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의 첫걸음은 '사랑이야'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연대의 첫걸음은 '사랑이야'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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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연대의 첫걸음은 '사랑이야'

intro

청년 제원은 똑똑한 세희와 사랑에 빠졌다. 세희는 재원에게 단 하나의 연애 조건을 요구한다.

‘존중할 것!’

처음엔 이 조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조건이었다.

‘알 수 없으면 읽으면 되지!’

세희와 제원은 연애를 위한 독서를 함께 해 보기로 한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는 99년생 페미니스트 대학생 세희와 기독교학을 전공한 93년생 제원의 연애독서일기다. 세희와 제원이 함께 읽은 스물네 번째 책은 ‘천개의 찬란한 태양’(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 홍은철 옮김 / 현대문학)이다. 이번엔 세희가 쓴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연대의 첫걸음은 '사랑이야'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개강을 앞두고 나에게 묻는다.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지?”

개강 시즌과 맞지도 않는 엉뚱한 물음. 하지만 나는 매번 학기가 시작되면 같은 질문을 던진다. 고민할 수 없으면 고민하지 않게 된다. 바쁜 수업과 일상에 나를 맡기며 그저 주어진 대로 자신을 맞추면서 ‘성과’나 ‘보람’이 있었다고 말하긴 싫다. 또 묻는다.

“왜 하필 개강을 앞두고 같을 질문을 계속 반복하지?”

아마도 방학이라는 꽤 긴 시간의 터널을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맺는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라고 변명해 본다.

“산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지?”

마당의 흙들이 조금씩 푸른 새싹을 맞기 위해 단단한 입을 벌리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에서 나는 ‘사회’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는다. 인간은 일차원적인 욕구 충족만으로 삶을 채울 수 없다. 적극적으로 사회를 구성하고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삶을 완성한다. 한 개인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영향을 받으며 가치관을 형성하고, 공동체 안에서 타인과 같은 것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 경험한다. 동의와 반대, 공감과 충돌, 협력과 싸움, 타협과 조율을 병행하며 공동체가 추구하는 삶의 지향점을 향해 나간다. 그리고 지향점에 도달하기 위한 상호의 노력을 통해 서로에게 새로운 준거와 지향점이 되기도 한다. 자아의 존립이 가능한 것은 자신의 출중한 능력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모두가 지지하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상호 보강의 힘이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연대(蓮臺)’, 나는 공동체의 원동력이 ‘연대의 힘’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연대’의 사전적 의미는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함께 책임을 짐”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돼 있음”이다. 서로 연결돼 함께 책임을 지는 것이 연대의 본질이다. 당연하지만 점점 사라지는 말 ‘혼자서는 쉽게 부러지지만, 함께면 강하다’.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지?” 나의 첫 마디 대답은 “당신과 함께여서”라고 말하고 싶다.

‘월드프레스포토 2017’ 일상 부문 수상작. ‘잊혀진 전쟁 속 무언의 피해자’.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테러로 다친 조카를 안고 있는 장면이다.  |파울라 브론스테인 작품

‘월드프레스포토 2017’ 일상 부문 수상작. ‘잊혀진 전쟁 속 무언의 피해자’.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테러로 다친 조카를 안고 있는 장면이다.  |파울라 브론스테인 작품

▶연대의 아름다움

‘천 개의 빛나는 태양’의 작가인 할레드 호셰이니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태어나 정치적 이유로 미국으로 망명한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작가다. 전쟁으로 인해 예기치 않게 한 명의 남편을 둔 두 여성 마리암과 라일라가 책의 주인공이다. 이 책은 과장되지 않은 말투로 담담하게 이슬람 문화권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 소설이지만 마치 누군가의 삶을 사진을 찍은 듯 생생하게 재현했다.

주인공 중 첫 번째 부인인 마리암은 헤라트에서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큰 부자의 하라미(사생아)다. 그의 아버지는 이미 3명의 아내와 10명의 자식을 두었지만, 가정부인 마리암의 어머니를 임신시키고 자기 소유의 외곽 땅으로 쫓아버린다. 그리고 마리암과 그녀의 엄마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린 마리암이 아버지의 집을 방문하지만, 그녀는 아버지 집에서 강제로 쫓겨난다. 이 일을 계기로 마리암의 엄마는 외로움과 절망에 자살한다. 결국 마리암의 아버지와 그의 아내들은 14살의 어린 마리암을 중년의 라시드라는 남자에게 팔아버리듯 시집보낸다.

