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런트 에세이]소설가 김연수의 은밀한 약속은 어떻게 이뤄지는가?](http://img.khan.co.kr/lady/201302/20130221162724_1_20130221_y1.jpg)
[프런트 에세이]소설가 김연수의 은밀한 약속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공자님이 들으면 한심하다고 말씀하실 게 분명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취기가 좋아진 것도 불혹의 여파다. 공자님 말씀이 옳았다. 마흔 살을 넘기니까 뭔가에 홀리지 않고 제정신으로 사는 게 맞더란 말이다. 그런데 이게 문제다. 제정신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뭔가에 홀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이는 불혹이라 그게 잘 안 되니까 취기에라도 홀리는 수밖에. 그것도 시급하게 홀려야만 하기 때문에 친구와 약속하고 어쩌고 할 시간도 없고 그나마 연락되는 친구들도 다들 바쁘다. 그러니 혼자서라도 취할 수밖에.
그러고 보면 술을 마시기 시작한 작년 여름이란 아버지를 모시고 매일 방사선 치료를 받기 위해 통원하던 여름이었다. 봄에 의사가 아버지에게 “암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그 말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그런 아버지에게 제정신을 요구할 수는 없으니 나는 무조건 제정신이어야만 했다. 물론 처음에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곧 나는 제정신을 차린다는 건 ‘혹시나…’라는 기대를 가져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혹이라는 것도 그런 것일지도. ‘혹시나’가 없는 삶일지도.
그러니 술이 맛있을 수밖에. 잠시나마 제정신을 못 차릴 수 있으니까. 술에 취하면 갖은 종류의 망상이, 그러니까 ‘혹시나…’라고 시작되는 생각들이 떠오르니까. 하지만 짧은 취기와 마찬가지로 그런 망상은 오래가지 않는다. 술이 깨면 다시 수많은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제정신이 아니고서는 버틸 수 없는 나이다. 그러다 지난 12월에 크게 좌절하고야 말았다. 이 삶에서 이제 다시는 ‘혹시나…’ 같은 기대를 하지 말고 살아야만 하는 게 아닌가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이뤄질지도 모를 어떤 삶이 내 인생의 목적지가 아니라 어쩌면 내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 현실이 내 삶의 궁극적인 목적지일지도 모른다고.
나이가 든다는 건 현실적이 아니라 점점 비관적으로 변한다는 뜻인 것 같다. 그것 역시 어쩔 수 없다. 내 잘못도 아니고 세상의 잘못도 아니다. 다만 그건 우리가 너무 일찍 죽기 때문이다. 1백 년 정도 산다고 해도 우리에겐 부족하다. 2백50년 정도라면 모를까. 그렇다면 나는 낙관적으로 말할 수도 있으리라. 간절히 소망하면 온 우주가 나를 돕는다고, 살아가면서 우리가 꿈꾸는 대부분의 일들은 결국 이뤄지고야 만다고. 그게 바로 우주의 법칙이라고.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1백 년도 못 살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이렇게 말한다. “간절히 소망해도 온 우주는 나를 돕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꿈꾸는 대부분의 일들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니 혹하지 말자. “혹시나…”라고 말하지 말자. 다른 삶을 꿈꾸지 말고 이제 제정신으로 살아가자.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의문은 남는다. 그런 게 바로 우주의 법칙이라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삶은 무슨 의미인가? 나와 다르지 않다면 그들 역시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텐데 이 삶은 이토록 흔한 것일까? 그건 우리에게 아직 미혹될 것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시작은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글에서부터다. 1892년 7월 15일 유대계 독일인으로 태어난 벤야민은 1940년 9월 26일 나치의 핍박을 피해 프랑스를 탈출하던 중 스페인 국경 통과가 좌절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쓴 마지막 글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라는 논문이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우리 스스로에게 예전 사람들을 맴돌던 바람 한 줄기가 스치고 있지 않을까? 우리가 귀를 기울여 듣는 목소리들 속에는 이제는 침묵해버린 목소리들의 메아리가 울리고 있지 않을까? 우리가 구애하는 여인들에게는 그들이 더는 알지 못했던 자매들이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과거 세대의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는 은밀한 약속이 있는 셈이다.
내가 생각하는 그 ‘은밀한 약속’이란 이런 것이다. 1543년 포르투갈인들이 일본의 다네가시마에 도착했고, 그로부터 6년 뒤 예수회 신부 프란시스코 사베리오가 일본을 방문하면서 일본 천주교의 역사는 시작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시대를 끝내고 임진왜란을 일으킬 무렵이라 서양과학 지식을 알고 있던 선교사들은 일본인들에게 환영받았다. 그러나 정권 유지에 천주교는 방해가 될 뿐이라는 걸 곧 깨닫게 된 막부는 전쟁이 끝난 뒤인 1614년 천주교 금교령을 반포하고 이후 끔찍한 박해를 가했다.
