까 사실은 대국민 정치 계몽 전략에만 매달리는 시목에게 서운한 맘도 들었지만 서로의 바쁜 일과에 열중하다 가끔 만나 점검하는 ‘언어 교정 애프터서비스’의 시간은 아쉬운 대로 달콤 쌉싸래한 맛이 있었다.
다시 대선의 시즌이 돌아온 2012년, 그간 파종한 씨앗을 거두려는 듯 시목은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정치 언어의 논리적 정합성’을 강령으로 택한 새로운 정당의 발기에 참여하고 그 세를 규합하는 데 애를 쓴다. 전에는 한사코 고사하던 홍보 자문 역할을 자청하며 전혀 새롭고도 합리적인 프레임을 짜는 데 골몰하는 그의 모습은 그 옛날 파우스트가 간척공사를 하고 안철수가 백신을 만들어 뿌리는 미장센과도 닮아 있었다. 동시에 지원과의 정기적인 애프터서비스 미팅은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시목은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슬슬 전 같지 않은 지원과의 소통에 불안한 맘을 느끼는 한편으로 ‘이 대업을 완성한 후 그녀에게 의젓하게 프러포즈를 하자’라는 나름의 계산을 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대선 개표 결과가 발표되던 바로 그날, 더구나 그 개표 결과가 바로 박지원 그녀의 입을 통해 전 국민에게 토스되던 그날! 시목은 모든 세속의 운과 연, 명예와 잇속을 뒤로한 채 비장한 표정으로 지원의 아파트를 찾는다. 그리고 딩동. 남자의 목소리. 그도 몰랐던 그녀의 연인. 문을 열고 나오는 훈훈하고 다정한 젊고 늠름한 청년의 모습은 TV 어느 예능 프로에서 본 듯도 하다. 아득해지는 시목. 표정을 관리하자. “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지원씨한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덕분에 제가 지원씨를 만났으니 저한테도 은인이시기도 하고요.” “아, 제가 무슨 은인이라고.” “선거가 끝났네요. 개표도 끝났죠. 결국 그 양반이 대통령이 됐네요. 많은 것이 바뀔까요?” “글쎄요. 세상이 그렇게 쉽게 바뀌나요.” “사람은 쉽게 안 바뀌죠.” “그러게요.” “안녕히 계세요.” “들어오시지 않고.” “아, 그냥 이거 전해주려고.”
왼손의 반지는 감춘 채 오른손의 애먼 교재를 내미는 시목. “그럼 안녕히.” “예, 나중에 꼭 함께 식사라도.”
그 뒤 시목은 한동안 두문불출한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까지 소식을 모른다. 바르셀로나로 돌아갔다는 소식도 있고 전남 광양에서 지역 방언을 수집한다는 얘기도 있고 키르키스탄에 오디션 프로 포맷을 수출하러 갔다는 얘기도 있다. 어느샌가 멈춰 있는 그의 SNS 마지막 멘션은 다음과 같다.
이제는 그만 출력한 티켓을 들고 너랑 걸어가고 싶다. /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는 색맹이 있는 우편배달부에 대한 농담을 나누겠지. / 꼭 잡은 두 손을 누군가 한쪽의 주머니에 넣고. / 이제 나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다.
