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청년 제원은 똑똑한 세희와 사랑에 빠졌다. 세희는 재원에게 단 하나의 연애 조건을 요구한다.
‘존중할 것!’
처음엔 이 조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조건이었다.
‘알 수 없으면 읽으면 되지!’
세희와 제원은 연애를 위한 독서를 함께 해 보기로 한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는 99년생 페미니스트 대학생 세희와 기독교학을 전공한 93년생 제원의 연애독서일기다. 세희와 제원이 함께 읽은 스물세 번째 책은 ‘포르노랜드’(게일 다인스 지음 / 신혜빈 옮김 /열다북스)다. 이번엔 제원이 쓴다.
▶포르노, 투명한 폭력을 만들다
‘Real Person Slash’를 줄인 RPS(이하 알페스)는 실존 인물을 등장인물로 한 판타지,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의 2차 창작물을 말한다. 최근 일부 아이돌 팬들이 남자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포르노 소설을 제작·유포해 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알페스 포르노를 둘러싼 젠더 갈등이 불거졌다.
알페스 포르노가 단순 성범죄를 넘어 젠더 갈등으로까지 번진 이유를 알려면 사건의 이슈화 양상을 살펴봐야 한다. 사건을 공론화한 사람들의 입장은 두 분류로 나뉜다. n번방과 딥페이크 등에 대한 문제 제기를 남성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 알페스 포르노 사건을 통해 페미니스트를 공격하는 입장이 하나이고, n번방·딥페이크와 알페스 포르노 사건의 죄질을 동일한 차원에서 취급하는 것을 방어하려는 페미니스트의 입장이 또 다른 하나다.
공격하려는 쪽과 방어하려는 쪽의 입장이 부딪치면서 사건은 젠더 갈등으로 확전됐다. 두 입장은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는 뚜렷하게 구분되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은 사건의 피해 규모와 규명, 가해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사건을 자신들의 입장을 강화하려는 정략적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사건 해결을 위해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알페스 포르노는 하루이틀이 아닌 몇 년에 걸쳐 이루어진 범죄다. 남자 아이돌 팬의 수는 어림잡아 수십만이다. 그들 모두가 포르노를 소비하지는 않았겠지만, 최소한 그 존재 정도는 짐작했거나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공공연한 사실이 최근까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고도 여겨진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면서 나는 ‘포르노 산업’에 대한 본질적 성찰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포르노랜드’의 저자 게일 다인스는 30년 넘게 포르노 사업을 연구한 보스턴 윌록 대학의 명예교수다.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참아야 했다. 책이 설명하는 포르노 산업의 실태는 한도가 없는 신용카드 같았다. 그 안에서 인간의 타락에는 정해진 한도가 없었고, 오로지 더 추락하는 것만이 가능했다. 이런 극한의 폭력을 30년이 넘게 추적하기 위해 저자가 다졌을 각오가 어느 정도일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포르노그래피’는 그리스어 ‘포르네’(창녀·매춘부)와 ‘그라페인’(기록하다, 그리다)의 합성어에서 왔다. 직역하자면 ‘창녀에 대한 기록’ 또는 ‘매춘부에 관한 그림’ 정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성인물을 파는 가게나 불법 인터넷 사이트에서나 나올 법한 단어라고 생각한다면 완벽한 착각이다. 포르노는 광범위하고 자연스럽게 우리 문화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아이돌에게 점점 더 많은 노출을 요구하고, 소비하면서 아름답다고 하는 말 ‘꿀벅지’ ‘짐승남’ 등 상대의 성을 대상화하는 언어가 버젓이 흘러나오는 미디어는 모두 포르노적 상상을 자극한다.
포르노의 대중화에는 해당 산업을 이끄는 기업들의 치밀한 전략이 숨겨져 있다. 미국의 남성 잡지 플레이보이만 하더라도 포르노의 대중화를 위해 고급화 전략을 사용했다. 기존 포르노 잡지가 여성의 나체에만 집중했다면, 플레이보이는 여기에 칵테일·시계·칼럼 등 고급문화를 더했다. 포르노에 고급문화가 더해지자 사람들의 인식에는 전환이 일어났다. 포르노의 선정성·폭력성에 경계가 흐려지고, 플레이보이를 포르노에서 라이프 스타일 잡지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플레이보이는 불티나게 판매됐고, 창간자 휴 헤프너는 돈방석에 앉는 것과 함께 놀 줄 아는 남자라는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플레이보이의 진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플레이보이 이후로 그 스타일을 모방한 ‘펜트하우스’ ‘허슬러’ 등의 잡지가 생기고,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유통망이 생기면서 포르노 산업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졌다.
포르노 업계의 전략이 고급화뿐이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특별한 비법을 더해 포르노를 소비에 최적화된 형태로 만들었다. 그 비법이란 포르노 배우에게서 인간성을 벗겨내고 그 자리에 걸레·창녀 등 모욕적인 언어를 채우는 일이었다. 인간성을 박탈당한 배우는 ‘강간당해도 마땅한’ 또는 ‘오로지 성행위를 위한’ 존재로 전락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포르노 소비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얻게 됐다.
‘포르노랜드’의 문제 제기는 배경이 된 미국만이 아닌 포르노 산업이 성행하는 모든 사회를 저격한다. 성 착취 DNA의 계보를 잇는 사건이 즐비한 한국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포르노의 폭력적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상화·대중화·비가시화로 위장된 포르노 산업의 실체를 폭로하고 그 본질을 부각해야 한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게 아니듯이 대중성의 가면을 쓴다 해도 폭력이라는 포르노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포르노랜드’의 출판사 열다북스는 ‘해설: 한국이라는 포르노랜드를 말하다’에서 ‘홍대 몰카사건’(여성이 남성을 몰카로 촬영, 인터넷에 유포한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해당 사건의 수사 과정은 여성에 대한 이중 잣대가 적용된 편파 수사였으며, 여성들은 억압과 폭력에 맞서 대항했다”고. 이로써 사건의 핵심은 몰카 피해가 아닌 여성에 대한 탄압으로 전환됐다. 과연 피해자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했었다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수사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와는 별개로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과 가해에 대한 성찰은 있어야 했다. 성폭력에 대한 성찰 없이는 탈포르노 또한 없다.
■세희의 한마디
음… 나는 이번 논의를 어떻게 봐야 할지 아직 고민이 많아. 나 역시 알페스가 일종의 착취라는 지점에 동의해. 알페스가 마케팅 도구로 활용되고, 시장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환경에 있는 아이돌 입장에서는 알페스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기 어려웠을 테니까.
그럼에도 나는 알페스 논란이 전개되는 양상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어. 딥페이크, AI 이루다 성희롱 등 여성에 대한 성범죄가 있어 왔지만 알페스 논란만큼 빠르고, 광범위하게 이슈가 공유되지는 못했거든.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사회가 문제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편향성이 있는 거지. 알페스 사건 이후 SNS에는 알페스에 연관된 기록을 지워 준다는 것을 빌미로 여성의 알몸 사진이나 자위 영상을 요구하는 등 또 다른 성 착취가 발생하고 있기도 하고 있어. 하지만 문제를 공론화한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지. 문제를 공론화한 사람들이 정말로 피해자를 위해 문제를 공론화한 것일까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야. 만약 정말로 성착취를 막고 싶은 거라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는 게 도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