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두환 전 대통령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한 압류 미술품 경매장에 가다
지난 12월 1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K옥션에는 일반 경매를 진행했던 때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의 인파로 북적였다. 이미 쉽게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다.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1천6백72억원의 환수를 위해 대대적으로 미술품을 압수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돼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들이 공개되고 또 첫 경매가 이뤄지는 날이다. 경매장에는 직접 작품 구입에 참여하려는 사람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구경 온 사람들 그리고 진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온 보도진들까지 뒤엉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경매장에 마련된 좌석 3백50석은 이미 예약 손님으로 꽉 찼다. 현장에서 경매에 참여하게 위해 급하게 회원 가입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얼핏 본 뒤쪽 참가자의 응찰 패들번호가 7백 번대인 걸 확인했다. 직접 경매에 참여해 작품을 살 의사가 있는 사람들이 최소 7백 명은 넘는다는 뜻이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일순간 침묵했다. 경매가 시작된 것. 조용한 가운데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 작품에 1, 2분 이상을 넘기지 않고 빠르게 “낙찰! 낙찰!”이 진행되기 때문에 작품 구입을 원하는 이는 그 순간만큼은 제대로 숨 쉴 겨를이 없어 보였다. 다급하게 휴대전화에 이어폰을 꽂고 ‘회장님’을 찾는 단정한 차림의 젊은 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리 구매를 나와서 회장님에게 현장 분위기를 전하는 듯 했다.
“회장님 비행기 타신다고요? 이제 막 그 작품 경매가 시작되려는데요. 네, 얼마까지에 살까요? 알겠습니다.”
화랑 관계자로 보이는 이들은 서로 작품 분석을 하며 가격을 평가하고 응찰 패들을 들었다 놨다 하느라 분주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한 압류 미술품 경매장에 가다
워낙 사람이 많다 보니 경매를 진행하는 경매사가 미처 자신의 패들을 보지 못할까 봐 큰 소리로 “여기도 있어요. 여기!”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 가격이 1백만원 단위로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도 자신의 번호를 든 채 여유롭게 눈을 감고 있는, 마치 ‘얼마가 되든 사겠소’라고 몸으로 말하는 듯한 노신사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작품에는 미리 서면 응찰이 돼 있는 상태였다. 서면 응찰이란 현장에서 직접 경매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경매 전에 서류로 응찰을 받는 경매 방법이다. 예를 들어 어떤 작품을 1백만원에 서면 응찰을 했다면 ‘나는 1백만원을 상한가로 작품을 구입할 의사가 있다’라는 뜻이다. 한쪽 코너에서는 경매회사 직원들이 열심히 전화를 받고 있었다. 전화로 경매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팔딱팔딱 생생한 경매 현장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번 경매에서는 한 사람이 한 번의 응찰로 작품을 손쉽게 낙찰받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출품작들이 ‘핫’한 작가들의 작품일 뿐 아니라 ‘전두환’이라는 전 소유자의 배경도 한몫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또 K옥션 측은 이번 경매가 체계적인 추징금 환수 목적이므로 ‘컬렉션 프리미엄’을 붙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컬렉션치고는 비교적 낮은 가격으로 시작했다. 한 작품당 두세 명의 경쟁자들이 경합을 벌여 낙찰을 받았다. 1시간 30분간의 치열했던 경매가 끝이 났다. 결과는 한 작품의 유찰도 없는 100% 낙찰이다. 출품된 미술품 80점이 다 팔렸다. 특히 김환기, 김종학, 오치균 등 일부 근현대 작가의 작품은 치열한 경쟁 끝에 추정가보다 높은 가격에 낙찰됐다. 낙찰 총액은 25억7천만원으로 경매 전, 추정가였던 17억원을 훨씬 웃도는 결과다. 한마디로 성공적인 경매였다. 미술을 전공한 딸과 함께 구경하러 왔다는 최 모씨는 “전두환 일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일부러 왔다”라고 전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한 압류 미술품 경매장에 가다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인사동)에서 개인 화랑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 모씨는 1차 구매에서는 낙찰받지 못했지만 온라인 경매나 2차 경매 때는 반드시 맘에 드는 물건을 낙찰받겠다는 속내를 밝혔다.
“그들이 그리 존경받을 만한 컬렉터는 아니지만 어쨌든 유명인이 갖고 있었다는 스토리만으로 10년, 20년 후에는 가치가 더 높아질 것이 분명해요.”
이번 ‘완판’이 어느 명망 높은 미술품 컬렉터의 자선 경매였다면 존경 어린 박수로 대미를 장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자금에 연루된 전(前)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목적의 경매라는 점은 씁쓸함을 감출 수 없는 부분이다.
