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 끝에 걸린 가을
김종학 작가는 “추상이 없으면 좋은 구상이 없고 좋은 추상 역시 구상 속에서 나오는 법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가을 풍경을 보이는 그대로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소재를 선택하고 그것을 캔버스에 재구성했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은 자연의 꽃을 그렸음에도 형태와 색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추상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작품은 꽃과 들풀이 뒤엉킨 가을의 풍경을 작가의 시선으로 그려냈다.

시선 끝에 걸린 가을
김덕용 작가는 나무를 캔버스 삼아 작품을 만든다. 작가는 “자연의 따뜻한 숨결을 그대로 담은 생명을 지닌 매체가 나무다”라고 말한다. 나무를 손으로 다듬고 파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오브제를 붙이는 과정을 통해 나무의 결과 결 사이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나무 위에 그려낸 노란 모과는 고풍스럽고 아련하게 느껴진다. 가을 햇살을 그대로 머금은 듯한 모과의 달콤한 향이 느껴지지 않는가? 캔버스가 된 나무는 그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어 가을과 더욱 잘 어울린다. 작가는 “머리나 손재주로부터 나오는 그림이 아닌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그림이야말로 진정한 작품이다”라고 설명한다. 결마다 스며든 아름다운 그림은 옛 사진을 마주 대한 듯 마음을 울리는 감동을 전한다.

시선 끝에 걸린 가을
오치균 작가에게 가을은 푸른 하늘 밑에 탐스럽게 익은 감을 떠올리게 하는 계절이다. 소설가 김훈은 “오치균 작가의 감은 땅속의 물과 함께 하늘에 가득 찬 시간의 자양을 빨아들여서 쟁여놓은 열매다”라고 표현했다. 계절의 흐름과 시간의 경과를 모두 감내하고 결실을 맺은 감은 가을의 풍경을 대표한다. 모든 곡식과 과일이 익어 가장 싱싱하게 맛볼 수 있는 계절인 가을을 빨갛게 여물어 있는 감으로 표현했다.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듯 힘차게 뻗어나간 나뭇가지에 매달린 감과 청아한 쪽빛의 가을 하늘이 강렬하게 대비되는 작품이다. 붓 대신 손가락으로 캔버스를 채우는 ‘지두화’ 형식으로 완성된 작품은 작가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손끝을 통해 작품에 그대로 투영된 듯하다.

시선 끝에 걸린 가을
‘물방울 화가’로 유명한 김창열 작가의 오래된 작품. 작가는 가을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으로 이 작품을 꼽았다. 금방이라도 굴러 내릴 듯한 긴장감으로 캔버스에 맺혀 있는 물방울과 이미 그 긴장감이 사라지고 스며든 젖은 자국이 대비되는 작품으로 무와 유의 조화를 엿볼 수 있다. 작가는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無)로 되돌려 보내기 위함이다. 분노와 불안, 공포를 모두 비워냈을 때 우리는 평화와 평안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수많은 물방울과 그것들이 스며든 자국이 흩어져 있는 그림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는 새로운 사색을 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가을만이 가지고 있는 계절의 속성과 잘 어울린다.

시선 끝에 걸린 가을
갤러리 현대는 1970년 4월 ‘현대화랑’으로 문을 연 이래 43년째 현대미술의 현장에서 여러 작가들과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개관 이래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김환기 등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원로와 중진 작가를 중심으로 심도 있는 전시회를 열어왔다. 또 장 미셸 바스키아,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토머스 슈트루트 등 국제적인 작가의 전시를 통해 세계 미술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의 흐름을 조명해오고 있다. 9월에는 ‘물방울 화가’로 알려진 김창열 화백의 화업 50주년을 아우르는 대규모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진행 / 이채영(객원기자) ■도움말&그림 제공 / 갤러리 현대(02-2287-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