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월 키머러’를 보는 두 개의 시선

강경희·강인구의 아주 기발한 서평

'로빈 월 키머러’를 보는 두 개의 시선

문학평론가·환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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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희·강인구의 아주 기발한 서평] '로빈 월 키머러’를 보는 두 개의 시선

intro

문학평론가 고모 강경희와 환경운동가 대학생 조카 강인구. 둘은 ‘강’씨라는 것 외에도 책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책 이야기로 꽃을 피우던 어느날 두 사람은 아주 기발한 서평을 함께 써 보기로 의기투합한다.

세상의 거의 모든 책에는 그 책을 쓴 사람에 대한 소개글이 적혀 있다. 둘은 바로 그 저자 프로필을 다시 써 보기로 했다. 이는 메시지 과잉의 시대 속에서 다시 사람의 의미를 모색해 보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우새프(우리가 새로 쓰는 저자 프로필)’가 선택한 첫 번째 저자는 ‘이끼와 함께’와 ‘향모를 땋으며’를 펴낸 ‘로빈 월 키머러’다.

[강경희·강인구의 아주 기발한 서평] '로빈 월 키머러’를 보는 두 개의 시선

안녕, 잉구!

오랜만에 눈 쌓인 공릉천을 걸었어. 낮은 둔덕에도 숨이 차더구나. 그동안 반려견 푸코를 위해 매일 내 시간을 내어 줬다고 여겼는데, 산책의 진짜 수혜자는 녀석이 아니라 나였네. 푸코의 빈자리가 여전히 아프지만, 녀석에게 배운 낮은 눈의 지도로 걷다 보면 안 보이던 것들이 한순간 선명해져.

지난 연말 너와 함께 차를 나누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 차도 과일도 바닥날 때쯤 우리는 같이 책을 읽고 작가와 인생에 대해 말해 보자고 의견을 모았지. 참 기쁘고 설레는 겨울밤이었어. 며칠을 궁리하며 고른 우리의 첫 작가는 로빈 윌 키머러.

1953년 뉴욕 태생의 식물생태학자, 두 딸의 어머니, 아메리카 원주민의 후예…. 정갈한 이 문장에 작가의 전체가 오롯이 묻어 있기에 나는 자석에 이끌리듯이 ‘이끼와 함께’(하인해 옮김/눌와)를 읽었단다. 헛간을 어슬렁거리는 남편, 생일파티에 바쁜 딸들, 전화로 폭풍 수다를 떠는 자매들, 그런 중에도 이끼 생각에 여념이 없는 저자의 일상이 정겨운 친구처럼 느껴지더라.

키머러의 하루는 대부분 숲에서 시작해 숲에서 끝나. 사시나무 잎의 떨림을 보고 비가 오는 것을 알고, 저녁 하늘에 뜬 구름 모양으로 바람을 예측하는 인디언이자 눈송이를 보며 프랙털 기하학을 말하며 이끼의 형태를 관찰하느라 한 시간을 순간처럼 느끼는 과학자이기도 해. 또 딸 린든과 함께 병원 침대에 누운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는 사랑의 어머니야. 인디언, 과학자, 어머니라는 정체성은 그의 삶에 유연하고도 탄탄하게 뿌리내리고 있지. 이끼 카펫으로 짠 작은 숲처럼 그의 세상은 조화롭고 아름다워.

학자로서의 키머러는 애디론댁산맥, 화이트산맥, 애팔래치아산맥, 오대호 숲, 아마존 우림에 이르기까지 이끼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발을 딛는 철저한 경험주의자야. 뛰어난 매의 눈으로 미세한 자연의 신경망을 포착하고, 데이터로 밝힐 수 없는 생명의 경지를 해독하는 혜안을 가졌어. ‘원주민의 후예’, 나는 이 말이 좋더라. 나 또한 이 땅의 고유한 DNA를 가진 원주민의 후예니까.

이끼는 가장 단순하면서 우아한 식물로 현재 2만2000종에 달하며, 종마다 개성과 다른 고유성을 갖는대. 이끼는 각자 절묘한 균형으로 연결된 존재들이야. 키머러는 무엇보다 생명을 소유의 대상으로 여기는 인간의 욕망을 경계해. 어떤 부자가 정원조경에 맞는 이끼를 소유하려고 절벽을 통째로 독점하려 하자 이렇게 일갈해.

“무언가를 소유하면서 사랑하는 건 불가능하다. 소유는 소유 대상에 내재된 자유를 억압하므로 소유자는 힘을 얻지만, 소유 대상은 쇠약해진다. 이끼를 통제하려는 게 아니라 진정 사랑한다면 원래 있던 자리에 두고 매일 보러 가야 한다.”

‘원래 있던 자리’…. 사로잡고 군림하려는 과욕의 시대에 찔리는 말이더구나.

키머러가 식물학을 연구하는 이유는 ‘전통 지식을 회복해 올바른 자리를 되찾아 주는 과정’이래. 전통 지식을 낡고 무지한 것으로 여기는 오늘의 기술지상주의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지. 키머러는 객관 과학과 주간 경험이라는 두 날개로 이끼의 세계를 탐구하는 사람이야.

인구야!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은 말과 존재가 하나로 붙어 있는 사람이야. 포장된 말과 허욕이 난무하면서 말의 주인은 은폐되고 과장되곤 하지. 이 질박한 시대에 우리 두 눈을 부릅뜨고 말과 삶이 딱 붙어 있는 사람, 존재와 행위가 하나인 그런 사람을 찾자. 이끼에 대한 설명이자 키머러 자신의 내면을 말하는 문장이라 생각해 함께 동봉한다.

