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기념의 이벤트

조은일 작가가 손녀에게 쓰는 편지

두 달 기념의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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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녀를 키우며 수만 가지 생각과 깨달음 그리고 어려움과 행복을 함께 느끼며 스스로도 큰 성장을 해왔다고 믿는 조은일 작가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손녀를 보면서 ‘엄마’였을 때와는 또 다른 삶의 순간들을 발견해나가고 있다. 이달에는 오랜만에 밝고 씩씩하게 활동하고 있는 아역 스타 갈소원양을 키워낸 사려 깊은 가족의 지난 이야기를 떠올려봤다.

[조은일 작가가 손녀에게 쓰는 편지]두 달 기념의 이벤트

[조은일 작가가 손녀에게 쓰는 편지]두 달 기념의 이벤트

소원이 네가 태어난 지 두 달 정도가 지났을 때 우리에겐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단다. 아직 백일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고작’ 두 달 큰 너를 두고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건 아마 첫 번째로 우리 아가(소원이 너)가 순해서이고, 두 번째로는 너의 엄마와 아빠가 멋지기 때문이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 할미에 대한 보답의 차원이라고 봐야 하겠지.

어느 날 밤 9시 즈음에 아직 산모 신분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네 엄마가 혼자 내게로 왔단다. 아기도 안 데리고 혼자서 말이야. 잠깐 다녀가려고 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물어보니 오늘 밤은 이 할미랑 푹 자고 가겠다는 것 아니겠니? 네 아빠가 간절히 원한 거래. “그간 고생했으니 하룻밤은 아기를 자기에게 맡기고 엄마 집에 가서 푹 자고 오라”고 했다지 뭐야. 어때, 네 아빠 멋지지? 나도 생각했단다. ‘우리 사위 참 대단하구나’ 하고 말이야. 사실 갓난아기를 키우는 엄마란 그리고 여자란 얼마나 안타까운 존재인지. 아무리 하룻밤이라 한들 모든 걸 잊고 잠들 수 있겠니? 이 할미는 그래도 아내를 먼저 배려해준 네 아빠를 대견하게 여기며 불쑥 찾아온 네 엄마를 편안하게 쉬게 하고 재우기로 했어. 문을 열고 들어선 네 엄마를 처음 봤을 때 화들짝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서 말이야. 왜냐, 사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정말 많은 일을 겪게 되고 때로는 생각지도 못했던 어려움도 만날 수 있는 거 아니겠니? 하물며 평안하고 행복한 나날 중에 조금의 파격을 누릴 줄 모른다면 그 또한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냐. 과잉걱정, 과잉보호, 이런 것보다는 때로는 담대한 육아 방식에 손뼉이라도 쳐주며 격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어쨌든 그날 밤, 네 엄마는 정말 편안하게 잘 잤지. 거의 두 달 만에 해방된 민족의 통쾌함과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어린 아기를 키우는 전국의 엄마들이 이 글을 읽으면 많이들 부러워하겠구나).

그러나 그 때도 이제 우리 모녀는 예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음을 자각할 수 있었단다. 그 순간, 엄마의 마음속 깊은 곳에 아기에 대한 본능적인 집착이 분명히 있었겠지. 남편에 대한 걱정도 들어 있을 것이고. 나 또한 밤중에 두어 번 수유를 해야 하는 네 아빠를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하고 또 고맙기 그지없었단다. 네 엄마도 밤새 잠을 자면서도 아기 때문에 모두 무사할지 신경이 쓰였을 거야.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네 엄마가 내게 묻더구나. “오늘 엄마 뭐 하고 싶어?” 하고. 네 아빠가 월차를 내서 하루 동안 너를 봐주기로 했다는 거야. 밤새 아기를 돌본 남편이 다음날까지도 서비스를 계속한다는 거지. 하긴, 이 할미도 두어 달 동안 많이 지쳐 있었단다. 워낙 긴장하기도 했고, 난생처음 아기를 대하는 것처럼 이상하게 서툴기도 했고.