Mini Interview
K옥션 이상규 대표

전두환 전 대통령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한 압류 미술품 경매장에 가다
검찰에서 경매회사들에 입찰을 부쳤습니다. 자격 심사를 거쳐 저희 K옥션과 서울옥션이 결정됐고 지난 11월 중순에 작품 배정을 받았습니다. 그 후 감정을 하고 촬영, 도록 등을 만들어 신속하게 경매 진행을 준비했습니다.
감정할 때 에피소드가 있다면?
감정에서 특별히 문제 되는 것은 없었습니다. 가장 고가인 김환기 작가의 ‘24-Ⅷ-65 South East’ 작품이 저희가 받은 리스트에는 1966년 제작된 것으로 나오는데 이번에 1965년에 제작됐다는 걸 알았습니다. 또 같은 작가의 ‘무제’라는 작품은 ‘캔버스에 유채’라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종이에 과슈(수채 물감)’인 걸 새롭게 밝혔습니다.
작품을 실제로 보니 어땠나요? 컬렉터의 취향이 느껴지나요?
컬렉터가 미술관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수집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가 작품성이 모두 좋은 작품으로 구성됐다는 점과 대작이 많다는 점 때문이지요. 개인적으로 좋아서 한다고 치면 특정 작가의 어떤 작품만을 모으는 것이 패턴이지만 이 컬렉션은 작품의 분위기가 매우 다양해요.
작품을 두 차례로 나눠서 경매하는 이유는 뭔가요?
작품을 받으면서 검찰에서 부탁받은 것이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미술 시장이 충격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두 번째, 환수금을 체계적으로 거둬들였으면 좋겠다’였어요. 그런 이유로 작품을 잘 팔아야 하는 것도 목적이라 2013년에 매매할 부분, 2014년 초에 매매할 부분 그리고 온라인에서 경매할 부분을 적절히 나눠 구성했습니다.
혹시 가격에 프리미엄이 붙었나요?
외국의 경우 이름 있는 누군가의 컬렉션이라고 하면 소장자의 스토리가 더해져 일반 경매보다 가격 프리미엄이 붙고 호응도 좋지요. 그러나 이번 경매는 여러 사정상 비싸게도 싸게도 책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경매 시장 상황에 맞게 객관적인 가격을 제시했습니다.
준비 과정에서 단골 고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문의가 쇄도했습니다. 미술에 조예가 깊은 단골 고객들뿐 아니라 경매에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새로운 고객들의 문의도 많았어요. 경매하는 법 등 기초적인 질문에서 그림의 시세까지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이번 경매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분들은 없었나요?
그동안 미술품들이 비자금 등에 이용된 뉴스가 많아서 그런지 미술품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진 분들이 많았지요.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에는 미술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때로는 희열을 느끼게도 하지요. 그런 순수한 측면으로도 작품을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경매에서 주목받은 작품들

전두환 전 대통령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한 압류 미술품 경매장에 가다
이번 압류 미술품 중에는 유독 두 작가의 작품이 많았다. 주제와 재료, 작품의 분위기가 매우 다양해 이를 수집한 전재국씨의 개인 취향에 따른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오치균 작가의 ‘인왕추경’은 2억2천만원에 낙찰됐다.
3 김환기 ‘24-Ⅷ-65 South East’
이번 경매에서 최고액으로 낙찰된 작품이다. 4억5천만원에서 시작해 최종 5억5천만원에 낙찰됐다. 현장과 서면 그리고 전화를 통한 치열한 경합 끝에 전화 응찰로 참여한 이에게 최종 낙찰됐다.
4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친필
이번 경매 중 가장 치열한 경합을 벌인 작품이다. 전화 응찰자와 현장 응찰자의 가격 경쟁으로 1백80만원에서 시작한 가격이 오르고 올라 2천3백만원을 기록했다. 이 작품은 김 전 대통령이 서산대사의 시를 적은 것으로, 전재국씨가 1992년 결혼 선물로 받은 것이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모름지기 발걸음을 어지럽히지 말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될지니’라는 내용이다.
5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필
전 전 대통령이 1999년 추석, 수능을 앞둔 처조카 이원근씨에게 선물한 친필 휘호도 경매에 나왔다. 사자성어 ‘고진감래(苦盡甘來)’를 적은 것으로 80만원으로 시작한 경매가가 3명의 치열한 경합 끝에 1천1백만원에 낙찰됐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김영길, 정혜림 ■사진 제공 / K옥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