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사람의 ‘새끼’를 기르는 일

손녀에게 쓰는 편지

② 사람의 ‘새끼’를 기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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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아역 배우 갈소원의 외할머니 조은일 작가가 손녀에게 쓰는 편지

이달 조은일 작가는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위대한 일, ‘사람’을 길러내는 이야기에 대해 들려주었다. 스타 아역 배우 갈소원양을 바르게 키워내는 데 숨은 조력자 역할을 한 외할머니, 조은일 작가의 이번 편지 속에서는 ‘사람’을 기르는 일에 대한 지극정성이 느껴진다.

[손녀에게 쓰는 편지]② 사람의 ‘새끼’를 기르는 일

[손녀에게 쓰는 편지]② 사람의 ‘새끼’를 기르는 일

이 할미는 늘 궁금하단다. 인간을 두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건만, 사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간은 만물 가운데 가장 미물 같거든. 사자도 새끼를 낳으면 절벽에서 떨어뜨려 강하게 만든다고 하고, 그 외에 많은 동물들이 그렇게 주체적으로 새끼를 낳아 키우지. 하다못해 강아지, 송아지, 병아리에 이르기까지…, 어미가 낳은 직후나 알에서 깨어난 이후 곧 독립적으로 떨어져 나가지 않니? 비틀거릴지라도 금세 일어나 걷거나 창공을 향해 날갯짓하면서 날아오르지 않느냔 말이다. 그런데 사람의 새끼는 가장 길게 그리고 오래, 아니 평생토록 돌봐야 하지. 이 생명이 다할 때까지.

아이를 품고 있다가 막상 분만 날짜가 돼 병원으로 실려 가게 되면, ‘내가 과연 이 아이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심각한 기로에 서지 않을 수 없단다. 그 엄청난 산고를 어찌 견딜 것인가. 아무리 자연의 이치라 해도 만에 하나 잘못될지도 모르는 0.1% 정도의 낮은 확률도 우리를 괴롭히지.

그것뿐이냐. 바야흐로 지구의 환경오염과 온난화, 유전자 변이 등으로 인해 기형아 출산 위험이 심각한 상태에 있다. 또 아토피 같은 질병에 이르기까지, 이것 또한 얼마 되지 않는 확률이라 하더라도 내 자식만 피해 가라는 보장이 있겠냔 말이다. 말도 마라. 그 방정맞은 긴장과 스릴, 불안과 고통 속에서 세상의 엄마들은 그렇게 아이를 만나게 되는 거란다.

제 자식을 혼자 낳지도 못하고, 또 혼자서 자랄 수도 없는 인간. 그렇다 보니 이제는 ‘산후조리원’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필수 코스가 된 것 같더구나. 사실 요즘 문화 중 참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 산후조리원이야. 대한민국 전역에 산후조리원이 들어서면서 출산 과정의 절대적인 코스가 된 것 같던데, 아이뿐 아니라 산모의 몸 상태나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인 상태까지도 잘 보살펴야 하기 때문이겠지.

무사히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도 큰일이다. 젖이 많네, 적네. 아이가 젖을 잘 빠네, 못 빠네. 줄기차게 울어대는 까닭은 뭘까?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녹초가 되는 엄마들. 밤새도록 잠투정은 왜 하는 걸까? 흔들고 달래고 먹이고. 걸핏하면 토하고, 작은 소리만 나도 깨고, 모기 한 방만 물려도 초비상이고…. 그까짓 모기 한 마리가 한밤중에 인간 가족을 공포로 몰아넣은 적도 많단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위대하다가도 한없이 우스운 동물이라니까.

▲ 4년 전 떠난 제주도 여행에서.

▲ 4년 전 떠난 제주도 여행에서.

또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알려진 육아법이니 교육법, 성공법 등 관련된 연구도 많고 책도 참 많다. 분유를 먹이는 데만 해도 수십 가지에, 챙겨 먹여야 할 각종 영양소, 아프지 말라고 맞혀야 할 예방주사와 아프다고 맞혀야 할 주사까지. 내가 아이들을 키우던 옛날만 하더라도 고작 한두 가지였는데 요즘에는 한 달이 멀다 하고 정신없이 맞더구나. 머리 좋아지는 약, 뼈를 튼튼하게 하는 약, 철분이나 마그네슘에 이르기까지…. 먹일 것도 많고 부족하면 안 되는 것도 많더라.

발육이 빠른 편이네, 늦은 편이네. 키가 작네, 크네. 머리가 좋네, 나쁘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경쟁하면서 동원되는 부모 역할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단다. 예쁜 아이가 ‘엥~’ 하고 소리 내며 태어난 순간부터 부모는 이제 자신의 삶은 없고 오직 자식을 위해 뒷바라지를 해야만 하는 거지.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이 심한 것 같아. 자식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아니 성인이 다 된 후에도 챙겨줘야 한다는 생각 말이지. 이제는 제발 과감하게 서로 독립했으면 좋겠어.

이렇게 아이 하나를 낳아 기르기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급기야 저출산 시대를 맞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단다. 보살핌의 끝이 보이지 않는 자식 기르기에 지쳐 모두 두 손을 들어버리게 된 거지.