그러고는 네 엄마는 자기 집으로 아침을 먹으러 갔어. 특별한 하루의 아침 식사 또한 남편이 제공하기로 했다는 거야. 마치 프랑스 남자 같은 네 아빠. 그러고 보면 네 아빠는 갈치 한 토막을 구워도 큰 접시에 토마토를 장식해 함께 담아내는 사람이지. 아기를 보면서 아침 식탁을 차리는 네 아빠를 보면서 나는 “느그들 지금 할리우드 영화 찍냐?”라며 괜히 놀리다가 웃었더랬지. 이 할미까지 덩달아 한껏 행복해지던 소원이의 ‘두 달 기념일’의 아침은 지금까지도 잊히지가 않는구나.

그렇게 낭만적인 아침을 보내고 나서 해방된 우리 모녀는 “가자, 달리자!”를 외치며 집을 나섰지. 일산까지 드라이브를 하고, 헤이리 예술마을을 찾아 그동안 잠시 잊고 지냈던 예술혼을 불태우기도 하고, 뜨끈뜨끈한 목욕이 그리워서 온천탕을 찾아 물놀이를 했단다. 마치 원시인으로 지내다가 동굴에서 탈출한 듯 후련하고 시원한 휴식. 얼마 만이었던지, 그야말로 완벽한 풀코스의 하루란. 순둥이 아기는 아빠에게, 멋진 아빠는 아내에게, 그 아내는 이 할미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선사하는 하루의 선물이었단다. 착한 소원이로부터 시작된 선물이었지.

2년 전 가을, 볕이 좋던 날 너와 동생의 모습이란다.

2년 전 가을, 볕이 좋던 날 너와 동생의 모습이란다.

한편으로는 두 달 만에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내 딸, 너의 엄마에 대한 우리 모두의 마음이기도 했어. 나도 네 엄마가 모처럼 아기 생각, 남편 생각을 잊고 온전히 스스로에게 충실하고 즐거운 하루가 되도록 최대한 배려했단다. 물론 우리는 이미 예전의 그 즐겁고 가볍고 걸릴 것 하나 없었던 그런 모녀가 아니었지만. 아기와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탯줄처럼 연결돼 있었지. 아마도 그것이 여자의 일생이겠지.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깨닫는 것 또한 우리에게, 이 할미에게 고마운 경험이었어.

방긋방긋 웃으며 잘 노는 아기 소원이는 이렇게 순하고 착해서 엄마와 할미에게 고마운 날을 선물해주기도 했지만, 사실 그래봤자 아기란 본질이 변덕쟁이 아니겠니? 빽빽거리며 울다가도, 또 금세 방실방실 헤벌레하고 언제 울었냐는 식으로 변하기도 하지. 소원이는 그 변덕이 가장 심할 때가 수유 시간이었어. 불과 60초 차이로 늦거나 빠르거나 하는 바람에 만만치 않은 큰 대가를 치러야 했지. 그걸 잘만 맞추면 기분 좋게 벌컥벌컥 먹어주는데, 만약 들여다보는 시간이 조금만 지체되거나 우유가 조금 뜨거워 식히다가 몇십 초 늦는 날에는 자지러지게 울어버리고, 그렇게 한번 기분이 상해버리면…. 정말 ‘성질이 더럽군’이란 말밖에 안 나오더라. 그게 여간 웃긴 게 아니야. 일단 한 번 화가 난 뒤에는 우유를 열심히 빨다가도 생각할수록 분한지 입을 앙당하게 다물고 머리를 흔들어가며 울어버려. 온몸으로 마치 점프를 하듯이 우는데, 그 성질을 감당하고 있노라면 참 가관이다 싶지. 서럽게 옹알거리면서 ‘먹을까 말까’ 하고 입을 갖다 댔다 말았다 하다가 온갖 신경질을 부리는데, 네 엄마랑 나랑 참 곤혹을 치렀어. 그런데도 어떨 때는 그 꼴이 우스워서 자다가도 일어나 웃을 정도였지.

