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번번이 머뭇거리다가 대답할 때를 놓치곤 했다. 어느 시인은 “언제부터 시를 쓰게 됐느냐”라는 질문에 “당신은 언제부터 김치를 먹었는지 기억하느냐”라고 대답했다던데, 나는 기억이 안 나서 선뜻 대답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대답하려고 하면 왠지 막막해져서 그랬다.
![[프런트 에세이]소설가 김미월의 어느 날 시화전에 갔다](http://img.khan.co.kr/lady/201307/20130708155353_1_front_ess1.jpg)
[프런트 에세이]소설가 김미월의 어느 날 시화전에 갔다
나아가 오빠의 방 책꽂이에 꽂혀 있던 내 수준에 맞지도 않는 소설책들로 독서의 범위를 넓힌 후에는, 책을 읽다가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 그것의 뜻을 정리해두는 데 재미를 붙였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해도 수첩에 적어놓았다. 아마 그 전까지는 이야기에만 머물러 있던 관심이 그때 처음으로 문장에까지 옮겨갔던 것이 아닐까.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라든가 ‘불행이 내 머리맡에 앉아 뜨개질을 한다’ 같은 문장들, 그리고 본제입납이니 시쳇말이니 참척이니 막새 등등의 단어들이 적혀 있던 그 스프링 달린 파란색 수첩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 내 꿈이 ‘작가’였다는 것도 물론 기억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때의 꿈은 문자 그대로 ‘꿈’이었다. 마법사가 되고 싶다거나 우주여행을 하고 싶다는 것처럼, 필히 이루고야 말겠다는 각오 없이 그저 그게 꿈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좋고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이었다. 내가 어찌 작가가 될 수 있겠는가. 작가는 아무나 하나? 그것은 단지 어린 날의 치기 어린 꿈일 뿐이라고 나는 자라면서 점점 더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20년 전의 어느 여름, 학교 담벼락에 붙어 있던 한 장의 전단이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작가의 꿈을 끝내 꿈으로만 간직하고 말았으리라. 그리하여 어쩌면 지금과 조금 다른 삶을 살게 됐을지도 모른다.
단발머리, 교복과 명찰, 수능 모의고사 성적표. 그런 것들이 존재를 규정하는 모든 것이던 시절,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으며 이루고 싶은 것도 없던 열일곱 살 여고생의 눈에 비친 세상은 늘 우중충했다. 한여름이었음에도 곧 다가올 기말고사의 환영이 저승사자처럼 교실 안을 맴돌고 있어 분위기가 냉랭하기까지 하던 그 어느 날, 나는 충동적으로 야간자율학습을 ‘땡땡이’쳤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동안 일기예보에도 없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나 개의치 않았다. 교문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아뿔싸, 이게 웬일인가. 선생님들 두엇이 교문 밖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황급히 교문 옆의 수위실 뒤로 숨었다. 빗줄기가 갑자기 굵어지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교문 쪽의 동정을 살피다가 나는 문득 수위실과 교문 사이 담장에 웬 전단이 나붙은 것을 발견했다. 싯누런 16절 갱지. 수성 사인펜으로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문장들. 잃어버린 지우개를 찾는다는 전단도 그처럼 볼품없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나 그 초라함이 오히려 더 마음을 사로잡았다. 자칫하면 교문 밖 선생님들에게 들킬 수 있는 행동임에도 나는 기어이 전단을 향해 팔을 뻗었다.
제가 X 시들로 X촐한 시X전을 열고X X니다.
관X 있X 분들의 성원X X탁드XX다.
몇몇 글자가 빗물에 번져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나는 사라진 문자들을 퍼즐 맞추듯 상상해서 빈 칸에 끼워 넣었다.
제가 쓴 시들로 조촐한 시화전을 열고자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뜻밖에도 그것은 시화전 안내문이었다. 어느 가난한 시인이 쓴 것일까, 아니면 시인 지망생이 쓴 것일까. 얼마나 빈하고 궁하면 달랑 한 장짜리 안내문을 인쇄할 돈도 없어서 이렇듯 손으로 직접 썼단 말인가.
조X 공원, 이X 주 토XX.
시간과 장소를 알리는 문구도 빗물에 번져 있었으나 나는 용케 읽어냈다.