이 박해라는 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천주교도들은 죽은 뒤에 천국에 간다고 믿었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상의 권력이란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을 때, 특히 힘없고 약하고 가난한 자들이 그 권력에 맞서 죽는 걸 겁내지 않을 때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다.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 공포는 권력자에게 고스란히 되돌아간다. 그러므로 권력자들은 사람들을 죽이는 것보다 두려워하게 만드는 데 더 골몰한다. 그건 죽음 앞에 두려워하지 않는 천주교도를 대하는 일본 막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고문자들은 천주교도를 죽이지 않고 오랫동안 공포에 떨다가 마침내 배교하도록 만드는 데 목표를 뒀다.
그들이 고안한 기발한 고문의 방법에 대해서는 여기에 쓸 생각이 없다. 다만 금교령이 내려지고 30년이 지난 1644년 마지막 신부 고니시 만쇼가 순교하면서 일본 천주교의 맥은 끊기고 말았다는 설명으로 그간의 잔인한 박해 과정을 요약하고 싶다. 그리고 1657년 일본인 전도사인 바스찬이 “교황의 배가 로마에서 올 것이다. 독신의 신부가 나타날 것이다. 그가 마리아상을 가지고 올 것이다”라는 예언을 남긴다. 30년에 걸쳐 잔인한 박해의 과정을 지켜본 일본의 천주교도들은 과연 이 말을 믿었을까?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만 이 예언을 믿은 사람들이 있었다. 신부가 모두 처형되고 교회가 사라진 뒤에도 이 예언을 믿고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은 이 사람들을 ‘가쿠레 기리시탄(れキリシタン)’이라고 부른다.
바스찬의 예언 같은 게 바로 아직 마흔 살이 안 된 젊은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말일 것이다. 제정신을 못 차리게 만드는 말, 그래서 주변에 믿는 사람도 없고 심지어 발각되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뭔가를 믿게 만드는 말, 세상의 상식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말,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그런 말. 그래서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다. 교황의 배는 로마에서 오지 않았다. 독신의 신부도 나타나지 않았다. 마리아상을 가지고 오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고독과 절망 속에서 죽어간다. 자기 인생은 완전히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럼에도 놀라운 일은 그들이 그 예언을 계속 믿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를 이어가며. 아버지가 죽자 그 아들이 뒤이어, 그 아들이 죽자 그 아들의 아들이 뒤이어. 마치 절망을 계승하는 것이 그들의 본업인 것처럼. 그런 식으로 2백50년 동안 7대에 걸쳐서. 지금보다 영양이나 위생 상태가 좋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들은 나보다 더 일찍 부모를 여의었을 것이다. 아마도 마흔 살 이전에는 대부분. 그렇게 마흔 살을 넘겼을 때 그들도 나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지 말자고, 이제는 제정신으로 살아가자고, 그게 바로 어른의 삶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인생이란 그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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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트 에세이]소설가 김연수의 은밀한 약속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어제 12시 반께 어린아이까지 섞인 12~15명가량의 사람들이 교회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찾아온 사람들과는 태도가 달랐습니다. 50세쯤 돼 보이는 부인 한 명이 제게 다가와 가슴에 손을 모으고 말했습니다. “마리아상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은 교황의 배가 마리아상을 든 신부를 태우고 로마에서 올 것이라는 조상들의 말만 믿으며 그 배가 나가사키에 올 때까지 숨어서 천주교를 믿던 가쿠레 기리시탄들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예언은 이뤄진 것일까, 이뤄지지 않은 것일까? 그 예언을 믿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생전 마리아상을 보지 못했으니 이뤄지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2백50년 뒤에도 그 약속을 믿었던 사람들은 마리아상을 봤으니 예언은 이뤄진 것일까?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시 조금 세월이 흐른 뒤에 하는 게 좋겠다. 왜냐하면 그로부터 1백여 년 뒤인 1981년 2월 25일 눈이 내린 나가사키 공항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도착할 테니까.
다시 벤야민의 글로 돌아가자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는 1940년 수용소에서 풀려난 벤야민이 히틀러와 스탈린이 맺은 밀약에 맞서기 위해서 쓴 논문이다. 파시즘의 어두운 그림자가 유럽 전역을 뒤덮던 바로 그 시간, 벤야민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그 논문을 끝맺었다.
어떤 현대 생물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호모 사피엔스의 보잘것없는 5만 년의 역사는 지구 상의 유기체의 역사와 비교해보면 하루 24시간의 끝자락 마지막 2초에 해당한다. 문명화된 인류의 역사는 이 척도에 비추어본다면 기껏해야 마지막 시간, 마지막 초의 5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메시아적 시간의 모델로서 전 인류의 역사를 엄청난 축소판으로 요약하고 있는 지금 시간은 우주 속에서 인류의 역사가 이루는 앞의 모습과 엄밀하게 일치한다.
