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불루머 유재덕의 칼과 책] 편견을 가지는 순간 지성은 멈춘다](https://img.khan.co.kr/lady/2020/11/18/l_2020111804000004400177231.jpg)
intro
유재덕의 직업은 합법적인 칼잡이, 즉 요리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에서 20년 넘게 일했으며, 현재는 그곳에서 메뉴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요리사’보다는 자신을 ‘음식가’ 혹은 ‘파불루머’라는 명칭으로 불러주길 원한다. ‘음식물’이나 ‘영양물’을 뜻하고, 그래서 ‘마음의 양식’ 등을 표현하는 숙어에서 종종 활용되는 라틴어 pabulum(파불룸)에서 따온 단어다.
“요리는 특별한 것이지만, 음식은 위대한 것이다!”
이것은 그의 좌우명이다. 요리는 맛을 주지만, 음식은 생명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그런 이유로 그는 언제나 손에서 칼을 내려놓을 때마다 책을 집어들었다. ‘파블루머 유재덕의 칼과 책’은 오늘도 그가 주방에서 읽고 있는 책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 쉰아홉 번째는 ‘음식의 위로’(에밀리 넌 지음 / 이리나 옮김 / 마음산책)다.
![[파불루머 유재덕의 칼과 책] 편견을 가지는 순간 지성은 멈춘다](https://img.khan.co.kr/lady/2020/11/18/l_2020111804000004400177232.jpg)
언제부터인가 10월의 마지막 밤이 축제가 됐다. 라디오에서 하루 종일 흘러나오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들으며 아련한 첫사랑이나 떠올리던 그런 날이 이젠 아니다. 내가 근무하는 호텔에도 10월 31일이 되면 핼러윈 데이를 즐기려는 고객들로 붐빈다. 한국의 기념일과 공휴일은 대부분 3·1절, 현충일, 광복절과 같이 엄숙하게 역사를 기리는 날이거나 설날이나 추석처럼 조상에게 제사를 올려야 하는 날이다. 반면 핼러윈 데이는 공휴일은 아니지만 즐거운 축제의 성격을 가진다. 여러모로 답답할 수밖에 없는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이 핼러윈 데이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즐기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나는 올해의 핼러윈 데이를 준비하며, 이날이 단순 소비되지 않도록 뭔가 나만의 노력을 하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요리사로서 근무하는 곳은 100년도 넘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특급 호텔이다. 특급 호텔은 대중문화의 최전선이기도 하다. 먹고 자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부분에서 끊임없이 트렌드를 제시해야 하는 곳이다. 그러니 핼러윈 데이에 대해서도 서양의 풍습을 그저 흉내만 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의 역사와 의미, 근원과 본질을 먼저 알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야만 우리나라에서도 지속 가능한 문화콘텐츠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핼러윈 데이를 키워드로 책을 찾아보기도 하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그러다 딱 마음에 드는 칼럼을 하나 찾았다. 배철현 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가 쓴 글이었다. 무릎을 ‘탁’ 하고 치게 만든 문장이었다. 이렇게 적혀 있다.
“11월 1일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겨울의 도래를 알리는 중요한 날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 경계를 표시하고 마음을 준비하는 의례를 준수해 왔다. 그 축제가 ‘핼러윈’(halloween)이다. 이 단어의 연원을 알기 위해서는 2000년 전 고대 켈트족의 축제인 ‘소우인’(Samhain)을 알아야 한다. 소우인은 고대 아일랜드어로 ‘여름(sam)의 끝(hain)’이란 의미다. 오늘날 아일랜드와 영국 그리고 프랑스 북부에 거주하고 있었던 고대 켈트인들은 1년 수고의 결실인 추수를 마치고 추운 겨울을 단단히 준비해야 했다. 그들에게 이날은 신년 첫날이다. 시작은 언제나 희망과 설렘이 아니라 절망과 망연자실이다. 시작은 어머니의 뱃속[始]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억지이며, 그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作] 내려는 분투다.”(‘배철현의 월요묵상’. 2020년 11월 2일. 뉴스1)
이 고전문헌학자는 자신의 글이 셰프의 요리 재료까지 될지는 꿈에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글은 무엇이든 된다.
핼러윈이라는 이름의 역사적인 배경도 알아보았다. 서기 800년 이후 유럽에서 11월 1일은 만성절이라 하는데, 영어로는 모든 성인을 기리는 날이라는 뜻으로 All Saints’ Day(올 세인트 데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날 성당에서 가진 미사를 “All hallow mas(올 할로우 마스)”라고 했다. “Halloween Day(핼러윈 데이)”는 그 전날 밤을 “All Hallow e’en(올 할로우 윈)”이라 부르면서 생겼다고 한다.
