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말 '기본소득' 할 말 있습니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모호한 말 '기본소득' 할 말 있습니다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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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모호한 말 '기본소득' 할 말 있습니다

intro

청년 제원은 똑똑한 세희와 사랑에 빠졌다. 세희는 재원에게 단 하나의 연애 조건을 요구한다.

‘존중할 것!’

처음엔 이 조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조건이었다.

‘알 수 없으면 읽으면 되지!’

세희와 제원은 연애를 위한 독서를 함께 해 보기로 한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는 99년생 페미니스트 대학생 세희와 기독교학을 전공한 93년생 제원의 연애독서일기다. 세희와 제원이 함께 읽은 스물다섯 번째 책은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금민 지음 / 동아시아)다. 이번엔 제원이 쓴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모호한 말 '기본소득' 할 말 있습니다

▶언어의 TPO

“밥 한 끼 먹자.”

친구에게 이 말을 들은 지 1년이 지났다.

“그래, 연락 줘.”

보낸 답장에 붙은 숫자 1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였다. 내 머리엔 온갖 시나리오가 떠오른다. 1년이 지나도 연락이 없는 사실은 그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일까. 녀석의 인스타를 확인하면 그건 아니다. 그럼 친구 말에 감춰진 의도를 내가 알아채지 못한 걸까. 그도 아니면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나의 못된 기억력이 그와 밥을 먹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걸까.

내 상상의 시나리오는 여기서 멈춘다. 팩트를 말하면 그 친구는 내게 아직 연락하지 않았다. “밥 한 끼 먹자”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듯 보이지만, 사실 중의적이고 다의적 의미를 함축한다. “이만 안녕” “언젠가 마주치면 인사하자” “우린 나쁘지 않은 관계지” “언젠가는 어쩜 밥을 먹을 수도”…. 당신은 이 말의 의미를 어떻게 읽는가.

확인할 방법이 없는 그럴싸해 보이는 말은 사실 모호한 말이기도 하다. 모호한 말은 백지수표와 같다. 하얀 백지가 10원이 될지 1억 원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모호한 말은 화자와 청자의 상황과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곤 한다. 그러니 갈등과 오해의 핵심은 말 그 자체가 아니라, 소통하지 않으려는, 혹은 소통 못 하는 사람들 간의 컨텍스트다.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책임자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뼈를 깎는 혁신”을 내뱉는다. 이 비장한 말을 신뢰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은 말에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하지만 언어의 모호함이 늘 부정적인 건 아니다. 직설의 언어로 말하기 부담스러울 때 모호한 언어만큼 유익한 것도 없다. ‘벗겨진 대머리’보다 ‘연륜 있는 머리’라는 표현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말이다. 적당한 모호함은 상황에 따라 세련된 언술로 활용된다.

그렇지만 개인의 언어와 사회적 언어의 모호성은 그 성격을 달리해야 한다. 특히 정치적 공공성을 지니는 말은 모호함에 기대지 말아야 한다. 공공의 담론을 구성하는 사회적 대화의 본질은 구성원의 합의다. 화자 마음대로 담보할 수 없는 금액을 난발하면 할수록 듣는 상대의 이해는 감소할 뿐이다. 그래서 공공의 언어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말의 소통과 합의가 중요하다.

사진 동아시아 제공

사진 동아시아 제공

코로나 시대 노동과 소득에 대한 논의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 ‘기본소득’이 논쟁의 테이블 위에서 설전 중이다. 사람마다 기본소득에 대한 온도 차가 크다. 국가의 재정을 망치는 과한 복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미래에 필요한 제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온도의 차이는 기본소득에 대해 합의된 사회적 해답이 아직 산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임금의 대체재인가, 보조금에 개념인가. 기본소득은 정당한 것인가 등…. 사회적 대화를 위해서는 서로가 생각하는 기본소득이 무엇인지부터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금민 지음 / 동아시아)는 기본소득의 다양한 형태를 소개한다. 고려대학교와 독일 괴팅겐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저자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를 창립하고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본격적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책은 기본소득의 정의와 정당성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즉 기본소득의 개념과 더불어 왜 기본소득이 필요한가에 대한 정당성 확보에 논의의 무게 중심을 둔다.

▶어른들이 분노하는 이유

1855년 미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는 현재 워싱턴에 거주하던 인디언 스와미족의 추장에게 그들의 땅을 팔기를 요청했다. 피어스의 요구에 추장은 이렇게 답한다.

“당신은 어떻게 하늘을, 땅의 체온을 사고팔 수가 있습니까? 그와 같은 생각이 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합니다. 더욱이 우리는 공기의 신선함과 물의 거품조차 소유하지 않습니다.”

이 일화에는 소유권에 대한 상반된 인식이 드러나 있다. 피어스가 자연을 사유화할 수 있는 재화로 본 반면 추장은 자연을 특정 단체나 개인이 사유화할 수 없는 것으로 봤다. 추장의 생각을 현대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는 자연을 사유화할 수 없는 공동의 자산으로 생각했다고 할 수 있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모호한 말 '기본소득' 할 말 있습니다

기본소득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소유권이 있는 공동의 자산이 있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이익 창출이 가능한 공동의 자산은 공통부라 할 수 있다. 공통부에서 발생한 이익은 소유권이 있는 모두에게 조건 없이 평등하게 분배돼야 한다. 그렇기에 기본소득은 보편적·개별적·무조건적 성격을 가진다. 기본소득과 복지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일반적인 복지는 혜택을 받을 대상을 조건에 따라 선별한다. 더불어 개인이 아닌 가구를 대상으로 할 때도 많다. 기본소득과 복지는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외에는 차이가 명확한 별개의 제도다.

