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런트 에세이]시인 김소연의 정말 알고 싶어서 묻는 사랑에 대한 질문 하나](http://img.khan.co.kr/lady/201308/20130806113154_1_fr_es1.jpg)
[프런트 에세이]시인 김소연의 정말 알고 싶어서 묻는 사랑에 대한 질문 하나
그런데 사랑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일이라, 그게 다였다. 그 이상, 그 너머에서 어떤 새로운 경지에 내가 접근되는 것은 마치 신의 영역을 탐하는 것인 양 허락되질 않았다. 어떤 새로운 경지가 나타나야 할 즈음에 나는 번번이 권태와 싸워야 했다. 나의 권태와도 싸워야 했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권태의 지배를 받고 행하는 모든 무심하고 아둔한 결례와도 싸워야 했다. 그 싸움은 격렬한 것이 아니라, 안으로 파고들어 살 안쪽을 곪게 하는 일처럼 묵묵하게 두 사람을 곪게 했다. 고름이 뚝뚝 떨어지는 한 영혼과 한 영혼이 마주앉아 식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산책을 했다. 마주앉아 있었고 손을 잡고 걸었지만, 대화는 활기를 잃었다. 검은 먹지를 댄 낙서처럼, 대화는 언제나 그게 그거였다. 새로운 대화가 찾아드는 순간은 누구 한쪽에게, 혹은 두 사람에게, 위기가 찾아온 그때뿐이었다. 위기 따위에 흔들리는 관계가 더 이상 아니었기 때문에, 새로운 대화를 통하여 더욱 단단해진 믿음과 더욱 깊어지는 이해 같은 걸 맛보는 건, 예외로 따라온 행복이었다. 그러나 또 그게 다였다. 좀 더 다른 행복감을 알게 된 것은 축복이었지만, 축복은 거기까지였다.
할 수 있는 싸움을 모두 겪은 연인의 무릎에선 알 수 없는 비린내가 풍겨요, 알아서는 안 되는 짐승의 비린내가 풍겨요, 무섭다고 말하려다 무사하다고 하지요, 숟갈을 부딪치며 밥을 비빌 때 살아온 날들이 빨갛게 뒤섞이고 있어요, 서로의 미래가 서로의 뒷덜미에서 창끝처럼 날카롭게 반짝여요, 아슬아슬해, 라고 말하려다, 아름다워, 라고 말하지요, 한 사람에게 한 사람이 초라해질 때, 두 사람이 더디게 몸을 바꾸며 묵직한 오후를 지나가고 있어요, 할 수 있는 고백을 모두 나눈 연인의 두 눈엔, 알 수 없는 참혹이 한 글자씩 새겨져요, 알아서는 안 되는 참혹을, 매혹으로 되비추는 서로의 눈빛은 풍상, 아니면 풍경, 이제 당신은 나의 유일무이한 악몽이 되어간다고 말하려다, 설거지를 하러 가지요, 향유고래가 수돗물에서 흘러 들어와요, 심해에 손끝을 담그고 푸른 핏줄에 갇힌 붉은 피에 대해 생각하지요, 풀린다는 것과 물든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요, 저녁이 낭자해져요, 할 수 있는 사랑을 모두 끝낸 연인의 방에는 낯선 식물들이 천장까지 닿고 있어요, 알 수 없는 음산한 향기를 풍겨요, 알아서는 안 될 거대한 열매들에 고름 같은 과즙이 흘러내려요, 맙소사, 라고 말하려다, 사랑스러워, 라고 하지요.
