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을 위한 역사 입문 가이드 - 사극, 오해를 풀다 ③

성인을 위한 역사 입문 가이드 - 사극, 오해를 풀다 ③

댓글 공유하기
ㆍPart 3 “완벽히 객관적인 역사란 존재할 수 있을까?”

성인을 위한 역사 입문 가이드 - 사극, 오해를 풀다 ③

성인을 위한 역사 입문 가이드 - 사극, 오해를 풀다 ③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을 쓴 박문국 작가는 36만 독자를 가진 카카오스토리 채널 ‘5분 한국사 이야기’를 통해 역사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문예창작과 사학을 전공한 그는 창작자들이 역사를 가공하고자 하는 욕구를 누구보다 이해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인식의 괴리를 경계한다. 나름의 고증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기초적인 사실 관계조차 맞지 않는 내용들이 상당하고, 정통임을 자부하는 대다수의 영화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대중이 매체에서 보여준 역사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이것이 통념으로 자리 잡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사극을 소재로 한 모든 창작품들이 사실만을 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용자의 입장에서 창작의 영역과 역사 왜곡 사이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가 현재와 미래를 보는 거울이라면, 과거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오늘이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역사를 바로 볼 줄 아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역사를 던져두기에 우리는 모두 역사와 관련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성인을 위한 역사 입문 가이드 - 사극, 오해를 풀다 ③

성인을 위한 역사 입문 가이드 - 사극, 오해를 풀다 ③

사극은 창작과 실재가 혼재된 이야기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은 조선의 왕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왕을 주제로 한 이유가 있나요?
조선은 다른 왕조에 비해 신권이 강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왕권 국가였고 그 안에 장점과 단점이 있었어요.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보는 거울 같은 것이거든요. 시대는 다르지만 분명 연결고리가 있어요. 역사가 말해주는 것들을 현재에도 대입해볼 수 있고요. 왕을 기준으로 역사를 풀어나가는 것이 옛날 방식이긴 하지만 과거 왕정 속에서 지금의 가치를 새롭게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에요.

지금도 TV에서 사극이 방영 중이고 영화도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어요. 근래에 본 작품 중 인상 깊었던 것이 있나요?
최근 작품 중 영화 ‘사도’는 매우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사도세자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받아들였어요.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 근래 5년 동안 만들어진 사극 중 가장 괜찮은 작품이라고 봐요.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그런가요?
사도에 대해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이 ‘사도세자가 왜 죽었는가’인데, 이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주장이 있어요. 영조와의 갈등 그리고 노론의 음모설이죠. 영화에서는 그 시작은 영조였지만 갈등이 커지는 과정에서 노론이 어느 정도 편들기 한 부분이 있었다는 걸 함께 보여줬어요. 영화 ‘사도’가 폭넓게 그려냈다고 보는 이유예요.

사도세자는 평가가 엇갈리는 대표적인 인물이에요. 대중매체를 통해 보여지는 사도세자는 공통적으로 ‘뒤주 속에서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비극의 왕세자’라는 이미지가 있어요.
노론의 영향력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원래 영특했던 사도가 당시 야당인 소론 편을 들어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노론이 미치광이로 몰아 죽였다’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에요. 노론을 악의 축이라고 보는 주장에 대해선 근거가 희박하다고 봐요. 예를 들면 영화에서는 사도가 내시 한 명을 죽인 것으로 나오는데, 사도의 아내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서는 더욱 상세하게 나와요. 뿐만 아니라 실록에도 100명 정도 죽인 것으로 기록돼 있어요.

혜경궁 홍씨가 과장해서 기록했다는 설도 있어요.
역사라는 것이 어느 하나의 기록만 보고 ‘이것이 역사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교차 검증이라고 하잖아요. 역사가들이 다양한 기록을 연구하고 검증한 다음 ‘중론’이라는 게 만들어져요. “「한중록」은 혜경궁 홍씨가 현대 심리분석학적 지식이 없었다면 쓸 수 없었다”라고 말하는 심리학자도 있어요. 사도세자는 영조의 압박으로 어린 시절의 영특함을 잃고 엇나갔을 것이라는 정도로 정리하고 있어요.