금민은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18세기 영국의 학자 토머스 페인의 이중적 소유권 이론에 주목한다. 페인은 소유 개념을 자연소유와 인공소유로 나눈다. 자연소유는 자원에 대한 모든 사람의 공동 소유권을, 인공소유는 노동 투입으로 발생한 가치 증가분에 대한 사적 소유권을 말한다. 인공소유로 발생한 이익은 노동을 투입한 주체가 소유하되 자연소유에서 발생한 이익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페인의 이론은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면서도 공동의 몫에 대한 분배를 가능하게 한다. 공동의 소유권과 개인의 노력, 양측에 대한 분배의 정의를 모두 만족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책의 제목처럼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돌려주는,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다. 저자는 조세, 용익권, 공동소유 등 기본소득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소개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책이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기본소득의 기능적 효과나 실현을 위한 방법론이 아니다. 책의 핵심은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논증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의 전제가 될 공통부가 무엇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모호한 말 '기본소득' 할 말 있습니다

저자는 기본소득의 원천이 될 공통부로 빅데이터를 지목한다. 산업화 이후 전통적인 권력의 척도는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였다. 그랬던 것이 세계가 디지털화돼 감에 따라 데이터의 축적량과 그것을 분석할 수단으로 이행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우버 등의 플랫폼 기업이 대표적인 예시다. 저자가 빅데이터를 공통부로 지목한 이유는 그것의 원천이 개별 이용자의 행위에 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라는 권력의 원천이 이용자에게 있기에 여기서 발생한 이익은 이용자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 정부가 빅데이터 이용의 대가로 해당 기업의 지분을 일정량 소유해 배당된 몫을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분배하는 공통배당은 기본소득 실현을 위한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대다수 시민의 생계는 임금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 문제는 AI나 데이터 처리 기술의 발달로 노동의 필요성 자체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치솟는 실업률, 낮은 임금 상승,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우리는 이미 겪고 있지 않은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자리 창출에 자원을 투자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있어야 할 일자리를 만들지 않는 게 아니라 노동의 필요성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임금 노동을 통한 생계의 유지가 점점 어려워질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열쇠는 증가하고 있는 생산력에 있다.

산업화 이후 인류는 어떻게 하면 생산력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에 몰두했다. 고민은 4차 산업혁명을 맞아 AI, 로봇, 빅데이터 등의 형태로 열매를 맺었다는 점이다. 기술의 발전은 노동의 필요성은 줄이면서도 생산력의 증가폭을 산술급수에서 기하급수적인 것으로 바꾸고 있다. 다가오는 변화가 사람들에게 재앙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증가한 생산력을 어떻게 분배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제는 어떻게 생산할지 보다 어떻게 분배할지를 생각할 때가 온 것이다.

분배의 정의는 소유에 대한 성찰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소유란 무엇이었나. 아무런 목적도 철학도 없는 맹목적인 부의 축적을 의미하지 않았나.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소유에 대한 우리의 뒤틀린 인식을 바꿔줄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제16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대회 개최 기자회견 모습.

제16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대회 개최 기자회견 모습.

기본소득은 공통부가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바꿔 말하면 공통부에 대한 합의 없이는 기본소득은 실현할 수 없다. 토지는 사유재임과 동시에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공통부로 인식돼 온 자원이다. 그래서 정부는 토지의 개인 간 거래를 허용하면서도 공공성을 위해 법으로 시장을 규제한다. ‘토지는 사는(구매) 게 아니라 사는(거주) 거다’라는 말도 이 맥락에서 나온다.

이번 LH 사태는 토지 인식에 대한 일종의 ‘사회 공동체 시험의 장’이기도 하다. 우리가 시험지에 어떤 답을 쓰는가에 따라 토지에 대한 정의가 새로워질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투기에 관여한 공직자들에게 열을 내며, 자신들의 분노를 분출한다. 사람들은 과연 무엇에 분노하는가. LH 직원들의 투기가 토지의 공공성을 훼손했기에? 아니면 공정하게 투기할 권리를 훼손해서? 정보 특혜로부터 배제된 박탈감에 따른 허탈감과 분노일 수도 있다. 이 불만의 진원지는 소유의 문제일까 분배의 문제일까.

우리 사회는 아직 어떠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공회전 중이다. 지구는 둥글다. 하지만 누군가 ‘너희의 지구는 둥글어도, 넓은 땅을 가진 나의 지구는 언제나 평평하다’라고 답한다면, 우리 시대의 사회적 합의는 영원히 미완의 과제로 남을 것이다.

토머스 페인의 초상. 사진 동아시아 제공

토머스 페인의 초상. 사진 동아시아 제공

■세희의 한마디

기본 소득제라…. 내가 뮤지컬이나 연극을 좋아해서 한동안 예술인 기본소득제에도 관심이 있었어. 그런데 웬걸. 생각보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그 직업으로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이 프로가 되고, 살아남는 거라며 말이야. 그 말을 듣고 의문이 들었어. 먹고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건데, 왜 살아남아야 먹고살 수 있는 거지. 안 그래? 어른들이 하고 싶은 말은 결국에 이거야. 노오~력하라는 거. 그러면서 투기를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일까. 지금도 ‘노오력 신화’가 판치는 사회에 과연 기본소득의 도입이 가능할까. 나에겐 아직 멀게만 느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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