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지식인 ‘김승섭’

강경희·강인구의 아주 기발한 서평

참지식인 ‘김승섭’

문학평론가·환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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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희·강인구의 아주 기발한 서평] 참지식인 ‘김승섭’

intro

문학평론가 고모 강경희와 환경운동가 대학생 조카 강인구. 둘은 ‘강’씨라는 것 외에도 책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책 이야기로 꽃을 피우던 어느날 두 사람은 아주 기발한 서평을 함께 써 보기로 의기투합한다.

세상의 거의 모든 책에는 그 책을 쓴 사람에 대한 소개글이 적혀 있다. 둘은 바로 그 저자 프로필을 다시 써 보기로 했다. 이는 메시지 과잉의 시대 속에서 다시 사람의 의미를 모색해 보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새로 쓰는 저자 프로필’이 선택한 세 번째 저자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과 ‘우리 몸이 세계라면’을 쓰고 ‘장애의 역사’를 옮긴 ‘김승섭’이다.

김승섭의 ‘우리 몸이 세계라면’

김승섭의 ‘우리 몸이 세계라면’

▶안녕, 고모!

저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었지만, 요즘은 되도록 채식을 하려고 해요. 축산업과 양식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의 큰 원인이거든요. 또 가능한 한 음식을 남기지 않으려 애써요. 음식물쓰레기가 썩는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엄청나게 발생하거든요. 이제 텀블러와 스테인리스강 빨대는 제 백팩에 꼭 있는 필수품이죠. 이렇게 사소한 변화로도 일회용 제품 사용은 확연히 줄었어요.

하지만 제 노력이 기후·생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효과가 없다는 사실도 알아요. 일상 곳곳에 침투한 환경오염은 무서울 정도로 우리 삶을 장악했어요. 융단폭격처럼 쏟아지는 플라스틱 제품과 쉴 새 없이 매연과 온실가스를 뿜어내는 공장들을 보고 있으면, 허탈하고 아뜩한 느낌이 들거든요. 정말 유의미한 변화가 있으려면 환경을 지키려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노력과 더 근본적으로는 산업구조의 변화와 제도 개혁이 필요함을 절감해요.

김승섭 교수의 ‘우리 몸이 세계라면’(동아시아, 2018)은 참 반가운 책이에요. 저자의 고민과 제 고민이 맞닿아 있거든요. 저자는 사람의 몸과 질병을 연구하는 보건학자예요. 의학을 전공한 후 보통의 의사가 아닌 보건학자의 길을 걸어요. ‘개인’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사가 되지 않고, 질병이 파생되는 ‘사회’의 심층을 해부하는 사회역학자가 돼요. 사회구조 안에서 어떤 사람이 가장 질병에 취약하고 큰 고통을 느끼며 죽음에 가까운지를 주의 깊게 살펴요. 그래서 그는 항상 사회적 약자들의 삶과 불평등한 사회에 초점을 맞춰 연구해요.

한국에서 질병에 의한 사망원인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암’이에요.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떤 환경에 노출됐는지가 암 발생의 중요한 요소래요. 즉 생활습관이나 생활환경을 보다 안전하게 바꾼다면 암 발생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많은 의사가 “흡연·음주 등의 나쁜 생활습관이 암의 원인이고, 이러한 습관을 바꾼다면 암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요. 저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는데, 김승섭 교수는 온전히 동의하지 않았어요. ‘개인의 생활습관’에서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충분치 않은 설명이며 판단이라고 생각해요. 가령 저소득층 여성의 흡연 이유 연구 결과를 예로 들어요.

“아이를 직접 돌보며 일을 해야 하고, 항상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며, 인간관계에서 감정적 지지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저소득층 여성에게 흡연은 이러한 사회적 압박을 감당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삶의 조건은 갑갑하기만 한데, 개인에게만 금연을 권하는 것은 근본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결국 저자는 암 환자의 문제를 개인의 노력 부족과 관리 소홀의 관점에서만 이해하지 말고 개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이 필요하다고 말해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로 통합되는 글로벌 사회에서 신자유주의의 ‘자유’는 개인이 욕망할 자유이고,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죠. 무엇을 생산하고, 무엇을 팔든 외부의 힘이 시장에 간섭하지 않는 시장의 자유이기도 해요. 자본주의는 이런 신자유주의를 등에 업고 세계를 삼켰어요. 더 많은 자원을 사용해서 더 많은 부를 생산하는 ‘무한한 성장’이 모두 행복한 세상이라 말해요.