창작의 영역에서 역사는 가공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어요.
영화 ‘관상’의 경우 관상가 김내경은 창작된 인물이에요. 감독은 창작자이고 재미를 위해 더할 수 있어요. 영화의 특성상 필요한 부분이에요. 저 역시 영화를 재밌게 봤고요. 하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생각을 해봐야 해요. ‘관상’을 보면 수양대군이 ‘폭풍간지’로 등장해 김종서와 대립하며 왕 놀이를 해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어요. 김종서보다 힘이 약했고 사병을 대놓고 육성할 수 없는 분위기였죠. 창작자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위험한 부분이 있어요. 실제와의 차이를 인식할 필요가 있죠.

사극 안에는 재미와 메시지, 실제의 역사가 혼재돼 있어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실제와 허구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죠.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만나는 역사는 극 중 인물들에게 감정이 몰입되도록 만들어지기 때문에 사실과 다른 부분을 냉정하게 바라보기가 어려워요. 감정에 따라 믿고 싶은 것을 믿게 되죠. 작품은 작품대로 보되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경계해야 해요. 사실을 토대로 하되 작가가 상상력을 더해 구성한 작품이라는 걸 알고 보셨으면 해요.

결국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 되겠군요.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아는 것’이에요. 실제와 허구를 구분하기 위해선 역사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해요. 많은 분들이 역사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암기 과목으로 생각하는데, 실제 역사 속에는 영화보다 훨씬 흥미로운 일들이 많아요. 어떤 창작품이 영조와 사도의 이야기만큼 비극적인 스토리텔링이 가능하겠어요. 역사를 재미있는 것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실제로도 그렇고요.

성인을 위한 역사 입문 가이드 - 사극, 오해를 풀다 ③

성인을 위한 역사 입문 가이드 - 사극, 오해를 풀다 ③


당파 싸움이 조선을 망하게 했다?
조선의 왕들은 사극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왕이 없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가 높아요. 혹시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왕이 있다면 누굴까요?

잘못 알고 있다기보다 변명을 해주고 싶은 왕은 있어요. 바로 선조예요. 드라마 ‘징비록’에서 김태우씨가 아주 연기를 잘해주셨죠. 임진왜란 당시 의주를 넘어 명나라로 망명을 가려 했고, 여러가지 비판받을 부분은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정치적인 면에서는 유능했던 왕이에요. 붕당정치가 선조때부터 시작됐는데 휘둘리지 않고 균형을 맞췄죠. 전쟁 준비를 안 했다는 것도 오해예요. 오히려 전쟁 준비에 반발한 건 지방의 수령들이었어요. 임진왜란 전까지 조선은 국경 지대를 빼고 침략을 받아본 적이 없었거든요. 선조가 당파 싸움에 빠져 전쟁 준비를 하지 않았다고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기록에 의하면 전쟁을 대비해 성벽을 쌓고 일본에 다녀온 김성일과 황윤길의 의견을 수렴했어요. 훌륭한 군왕은 아니지만 유능한 정치가로는 봐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업적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왕이 있다면?
문종의 경우 재위 기간이 2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데 세종에 필적할 만한 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측우기가 문종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고, 15세기 로켓 추진 병기인 신기전을 문종이 만들었다는 것이 중론이에요. 단지 디자인만 한 것이 아니라 운용하는 방법까지 설계했죠. 고전에만 심취한 ‘문약’한 왕으로 알려졌는데 군사적으로도 관심이 많았어요. 경서를 논하고 정책을 토론하는 경연에서 “병법도 한번 해보자”라고 말해 신숙주의 반발을 사기도 했죠. 재위 기간은 짧지만 세종이 몸이 아파 국정에 참여하지 못한 후반 7년 동안 문종이 섭정을 했어요. 세종 후반의 치세는 문종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조선은 5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속됐던 나라예요. 그만큼 대중매체에서도 많이 다뤄졌고요. 많은 이들이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조선은 왕의 나라임과 동시에 신하의 나라였어요. 권문세족, 신진사대부, 훈구파, 사림파 등이 끊임없이 등장하며 왕권과 대립했죠. 많은 사람들이 붕당을 부정적으로 보는데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어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 적도 있고 학연과 지연에 의한 부작용도 많았지만 의견 수렴 과정에서 균형을 맞추는 나름의 시스템이었죠. 오히려 조선이 망할 때는 붕당정치가 없어지고 한 가문이 득세하는 세도정치가 이뤄졌어요. 일제의 식민사관 중 ‘당파성’이라는 것이 있어요. ‘너희는 삼국으로 나눠 싸우고 조선 시대엔 당파로 싸우며 화합하지 못하는 민족이다’라는 것인데, 그것이 지금까지 인식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정치적으로 나뉘어 싸운 역사는 어느 나라에나 있었어요. 유럽에선 전쟁과 피로 복수하는 과정이었고, 일본 역시 피로 점철된 전국시대가 있었죠. 그에 비하면 붕당정치는 신사적인 거죠. 붕당정치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존재해요. 당파로 나눠 싸우는 것을 우리나라만의 특성처럼 인식하는 것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어요.