편집 후기 영재 : 너 언제부턴가 다른 사람 같아. 예전에는 은하1호였는데 언제부턴가 은하2호가 된 것 같아. 영재 : 나는 영재6호. 원래 그냥 소심한 영재5호쯤이었는데, 너 만나고 영화 만들고 그러는 동안 영재6호가 된 것 같아. 그런데 이제 너랑 헤어지면 영재7호가 되겠지. 너를 그리워하면서 시나리오나 쓰는. 나중에라도 은하3호가 나타나서 다시 영재7호를 사랑해주면 좋겠다. 은하 : 아냐. 내가 은하3호가 됐을 때쯤엔 너는 벌써 영재8호나 9호가 돼 있을 거야. 윤성호 감독의 장편영화 ‘은하해방전선’의 마지막 장면 즈음에는 주인공들이 채팅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영화를 보면서 대강 끼적여뒀던 거라 정확한 워딩은 틀릴 수 있겠으나, 대충 비슷할 거다. 관계와 소통, 그리고 변화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많지만 유독 이 영화가 가슴속에 남았던 것은 아마도 이 장면 때문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말을 건네고, 손을 잡고, 공유하고, 느끼고, 하나의 세계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그 ‘놀라운’ 과정 속에서 우리는 배우고, 깨닫고, 반성하고,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빨강과 파랑이 만나 서서히 번지는 보라처럼 그 새로운 확장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분명 우리는 누군가와 살과 감정을 부딪치는 것만으로 내 안에서의 분명한 변화를 꾀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지치기도 하고, 속상해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답답함에 상대를 원망하기도 하고, 스스로가 가여워 마냥 서럽기만 한 순간들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었음을 알게 되기도(간혹 모를 수도 혹은 끝까지 인정하고 싶지 않아질 수도 있다) 한다. 영화가 끝을 맺을 무렵, 서툴게 영화를 만들고 서툴게 연애를 하던 주인공 영재는 결국 다시 한번 ‘서툴게’ 은하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며 손을 내밀지만, 은하는 고개를 저으며 한발을 더 내딛는다. 영재가 은하와 만나고 헤어지면서, 또 영화를 찍고 완성해내면서, ‘영재5호’에서 6호, 7호로 옮아갔듯이 은하는 ‘은하2호’로,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는 또 다른 세계로 변화했다. 이때부터였다. 윤성호 감독의 팬이 되기로 결심한 것은. 만약 영화가 ‘진정으로 소통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 영재와 그로 인해 다시 발견되어진 은하의 해피엔딩’ 정도로 마무리됐다면 오히려 마음이 무척 쓸쓸해졌을 것 같았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관계, 대화, 영향, 타이밍 뭐 그런 것들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팝콘처럼 터지고 새로 생기기를 반복했던 즈음이었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실체와 사람들 각각의 세계, 그리고 서로가 만나 나누고 물드는 과정, 그 모든 것들을 명명하는 사랑이라는 것. 윤성호 감독의 영화들은 솔직하면서도 사랑스럽게, 아기자기하면서도 예리하게, 말을 건네왔다. 책이나 영화를 보다 보면 간혹 마치 내 마음을 여과 없이 들킨 듯한 그래서 괜히 뭔가 뺏긴 듯한, 고마우면서도 서러운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마침 그때도 그랬다. 주파수가 통하는 누군가를 알게 된 뿌듯함과 함께 같은 생각을 이토록 반짝이는 결과물로 보여줄 수 있는 재능에 대한 질투가 일었다. 당시 깨어 있는 시간 내내 듣던 ‘네가 알던 나는 이젠 나도 몰라’라는 가사의 노래를 당장 들려주고 싶단 생각과 함께 말이다. 이번 역시 윤성호 감독은 특유의 감각과 매력이 돋보이는 글을 보내주었다. 기획 이름이 ‘에세이’인데도 ‘픽션’을 보내서 마음에 걸린다는 말과 함께. 많이 미안해하고 조심스러워하는 말투 때문에 약간의 우려를 안고 글을 읽기 시작했지만, 역시나 무릎을 칠만 했다. 모니터로 읽으면서도 마치 눈앞에 장면들이 그려지는 듯했다. 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주인공으로는 누가 좋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봤다. 이번 기회에 독자들도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참, 한마디 덧붙이자면 만약 이 원고가 단초가 되어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예전에 SNS를 통해 감독님께 얘기한 적이 있는데) 뭔가 힘을 보태볼 용의가 있다. (내심 카메오를 바라보지만) 물론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시겠지만. |
윤성호 감독은…
2001년 ‘삼천포 가는 길’로 데뷔한 후 줄곧 세심한 관찰력과 독특한 스타일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중산층 가정의 대재앙’, ‘우익청년 윤성호’, ‘졸업영화’ 등에 이어 2007년 첫 장편영화 ‘은하해방전선’으로 크게 주목받으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유의 감각과 재치가 묻어난 영화 ‘은하해방전선’은 디렉터스컷 어워즈 올해의 독립영화감독상을 수상하고, 한국독립영화협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올해의 독립영화’로 뽑히는 등 관객과 평단의 고른 호평을 이끌어냈다. 이후 옴니버스 영화 ‘시선 1318’, ‘숏! 숏! 숏! 2009 황금시대’ 등을 통해 개성 넘치는 세계를 선보였고 지난해에는 인터넷에 공개했던 동명의 단편 연작 시트콤을 재구성한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로 성공적인 TV 진출이라는 성과를 올렸다. 현재 영화제 객원 프로그래머 활동, 각색 작업, 차기작 구상 등으로 끊임없는 도약을 꾀하고 있는 독립영화계의 대표 ‘스타 감독’이다.
■글 / 윤성호 ■진행 / 이연우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