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극장이 주는 특유의 맛은 오로지 상영관 안에서만 느낄 수 있다. 명작의 재개봉 소식이 반가운 이유다. 올해 2월 재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은 무려 15만 명의 관객을 끌어 모았다. 지난 5월에는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2007)을 다시 보기 위해 5만6,000명이 극장을 찾았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명작을 다시 스크린으로 불러오는 재개봉은 3, 4년 전부터 트렌드가 됐다. 2013년에 재개봉한 ‘레옹’(1994)과 ‘러브레터’(1995)는 4만 명이 넘는 관객 수를 기록했다.
영상 및 음향 기술의 진화는 재개봉의 가장 큰 공신이다. 몇십 년 된 필름 영화는 디지털화된 멀티플렉스에서 상영되기 힘들었다. 하지만 과거의 영상이나 음원을 디지털로 복원해 질을 향상시키는 ‘디지털 리마스터링’ 기술은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추억의 영화는 제작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수입 가격도 상대적으로 낮다. 이미 유명세를 탄 작품이기 때문에 마케팅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 극장 수익뿐만 아니라 IPTV, 케이블 등 부가 판권 시장까지 고려하면 영화사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인 셈이다. ‘빽 투 더 퓨쳐’를 수입한 영화사 안다미로의 허진희 대리는 “아날로그 영상이 디지털 포맷으로 전환되는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쳤기 때문에 30년 전 영화도 재개봉될 수 있는 것이다”라며 “그중에서도 관객들에게 의미 있는 추억의 영화를 수입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과거에 감명 깊게 봤던 영화를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의 욕구도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 또 최근 몇 년 동안 불고 있는 ‘복고바람’도 옛 영화를 다시 극장으로 불러오는 데 일조하고 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동시에 그 시절의 자신을 떠올린다. 상영관 내부가 어두컴컴해지는 순간부터 모두가 시간여행을 떠나게 되는 셈이다. 이렇듯 재개봉은 단순히 영화를 더 큰 화면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올해도 다시 한 번 스크린에 걸리는 명작들이 많다. 개봉 몇 주년을 기념하는 영화가 눈에 띄는가 하면 더 이상 새로운 작품에서 만날 수 없는, 그리운 배우가 주연한 영화도 있다.

가슴 뛰게 했던 영화와의 설레는 재회
여전히 최고의 멜로 영화로 손꼽히고 있는 미셸 공드리 감독의 대표작. 개봉 10주년을 맞아 다시 관객들과 극장에서 만나게 됐다. 영화는 헤어진 연인의 기억을 지워갈수록 더욱더 깊어지는 사랑의 이야기를 그린다. 기억과 사랑에 대한 깊은 통찰,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이 돋보인다. ‘코미디의 제왕’ 짐 캐리의 사뭇 진지한 모습이 꽤 매력 있게 다가온다. 케이트 윈슬렛, 커스틴 던스트, 일라이저 우드의 연기 역시 오래도록 회자되는 중. ‘비긴 어게인’, ‘헐크’, ‘어벤져스’로 믿고 보는 배우의 반열에 오른 마크 러팔로의 풋풋한 시절을 엿보는 재미도 있다.
11월 5일 개봉.

가슴 뛰게 했던 영화와의 설레는 재회
스케이트보드를 즐겨 타는 평범한 고등학생 마티는 여자친구와의 사이에서 태어날 미래의 아들이 위험에 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괴짜 발명가가 만든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후로 날아간다. ‘빽 투 더 퓨쳐2’의 마티가 도착한 미래는 2015년 10월 21일. 이날은 전 세계에서 영화가 재개봉되는 날이기도 하다. 타임머신을 소재로 한 이 SF영화는 우리를 1985년에서 2015년으로, 또 1955년으로 데려가며 시간여행을 시켜준다. 영화에서 상상했던 미래와 실제로 다가온 오늘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제목이 표기법에 맞는 ‘백 투 더 퓨처’가 아닌 ‘빽 투 더 퓨쳐’인 것도 향수를 자극한다. 1987년 국내 개봉 당시 극장에 걸린 제목 그대로이기 때문. 펩시콜라사가 영화 속에 등장했던 것과 똑같은 모양의 콜라를 한정판으로 출시하는 등 관련 업계들도 발 빠르게 마케팅에 뛰어들어 ‘빽 투더 퓨쳐 데이’를 맞이했다.
10월 21일 개봉.