그런 것을 보면 과거와 현재는 분리시킬 수 없는 것 같아요. 과거는 현재의 열쇠가 되기도 하는데 지금 우리가 거울 삼아 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리더십적인 면에서 세종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어요. 세종은 토론을 무척 중시했던 왕이에요. 허조라는 신하가 있었는데 사사건건 세종에 반대했던 인물이죠. 그런 의견들도 모두 수용했어요. 또 노비들에게 출산휴가를 주는 등 인권적으로도 매우 앞서나간 정책을 펼쳤어요. 소통을 중요시하고 인권 의식이 매우 높은 왕이었죠. 괜히 성군이 된 것이 아니에요. 세종이 강제로 밀어붙인 것이 있는데, 바로 훈민정음이에요. 한글을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고 아시는 분들도 계신데, 여러 가지 정황을 보면 한글은 세종 혼자 혹은 그의 가족이 만들었다고 봐요. 훈민정음 창제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정책을 결정하는 데 매우 세밀한 토론 과정을 거쳤어요. 본인의 신념을 밀고 나가되 토론을 통해 항상 귀를 열어뒀다는 것, 균형을 맞추기 힘든 이 두 가지를 조화롭게 이뤄냈다는 점에서 시대를 막론하고 본받을 만하죠.

시대에 따라 인물의 평가가 달라지기도 하고 새롭게 주목받기도 하죠. 정도전의 경우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에요.
정도전은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못된 놈 취급을 받았어요. 「태종실록」 1차 왕자의 난에 대한 기록을 보면 ‘정도전과 기타 공신 세력들이 이방원을 죽이고 힘없는 이방석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는데 영민한 태종께서 이를 먼저 알아차리고 처단했다’라고 돼 있어요. 전형적인 승자에 의해 기록된 역사죠. 조선조 내내 신원이 복원되지 않다가 500년이 지난 고종 때에 와서야 관직이 회복됐고 현대에는 개혁가, 설계가로 재평가받고 있어요. 최근 그려지고 있는 모습이 맞다고 봐요. 개혁적인 면이 강했던 인물이에요.

역사에서 여성이 등장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요. 특히 조선사의 여성들은 왕비나 후궁, 기생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럼에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 여성을 꼽자면 누가 있을까요?
세종의 왕비였던 소헌왕후를 꼽을 수 있어요. 세종이 출타 중에 궁에 불이 났는데 임신한 몸으로 직접 화재 진압을 지휘할 정도로 용감했어요. 태종의 부인인 원경왕후도 여장부예요. 태종을 태우고 나갔던 말이 홀로 돌아오자 직접 창을 들고 뛰쳐나갔다는 기록이 있어요. 동시에 비운의 왕비였죠. 가족과 힘을 합쳐 남편을 왕으로 만들었는데 왕이 된 태종이 동생들을 다 죽여버리고 나중엔 태종의 바람기 때문에 이혼까지 당할 뻔했어요. 한이 많은 여자예요.

혹시 현대에 되살리고 싶은 과거의 인물이 있나요?
글쎄요. 고종 같은 경우 혼란기가 아니었다면 좀 더 나은 정치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느 정도 세도정치에 대한 견제도 했었고 민생에 신경 쓴 면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과거의 인물을 지금 되살린다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왕조에서 유능했던 사람이 현대 민주사회에선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가 없어요. 인물은 독립변수가 아니거든요.

