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바위에 묶여야 하는 ‘N번 프로메테우스’일지도 모른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여성은 바위에 묶여야 하는 ‘N번 프로메테우스’일지도 모른다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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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여성은 바위에 묶여야 하는 ‘N번 프로메테우스’일지도 모른다

intro

청년 제원은 똑똑한 세희와 사랑에 빠졌다. 세희는 제원에게 단하나의 연애 조건을 요구한다.

‘존중할 것!’

처음에는 이 조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조건이었다.

‘알 수 없으면 읽으면 되지!’

세희와 제원은 연애를 위한 독서를 함께 해 보기로 한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는 스물한 살 페미니스트 대학생 세희와 기독교학을 전공한 스물일곱 살 제원의 연애독서일기다. 세희와 제원이 함께 읽은 열네 번째 책은 ‘여성, 오래전 여행을 꿈꾸다’(의유당, 금원, 강릉 김씨 지음 / 김경미 옮김 / 나의시간)이다. 세희가 쓴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여성은 바위에 묶여야 하는 ‘N번 프로메테우스’일지도 모른다

▶세희와 제원의 대화

세희:코로나에다 이제 폭우까지… 흐흑, 우리의 여름은 또 이렇게 방바닥과 함께 사라지나? 근데 제원아! ‘여자의 여행’이라고 말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올라?

제원:여자의 여행? 음… 뭔가 위험하달까. 불안정하달까. 그리고 좀 우울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네.

세희:그럼 ‘남자의 여행’이라고 하면?

제원:아! 느낌이 많이 다르네! 야성적이고 강인하달까, 그런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네.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이런 거군.

세희:마치 뇌에 밧줄 같은 것이 달려서 더는 못 나가게 붙잡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제원:그렇다면 끊임없이 짖는 것밖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걸까?

세희:아니지! 밧줄을 씹어야지!

제원:아! 맞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바로 그거네! 자신을 묶은 고정관념을 잘근잘근 물어뜯는 것 말이야.

세희:시대를 앞선 옛 여성들의 특별한 여행기를 읽었어. ‘여성, 오래전 여행을 꿈꾸다’란 책인데, 조선 시대 여성들이 자신을 묶었던 줄을 어디까지 물어뜯어 놓았는지 확인할 수 있었지.

▶치마에 갇힌 여성들의 울타리

현대인들이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에 전시하는 이미지 중에 상당 부분은 ‘먹은 것’과 ‘간 곳’ 그리고 ‘가서 먹은 것’들이다. 여성들의 여행 이미지가 넘쳐나기 때문이겠지만, 오늘날 여행을 말할 때 굳이 여성을 따로 분리해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여행이라고 하면 이젠 여성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100년 전으로 시곗바늘을 되돌리기만 해도 여성은 여행과 쉽게 분리된다.

조선시대 여성에게 여행이란 엄청난 결심과 용기로 무장해도 쉽게 이룰 수 없는 도전이었다. 그 시대의 여행이란 사대부 남성들에게만 허용된 특권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사신으로 중국의 실정을 보고 겪은 내용이다. 그의 중국 방문 목적은 공무였지만, 산천의 풍경을 묘사하고 청의 실상과 문물을 묘파한 점에서 여행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물론 당시의 이런 ‘해외 출장’은 사대부 남성들에게도 특별한 것이었을 테고, 따라서 그 경험은 마치 훈장처럼 기능했을 것이다.

반면 조선시대 여성에겐 난민이 돼 떠도는 것이 아닌 이상 주거지를 벗어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규방의 여인들이거나 동네의 아낙들이거나 신분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여성은 평생토록 울타리 밖을 떠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정말 조선시대 500년을 통틀어 여행을 떠났던 여성이 아무도 없었을까? 그렇지는 않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 바로 ‘여성, 오래전 여행을 꿈꾸다’이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여성은 바위에 묶여야 하는 ‘N번 프로메테우스’일지도 모른다

▶여성, 자유를 갈망하다.