그런데 정작 경제학은 경제성장 과정에 발생하는 다른 문제들을 ‘외부효과’라고 부르며 고려 대상에서 빼 버려요. 그렇게 덮어놓고 무시한 문제들이 쌓이고 쌓인 결과로 극단적인 경제적 불평등, 기후위기, 생태계 파괴와 같은 총체적이고 전 지구적인 위기 상황이 펼쳐졌어요.

김승섭은 ‘과학적 사유’의 힘을 믿어요. 그가 말하는 과학적 사유란 ‘어떤 명제도 당연히 여기지 않고 더 나은 설명을 찾아가는 것’이에요. 즉 상식의 빈틈을 파고드는 질문, 가장 넓은 차원의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것이죠. 그러면 상식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세계의 불합리성과 불평등이 보일 거예요. 그리고 더 합리적이고 좋은 지식을 얻을 거예요.

저도 세계화 시대의 상식이라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에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는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는가?’

‘모두 잘 살기 위해 계속 경제성장을 해야 하는가?’

아니요.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가 심어놓은 개인의 자유만 강조하면 모두는 경쟁 상대가 되고, 결국 강한 사람만 행복하다고 느끼겠죠. 자원의 동력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과 달리 자신의 육체와 노동력 외에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계속 힘들 거예요. ‘개인의 자유’와 ‘무한한 경제성장’은 함께 잘 살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위한 답이 될 수 없어요.

우리가 함께 잘 살려면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를 구분해서는 안 돼요. ‘인간’의 행복 ‘환경’의 행복을 구분해서는 안 돼요. 우리는 한 우주 안에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유기체’예요. 이것을 기억할 때, 모두를 위한 세계, 모두를 위한 지식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나의 활동이 타인에게, 다른 생명체에게,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깊이 살피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2021년 4월, 텀블러를 씻으며 인구 올림)

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안녕, 인구!

1980년 4월의 어느 일요일 나는 아버지 손을 잡고 마포구 염리동 언덕을 오르고 있었어. 산꼭대기에 있는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가는 길이었지. 이른 아침이라 졸린 눈꺼풀이 온 얼굴로 쏟아져 고개가 자꾸만 떨어졌지. ‘타닥타닥’ 슬리퍼 소리와 깔깔거리는 여자들 웃음소리에 반사적으로 얼굴을 들었어. 뿌연 화장기와 흐트러진 고대 머리, 꽃무늬 치마에 작은 세숫대야를 옆구리에 끼고 마을 길을 내려오는 언니들이었지.

“아빠, 저 언니들 누구야?”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이야. 밤에 일하고 아침에 돌아와. 가족과는 떨어져 살걸. 늘 몸이 아프다고 그런다더라. 일 끝나고 목욕탕에 가나 보다.”

비록 어렸지만, 동네 사람들이 언니들의 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그날은 찬양을 부르거나 기도를 할 때도 나풀거려서 더 추워 보였던 꽃무늬 치마가 눈앞에 계속 아른거렸지. 얼마 후 나는 그들이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임을 알게 됐고, 더 자라면서 평소의 아버지와 다르게 그날의 길었던 말씀을 여러 번 곱씹어야만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지.

중학교 3학년 같은 반에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친구가 있었어. 친구의 어머니는 마르고 왜소했지만, 거뜬하게 친구를 업고 등하교를 함께했어. 어느 날 담임은 나를 불러 친구의 가방과 목발을 가리키며 “경희야, 이제부터 너는 우리 반 착한 친구야.” 그날부터 나는 목발을 짚고 절룩거리며 아주 느리게 걷는 친구의 등하교를 도왔어. 웃을 때마다 짙은 눈썹과 하얀 앞니가 돋보였던 친구는 자신의 어머니는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했어. 그렇게 나는 친구의 가방을 들어주고 어깨를 내어주었지. 우리는 문방구에서 파는 불량식품을 씹으며 어제 읽은 로맨스 소설 주인공과 담임이 못생겼다고 흉을 보곤 했지. 지금은 친구의 소식도 알지 못하고 담임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해 여름방학이 올 때까지 나는 우리 반 착한 친구였어.