-졸시, ‘접전지’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단 한 사람과의 사랑은 우정과 더 닮아져갔다. 사랑이 아니라 우정이 되어버린 사랑은, 보통명사가 되어버린 고유명사의 초라함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때부터는 어떤 위기가 와도 두 사람의 대화엔 상투성이 끼어들었다. 힘내, 사랑하는 거 알지? 난 언제나 네 편이야, 우리는 잘할 거야. 듣기만 해도 힘이 되었던 말들은 상투성에 갇혀 효력을 잃었다. 효력을 잃은 줄 알지만, 효력을 장전한 새로운 위로의 말을 고안할 만큼의 열정이 없어서 그리 된 것이리라. 그래도 믿음과 든든함이 뼈 안에 각인되어 있었기에, 괘념치 않을 수는 있었다. 그 단 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곁에 누군가가 가만히 있어주기만 해도 행복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전혀 짐작해본 적 없는 생경한 사건과 만났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의 그림자로 존재하는 사건.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생생하게 존재하는 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다만 거기 있을 뿐인 그림자가 되는 일. 내가 왼팔을 들면 왼팔을 들고 내가 오른발을 내디디면 오른발을 내디디는 검은 그림자. 친구가 없어 혼자 그림자와 그렇게 놀아보았던 유년 시절의 고독했던 시간 같은. 이런 상태를 누군가는 비로소 하나가 된 사랑의 완성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단지, 혼자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어쩌면 정말로 사랑의 완성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사랑의 완성은 이런 식이 아니라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어떤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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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트 에세이]시인 김소연의 정말 알고 싶어서 묻는 사랑에 대한 질문 하나
그림자가 나를 끌고 간다
순순히 그가 가자는 곳으로 나는 가보고 있다
세상 모든 것들의 표정은 지워지고
자세만이 남아 있다
이따금 나는 무지막지한 덩치가 되고
이따금 나는 여러 갈래로 흩어지기도 한다
그의 충고를 따르자면
너무 빛 쪽으로 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불빛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다산은 국화 그림자를 완상하는 취미가 있었다지만
내 그림자는 나를 완상하는 취미가 있는 것 같다
커다란 건물 아래에 서 있을 때
그는 작별도 않고 사라진다
내가 짓는 표정에 그는 무관심하다
내가 취하고 있는 자세에 그는 관심이 있다
그림자 없는 생애를 살아가기 위해
지독하게 환해져야 하는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지금은 길을 걷는 중이다 순순히
그가 가자는 곳으로 나는 가보고 싶다
- 졸시, ‘빛의 모퉁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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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트 에세이]시인 김소연의 정말 알고 싶어서 묻는 사랑에 대한 질문 하나
사랑에 대해 그 다음을 얘기하는 것은, 얘기한다는 그 자체가 사랑에 대한 결례일까. 아니면 죽음에 대하여 말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경험 너머의 어떤 세계일까. 아니면 인간의 사랑은 그냥 그저 거기까지뿐인 것일까. 아니면, 그 다음은 사랑에 대해 더 이상의 생각은 영원히 멈추어야 하고 생의 몫으로 맡겨두어야 하는 것일까. 멍청함을 무릅쓰고서 내가 이 질문을 꺼내어 적는 것은, 혹시라도 나와 비슷한 지점에서 길을 잃고 망연해진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떻게든 이 삶을 사랑하며 살아야 하기에, 사랑에 대한 가능성을 포기할 수는 없는 한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면, 만나서 열렬히 고백하고 고백의 오류를 챙겨주며 정갈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
삶 앞에서 인간이 비루해지거나, 인간 앞에서 삶이 비루해지는 걸 자주 목격한다. 사랑이 그 비루함을 어떻게든 구원한다. 사랑의 뒤꽁무니를 좇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 끝나면 다른 사랑을 이어가면서 사랑에 의해 사람이 혹은 사람에 의해 사랑이 마모되는 유의 사랑이 아니라, 단 하나의 사랑을 인간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채고 싶다. 어떻게 사랑을 시작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사랑을 완성하는지를. 사랑의 무수한 겹들을 차곡차곡 조심스레 펼치고 재배하여 잘 지켜갈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다. 이미 오류로 점철되어 나에겐 그 자격이 없어져버린 것이라면, 목격이라도 꼭 해보고 싶다.
사랑의 기쁨을 만끽하기엔 인간의 삶은 너무 길고,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기엔 인간의 삶은 너무 짧다. 그래서 한 시인은 “사랑은 항상 생 뒤에 온다”라고 말한 것일까. 하지만 나는 생 뒤에 오는 사랑은 좀 더 나중에 이해해보고 싶다. 지금은 현재진행형의 삶 속에서 우리가 체득할 수 있는 사랑에 대해 이해해보고 싶다. 인간의 한심함이 문제일 뿐, 사랑은 어딘가에서 무고하다는 안부를 듣고 싶다.
이 부분에서 인용할 시 한 편이 필요했다. 물론 내가 쓴 시 중에 있을 리는 없고, 다른 위대한 시인의 시를 빌려오고 싶어서 많은 시집들을 죄다 꺼내놓고 찾고 또 찾았다. 찾을 수 없었다. 꽤 많은 시집을 읽으며 살아왔지만, 이 맥락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시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인용하지 못한 채로 이 글을 끝내야겠다. 누군가, 꼭 시가 아니어도, 결론처럼 이 부분을 대신해줄 몇 줄을 알고 있다면 내게 꼭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모르는 나라의 언어로 쓰인 문장일지라도, 온 마음을 다하여 그걸 해독해볼 용의가 있다. 그만큼 간절하다는 뜻이다.