조각 공원, 이번 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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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트 에세이]소설가 김미월의 어느 날 시화전에 갔다
이게 다 무엇인가. 막막하고 답답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비가 그쳤다. 수위실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언제 선생님들이 자리를 떴는지 교문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저만치 꿈속의 세상인 듯 환하게 불이 켜진 교실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대로 학교를 빠져나왔다. 교문 앞 단골 서점의 주인아저씨가 마침 점포 밖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내게 웬일로 집에 일찍 가느냐고 알은 체를 했다. 왜였을까. 나는 불현듯, 당장, 아무에게라도 이 전단의 비밀을 털어놓고 싶었다. 그래서 무턱대고 물었다.
“아저씨, 혹시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아세요?”
대꾸 없이 서점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 아저씨의 손에는 웬 책이 한 권 들려 있었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세상에, 무엇인가에 홀린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것들이 모두 책 제목이라는 말인가? 당장은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 서점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조세희의 책 한 권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나는 그 책을 읽었다. 아니, 그 책이 나를 읽었나? 내 육신과 지각과 영혼을 뼛속 깊숙이 정독하고 지나갔나? 마지막 장을 덮자 누군가에게 호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맞은 자리가 욱신거려 밤이 깊어도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잠보다 먼저 새벽이 찾아왔다. 토요일이었다. 나는 아침 일찍 조각 공원으로 갔다. 그를 만나고 싶었다. 여자일까, 남자일까. 성인일까, 청소년일까. 아무래도 좋았다. 그가 쓴 시들과 그가 그린 그림들을 보고 싶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어제 당신의 시화전 안내 전단을 보았어요. 뒷장에 적힌 책도 찾아 읽었지요.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시라고요?
주말이라 공원에서는 이런저런 행사가 많이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오후가 돼도 시화전은 열리지 않았다. 공원은 내내 사람들로 북적거렸지만 시인 비슷한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매점 아주머니에게 공원 행사 일정을 물어보았다. 그녀는 시화전이 열린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한여름 긴긴 해가 이울 때까지 그곳을 서성였다. 옆구리에는 간밤에 읽은 책을 끼고, 주머니에는 빗물에 젖었다 마른 전단을 넣고서.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주위는 이미 어두워졌다.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발길을 돌리려던 찰나, 나는 공원 입구에서 바람에 팔랑거리는 시뻘건 종잇조각을 한 장 발견했다. ‘오라, 평양으로!’ 그것은 삐라였다. 난생처음 주워보는 것이었다. ‘남조선 동지들을 렬렬히 환영합니다!’ 몹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그 문구를 들여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또 무슨 뜻일까. 어쩌다 내게로 온 것일까. 순간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그리고 더더욱 이유 없이, 무엇인가를 ‘쓰고 싶다’라는 욕망이 마음 밑바닥에서 천천히 솟아올랐다. 나는 결심했다. 작가가 되고 싶다, 돼야지, 될 거야. 이틀 사이 내게 일어난 이 기이하고 낯선 일들을, 그 속의 물음표와 느낌표들을, 글로 쓸 거야.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세상을 다 가지기라도 한 듯 따뜻하고도 충일한 기운이 온몸 가득 차올랐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리고 바로 그 기운이 결국 나를 다시 작가의 꿈을 꾸도록 이끌었다고 믿는다. 그런데 말이다. 그 비 오던 저녁, 학교 담벼락의 전단은 대체 누가 붙여놓은 것이었을까. 한때 작가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음을 이미 잊어버리고 살던,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없노라 생각하며 무기력하게 생활하던 어느 사춘기 소녀에게,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되돌아보라는 메시지를 누군가 전해주려 했던 것일까.
전단의 주인은 짐작이나 할까. 내가 그 다음 주 토요일 또 그 다음 주 토요일에도 시화전을 보러 갔었다는 것을. 그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조각 공원을 지날 때면 공연히 사방을 두리번거리곤 했다는 것을. 그리고 운 좋게 꿈을 이루어 작가가 된 지금도 글을 쓰다가 문득 마음이 허허로워지면 그 비에 젖은 전단을 떠올리며 혼자 웃는다는 것을. 그는 알까.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누군가 내게 언제부터 작가를 꿈꾸게 됐느냐고 묻는다면 이 열리지 않았던 시화전에 대한 긴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서 나는 또 어쩌면 머뭇거리기만 하다가 대답할 때를 놓치고 말지도 모른다.