2017년 새터민과 함께하는 오케스트라 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어. 새터민 여성과의 친목을 위해 정기적으로 작은 만남을 가졌지. 남한 사회에서 보통의 시민으로 편입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임을 듣게 됐지. 놀랍게도 많은 여성이 몸이 아파도 병원을 자주 찾지 않고, 아프다는 말은 비밀처럼 서로 내뱉지 않는다고 했어.

“강 박사님은 공부만 해서 잘 모르시나 봐요. 아프면 진짜 손해예요. 당장 생활이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그들의 계산이 합리적이거나 좋은 선택이 아니라 말해주고 싶었지만, 내 자동차가 좋아 보인다며 화제를 돌리자 나는 차마 입을 뗄 수가 없었어.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 2017) ‘우리 몸이 세계라면’(동아시아, 2018) ‘장애의 역사’(킴 닐슨 지음, 김승섭 옮김, 동아시아, 2020)까지 김승섭이 쓰고 옮긴 책을 읽으며 나는 빛바랜 내 기억들을 온전히 소환할 수 있었어. 선명하게 대답하지 못했던 꺼림칙한 마음, 미안한 감정, 멀리 두려 했던 사람들을 떠올렸지.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픕니다.” 김승섭 교수가 책을 쓰고 옮긴 이유가 고스란히 응축된 말이야.

결혼이주여성, 성소수자,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 재소자,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 천안함 생존자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는 저자에게서 나는 약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정서나 감정으로만 소비하는 자기기만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깨달았지.

김승섭이 번역한 ‘장애의 역사’

김승섭이 번역한 ‘장애의 역사’

“차별은 공기와 같아 기득권에게는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보이지 않지만,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은 삶의 모든 순간을 차별과 함께 살아간다.”

그 말에 한참을 머물 수밖에 없었어. 어떤 문장은 우리 자신을 멈추게 하지. 전하는 함의가 크기 때문일 수도 있고, 책에서 훅 다가오는 사람 때문이기도 해. 수많은 논문과 문헌, 방대한 데이터와 연구 사례, 다양한 사례들과 그래프와 표로 정리한 명증한 자료와 결과들은 저자가 얼마나 논리정연하고 치밀한 사회역학자임을 증명해. 철저하고 과학적인 그의 연구의 최종 목적지는 오로지 하나야.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 모두를 위하는 길, 이것은 개인의 능력과 상황에 달린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인 공동체의 윤리와 가치, 정의로운 제도의 확립에서 비롯된다는 믿음이야. 우리는 누구나 차별 없는 존재여야 하니까.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인구야! 너와 나의 몸에는 어떤 시간의 고통이 새겨졌고, 또 기록되고 있을까. 겹겹이 쌓인 아픈 시간의 껍질을 벗기면 모두를 위한 희망의 오솔길이 열릴까.

그날의 일요일 아침, 꽃무늬 치마의 언니들이 지금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구나.(2021년 4월. 맑은 얼굴의 김승섭을 읽으며 고모가)

Copyleft 다음의 ‘새로 쓴 저자 프로필’은 무단 복제와 무단 전재를 적극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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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쓴 김승섭 프로필

출판사 동아시아가 펴낸 김승섭 교수의 저작에서 저자 프로필은 더하거나 뺄 것이 없다. 저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만든, 저자 프로필의 가장 좋은 사례다. 그래서 이번 김승섭의 프로필엔 단 한 줄만 덧붙인다. 강인구의 문장이다.

“김승섭은 ‘참지식인’이다. 이런 도덕적인 지식인이 많아진다면 우리의 사회는 훨씬 살기 좋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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