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런트 에세이]작가 김경의 죽어버린 사랑을 부활시키며](http://img.khan.co.kr/lady/201312/20131204114326_1_fr_ess1.jpg)
[프런트 에세이]작가 김경의 죽어버린 사랑을 부활시키며
사랑이 죽어버린 그해 겨울을 떠올리고 있다. 자기 스스로 죽어버린 게 아니라 사실은 내가 죽인 거였다. 정확히 나의 이기심과 교만함이 사랑을 질식사시켜버렸다.
“결혼은 딴 여자랑 해. 나랑은 그냥 연애만 하다 끝내고. 난 너랑 결혼해서 행복할 자신이 없다. 답답해서 도망칠 궁리만 하다가 바람을 피울지도 모르고.”
그때 내 나이 서른일곱이었고 M은 서른둘이었다. 그렇다. 배가 불러도 너무 불렀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M은 이른바 어른들이 말하는 1등 신랑감이었다. ‘철통 밥그릇’이라고 하는 공기업에 이제 막 입사한 신뢰감 팍팍 가는 반듯한 외모의 청년.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회사를 휴직하고 1년 동안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나 대신 내 집의 대출 융자금을 내주고 내 고양이들까지 성심으로 돌봐준 친구였다. 그런데 나는 왜 그토록 진실하게 따뜻하고 건설적인 남자의 청혼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쳤을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파트 평수를 늘리며 대도시에서 종종걸음 치며 사는 삶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안식년이라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휴가를 보내며 그걸 알았다. 가능하면 빨리 은퇴하고 자연 속에서 느긋하게 글이나 쓰고 초목이나 돌보며 사는 삶! 아이도 낳지 않고 어떠한 구속감도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나만의 리듬대로 한가롭게 하는 삶! 그게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라는 걸. 당연히 내 배우자도 그런 삶을 원하는 사람이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M은 아니었다. 그와 결혼하면 ‘나’는 결코 ‘나’로 존재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얼핏 풍요로워 보이는 한국의 중산층 가정을 이끄는 기능자(쓸 만한 며느리, 그럴듯한 아내, 유능한 엄마)로 존재하며 나는 내 영혼의 빈곤함을 느끼며 남편이라는 자를 미워할 게 뻔했다.
그래서 잘 헤어지고 싶었다. 어른스럽게 입맞춤하고 서로의 앞날을 축복해주며.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 이별은 내 인생의 어떤 이별보다 고통스러웠고 또 과격했다. 나도 지독했고 M도 지독했다. 난 그에게 “여자의 결혼은 여러 남자들의 관심을 한 남자의 무관심으로 맞바꾸는 행위라고 하던데 난 다행히도 너랑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널 사랑하는 건 아닌 것 같다”라고 했고, 나의 그 잔인한 정직성에 상처받은 M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악랄한 방법으로 복수했다. 내 집에서 나와 함께 살면서 그는 결혼하기 괜찮은 조건의 여자들을 소개받았고, 그중 한 명과 제법 진지한 만남을 가지며 외박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의 휴대전화를 뒤적여 새로 교제 중인 여자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안녕하세요? 초면에 실례인 줄 알지만 알려드릴 게 있어서요. 전 M씨랑 같은 집에 사는 여자친구입니다. 우리는 지금 헤어지는 과정 중에 있는데 아직 헤어진 건 아니거든요. 무엇보다 M씨가 그 상황을 그쪽에게 속이고 있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 저에게도 그쪽에게도 최소한의 예의를 좀 지켜달라고 좀 전해주세요. 참, 오늘은 제 생일이거든요. 밤 12시 전에는 M씨를 좀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그날 밤 M은 밤 9시쯤 들어와 소리를 질렀다. 물건을 집어던졌다. 뭔가 와장창 깨졌다. 그러다가 울었다. “내가 비겁하다는 건 알아. 하지만 겁이 났어. 누나랑 헤어지고 혼자가 되는 상황이 두려웠다고, 죽을 만큼. 알겠어? 그래, 그런 마음이었어. 비겁하게 양다리를 걸치다가 적당한 상황에 누나에게 내가 받은 만큼의 상처를 돌려주고 헤어지려고 했어. 그런데 누나가 또 다 망쳤어. 결혼해도 괜찮겠다 싶은 정말 참한 여자였는데, 그 여자가 오늘 밤 자기 인생에서 당장 사라져달라고 했어. 제발, 부탁한다고. 이 상황이 누나가 원하던 거야? 두 여자에게 동시에 버림받고 산산조각 난 내 초라한 몰골이 기어이 보고 싶었던 거냐고?”