소원아! 네 엄마가 너를 낳고 산모 병실에 있을 때 할미가 달려가서 보니, 네 아빠가 서점에서 책을 몇 권 사와서 엄마에게 선물을 했더구나. 모두가 육아에 관한 책들이었는데, 어찌나 잘 골랐던지 이 할미가 먼저 읽고 네 엄마에게 얼른 읽으라고 추천했던 기억이 난단다. 난 요즘도 그때 네 아빠가 선택한 책들을 곧잘 얻어 읽는다.

네가 막 태어난 그때, 어느 잡지사의 여기자가 내게 인터뷰를 하러 왔었는데 ‘친정어머니의 육아’에 관한 주제로 진행을 했었어. ‘이른바 유명인사인 당신도 직접 손주를 길러줄 의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인터뷰였지. 공식적인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 그 기자가 내게 이런저런 사적인 이야기들을 털어놓게 됐는데, 자기 어머니도 처음에는 한동네에 함께 살면서 아이를 보살펴주셨는데 어느 날 홀연히 이사를 가버리셨다는 거야. 그러면서 더 이상의 미묘한 사정 이야기는 생략하더구나. 아무튼 ‘엄마가 어느 날 홀연히 이사를 가버리셨다’라는 사연이 퍽이나 쓸쓸하게 들려서인지 꽤 오랫동안 잊히지 않더구나. 그 뒤로 네 엄마의 지속적인 산후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 기자의 어머니가 저절로 떠오르곤 했었어. 난 가끔 그 기자의 연락처가 궁금했어.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거든.

“당신, 나 기억하지요? 그때 우리가 했던 말들 생각나지요? 손주를 봐주시던 엄마가 어느 날 이사를 가버리셨다고 했지요? 그 마음, 난 알아요. 이해해요. 엄마는 더 이상 딸의 힘겨움을 볼 수 없었던 거예요. 무척이나 사랑하니까, 이제 그쯤에서 각자 살지 않았으면 서로가 힘겹게 됐을 거예요. 계속 관여하기엔 어머님이 무척 버거우셨던 거예요. 엄마의 심정을 무조건 감싸 안고 사랑하셔야 해요.”

꼭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어. 어떤 날은 이 할미 혼자 그렇게 지껄일 정도였지. “그때 이사 가신 기자분 어머니, 잘하셨어요! 사랑해요!”라고(웃음). 동병상련이랄까, 사람은 각자 체험의 범주만큼 남을 이해할 수도 있단다.

때로는 한 입 깨물어버리고 싶을 만큼 귀여운 아기, 내 손녀, 소원아! 아이란 아무리 순둥이어도 온종일 보살펴야 하는 존재란다. 그래서 문득문득 나도 도망가고 싶었단다. 때로는 그렇게 지치기도 하는 산후 수발과 손녀 수발이었어. 흑흑.

그즈음, 우리 집에 유행어가 있었다니까. 네 엄마의 사소한 푸념(예를 들면 ‘어젯밤에 애가 보채서’)에 옆에서 듣던 네 이모가 이렇게 말했지. “조심해, 언니. 엄마 이사 가실라.” 그 기자의 ‘어머니 이사’ 사건을 패러디해서 말이지. 옛말에 오죽하면 ‘내 동냥 밥그릇 돌려달라’라는 말이 있을까. 아이를 보느니 길거리에서 동냥하는 게 더 낫다는 말이란다. 그만큼 아이 보는 일이 힘들다는 거야. 결국 아이는 누구나 이렇게 힘들게 그리고 지극정성으로 길러지는 거란다. 인간은 사랑으로 채워지는 동물이거든. 사랑이 부족하면 인생이 달라지는 매우 심오한 동물이지. 오직 사랑으로 보살피고 키워내야 하는 ‘새끼’. ‘스타’가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냐? 반짝반짝, 우리 소원이도 이렇게 해서 빛나는 별이 된 거란다.

[손녀에게 쓰는 편지]② 사람의 ‘새끼’를 기르는 일

[손녀에게 쓰는 편지]② 사람의 ‘새끼’를 기르는 일

유쾌한 할머니 조은일 작가는…
세 아이를 키우며 겪었던 다채로운 이야기를 엮은 에세이 「빵점엄마 백점일기」를 쓴 베스트셀러 작가. 때로는 편안한 친구 같고 때로는 든든한 동반자 같은 두 딸과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면서도 늘 밝고 유머러스한 아들의 엄마로 살아오면서 지혜와 성숙을 배웠고, 국내 최초로 홍대 앞에서 북카페를 운영할 정도로 빛나는 감각과 자유로운 감성을 지녔다.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아역 스타 갈소원양의 외할머니로, 자녀들에게 그랬듯 소원양 또한 자유롭고 독립적인 방식으로 보살펴왔다. 「빵점엄마 백점일기 1, 2, 3」 외에도 「가끔은 원시인처럼 살자」, 「항동에 냉이꽃이 필까」, 「작고 단단한 행복」 등의 책을 펴냈다.

■기획 / 이연우 기자 ■글&사진 제공 / 조은일 ■사진 / 원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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