성인을 위한 역사 입문 가이드 - 사극, 오해를 풀다 ③

성인을 위한 역사 입문 가이드 - 사극, 오해를 풀다 ③


역사, 잘못 먹으면 치명적인 ‘복어’ 같은 것
‘5분 한국사 이야기’를 연재하며 역사에 대한 독자들의 인식을 체감할 것 같아요.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의 호응이 높던가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이야기예요. 안중근 의사 편의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태종이 사람을 밟아 죽인 코끼리를 귀양 보낸 ‘태종과 코끼리 편’과 같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역사 이야기에 대한 선호도 높고요.

올여름 1,0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암살’도 애국심 마케팅이 흥행에 일조를 했어요. 역사와 애국심을 연결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애국심을 고취시킨다는 것이 역사의 의의가 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아요. 영국의 역사가 존 H. 아널드가 이런 말을 했어요. “과거사를 볼 때는 그것을 타국의 것처럼 봐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고국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 우리는 역사의 이름으로 내세우는 거창한 주장이나, 진실을 단정적으로 내뱉는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라고요. 많은 부분 공감하는 말이에요.

역사를 타국의 역사처럼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말이군요.
역사를 완벽히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건 불가능해요. 역사는 누군가가 쓴 글이에요. 분명 과거에는 고정된 사실이 있었지만 그걸 쓰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해석이 섞이게 마련이죠. 그걸 해석하며 학계에서 치고 박고 싸우며 중론이란 게 나와요.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연구하고 여러 가지 고찰을 통해 최대한 사실에 가까운 결론을 내리죠. 어쨌건 우리는 그 모든 과정을 받아들여야 해요. 선택이 아닌 의무로서 객관적이 되려고 노력해야 하고요. 그러한 과정을 통해 사실이나 객관에 근접할 수 있을 거예요.

역사를 통해 민족의 결집을 이루어낸 예가 적지 않아요.
물론 우리에게도 민족사관이 필요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일제강점기 때 신채호 선생은 민족사관을 주창하셨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세계사적으로 보면 나치의 기본이념이 민족주의에서 시작됐어요. 우경화가 이뤄지고 있는 일본에서도 아베의 이야기를 들으며 누군가는 애국심을 고취시키겠죠. 그게 과연 옳은 것일까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역사를 민족주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우리도 정치적으로 될 수 있어요. 역사가 ‘민족의 결집’을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목적을 위한 역사를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군요.
어떤 목표를 세워놓고 거기에 역사를 끼워 맞추는 것은 지양해야죠. 역사는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쉽고 굉장히 효율적이에요. 현재 논란 중인 국정교과서도 정치 논리로 흘러가고 있는 점이 안타까워요. 역사는 ‘복어’ 같은 거예요. 몸에 좋고 맛있지만 대충 만들어 먹으면 치명적이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해요.

국정교과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요. 논란이 뜨거운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렇지 않아도 어제 그 얘기를 올렸다가 대판 싸움이 났어요(웃음). 현대사 이야기만 하면 난리가 나요. 국정교과서라는 것이 나라에서 정해 만드는 것인데, 순수하게 학문적인 관점에서 접근했을 때 고정된 한 가지를 주입하는 것은 안 된다고 봐요. 역사는 과거의 고정된 사건이 여러 가지 해석에 의해 다양하게 기록되는 것이거든요. 교과서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것을 하나로 정리한다는 건 권력이죠. ‘정사’라는 개념이 있어요. 국가에서 편찬하는 「조선왕조실록」 같은 것이 정사예요. 왕조의 입장에서 쓰이는 거죠. 지금과 같은 민주주의 시대에 나라가 정해서 역사를 쓴다는 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에요. 역사학자들이 정치적 진보주의자들이라서 반대 선언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말이 안 되기 때문에 반대를 하는 거예요.

그럼에도 현재의 논란에서 의의를 찾는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역사를 교과서로만 배우는 것이 충분한가’라는 의문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현재 8종 교과서에도 오류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오류가 없는 역사책은 있을 수 없거든요. 사람들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다양한 역사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현재 논란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참에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시선이 필요하다는 걸 아셨으면 해요. 독자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제 책만 보지 마시라”예요. 역사 이야기를 연재하며 제가 옳다고 믿는 것을 전하지만 제 말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니에요. 이 분야에서 권위를 얻는다거나 영향력을 가지는 것도 바라지 않고요. 역사를 바로 보는 힘은 다양하게 아는 것에서 나와요. 여러 가지 책들을 읽어보고 스스로 논리적으로 옳은 것을 판단해야 해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고 볼 수 있을까요?
승자의 역사만큼 패자의 역사도 많아요. 고대 로마가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했지만 게르만족이 로마 역사를 쓰진 않았어요. 몽골인보다 칭기즈칸에게 정복당한 이슬람족이 칭기즈칸에 대한 기록을 훨씬 많이 남겼고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왜곡돼 있다고 생각해버리면 역사를 배울 필요가 없어요. 정도전만 봐도 500년 동안 역적으로 기록됐지만 결국엔 재평가를 받고 있잖아요.