바윗덩어리 같은 슬픔이 가슴을 짓눌렀다. 휘트먼이 ‘나의 노래’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이 더 견디기 힘들다’라고. 게다가 그는 나와 서로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이 남아 있어서 쿨하게 헤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대가 아닌가? 가슴이 미칠 듯이 아팠다. 벽에 머리를 박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식사 준비를 할 수 있는 비범함을 보이고 싶어서 눈물을 훔쳐내고는 M에게 이렇게 말했다.
“밥 먹었어? 난 안 먹었어. 밥이나 먹자. 와인도 한 잔 하고. 생일 파티하자는 얘기는 아니니까 너무 기겁하지는 말고.”
사랑에 관해서만큼은 나는 언제고 분별력을 원치 않았다. 운명이 닿을 때마다 나는 주저 없이 사랑을 주고, 망설임 없이 사랑을 받아들이고, 도가 넘치게 사랑을 확장시켰다. 매번 내 심장은 누군가의 기쁨을 알려고 전심전력으로 달려갔다. 그러다 의혹의 날이 오면 나는 사랑을 의심하고, 그러면서도 보호하고, 교묘하게 손에 넣어 움켜쥐고 있다가 본의 아니게 내가 먼저 사랑에게 상처를 주고 나면 사랑은 깊은 상처를 입고 나에게서 멀어져가곤 했다. 그러고 나면 나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손을 들어 떠나가는 사랑에게 의연하게 안녕이라고 고하고 얼마간 뒤척이다가 슬픔을 떨쳐내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아니었다. 두려움과 미련, 공허함과 견딜 수 없는 미움이 사랑의 열기가 식어버린 연인들의 절망적인 가슴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그 상황에서 우리는 제법 의연한 척 연기하며 이별을 고했지만 그 후로도 정말 한참을 헤맸다.
“M, 나 어떡해? 곰탱이가 없어졌어. 오늘 이사했거든. 근데 대충 짐 정리하고 곰탱이부터 케이지에서 꺼내준 다음 슈퍼 갔다 왔거든. 그런데 뒤 베란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던 모양이야. 곰탱이가 사라졌어. 동네방네 찾아다니며 곰탱이를 아무리 불러도 안 나타나. 벌써 두 시간째야. 좀 와주면 안 되겠니? 네가 와서 부르면 나올지도 모르잖아. 그 녀석, 나보다 널 더 좋아하잖아.”
회사를 마친 M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그때까지 나는 넋이 나간 여자처럼 목 놓아 고양이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었다. M이 침착하라며 나를 안아 잠시 달랜 후 “곰탱아, 어딨니? 나 왔다. 네가 좋아하는 참외랑 순대 사왔어” 하자 집 안 어디선가 희미하게 ‘야옹’ 하는 소리가 짧게 들려왔다. “싱크대 아래쪽인 것 같은데.” M이 그렇게 말하며 싱크대 아래에 뚫린 조그만 구멍 뒤에 손을 넣어 벽돌 몇 장을 꺼내자 거기서 털북숭이 우리 고양이 곰탱이가 나왔다.
녀석은 다시 M을 보게 돼 좋은지 위세하듯 등을 낙타처럼 동글게 만들어 보이고는 이내 발라당 누워버렸다. 그런 곰탱이를 M이 하염없이 쓰다듬어주었다. 마음이 놓인 나도 그 옆에 누웠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 있다가 이제야 안정을 찾았다는 듯 쉼 없이 종알거렸다.