편집 후기
“뭐, 사아랑?”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그것도 마치 요즘 같은 무더위에 옆집에 얼음이 얼었다더라와 같은 소식을 들은 듯한 기분에 휩싸여서는, 한껏 단어를 길게 잡아 빼서 말이다. 저자 소개글-이를테면 ‘눈이 소를 닮아 고장 난 조리개처럼 느리게, 열고 닫힌다’ 등등-만으로도 앞으로 최소한 10년간은 이 사람이 펴내는 모든 책을 사봐야겠다는 기대를 갖게 했던 ‘나의 작가’가 나의 원고 청탁에 대해 쓰겠다고 예고한 주제가 바로 ‘사랑’이라니!(작가께는 실례지만) 내 멋대로 나름 무척이나 형이상학적인 주제이거나 아니면 아예 반짝반짝하거나 혹은 끝도 없이 깊고 어두운 어떤 것은 아닐는지 혼자서 넘겨짚고 있는 중이었다. 과연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어찌됐든 그 바통을 이어받아야 하는 입장으로서는 일단 마음 한구석이 고대 화석처럼 딱딱하게 굳어가며 머릿속이 아득해져가는 것이 사실이었다.
사실 ‘사랑’이란 단어 자체가 이상하게 편치 않음을 우선 밝혀둔다. 딱히 말 못할 사연이 있거나 듣는 것만으로 손수건부터 꺼내 눈물 찍을 만큼의 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그저 이 나이 때 보통 사람들 있을 만큼 있는 정도), 생리적으로 뭔가 모를 쑥스러움이 있는 듯하다. 어쨌든 김소연 시인이 일정한 단계를 거치며 사랑의 속성을 알아갔던 것처럼, 나는 간혹 사랑에 관한 특별한 경험을 한다. 한곳에 지나치게 집중했을 때처럼 눈이 시리면서 눈물이 맺히는, 심지어 눈을 감아도 망막에서 느껴지는 어떤 수런거림이 있다. 때로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 사람처럼 멋지고 착하고 뛰어난 사람은 없다는. 세상에 훌륭한 사람이 왜 없겠는가. 다만, 사랑할 만한 사람은 있지만, 그것을 알아채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늘 있지 않을 뿐이다.
연애를 할 때 상대편과 이제 ‘잘되고 있다’라는 아주 조금의 확신이 들 때 즈음, 아주 멀쩡한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랑하는 과정은 ‘기울기 곡선’을 급격히 만드는 일이야”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100% ‘얘, 뭐 잘 못 먹었나?’ 하는 표정으로 아무 반응도 못하고 안절부절, 몇 초를 보낸다. 그냥 다른 이야기로 넘겨버리긴 하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서로에게 놓인 거리를 좁히고 몸을 밀착시키는 일이다. 몸을 기울여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이 바로 우리가 만나는 통로가 되어준다. 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엉키고 얽혀서 서로의 중심이 상대에게 조금씩 옮겨가게 되기를,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기를, 나는 기다리고 있다.
불멸의 주제, 사랑. 사람들은 여전히, 아직도, 계속해서, 사랑에 대해 정의 내리기를 좋아한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기까지 보고 듣는 수많은 이야기와 음악 그리고 이미지와 영상들은 사랑하는 사람, 사랑을 원하는 사람, 사랑에 아픈 사람을 그리고 있다. 자랑과 과시가 난무하고, 피로와 권태로 찌든 박제도 존재한다. 사랑은 때로는 한없이 가벼워지고 또 한편으로는 끝도 없이 바스락거린다. 순식간에 온몸을 흠뻑 적시는 폭우처럼 강렬한 모습으로도 나타났다가 체온과 같은 은근한 온기로 서서히 마음을 데워주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이 세상 모든 정의는 시도되는 순간, 실패다. 사랑은 규정될 수 없는 거니까. 우리는 저마다 찻집에서, 술집에서, “사랑은 뭐다”라며 줄기차게 떠들지만 결국은 그저 어리석고 무의미한 반복일 뿐이다. 사랑을 말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준은 아마도 그 관계 안에서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라는 것이다.
김소연 시인은…
시인이자 수필가. 1993년 계간 「현대시사상」 겨울호에 ‘우리는 찬양한다’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마음의 내면을, 그중에서도 특히 아픔과 고독 그리고 우울과 슬픔이 가진 미세한 결들을 들여다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작가다. 2010년 제10회 ‘노작문학상’, 2011년 제57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펴낸 책으로는 1996년 첫 시집 「극에 달하다」를 비롯해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눈물이라는 뼈」와 산문집 「마음사전」, 「시옷의 세계」 등이 있다.
■진행 / 이연우 기자 ■글 / 김소연 ■사진 / 장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