SNS에는 여행 관련 포스팅이 가득하다. 지역의 먹거리 정보부터 호텔, 관광지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가 적혀 있다. 행복이 무엇보다 귀해진 이 시대에 여행의 이미지는 가장 극적인 자기 과시이며 자기 위안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여행은 사람들을 ‘미치도록’ 갈망하게 만든다. 왜일까? 물론 ‘돌아옴’이 보장돼 있긴 하지만 ‘떠남’은 그 자체로서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호기심, 모험, 설렘, 변화 등등 수많은 주제 중에서 나에게 가장 와닿는 여행의 이유라면 단연 ‘자유’다. 타인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살겠다는 나에게 여행이 선사하는 자유는 언제나 짜릿함 그 자체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고, 변함없는 선망이 있다. 평생을 갇혀 지내다시피 했던 조선시대 여성들에게 여행은 그리고 자유는 얼마나 탐나는 것이었을까.

‘여성, 오래전 여행을 꿈꾸다’는 답답한 규방문을 걷어차고 여행에 나선 세 명의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은 으리으리한 가마를 타고 일출을 보기 위한 설레는 여행에 나선 의유당 남씨의 ‘의유당관북유람일기’, 남장을 하고 전국의 명승지를 찾아 집을 나선 금원의 ‘호동서락기’, 그리고 가족을 끌고 서울로 내려간 노부인 강릉 김씨의 ‘서유록’ 등 세 권의 옛 기록을 해설한다. 세 사람의 여행기 모두가 각별하지만 금원의 <호동서락기>는 기생 신분으로 남장까지 하면서 감행한 여행이라 더욱 눈길을 끌었다.

강원도 원주에 사는 김금원은 어머니의 신분을 따라 어쩔 수 없이 기생이 됐다. 1830년 열네 살의 금원은 부모에게 간청한 끝에 남자로 변장해 꿈에 그리던 여행길에 오른다. 그에게 여행은 ‘새장에 갇혀 있던 매가 새장을 나와 푸른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것 같고, 천리마가 재갈을 벗어 던지고 천 리를 내닫는 기분’이었다. 금원은 제천 의림지부터 금강산, 관동팔경까지 긴 여정을 발로 누빈다. 이어서 설악을 거쳐 서울까지 간 금원은 자신을 돌아보며 여행을 마친다.

1850년 금원이 34세가 됐을 때 어린 날 금강산 일대를 돌아본 내용과 결혼 후 의주에서 지내고 서울로 돌아와서 용산 삼호정에서 여성 시인들과 교류하며 지낸 일을 기록한 것이 ‘호동서락기’다. 이 기록에서 금원은 관서·관동 지방 명승지의 경치를 시적인 언어로 풀어냈다. 그의 글은 마치 금강산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전경 묘사가 탁월하다. 그러나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집을 나설 정도로 당찼던 그도 그 시대가 규정해 놓은 ‘여성의 미덕’을 벗어나기 힘들었나 보다. 여행을 마친 그녀는 결국 아녀자의 본분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한다.

하지만 금원은 진심으로 그것을 자신의 본분이라 생각했을까? 어쩌면 그녀는 그 순간 여자로 태어난 것을 원망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금강산 여행은 ‘기생 금앵’이 아니라 ‘인간 금원’으로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으며, 그렇게 평생 단 한 번 누렸던 자유였을 테니 말이다.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지만, 모두가 자유롭게 살지는 못한다. 가난해서, 부모님의 압박이 심해서, 대학에 가야 해서, 때로는 그저 세상에 태어났다는 이유 자체로서 자유를 억압당한다. 의유당, 금원, 강릉 김씨. 이 세 여성의 여행기는 모두 자기 모색과 발견을 위한 여정이었다. 여행이라는 것을 통해 이들은 당대의 사회가 여성을 묶어 놓은 규범과 억압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여행은 찰나의 자유로움이나 맛보는 무모한 도전이 아니었다.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름의 소유물이나 전시물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계기였을 것이다.

오늘의 삶은 조선의 여성에 비하면 가히 혁명적 수준의 변화를 이루었다. 인권의 개념과 절차적 민주주의를 쟁취했으며, 이 정도를 기반으로도 삶의 많은 부분을 개선했다. 그러나 여성을 억압하는 사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쩌면 여성은 마지막까지 바위에 묶여 있어야 하는 ‘N번 프로메테우스’일지도 모른다. 그가 옳은 결정을 했다는 이유로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것처럼, 자유를 향한 여성의 갈망은 앞으로도 계속 고통스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여성이라는 이름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온전한 인간이라면, 인간이길 원한다면, 이 고통의 여정을 계속 가야만 할 것이다. ‘여성, 오래전 여행을 꿈꾸다’ 속 여성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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