“나 있잖아, 요즘 실연한 여자는 하이힐을 신고 다니면 안 된다는 걸 알았어. 상처 받은 자존심, 이제 혼자라는 두려움 때문에 가뜩이나 연약하고 불안해진 상태인데 만약 구두굽이 보도블록에 걸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겠어? 보통 때라면 넘어지지 않게 몇 걸음 껑충껑충 뛰며 균형을 잡겠지만 실연이라는 비상사태에서는 대책 없이 넘어질 수도 있다고. 그런데 만약 넘어지면서 보도블록에 머리를 다친다면? 머리통에서 피가 난다면? 지나가던 누군가가 택시를 잡아줄까? 이제 응급실에서 누가 나를 지켜주지? 얼마 전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치신 엄마? 걸핏하면 야근하는 우리 오빠? 이혼한 오빠의 바람난 전처? 방금 전 내게 이별 통보를 한 내 남자친구? 그래서 안 된다는 거야. 하이힐은…. 물론 폭음은 더더욱 안 되고. 넘어질 수 있으니까. 머리에서 피가 날 수 있으니까. 이제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그 얘기가 M에게는 다시 나를 지켜달라는 얘기처럼 들렸던 모양이다. 그 다음 날 M에게 메일이 왔다. 이런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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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트 에세이]작가 김경의 죽어버린 사랑을 부활시키며
어제 누날 보며 생각을 했어. 우린 좀 더 떨어져서 각자 건강하게 살아가야 할 것 같아. 이런 상태에서 계속 보면 더 상처만 생길까봐 무서워. 나 어제 누나 보면서 다시 내가 누나 울타리가 돼주고 싶다는 생각을 바보처럼 했어.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누나…. 모르겠다. 씨, 누나 잘 살아. 내가 괴롭혔던 그딴 것들 생각하지도 말고 그냥 편하게 누나 맘대로 그렇게 살아. 누날 비난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건방지게 동정 따위 할 사람도 없어. 누난 충분히 누나로서 잘 살아왔고 잘 살아갈 거잖아. 남이든 가족이든 누난 누나 맘대로 사는 게 맞는 거 같아. 그래야 누나도 편할 것 같고. 내 욕심에 누날 바꾸려고 욕심내고 괴롭혔어. 미안해. 건강해. 나중에 멋진 누날 다시 꼭 만나고 싶어. 나도 잘 해나갈게. 누나, 고마워. 보고 싶을 거야. 진짜 이별 같아 속이 쓰려. 누나의 밝은 얼굴, 목소리만 생각할게. 그럴 거지? 누나….
메일을 읽으며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더 이상 의연한 척하기 싫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울었다. 회사에 앉아 기사를 쓰다 말고 울다가 코를 푸는 일이 잦았다. 밖에 나가서 담배를 한 대 피우며 또 울고 또 코를 풀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세 달, 네 달, 다섯 달, 여섯 달을 실컷 슬퍼했다. 울다가 곯아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때 알았다. 슬픔을 정면으로 겪어내지 않고서는 시간이 아무리 흐른들 치유되지 않는다는 걸.
홀로 설 수 있는 고독은 결코 쉽게 배워지지 않았다. 그것은 캄캄한 항해 속에서 직접 체험해야만 하는 거였다. 집요하고 혼란스러운 꿈의 날개 위에서 나는 내 결함(이기심, 교만, 의존성, 애정 결핍)을 초월하기 위해 오랫동안 항해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밤이 되면 혹독한 겨울 날씨 한복판에서 혼자 떨고 있는 여자처럼 느껴지는 자기 연민이라는 적과의 싸움에 기진맥진 지치는 일이 잦았다. 거듭되는 자기 의심과 연민 속에서 글도 써지지 않았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뒤통수에 원형 탈모가 남긴 세 개의 웅덩이가 파일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끔찍하고 혹독한 그 상실의 시간들이 다 지나갔다. 속수무책으로 금이 가고 붕괴 조짐을 보이던 내 삶의 한때가 이렇게 찬란하게 재생해 온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신비감을 느낄 정도다. 레너드 코헨이 ‘모든 것엔 금이 가 있다. 빛은 거기로 들어온다’라고 노래한 적이 있는데 꼭 나를 위해 부르는 노래 같았다. 설령 실패했어도 그 시간 안에 실패를 푸는 열쇠가 담겨 있다는 걸 더 나이를 먹고 마흔 즈음에야 알게 됐다. 그 열쇠를 찾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도.
내가 그토록 바라던 삶을 살고 있는 요즈음, 내 남편은 물론 내 남편을 만나게 해준 떠나온 내 과거의 연인들에게도 여전히 진동하고 애틋하게 떨고 있는 사랑을 느낀다. 누가 내게 그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을까? 누군가와 이별하고 상실감 속에서 절망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그에게 칼 융이 했다는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다시 일어서기까지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제 자유로이 진정한 내가 될 수 있다.”
