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어느 대학의 음악 연습실. 피아노 연습이 한창인 한 중년의 남자가 계속 같은 음을 잘못 연주하는 자신을 질책하고 있다. 그때 젊은 남자가 불쑥 연습실로 들어와 다소 거만하게 끼어든다. “슈만, 작품번호 48번, 시인의 사랑, C# 마이너로 연주하셨네요. 원곡은 F# 마이너죠.” 마슈칸 교수와 스티븐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된다.
‘올드 위키드 송(Old Wicked Songs)’은 2인극의 특성을 잘 살린 음악극이다. 미국 극작가 존 마란스의 작품으로 1995년 초연 이후 20년간 12개 도시에서 꾸준히 공연됐다. 국내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슈칸 역에 송영창, 김세동이, 스티븐 역에는 김재범, 박정복, 이창용, 조강현이 출연한다. 그리고 배우 김수로가 예술감독으로 참여했다.
[Review] 대학로에서 들려오는 ‘올드 위키드 송’
작품은 오스트리아인 음대 교수 마슈칸과 미국인 학생 스티븐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다룬다. 극의 배경인 1986년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 혐의를 받았던 쿠르트 발트하임이 오스트리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해다. 하지만 그는 재임기간 동안 국제적으로 고립됐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나치 명단에 올라 감시당했다. 이러한 배경을 토대로 나치즘에 고통 받은 유태인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로베르트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은 이들의 사연을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연극이지만 음악의 비중이 아주 크다.
[Review] 대학로에서 들려오는 ‘올드 위키드 송’
기자는 평일 저녁, 송영창·이창용 페어의 공연을 관람했다. 인간의 감정을 연주할 줄 아는 마슈칸과 훌륭한 재능을 가졌지만 음악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스티븐은 후반부까지 끊임없이 티격태격 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남긴 아픔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겁지 만은 않았다. 이들 사이에서 오고가는 행동과 대사 하나하나에 깨알 같은 유머가 숨어 있었다. 장면이 바뀌면서 어두워지는 극장 안, 나지막이 음악이 울려 퍼지면 눈을 감곤 했다. 주로 뮤지컬 무대에서 활약했던 이창용의 노래도 귀를 즐겁게 했다. 상처투성이인 스티븐이지만 목소리만큼은 맑고 청아했다.
익살스러운 마슈칸과 냉소적인 스티븐, 상반된 두 남자는 음악을 통해 서로의 아픔을 발견해나간다. 슈만이 남긴 곡 중 최고로 손꼽히는 ‘시인의 사랑’에 담긴 낭만과 비극성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가 관람 포인트다. 2시간이 넘는 관람시간이 부담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간다. 공연은 11월 22일까지 DCF대명문화공장 2관에서 열린다.
■글 / 노도현 기자 ■사진 제공 / 컬처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