가슴 뛰게 했던 영화와의 설레는 재회
이제는 세계적인 감독이 된 박찬욱 감독의 첫 흥행 대작 ‘공동경비구역 JSA’도 15년 만에 다시 팬들을 찾는다. 분단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벌어진 남북 병사 총격 살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병헌, 이영애, 송강호, 신하균, 김태우 등 지금은 최고의 자리에 오른 배우들이 열연한다. 이제는 중년이 된 배우들의 앳된 모습은 세월이 참 빠르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춰 개봉 당시 9주 연속 박스 오피스 1위, 최고 관객 동원(583만 명) 기록을 남겼다. 롯데시네마 일부 지점과 제작사 명필름이 세운 명필름 아트센터에서 상영되고 있다.
10월 15일 개봉.

가슴 뛰게 했던 영화와의 설레는 재회
불사신처럼 총알을 피해 다니는 액션 장면, ‘바바리코트’와 쌍권총. 딱 ‘영웅본색’이 떠오른다. 홍콩 누아르 영화의 시초라 불리는 수작으로, 조폭 형과 경찰 동생의 눈물 나게 뜨거운 형제애를 보여준다. 쌍권총을 능란하게 쏘아대던 주윤발과 힘겹게 숨 고르며 아내와 통화하던 장국영은 이미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을 것이다.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은 감상적인 음악을 내세우고 독특한 촬영 기법으로 화제가 됐던 이 영화는 이후 아시아 누아르 영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시리즈 세 편이 일주일 간격을 두고 차례대로 개봉한다. 성냥개비를 물고 총을 쏘던 트렌치코트 차림의 주윤발과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꽃미남 장국영과 재회할 수 있는 기회다.
1편 11월 12일, 2편 11월 19일, 3편 11월 26일 개봉.

가슴 뛰게 했던 영화와의 설레는 재회
천재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비극적인 생애를 그린 걸작. 그의 일대기를 동시대 궁정음악가 ‘살리에리’와의 애증 관계로 재해석했다. 상영 시간 내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모차르트와 그를 시기하는 살리에리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웅장하고 화려한 선율에서 정교한 플롯, 로코코 양식의 복식을 그대로 구현해낸 의상까지 섬세함이 살아 있다. 모차르트의 부인 콘스탄체가 살리에리를 찾아가는 신 등 극장판에 없던 22분이 추가된 180분짜리 디렉터스 컷 버전으로 재개봉된다. 게다가 고품질의 음향으로 리마스터링된 명곡을 감상할 수 있다. 이 작품을 학창 시절 음악 시간에 본 기억이 전부라면 극장에서 더 큰 감동과 전율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10월 29일 개봉.
「레이디경향」 기자들이 꼽았다!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은 영화
이너스페이스(1987)
한창 비디오 대여로 영화를 감상하던 시절에 본 영화. 초등생 시절이라 명확한 줄거리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몇 장면은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작아지는 기계를 타고 인체를 탐험하는 내용인데 주인공이 마신 술을 식도로 가서 받아먹는 장면이나, 악당을 위산에 빠뜨려 처치하는 통쾌한 신이 떠오른다. 지금 찾아보니 국내에서는 극장 개봉을 하지 못하고 비디오로 출시된 영화였다. 복고 열풍을 타고 당시의 최신 영화적 기술을 큰 화면으로 다시 감상해보고 싶다. 이유진 기자
사랑의 블랙홀(1993)
빌 머레이와 앤디 맥도웰 주연의 ‘사랑의 블랙홀’은 언제 봐도 재미있는 영화다. 매일 눈을 뜨면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는 설정은 당시 초등학생에게도 매우 ‘혹’하는 이야기였으니, 주인공 필 코너에 빙의해 신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더랬다. 티격태격하다가 사랑에 빠지는 두 주인공의 풋풋했던 젊은 시절도 빼놓을 수 없는 이 영화의 매력. 무엇보다 앤디 맥도웰의 ‘스파클링’한 미소를 스크린 가득 볼 수 있다면 다시 한 번 그녀에게 반하게 되지 않을까. 노정연 기자
첨밀밀(1996)
‘첨밀밀’이라는 제목대로 달콤함이 녹아 있지만 영화 끝 무렵엔 가슴이 시릴 정도로 아련함이 느껴진다. 가수 등려군을 매개로 한 소군과 이요의 사랑은 메마른 가슴 한쪽을 톡 건드린다. 당장 홍콩의 침사추이 거리로 가서 등려군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전거를 타고 싶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기에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다. 정작 중국에서는 사상 문제로 제때 상영하지 못하고 올해 2월에서야 처음 개봉했다고. 노도현 기자
■글 / 노도현 기자 ■사진 제공 / 노바미디어, 뉴원, 명필름, 안다미로, 조이앤클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