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를 즐기는 이윤정씨(42)는 어린이날을 맞아 두 자녀에게 선물할 책을 골랐다. 소설책에 편중된 큰딸 서영(12)이를 위해 과학 도서와 인문 서적을 고르고, 독서 지도가 필요한 아들 준영(8)이의 선물로 창작 동화와 학습 만화를 골랐다. 고작 몇 권의 책이지만, 오랜 시간 인터넷으로 정보를 살펴보고 주변인들의 추천까지 받은 것들이다. 그런데 딸아이는 표지를 보자마자 방으로 들어가버렸고, 아들 녀석은 잠깐 흥미를 보이다가 만화책을 던지며 놀아 혼쭐이 났다. 즐거운 어린이날이 날아간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러게 왜 책 선물이냐”라는 남편의 핀잔에 속까지 상했다.
만화책을 고른다면 서사가 있는 것이나 완결된 전집류를 권하고 싶다. 「꼬마 애벌레 말캉이」나 「귀신 선생님과 진짜 아이들」을 추천할 만하고, 오랜 시간 사랑받은 「맹꽁이 서당」은 엄마와 아이가 함께 읽고 교감할 수 있는 만화다. 흔히 범하는 오류 중에 하나가 독서 취향이 형성되지 않은 저학년들에게는 책 선물하기 편하다는 것인데, 경험이 적다고 해도 아이들마다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에 더욱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책을 직접 사는 경험을 해보게 하는 것도 좋다. 1차적으로 선별을 거친 어린이 전문 서점에서 부모의 간섭 없이 마음껏 고르게 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도서상품권보다 현금을 주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상품권은 선택의 여지없이, 어쩔 수 없이 책을 사야 하지만 정성껏 봉투에 넣은 돈을 선물로 주면 아이 스스로 ‘내가 다른 것을 사지 않고 책을 샀다’라고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김소영(김소영 독서교실 대표)
Case 2 “뚝배기보다 장맛인데, 왜 선물 포장 가지고 난리죠?”
지난 어린이날만 생각하면 억울한 기분이 든다는 정진옥씨(38). 4학년 딸아이가 친하게 지내는 반 친구들과 놀고 싶기에 다 같이 어린이날을 보내자고 약속을 했다. 아파트 단지의 플레이 룸을 빌리고 오래전부터 갖고 싶다던 태블릿 PC도 의기양양하게 준비했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다. 그런데 선물 증정 시간이 되자 친구 엄마들이 화려하게 포장된 선물을 내밀었다. 리본에 피규어까지 매단 엄마도 있었다. 아이들은 포장을 뜯기도 전에 감탄했고, 선물을 풀어보며 즐거워했다. 포장 안 된 제품 상자를 받은 정진옥씨의 딸은 기뻐할 타이밍을 놓치고 엄마의 무신경함에 입을 삐죽거렸다.
선물 처방전 포장만큼 선물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없다. 똑같은 선물이라도 나만을 위해 준비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이 포장이다. 단순한 포장이 아니라 받는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되는 것이다. 포장을 할 때는 아이의 취향을 고려해 컨셉트를 잡는 것이 좋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여자아이는 풍성한 리본으로 사랑스러운 느낌을 낼 수도 있고, 우주 과학자가 꿈인 아이의 선물은 로켓 모양으로 포장할 수도 있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 사진이나 그림일기로 장식하는 것도 방법이다. 즐거웠던 추억을 선물 포장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특별한 기술 없이도 큰 감동을 줄 수 있다.
아이들의 선물은 곰 인형처럼 선물하기 어려운 형태도 많은데, 이 경우 모두 감싸려고 노력하지 말고 인형의 목에 리본이나 프릴을 달아 포인트를 주는 것이 좋다. 어른들의 선물은 포장지와 리본의 톤 다운 배색으로 점잖은 느낌을 내지만, 아이용 포장은 캐주얼하고 밝은색으로 역동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좋다. 선물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잔잔한 무늬의 포장지가 좋다. 포장을 했을 때 아기자기한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선물 포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의 메시지를 담는 것이다.
김혜숙((사)한국선물포장디자이너 협회 이사장)
어린이날은 특별하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상섭씨(45). 이때마다 놀이공원과 동물원, 워터파크 등을 순회하고 있다. 그날도 아침부터 부산을 떠는데, 집에 있고 싶다고 투덜거리는 아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어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선물 처방전 우리는 가끔 본질을 잊는다. 선물 역시 그렇다. 준비 과정에 취해 받는 사람을 잊는 우를 범한다. 선물을 준비할 때는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 돈이 들지 않아도 애정과 관심만 있으면 그 어떤 것도 선물이 될 수 있다. 값비싼 선물을 해야 한다거나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면 다채롭고 감동적인 선물을 발견할 수 있다. 관심이 없었을 뿐 선물이 될 만한 것은 도처에 있다. 어렵다면 평소에 제한하는 금기에 대해 생각해보자. 어린이날만큼은 밤새도록 게임을 하고 라면이나 과자를 마음껏 먹게 해줄 수도 있다. 금기의 해제는 짜릿한 해방을 주고 그 어떤 것보다 유쾌한 선물이 된다. 아이는 이런 선물에서 소통의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선물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받는 사람이 행복한 것이 진짜 선물이다. 유정희(세 아이를 키우는 선배 맘)
Case 4 “제일 인기 있다는 선물을 했는데 그 떨떠름한 반응이란…”
취업에 성공한 이민호씨(32)는 조카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깜짝 놀라는 표정을 보고 싶어 조카들 몰래 최고 인기라는 캐릭터 장난감을 준비했다. 예상보다 비쌌지만 조카들에게 특별한 어린이날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잔뜩 기대를 하고 선물을 줬는데 예상과 달리 시큰둥한 조카들의 반응에 오히려 당황하고 상처를 받았다.
길지연(조카 둘의 이모이자 10년 차 완구 디자이너)
1 선물의 시작은 관심입니다.
2 받는 사람이 기쁜 것이 선물입니다.
3 선물에 스토리를 담으면 감동은 배가됩니다.
4 가장 실용적인 선물은 가장 지루한 선물입니다.
5 가격 대비 실용성의 비교, 이날 하루만은 접어두세요.
6 설문조사나 마케팅을 맹신하지 마세요.
7 선물 포장도 선물의 일부입니다.
8 무형의 이벤트도 특별한 선물이 됩니다.
9 금기의 해제는 가장 달콤한 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10 드라마틱한 피드백은 기대하지 마세요.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강보라(프리랜서) ■사진 제공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