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는 그림]모래를 만나다
김성엽 / Oil and Sand on Canvas / 162×130cm
‘나에게 있어 모래는 무엇이든지 절대로 영원히 존재할 수 없음’의 상징이다.
- 작가 노트 중에서
모래는 물리적 특성상 쉽게 그러모아지기도 하지만 단숨에 허물어지기도 한다. 작가 김성엽은 모래가 지니는 이러한 물리적 특성에 그의 정신적 사고를 덧입힌다. 작가는 영원과 찰나, 생성과 소멸, 존재와 무(無), 응집과 분해로 대비되는 모래의 특성에 주목해 시간의 흔적을 포착한다.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모래의 흔적을 좇으며 유한한 삶에서 무한을 꿈꾸는 인간의 허욕과 허상의 실체를 그리는 것이다. 작가는 최근작에서 모래가 가진 삭막함이나 소멸성만이 아닌 순환의 의미에 주목하고 있는데, 창가에서 매일같이 바라보는 장면을 모래와 모래가 가지는 여러 가지 정서로 표현한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을 대표하는 도시이미지를 모래시계와 같이 흘러내리고 쌓여가는 듯 표현했는데, 도시가 형성돼온 지난 시간성이 느껴지는 듯하다.
[마음이 가는 그림]모래를 만나다
김성엽 / Acrylic and Sand on Canvas / 60.6×72.7cm
김성엽의 작품에서는 늘 ‘시간’이 느껴진다. 그는 곧 소멸되고 사라질 시간을 보이게 그린다. 누구든, 그것이 아침이든 밤이든 활동적인 시간 10시. 그 시간이 모래가 돼 흩날리는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유한한 존재가 모래처럼 낱낱이 부서지고 흩날리며 사라져버리기 직전, 그 순간을 포착한 것으로 찰나에 불과한 소멸의 존재를 화폭에 담아 다시 소생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담겨 있다. 작가는 이를 위해 한 점 한 점 힘들여 붓을 찍어 나간다. 무심히 쓸어내버린 듯한, 무수한 모래 알갱이 같은 하나하나의 점들은 치밀하고 섬세한 인내를 요구하는데, 작가는 이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시간의 영원 속에서 거듭되는 생성과 소멸의 순환을 이해하고 경외한다.
[마음이 가는 그림]모래를 만나다
김창영 / Oil and Sand on Canvas / 173×102cm
부산의 바닷가에 살던 시절, 모래사장에 생겨난 무수한 발자국과 흔적이 밤과 아침을 경계로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을 바라보며 작가는 존재의 생성과 소멸에서 오는 실체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의문을 품었고, 이를 캔버스에 그리기 시작했다. 실제인 것 같은 자국이 사실은 그려진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려진 것처럼 보이는 바탕은 실제 모래라는 혼돈스러운 사실은 보는 이들에게 ‘눈에 보이는 것이 곧 사실’이라는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으며 존재의 본질과 허상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작품의 이미지를 사진 대신 순전히 자신의 기억에 의존하다. 즉 모래 위에 그려진 흔적은 실제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흔적이라기보다 작가 자신의 존재의 흔적이고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영원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연민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이 가는 그림]모래를 만나다
엄시문 / Sand on Panel / 165×92.5cm
작가 엄시문은 모래가 지닌 물성 즉 모양, 무게, 크기, 색 등을 활용해 자연이 품은 다양한 동력과의 마찰을 통해 드러나는 현상들을 ‘화면’에 담는다. 다슬기와 벌레들의 이동 흔적, 흐르는 물결, 빗물에 의한 파장 등 자연 상태에서 생성된 ‘화면’은 조심스레 들어 올려져 고착화하는 제작 공정을 밟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현실과 자신을 반영하며 문명적 삶의 절제와 기다림의 사유를 체현한다. 자연환경과 공유하는 그의 작업은 생명의 변화와 순환을 포괄하는 자연을 통해 치유와 자생력을 얻고자 하는 것으로, 자연이 포괄하는 초월적 세계관 안에서 인간과 문명의 화해를 탐구하며, 생태론에 입각한 실험적 제작 방식을 통해 자연과의 경이로운 교감을 이끌어낸다.
■진행 / 이은선 기자 ■자료&그림 제공 / 김성엽(010-4586-9918), 박영덕화랑(02-544-8481), 엄시문(010-3750-2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