호박의 속을 파내서 무서운 얼굴 모양의 등을 만드는 ‘잭-오-랜턴(jack-o‘-lantern)’에 관한 아일랜드의 전설도 재미있다. 옛날에 잭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워낙 인색한 사람이라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또 잭은 악마들에게도 워낙 장난을 많이 쳤기 때문에 지옥에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잭은 최후의 심판의 날이 올 때까지는 랜턴을 가지고 땅 위를 걸어 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년 핼러윈에는 우리 호텔 레스토랑 전체를 ‘잭-오-랜턴’의 전설로 가득 채우고, 다양한 호박 요리들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제안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신없이 바빴던 핼러윈 데이가 지나자 나는 몸도 마음도 좀 지쳤다. 이럴 때 위안이 되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바로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식사다. 시시콜콜한 하루의 일과를 가족들과 함께 나누며 웃는 것만큼 큰 위로와 구체적인 힘을 얻는 시간이 또 있을까. 아! 하나가 더 있긴 하다. 바로 책을 읽는 시간이다.
핼러윈은 기독교의 축일인 만큼 이날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려는 사람들도 최근 서구에선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의 불우한 아동들을 위하여 음식이나 약품을 공급해 주기 위하여 돈을 모으는 자선 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착한 트렌드로의 진화는 우리도 가급적 빨리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주말 내가 사는 곳 주변의 노란 은행나무들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정신없이 살면 지천이 노랗게 물든 것도 몰랐을까 싶었다. 오랜만에 공원의 낙엽길을 천천히 걷고 난 후 고른 책이 바로 ‘음식의 위로’다. 음식 칼럼니스트이자 가정요리 전도사이며 ‘뉴요커’에서 10여 년간 편집자로 일하면서 극장과 레스토랑 기사를 담당했던 에밀리 넌이라는 저널리스트의 에세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알코올 중독에 빠져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세상에서 낙오되고 버림받은 삶이라 생각하며 우울증까지 얻는다. 그러다 그녀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녀를 포기하지 않는다.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진심어린 조언에 힘을 내어 저자는 자신만의 ‘음식 위로 여행’을 떠난다. 저자는 이 여행의 과정에서 추억의 음식들을 만들고 함께 나누며, 조금씩 스스로를 위로하고 치유하며 아픔을 극복해 간다.
‘음식의 위로’에는 저자에게 위로가 된 추억의 음식이 50여 가지나 등장하는데, 하나하나 그 만드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나온다. 나는 저자가 음식을 통해 스스로 위로받고 치유해 가는 과정에 푹 빠져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 그녀와 함께 울고 웃었다. 그녀의 아픔에 너무 깊이 공감한 나머지 온종일 가슴이 아픈 날도 있었다.
책에 나온 음식 중에 내가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나에겐 작지만 소중한 인생의 깨달음을 주었던 음식이다. ‘뉴잉글랜드 클램 차우더 수프’. 요즘처럼 찬바람이 불 때 빵과 함께 먹으면 딱 좋은 음식이다. 클램 차우더(clam chowder)는 조갯살(주로 대합), 절인 돼지고기나 베이컨, 여기에 양파·셀러리·감자·당근 등을 넣고 끓인 미국의 대표적 수프 요리다. 내가 한창 요리를 배우고 익히던 시절에 클램 차우더 수프의 맛은 짭짤한 조개 맛이 강하게 나야 정통이라고 배웠다. 당연히 나는 20여 년 동안 배운 대로 만들었다. 하지만 몇 해 전 보스턴의 한 오래된 식당에서 오리지널을 먹어 보니 내가 만들어 왔던 수프와는 맛이 많이 달랐다. 처음엔 내가 뭘 잘못 알고 있나 싶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모든 문화가 그렇듯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 여기면 마음대로 변형시킬 수도 있다. 우리가 김치를 만들 때 단 한 가지 방법만 고집하지 않는 것과 같다. 김치는 우리 것이니까 우리 맘대로 다양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음식에도, 아니 세상 그 어떤 것에도, 편견이라는 것은 가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편견을 가지는 순간 지성은 즉시 멈춘다. ‘진정한 너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 줄래?’ 요즘 내가 요리에 쓰일 재료들을 다듬으며 자주 내뱉는 혼잣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