편집 후기
김미월 작가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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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트 에세이]소설가 김미월의 어느 날 시화전에 갔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교교하게 내려앉은 산사의 따끈따끈한 방 안에 엎드려 당신의 글을 읽었습니다. 아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분명 몸은 충청남도 산기슭 어디메에 있었는데, 점점 눈앞에 하루에 한 번씩 지나다니곤 하는 시청 광장이 펼쳐졌습니다. 버스 안에서 올려다만 보던 P호텔 객실에서 광장을 내려다본다면 이런 모습일 거야, 생각하면서요. 그리고 마치 이야기 속 주인공들처럼 시간을 넘나들며 감정 사이를 오갔습니다. 신형철 평론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좋은 작품은 내게 와서 내가 결코 되찾을 수 없을 것을 앗아가거나 끝내 돌려줄 수 없을 것을 놓고 간다”라고요. 2012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에 실린 당신의 이야기는 분명 한 명의 독자에게서 ‘끝내 돌려줄 수 없을 것’을 놓고 갔습니다. 그 이야기가 김미월 작가의 소설 중 최고라거나 모든 면에서 완벽한 작품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분명 제 마음이 움찔했습니다. 아마도 제 안의 어떤 기억이나 감정과 맞물려 강렬한 무언가를 만들어냈기 때문이겠지요. 작가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과정으로, 어떤 의도로, 어떤 바람으로 이 이야기를 탄생시켰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이야기의 곳곳에 자리한 틈마다 자신만의 의미를 채워 넣는 것은 독자의, 바로 제 몫이니까요.
멋진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글쓴이의 현재 나이와 글을 썼을 때의 나이를 검색해봅니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어떻게 이런 인물을,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이런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놀랍고 신기하고 또 부럽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한참 많으면 ‘그래, 아직 나는 그만큼 덜 살았으니까’라며 안심하기도 하고, 비슷하거나 더 아래라면 ‘천재일테지’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확인하게 되는 건, 나의 재능 없음에 대한 불안감과 괜한 질투입니다. 그러다 곧 이토록 좋은 작가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는 데 대한 기쁨과 뿌듯함으로 전환되곤 하지만요.
세상을 떠다니는, 빼곡하게 들어찬 모든 이야기들이 궁금하고 신기하고 좋습니다. 너무 잔인한 이야기에 몸서리치기도 하고, 한없이 시시한 이야기에 실망하기도 하고, 도통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에 답답해하기도 하고, 지나치게 일방적인 이야기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세상 모든 사람의 모든 시간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진저리치며 욕을 하면서도 매일 아침 뉴스를 보고, 때론 마음을 다치면서도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무엇보다 자주 투덜거리면서도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소설책 몇십 권은 펴낼 수 있을 만큼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고 하니까요.
그리고 특히 좋아하는 일은 책으로 이야기를 만나는 것입니다. 단 한 명의 마음이라도 잡아 이끄는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리고 그 반짝거리는 재능과 어마어마한 끈기를 가진 특별한 이들이 충분히 많다고 생각하기에, 감히 나서지는 못하고 그저 시샘만 하고 있지만 지금처럼 문득문득 멋진 이야기들을 발견하고 감탄하고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즐겁습니다. ‘언젠가는 나도’라는 부끄러운 욕심은 마음 깊이 접어뒀고요. 그런 점에서 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만드는 Y, H, K, 또 K, 그리고 또 K 작가 같은 분들이 더 자주 더 많이 이야기를 풀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김미월 작가께도 부탁드리고 싶고요. 누군가 붙여놓은 담벼락 전단을, 당신이 지나치지 않고 떼어봤다는 사실이 제게는 무척 큰 행운이었네요. 비에 젖은 그 전단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열심히 써주시길 바랍니다.
김미월 작가는…
강릉 출생. 고려대 언어학과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단편소설 ‘정원에 길을 묻다’로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섬세한 시선으로 현실을 담아내면서도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는 글을 쓴다. 2011년 제29회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했다. 펴낸 책으로는 소설집 「서울 동굴 가이드」와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장편소설 「여덟 번째 방」이 있다.
■진행 / 이연우 기자 ■글 / 김미월 ■사진 / 이연우,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