하여튼 그 시기에는 늘 네 우유 시간 맞추는 게 가장 큰 일이었단다. 그 ‘찬스’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낭패니까. 잘못해서 네 심기를 건드리게 되면 결국 너는 우유를 양껏 제대로 먹지도 않고 잤거든. 아마 잠든 척 했던 것 같아. 왜냐면 곧 깨버리기 일쑤였으니까. 연일 이 패턴이 계속되는 거지. 찔끔찔끔 먹고, 또 찔끔찔끔 자다 깨고, 또 성질내고…. 돌이켜보면 지금도 먹는 양이 적은 편인 네 ‘참새 식성’의 시작이 그때부터였던 것 같구나.

내 생각에 아기가 젖을 먹는 양은 충전기의 이치와 같은 듯해. 사람의 위장이든 허파든 모든 기관은 충분히 채우고 충분히 비워야 하는 것. 충전하는 제품 또한 항상 완전히 쓰고 완전히 채워야 성능이 좋다지? 그것과 같이 아기도 되도록 충분히 먹고 쿨쿨 자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은 것 같아. 그런 날은 보채지도 않고 혼자서 두리두리 잘 놀거든. 그래서 할미는 네가 젖을 양껏 먹도록 노력을 기울였지. 원래 아기들은 웬만큼 먹다가 혀로 오물거리며 젖꼭지를 뱉어내는데, 이때 보통 이제 그만 먹겠다는 뜻인 줄 알고 꾸역꾸역 젖병을 들이밀기보다는 조심스레 젖병을 빼내게 되지. 하지만 가능하면 살살 유도해서 다시 먹도록 해보는 거야. 그러면 아기가 ‘내가 언제 안 먹겠다고 했나요?’ 싶은 표정으로 벌컥벌컥 제 양만큼 먹어치운단다. 그러고 나선 배부른 상태로 잠에 곯아떨어지지. 도중하차했다면 찔끔 자다 배고프다고 깨서 또 찔끔 먹고 또 자고 깨고 반복하게 되거든. 그래서 아기도 기분 좋고 건강해지기 위해, 또 키우는 사람도 안심하고 편안하기 위해서 제대로 양껏 먹는 것이 중요하더라고.

요즘, 그토록 무덥던 여름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부쩍 날씨가 추워졌어. 찢어지게 울어대던 여름 매미가 그립기까지 할 정도야. 배고픈 시간을 놓치면 성질을 부리며 귀청이 떨어져라 울던 어린 아기 소원이, 그때 네 별명이 오죽하면 ‘매미’였겠니. 지난여름, 매미 소리를 들으면서 생후 2개월밖에 안 됐으면서도 목젖이 보이도록 ‘꺄악꺄악’ 울어 젖히던 네 생각을 많이 했지. 순둥이여도 변덕쟁이여도 너는 늘 우리의 소중한 선물이란다.

[조은일 작가가 손녀에게 쓰는 편지]두 달 기념의 이벤트

[조은일 작가가 손녀에게 쓰는 편지]두 달 기념의 이벤트

유쾌한 할머니 조은일 작가는…
세 아이를 키우며 겪었던 다채로운 이야기를 엮은 에세이 「빵점엄마 백점일기」를 쓴 베스트셀러 작가. 때로는 편안한 친구 같고 때로는 든든한 동반자 같은 두 딸과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면서도 늘 밝고 유머러스한 아들의 엄마로 살아오면서 지혜와 성숙을 배웠고, 국내 최초로 홍대 앞에서 북카페를 운영할 정도로 빛나는 감각과 자유로운 감성을 지녔다.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아역 스타 갈소원양의 외할머니로, 자녀들에게 그랬듯 소원양 또한 자유롭고 독립적인 방식으로 보살펴왔다. 「빵점엄마 백점일기 1, 2, 3」 외에도 「가끔은 원시인처럼 살자」, 「항동에 냉이꽃이 필까」, 「작고 단단한 행복」 등의 책을 펴냈다.

■기획 / 이연우 기자 ■글&사진 제공 / 조은일 ■사진 / 원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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