역사 공부를 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가장 위험해요. 열린 마음이 제일 중요하겠죠.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정도로요.

처음 역사 공부를 시작하는 이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일단 재미로 접근하는 것이 좋아요. 역사를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드라마와 영화, 만화책, 게임 등 역사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단 재미있다는 이유로, 감정적으로 끌린다는 이유로 흐름에 위배되는 사실을 믿어서는 안 돼요. 역사에서 흐름을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해요. 역사의 그 어떤 것도 독자적으로, 독립적으로 나타나지 않았거든요. 모든 역사는 과정 안에서 생겨났고 그렇기에 현대사회에 반영될 수 있는 거죠. 역사의 흐름을 이해한다는 건 곧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세종대왕의 말을 떠올려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정치를 잘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된 정치와 잘못된 정치를 다 바라보고 그것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 아니라 현실에 대입할 수 있는 것이에요. 우리는 100년밖에 못 살지만 선조들이 남겨준 수천 년의 기록을 통해 지금 살고 있는 현재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해요. 그래서 더더욱 역사가 재미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성인을 위한 역사 입문 가이드 - 사극, 오해를 풀다 ③

성인을 위한 역사 입문 가이드 - 사극, 오해를 풀다 ③


Tip 박문국 작가가 추천하는 성인들을 위한 대중 역사서

「역사 사용 설명서: 인간은 역사를 어떻게 이용하고 악용하는가」마거릿 맥밀런 저 / 공존 / 원제 : Dangerous Games : The Uses and Abuses of History (2009)
역사가 정치 혹은 어떤 주의에 의해 이용당하는 과정 그리고 역사를 접할 때 견지해야 하는 자세 등을 제시해준다. 한국사에 관련된 책은 아니지만 역사 공부라는 걸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싶다면 한 번쯤은 읽어봐야 할 책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박시백 글·그림 / 휴머니스트
실록을 기반으로 한 내용, 이따금 보여주는 패러디, 만화로 된 비교적 쉬운 서술이 장점이며 특히 복식에 대한 고증은 거의 완벽하다. 자잘한 오류가 보이기는 하지만 조선사에 대한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조선의 힘」 오항녕 저 / 역사비평사&「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김기협 저 / 돌베개
「조선의 힘」이 조선의 역동성을 주장한다면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는 조선의 좌절에 중심을 둔다. 두 책 모두 읽기 쉽게 쓰였고, 또 비슷한 주제에서 다른 관점을 보여주기 때문에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성 측면에서 두 책 모두 읽어볼 것을 권한다.

「한국고대전쟁사 시리즈」 임용한 저 / 혜안
기본적으로는 전쟁사 도서지만 고대의 정치·외교적 상황을 복합적으로 파악하기에 좋다. 다양한 사료 속에서 종합적인 판단을 이끌어낸다는 점, 생생한 서술을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재밌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다.

「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 경제성장과 민주화, 그리고 미국」그렉 브라진스키 저 / 책과함께 / 원제 : Nation Building in South Korea
현대사에 대한 책은 이념 논쟁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제3자 입장에서 쓴 만큼 당시의 경제 발전과 인권 탄압 등에 대해 냉정하게 서술했다는 것이 장점이다.

「고려사의 재발견」 박종기 저 / 휴머니스트
고려사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책은 박용운 교수의 「고려시대사」가 유명하지만 교양서라기보다는 전공서에 가까울 정도로 난이도가 높다. 「고려사의 재발견」은 좀 더 쉽게 고려사를 다룬 책으로 고려사 입문서로 추천할 만하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장태규(프리랜서) ■일러스트 / 박채빈

화제의 추천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TOP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