한편 두 번째 부인인 라일라는 어릴 때부터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 시를 읽는 것을 즐기며 살았다. 공부하고, 친구를 사귀는 평범한 10대였지만, 평화로운 일상은 오래 가지 못했다. 계속된 전쟁이 라일라의 친구도, 가족도 송두리째 앗아갔기 때문이다. 폭발에 휘말려 크게 다친 그는 마리암의 남편 -이자 그녀의 남편이 될- 라시드에 의해 구해진다. 당시 라일라는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타라크와 서로 마음을 나눈 사이로, 이미 아이를 가진 상태였고, 타라크의 사망 소식을 듣자 아이를 지키기 위해 라시드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한 남자에 의해 강제로 두 여자의 동거가 시작된다. 예고 없이 등장한 라일라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자 마리암은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둘은 한 남자를 두고 서로 경쟁하고 질투하는 관계일 수 없었다. 그것은 폭력적이고 절대 군림하는 남편 라시드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마리암을 때리려는 남편을 라일라가 말렸다. 이를 계기로 마리암은 라일라에게 마음을 연다. 이후 둘은 서로를 위하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집안일만을 하던 마리암의 일상에 라일라와 그녀의 딸 아지자는 소중한 쉼표이자 가족이었다. 그들은 어느새 함께 남편을 벗어나 도망을 꿈꿀 만큼 서로를 믿고 의지했다. 두 사람이 맺은 연대는 서로에게 그 무엇도 대신 할 수 없는 살아갈 이유였다.

소설의 절정은 분노에 찬 남편이 라일라를 목 졸라 죽이려 하는 데로 치닫는다. 마리암은 본능적으로 라일라를 구하기 위해 라시드의 머리를 삽으로 내리쳐 죽인다. 모든 죄를 안고 법정에 서는 마리암과 눈물로 고향을 떠나는 라일라에게 행복한 결말은 주어지지 않았다. 폭력적 남편을 둔 두 여성의 운명은 해피엔딩일 수 없었다.

서로를 향한 사랑과 연대가 강할수록 억압적이며 폭력적인 가부장 사회의 현실은 아픈 채찍을 그들에게 휘둘렀다. 남성이 주인인 사회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은 비극이다. 하지만 마리암과 라일라는 이 비극에 맞서 희망이라는 연대의 씨앗을 품었다.

다큐멘터리 ‘침묵하는 여성들을 위하여(A Thousand Girls Like Me)’의 한 장면.  |사라 마니 감독.

다큐멘터리 ‘침묵하는 여성들을 위하여(A Thousand Girls Like Me)’의 한 장면.  |사라 마니 감독.

‘천 개의 빛나는 태양’은 마리암의 어머니 나나, 마리암, 라일라, 라일라의 딸 아지자의 모습을 통해 억압받는 여성의 문제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차원임을 보여준다. 남성 중심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의 차별과 고통 속에 수많은 마리암과 라일라가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 비극의 끝은 누군가에 의해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억압의 주체들이 서로 연대함으로써 돌파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책이 나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천 개의 빛나는 태양’은 여전히 새롭게 읽힌다. 척박한 환경과 자신을 힘들게 하는 상황 앞에서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사랑의 연대를….

할레드 호세이니.

할레드 호세이니.

■제원의 한마디

책의 첫 페이지를 열었을 때 나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을 목격했어. 금단의 상자가 열리고 그 안에서 죽음과 질병이 쏟아져 나오듯이, 책은 담담한 어조로 절망을 쏟아냈지. 소련의 침공, 끊임없는 내전과 테러 그리고 미국의 전쟁선포. 마리암과 라일라가 살던 곳은 희망보다는 절망이, 생명보다는 죽음이 가까운 곳이었어. 이런 죽음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페이지를 넘기며 답을 찾았어. 그리고 마침내 한 가닥 빛줄기를 발견했지. 마리암과 라일라가 만들어낸 연대. 두 사람의 연대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었어. 비극을 거친 묘한 쾌감. 늪 같은 절망을 뚫고 그들은 누군가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존엄한 인간임을 증명했어. 두 사람이 함께 이룬 연대의 쾌거지.

미리암과 라일라가 보여주듯 세상에 불가능한 연대란 없어.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서로 연대할 이유는 충분해. 대상을 가리지 않고, 한계를 따지지 않기에 연대는 강해. 반대로 말하면 인간이 서로를 차별하고, 외면하는 순간부터 절망이 시작되지. 연대의 첫걸음은 사랑이야. 분명 쉽지 않지만, 그 길을 가다 보면 나도 언젠가 빛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판도라의 상자에서 마지막 희망을 발견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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