고통과 절망은 우리가 충분히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뜻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 개개인은 충분히 오래 살지 못하지만 우리 인류는 충분히 오래 살 테니, 우리 모두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죽겠지만 우리가 간절히 소망했던 일들은 모두 이뤄지리라. 우리가 우주라는 무한한 공간과 역사라는 무한한 시간을 상상할 수 있다면, 과거의 빛과 미래의 빛이 뒤섞인 밤하늘처럼 과거의 사람들과 미래의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있는 광경을 상상할 수 있다면. 먼 훗날 어딘가 다른 곳이 아니라 지금 즉시 바로 여기에서. 마흔 살이 지난 뒤에도 우리가 미혹돼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편집 후기
시인 최승자는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삼십세’ 중에서)’라고 했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저절로 잡숫게 되는 나이인데 뭘 유별나게 의미 부여냐 하겠지만 그래도 어느 책 제목처럼 서른은 ‘설운 서른’ 아니던가. 얼마 전 찾은 순댓국집 아주머니는 생일을 막 지났다고 하자 “서른이라, 얼마나 예쁘고 좋을 때야”라며 부러움이 가득 담긴 서비스 파전을 내놓아 잠시나마 나이듦의 감동을 맛보기도 했으나, 막 20대를 통과해 생전 본 적 없는 낯설고 황량한 풍경만 가득한 서른에 불시착하고 보니 그런 말에도 괜히 입을 비쭉여보게 된다. 거대한 생기로 충만한 20대와는 다른 삭막한 질감, 메마른 열정의 흔적을 확인하며 느끼는 습기, 앞으로 겪게 될 밋밋하고 지루한 일상의 냄새. ‘서른’이란 단어가 환기하는 감각들은 어쩐지 몸을 달구고 울렁이게 만드는 것들뿐이다. 그렇다고 결코 우여곡절, 천방지축 등으로 점철된 20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겨우 달력 한 장 차이에 이토록 마음이 요동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 서른을 참으로 요란하게도 맞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의 인생이 멈춰서는 것을 70세 정도로 잡고 있기에 정중앙 앞뒤 5년은 분명 최고 속도를 낼 수 있는 시기로 정해뒀고, 따라서 서른이면 이제 최고점을 향한 가파른 상승곡선의 시동을 걸어야만 할 때다. 따라서 흔히들 그러하듯 스물아홉을 마무리하는 하반기에는 지금껏 살아온 길지 않은 세월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해보기 시작했다. 원래 갖고 있는 것은 (고작) 요만큼, 그나마 독립된 개체로서 10여 년 동안 쌓아둔 것도 (애걔) 요만큼, 낭비해버린 것은 (벌써) 이만큼, 잃어버리고만 것은 (맙소사) 이만큼.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도저히 이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1년 뒤에도, 5년 뒤에도, 아니 행여 인생이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길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도 이 대차대조표의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만약 그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을 때는 나 자신을 얼마나 원망하고 한심해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변화구를 던져보기로. 과연 내 자신에게 변화구 그립을 잡는 능력이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어찌됐든 불어오는 바람에는 정면으로 맞서봐야 했다.
그리고 일단 어제와는 반드시 달라져야만 할 몇 가지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결과가 엉망이면, 아니 아예 엉망조차 되지 않는다면, 하는 걱정으로 권태롭게 세월을 보낼 수는 없으니까. 우주가 계속해서 성장하고 별들이 계속해서 빛을 내듯 사람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부수고 만들고 넓히고 파고들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경험, 듣게 되는 이야기, 보게 되는 세상은 당장은 그대로 흘러가버릴지라도 각각 가능성의 씨앗이 돼 언제든 무엇과든 누구와든 만나 화학작용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반드시 내가 아니어도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누군가에 의해, 혹은 정말로 먼 미래의 사람에 의해서. 세상에는 쓸모없이 소멸돼버리는 그 어떠한 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거창하게 늘어놓았지만 결국 새해를 맞아, 그것도 30대라는 새로운 숫자로의 진입에 힘입어 어제와는 다른 나를 꿈꾸는 여러 가지 변화들을 만들어보겠단 말이다. 벌써 그중 하나는 실패했고(그 시간들 또한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움츠리고 있다고 믿는다), 또 하나는 현재진행형이라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나조차도 모르겠다(의지의 통제를 벗어났다는 뜻이다. 내 인생에서 결코 없을 일이라 생각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아니, 상황을 저질러버렸다). 그리고 지난 12월 28일 우연히 김연수 작가의 인터뷰를 읽다가 꿈꾸기 시작한 또 하나의 변화는 언제 어떻게 실행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언젠가 어떠한 알 수 없는 우연의 조합과 이끌림에 의해 김연수 작가에게 직접 이 말을 꼭 전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새로운 꿈을 갖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 변화는 또 다른 삶을 견디게 해주는 결정적 순간이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김연수 작가는…
오늘날 한국 문학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소설가 김연수는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장편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7권의 장편소설과 4권의 소설집, 그리고 3권의 산문집을 발표하며 ‘다산(多産)’ 작가로 활약하고 있다. 또 동서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굵직굵직한 문학상을 모조리 휩쓴 ‘다상(多賞)’ 작가로도 불린다. 풍부한 상상력이 녹아 있는 전개, 세련되면서도 유려한 문체, 적절한 유머와 페이소스, 역사와 사회를 담아내는 정서 등 문단과 독자 모두가 그를 믿고 사랑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펴낸 책으로는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등이 있으며, 「세계의 끝 여자친구」 등의 소설집과 「청춘의 문장들」의 산문집이 있다.
■진행 / 이연우 기자 ■글 / 김연수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