편집 후기
어느날, 갑자기 이별을 고했던 옛 연인이 예고도 한 번 없이 찾아왔다. 정확히 헤아려보지는 않았지만 4년 만인가. 마지막 그 날은 온몸의 살을 찢어놓을 듯한 칼바람이 불었었다. 그리고 그 이후, 마지막으로 위세를 과시하던 추위만큼 차갑고 혹독한 시간이 이어졌다. 헤어짐을 떠올려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막막함과 서러운 마음들 그리고 그간의 시간들과 ‘나’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듯한 느낌까지. 수많은 감정들이 가슴속을 꽉 메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좋아하고 각별하게 여겼던 사람이 한순간에 내가 만질 수도 없는 완벽히 다른 세계로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모자라 어쩔 수 없이 결국엔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사실이 가장 괴롭게 느껴졌다. 매서운 겨울이었다. 금방 3월이라고는 하는데 생각보다 봄은 빨리 오지 않았고, 괜찮아진다고 하는데 다들 모르고서 하는 소리로 들렸다.
뜨겁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고, 그 온도는 매번 달랐지만 어쨌든 몇 번의 만남이 있었으니 그만큼 몇 번의 이별을 겪었음에도 유독 그 상처를 깊게 가져갔다. 쓰라리더라도 움푹 파인 상처를 들여다보면서 약을 발라주고 스스로 살이 돋아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냥 징징대며 끙끙거리며 덮어버렸기 때문일 거다. 물론 이별이란 결국 사랑의 실패인데 어떤 식이 됐든 아픔 없는 ‘좋은 이별’이 있겠냐마는, 최소한 ‘덜 힘들고 더 얻는 이별’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끊임없이 영원을 의심하고 확인하고 약속하고 다짐하는 사랑 또한 시작부터 끝을 안고 출발한 거라 어느 때고 이별은 찾아올 수 있으니 말이다.
헤어진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건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았다. 그래도 감정만큼은 예상했던 것처럼 하나하나 예민하게 반응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휘둘리지 않고 평탄하게 흘러갔다. 그건 상대방도 비슷해 보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무심한 얼굴의 그는 미뤘던 숙제를 꺼내든 사람처럼 오래된 기억과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고맙게도 시간이 희미하게 지워줬지만, 그래도 마냥 추억이라 웃어넘기기에는 울컥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와 웃음을 막아버리는 우리의 이야기들. 애써 지워버리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던, 외면하고 싶었지만 이별 이후에도 계속해서 나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그 흔적들.
사실 한때는 힘들게 묶어둔 감정들을 이렇게 풀어놓는 일은 절대 없었으면 하고, 바랐던 적도 있다. 그것도 그토록 훤한 오후에, 심지어 당신과 힘을 합쳐서라니. 덕분에 그간 혼자서 얼마나 많은 착각과 오해 속에서 스스로만 탓하고 혼자 발버둥을 쳐왔는지를 알았고, 그나마 조금 마음이 편해졌긴 했지만 말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그날의 재회는, 많이 늦었지만, 꽤 좋은 이별이었다.
러시아 소설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에 비슷한 작별 인사가 나온다.
-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나는 자꾸 이렇게 되풀이했다. 그녀는 손을 떨치고 밖으로 나갔다. 나도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 일어난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그런 감정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럼에도 내 생애에 한 번도 그런 감정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나 자신을 불행하게 여겼을 것이다. -
그렇다. 힘들고 어렵지만, 인생의 어떤 것들은 정면으로 겪어내며 견디고 들여다봐야 하고, 어떤 식이 됐든 그 대가도 치러야만 한다. 이별이, 사랑이 특히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두 번째는 첫 번째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개념이니까. 시간은 흐르고, 또 사랑은 태어난다.
작가 김경은…
패션지 피처 에디터로 17년간 일했다. 마흔이 되면 스스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삶을 살고자 마음먹었기에, ‘화려한 욕망의 세계’로 대변되는 매체의 타이틀을 내려놓고 생계형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이제는 자신만의 취향으로 가장 ‘나’답게 살 것을 꿈꾸며 각박한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강원도 평창으로 터전을 옮겼다. 지난봄, 화가 남편과 함께 소박하게 살고 있는 삶에서 얻은 생각들과 ‘나의 취향’을 이야기하는 책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를 펴냈다. 첫 연애소설을 준비하고 있다는 그녀는 앞으로 꾸준히 더 열심히 쓰려 한다. 펴낸 책으로는 칼럼집 「뷰티풀 몬스터」, 인터뷰집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여행 에세이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이 있다.
■진행 / 이연우 기자 ■글 / 김경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