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조선의 편지들’에 담긴 희노애락

파불루머 유재덕의 칼과 책

‘시시콜콜 조선의 편지들’에 담긴 희노애락

음식가·조선호텔서울 조리팀장
댓글 공유하기
[파불루머 유재덕의 칼과 책] ‘시시콜콜 조선의 편지들’에 담긴 희노애락

intro

유재덕의 직업은 합법적인 칼잡이, 즉 요리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에서 20년 넘게 일했으며, 현재는 그곳에서 메뉴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요리사’보다는 자신을 ‘음식가’ 혹은 ‘파불루머’라는 명칭으로 불러주길 원한다. ‘음식물’이나 ‘영양물’을 뜻하고, 그래서 ‘마음의 양식’ 등을 표현하는 숙어에서 종종 활용되는 라틴어 pabulum(파불룸)에서 따온 단어다.

“요리는 특별한 것이지만, 음식은 위대한 것이다!”

이것은 그의 좌우명이다. 요리는 맛을 주지만, 음식은 생명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그런 이유로 그는 언제나 손에서 칼을 내려놓을 때마다 책을 집어들었다. ‘파블루머 유재덕의 칼과 책’은 오늘도 그가 주방에서 읽고 있는 책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 쉰여덟 번째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박영서 지음 / 들녘)

[파불루머 유재덕의 칼과 책] ‘시시콜콜 조선의 편지들’에 담긴 희노애락

지난 7일 해운대 바닷가로 밀려드는 파도가 처음으로 내 눈에 들어왔다. 지난 7월부터 나는 오픈 준비 중이던 호텔 공사장 현장에 수시로 해운대를 들락거렸고, 그러다 그랜드 오픈을 앞둔 추석 연휴부터 지금까지는 해운대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런데 바로 코앞의 바다로 눈길을 던져보긴 이날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부산 해운대에 이제 새로운 그랜드 조선호텔이 개관했다. 나는 올해 이곳 레스토랑의 메뉴 등을 책임지고 세팅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제부터 독자적인 새 브랜드다. 영문부터 ‘Westin Chosun’에서 ‘Grand Josun’으로 바뀌었다.

아무튼 이런 상황이었으니 새 레스토랑의 성패에 목숨을 걸다시피 책임져야 하는 나로서는 바다 풍경 따위가 눈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나는 해운대에 우리의 새 호텔이 개관하는 날, 거기가 바닷가임을 새삼 눈치챘고, 그래서 그 해변을 걸었다. 그동안 우리 호텔리어들이 여기서 치른 온갖 악전고투가 마치 영화의 장면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특히 올해 여름은 정말 스펙타클했다. 올여름 부산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고 그로써 호텔과 레스토랑의 오픈이 연기됐다. 비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부산으로 급히 갈 때만 해도 어찌해야 할지 앞이 캄캄했고 걱정부터 앞섰다. 그래도 차근차근 대응해 가자 모든 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됐다. 가을이 되자 조선호텔서울의 조리팀 핵심인력들은 추석연휴마저 반납하고 부산으로 가 새 레스토랑의 시스템 구축과 조리 교육에 매달리며 오픈 지원을 했다.

효종이 숙명공주와 주고받은 편지.  |한국학자료센터 제공

효종이 숙명공주와 주고받은 편지.  |한국학자료센터 제공

이 과정에서 젊은 직원들이 정말 잘 따라와 주었다. 처음에 가장 큰 애로사항은 직원들 간의 소통이었다. 임시 지원팀으로 짜졌으니, 늘 함께 팀으로 일하던 조직처럼 소통이 원활할 수는 없다. 이에 우리는 쉽게 휘발되거나 오인될 수 있는 ‘말’보다는 ‘글’을 소통에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다양한 지시 사항들을 수첩에 메모했다가 이것을 전달했다. 말은 쉽게 장황해지고, 그래서 요점이 흐려지기 쉬운 데 비해 글은 간략하고 정확했다. 소통 효과가 훨씬 좋았다. 하루 정도의 적응시간이 지나자 팀원들 모두가 기가 막힐 정도로 정확하게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했다. 메모에 이어 나는 모든 의사소통을 팀원들과 스마트폰으로 공유했다. 그러자 우리는 놀랄 만큼 정확하고 빠르게 소통할 수 있었다. 사실 평소 주방에서 늘 두 손을 다 써야 하는 요리사인 나에게 스마트폰은 좀 귀찮은 존재였다. 그런데 급히 조직된 팀을 이끌고 비상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업무에서 나는 처음으로 스마트폰의 위력을 실감했다. 이건 뭐 마치 ‘도깨비방망이’ 같았다. 스마트폰 대중화 10여 년 만에 드디어 나는 스마트폰의 스마트함을 새삼 실감했다.