“비가 내릴 때를 준비해 온 이끼들은 튀어오르는 물방울에 딸들을 태워 보낼 것이다. 백참나무는 다시 녹색으로 무성해지고 공기에서는 이끼가 내쉰 숨의 향기가 진하게 풍긴다.”(2021년 2월에 흰 눈이 쌓인 파주에서 고모가)

[강경희·강인구의 아주 기발한 서평] '로빈 월 키머러’를 보는 두 개의 시선

안녕, 고모!

지난 학기에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어요. 고민과 성찰을 통해 내린 결론은 ‘괴물이 되지 말자’였어요. 순간마다 노력하고 애쓰지 않으면 무고한 생명을 잔혹하게 괴롭히고 죽이는 끔찍한 괴물이 돼 버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돈 많이 버는 것 말고, 정말 ‘잘 살고’ 싶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향모를 땋으며’(노승영 옮김/에이도스)를 읽은 것은 감사한 일이에요. 저자 로빈 월 키머러는 식물학을 전공한 과학자이지만, 여느 과학자처럼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관찰 대상을 하등의 객체로 두지 않았어요. 아메리카 원주민의 ‘토박이 지혜’에서는 인간을 ‘창조의 동생’이라 부른대요. 인간이 삶의 경험이 가장 적기 때문에 배울 것이 가장 많다는 뜻이에요. 다른 종들에게서 가르침을 얻는 존재죠. 그래서 저자는 늘 그들의 가르침에 겸손하게 귀 기울여요.

저자가 대학 식물학과에 지원해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면접관으로 있던 교수가 왜 식물학과에 지원했느냐는 질문을 했대요. 저자는 “참취와 미역취가 함께 있을 때 왜 그리도 아름답게 보이는지 알고 싶어서”라고 말했는데, 교수는 비웃으며 “그건 과학이 아니야”라고 했대요. 교수가 말한 과학이란 존재를 구성 요소들의 결합체로 환원시키는 것 따위의 일이었겠죠. 저자는 그 지점이 서구 과학의 한계라고 지적해요.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 겸손하지 못하고 배울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

성서의 창조 이야기처럼, 이 책도 포타와미족의 ‘하늘 여인 설화’로 시작해요. 하늘나라에서 이 세상으로 한 여인이 떨어져요. 이 여인은 인류의 어머니예요. 세상의 생물들은 떨어지는 여인을 안전하게 받아주고, 등껍질을 내주어 설 수 있게 해주고, 진흙을 구해 와 여인이 발을 디딜 수 있는 대지를 만들어 줘요.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대지와 다른 종 생물들을 경외하고 감사해야 한다고 배웠을 거예요. 그러나 이브의 후손, 서구의 문명은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서구가 이끌어 가는 현대의 세계화는 인간과 자연을 구분 짓고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도록 부추기잖아요. 우리가 기후·생태 위기에 직면한 것도 대지 앞에 겸손할 줄 몰랐던 인간이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며 세상을 지배해 온 결과라고 생각해요.

저자는 좋은 어머니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헤엄칠 수 있는 연못이 있는 집을 갖는 게 소원인 딸들을 위해 녹조가 가득한 연못의 수질 개선 작업에 돌입해요. 갈퀴질을 해서 두엄 더미를 걷어내고 버드나무 줄기를 잘라내고…. 그러던 중에 버드나무에 있던 새의 둥지를 해칠 뻔한 경험을 하게 돼요. 어미새의 애처로운 움직임을 보며 저자는 다른 어머니의 마음을 알게 되죠. 그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만드느라 다른 어미의 보금자리를 위태롭게 할 수 있음을 깨닫고, ‘좋은 어머니는 무엇을 할까’ 고민에 빠집니다. 그는 좋은 어머니란, 다른 어미의 보금자리를 해치지 않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요. 그를 보며 다시 한번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내 생명을 위해 다른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사람이 되기 위해 내가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그림을 저자가 그려준 것 같아요. 고모가 밟고 있는 땅과 내가 밟고 있는 땅. 이 대지 위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도하는 일. 제의에는 세속적인 것들을 성스러운 것과 맺어주는 힘이 있대요. 그래서 저도 기도하려고요! 우리가 함께 밟는 대지를 위해, 모든 생명을 위해! (2021년 2월에 알바와 공부에 매진하는 조카가)

[강경희·강인구의 아주 기발한 서평] '로빈 월 키머러’를 보는 두 개의 시선

아랫부분의 ‘두 사람이 새로 쓴 저자 프로필’에 대한 무단 복제와 무단 전재를 적극 권장합니다.

■강경희가 새로 쓴 로빈 월 키머러

로빈 월 키머러는 가장 성능이 뛰어난 생태 렌즈를 몸에 탑재한 식물과학자다. 그와 함께 터벅터벅 젖은 숲길을 걷다 보면 어느덧 자연의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이곳에 한참을 정박해도 좋을 것이다. 내 안의 깃든 자연을 깨우고 싶다면 키머러의 낮고 우아한 목소리를 경청하길….

■강인구가 새로 쓴 로빈 월 키머러

로빈 월 키머러는 식물의 아름다움에서 삶을 배우는 사람이다. 과학으로부터는 세포 하나까지 세심하게 살펴보고 이름 짓는 법을 배우고, 토박이 지식으로부터는 생명에 대한 경외와 감사, 겸손의 자세를 배운다. 그가 해 주는 식물 이야기에는 지혜가 깃들어 있다. 힘의 논리, 지배의 법칙에서 벗어나 ‘잘 살기’를 원한다면 그가 식물로부터 배운 지혜에 귀를 기울여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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