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밤, 사색으로 물들다

늦가을 밤, 사색으로 물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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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해진 바람에 어깨를 움츠리며 늦가을의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짙고 깊은 어둠을 보고 있자면 문득 떠오르는 추억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시간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대신 그림을 들여다보며 그 사색을 이어가보는 것은 어떨까.

늦가을 밤, 사색으로 물들다

늦가을 밤, 사색으로 물들다

「풍천」 강요배 / Acrylic on Canvas / 182×455cm
강요배 작가는 제주의 풍경 속에서 발견한 신비스러움을 그림에 담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이 작품은 제주의 풍천월해를 종이붓을 사용해 캔버스에 담았다. 캔버스의 표면에 회벽과 같은 거친 질감의 바탕을 붓질로 완성한 뒤 접거나 구겨낸 종이를 이용해 물감을 올리고 쳐내는 방식이다. 종이붓은 종이의 질과 두께, 접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질감을 만들어내는데, 작가는 이를 이용해 강한 바람에 흩어져 날리는 풀잎의 다채로운 선을 표현했다. 자유롭고 거친 바람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림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통해 갈등과 고뇌를 겪는 현대인의 마음을 어루만지고자 한다.

늦가을 밤, 사색으로 물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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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17. 달이 가는 대로」
윤석남 / Mixed media / 103.5×63.5cm

윤석남 작가의 최신작인 ‘너와 시리즈’는 너와집에 사용됐던 널판에 직접 인물을 그린 40여 점의 작품으로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소나무였을 너와들은 비바람에 잿빛으로 변하고 낡은 너와로 작가와 만나 새로운 가치를 지니게 됐다. 윤석남 작가는 너와가 인물을 그려 넣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이 아니라 이미 고유한 형상을 지니고 있었다고 말한다. 단지 잠재돼 있던 형상을 끄집어낸 것일 뿐이라고. 너와에 검은색의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먹으로 그린 듯한 정감을 자아낸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쓸쓸한 여인의 표정이 늦가을의 짙은 어둠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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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C 1519 part 2」 홍경택 / Oil on Linen / 194×259cm
홍경택 작가의 터닝 포인트가 된 이 작품은 평면적인 작품을 주로 그려왔던 그에게 잠시 잃어버렸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깊이감이나 어둡고 내밀한 분위기를 얻기 위해 선택한 공간은 미국 뉴욕의 어퍼 웨스트사이드의 중고 책방이다. 뉴욕에는 이보다 고풍스러운 서점이 많았지만 작가는 왠지 이곳이 특별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빽빽하게 꽂혀 있는 책들과 책꽂이에 붙어 있는 엽서와 작품, 바닥에 깔린 그린 카펫이 빈티지한 분위기를 낸다.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책장을 넘기기 좋은 가을에 딱 어울리는 작품이다. 당장이라도 찾아가 책장에 등을 털썩 기대앉아 책 속으로 빠져드는 그 순간만큼은 걱정이나 고민을 털어버릴 수 있게 해줄 것만 같다.

「양산동 09
늦가을 밤, 사색으로 물들다

늦가을 밤, 사색으로 물들다

」 허수영 / Oil on Canvas / 182×291cm
허수영 작가가 2012년 광주시립미술관의 양산동 창작 스튜디오에 입주하며 작업한 양산동 시리즈. 작가는 양산동의 사계절을 캔버스에 담았다. 그중 양산동의 가을을 담은 작품으로 늦여름에서 가을로 넘어오면서 나무 잎사귀가 가을의 노란빛으로 물들어가는 변화의 모습을 덧그리기로 반복하며 다소 무겁게 표현했다. 그릴수록 표면이 두꺼워지고 거기에서 질감이 느껴지는 작품에서 작가의 회화에 대한 진정성과 노력의 흔적이 엿보인다. 더불어 감상자에게는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닌 시간의 흐름이 주는 무게감을 생각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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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주는 그림’을 소개해준 학고재 갤러리는…
유서 깊은 서울 북촌에 자리 잡은 학고재 갤러리는 한옥의 예스러움과 양옥의 세련됨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학고재 갤러리는 ‘뿌리가 있는 현대성’을 강조하며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옛것과 새것의 교감은 미래에 살아남을 현대미술의 방향성이기도 하다. 전통 미술과 현대 작가전의 다양한 전시와 더불어 해외 작가들의 진취적인 작품을 소개하기도 한다. 미술사에서 주목받을 만한 전시를 꾸준히 기획하고 있다.

■진행 / 이채영(객원기자) ■도움말&그림 제공 / 학고재 갤러리(02-720-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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