노비 순임이 여강이씨에게 보낸 편지.  |한국학자료센터

노비 순임이 여강이씨에게 보낸 편지.  |한국학자료센터

부산 출장길에 가지고 갔던 책이 마침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이었다. 내가 이번 출장 기간 내내 조직 내 소통에 대해 특별히 신경을 썼던 것은 아마 이 책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편지’를 통해 인간사를 생각해 보는 구성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시시콜콜한 사연들이 담긴 옛사람들의 편지들을 통해 조선 시대 삶의 풍경을 생생하게 되살려보는 역사 교양서다. 무엇보다 우리가 잘 몰랐던 조선시대 유명인사들의 인간적인 면모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다산 선생이나 이황 선생처럼 잘 알려진 지식인들이 자식들을 독려하는 사적인 편지도 흥미롭지만, 이 책의 백미는 우리가 전혀 접하지 못한 조선시대 사람들의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편지의 내용이 얼마나 시시콜콜한지 한번 들여다보면 이렇다.

‘의성김씨 학봉 김성일 종가 언간’이라는 사료에서 저자가 찾아낸 편지인데, 1882년 의성김씨라는 여인이 사촌오빠인 김흥락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저자는 여기에 ‘우리가 남이가’라는 제목을 붙여 놓았다.

“사촌오빠께! 제가 오빠만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도대체 그놈을 왜 풀어줬어요? 이젠 안 잡힌 것만 못하게 됐으니 너무 억울해요. 오빠도 제 사정 잘 알잖아요. 종도 없이 생활비는 여기저기 돌려막으며 근근이 살아가는데, 가난한 양반이라고 우리를 무시하면서 욕설과 악행만 일삼는 괘씸한 놈이었다고요. 나도 참다 참다 못해 법관인 사촌오빠만을 믿고 고발한 건데, 진짜 서운해요. 일이 너무 커지지 않게 알아서 잘 야무지게 처리하시고, 그놈을 꼭 다시 잡아다가 감옥에 넣어 주세요. 귀양을 못 보낸다면 적어도 소작인 노릇은 못 하게 해 주세요. 제가 너무 보채서 오빠가 괴로운 것 알아요. 하지만 이렇게 부탁할게요.”

노복 구원이 김진화에게 보낸 편지.  |한국학자료센터 제공

노복 구원이 김진화에게 보낸 편지.  |한국학자료센터 제공

이 편지를 받았던 김흥락(金興洛, 1827~1899)은 영남의 대유학자로 관직에 여러 번 임명됐지만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다가 1894년 승정원 우부승지에 오르고, 그해 영해부사로 임명됐다. 하지만 곧 다시 사직서를 올리고 물러난다. 이런 권력욕이 없는 인물이었는데, 이런 오빠에게 사촌여동생은 얼마나 철없는 청탁을 하고 있는지…. 이러한 맥락 속에서 살펴보면 당시 이 편지를 받은 오빠가 얼마나 난감한 표정을 지었을지 쉽게 떠오른다. 예나 지금이나 집안에 고위 관료들 또는 판검사들은 가족 때문에 참 힘들구나 싶기도 하고, 저러니 패가망신하기도 얼마나 쉬울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이렇게 편지 한 장으로 정말 많은 것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런 철없고 시시한 편지를 이 집안은 왜 문건으로 남겨 놓았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후손들에게 이런 식의 ‘가족 청탁’을 경계하라는 반면교사의 뜻을 담은 것이 아닐까 짐작이 가기도 한다.

미암일기.  |국가문화유산포털

미암일기.  |국가문화유산포털

한편 ‘현풍곽씨언간’에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치솟은 쌀값을 감당치 못해 좌절하는 양반 곽주의 편지가 있다. 제사는커녕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했던 당시의 처절한 상황이 그려진다. 또 ‘신세언적’에는 큰 살림을 맡은 종갓집 며느리의 애환이 꿋꿋하고 눈물겹게 그려진 편지가 등장한다.

이 밖에도 시댁을 흉보는 아녀자의 편지, 어려운 형편을 도와 달라는 편지, 뒤를 봐 달라는 청탁 편지, 감언이설로 애인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연서 등등을 통해 우리는 옛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모여 살아야 하고, 그러니 소통만큼 중요한 인간사도 없을 것이다. 기왕이면 불가피한 이 소통이 더 따뜻해지고 인간적이길 바란다. 인간이 굳이 지옥을 만들면서 살아야 할 이유는 없을 테니 말이다.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TOP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