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학교 현장에서 학력 저하와 학력 격차 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 초·중·고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늘고, 특히 중위권이 무너지면서 상위권과 하위권 양극단의 격차가 더욱 벌어져 수업 방식마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실시하는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읽기·수학·과학 분야에서도 2012년 이후 우리나라 학생들의 순위가 계속 하락하는 형편이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교육 당국은 군색한 변명을 일삼고 여전히 장밋빛 전망만 내세우며 학부모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학교 교육의 첨병인 현직 교사로서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고 생각한 박제원 선생이 환상과 미신에 사로잡혀 있는 미래교육을 객관적·실증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미래교육의 불편한 진실’(EBS BOOK)을 통해서다.
한국예탁결제원에서 10년 동안 근무한 뒤 2003년부터 전주 완산고등학교에서 사회교사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교육으로 세상을 더 행복한 삶의 터전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교육자다.
그는 “교육은 궁극적으로 지식을 얻고 삶에 전이하도록 돕는 일이다. 지식을 깎아내리고 역량만 추종하는 교육은 반쪽짜리에 불과하고, 자칫 역량마저 제대로 교육하지 못해 둘 다 놓칠 수 있다. 사실 역량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로운 능력이 아니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주로 기업에서 요구되는 기술과 능력을 이름만 바꿔 그럴듯하게 포장한 개념일 뿐이다”고 꼬집는다. 그러면서 “학교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식과 역량이 상호 보완해 배움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두 가지 교육을 병행해 왔다”고 전한다.
특히 “지식을 쌓고 기억을 활성화하는 교육이야말로 역량 향상의 초석이 되고 인류 진화와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저자는 ‘핵심역량’으로 불리는 ‘4C(비판적 사고, 창의력, 의사소통, 협력)’ 교육에 대해서도 해박한 학습과학 지식과 풍부한 사례를 바탕으로 대안을 제시한다.
“‘비판적 사고’만 하더라도 뇌의 메커니즘에 따라 우선 장기기억 속에 저장된 사실적·개념적 지식에 기대야 한다. 실제로 장기기억에 저장된 지식이 추론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작업기억 능력을 활성화한다. 즉 머릿속에 지식이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사고 기술을 익혔어도 ‘속 빈 강정’에 불과하고,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사고 기술이 없으면 제대로 써먹을 수 없다. 창의력 역시 타고난 재능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지식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힘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선 틀 안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해야지 무턱대고 틀 밖으로 나가 사고한다면 결코 생산적일 수 없다.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해서도 정서에 기댄 모호한 어휘를 가급적 쓰지 말고 소통의 맥락을 고려한 지성적·이성적 언어를 써야 한다. 협력에 있어서도 무조건적인 강요와 통제를 일삼지 말고 인간의 이타성과 상호 이익이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포용력을 높여야 한다.”
저자의 이러한 제언은 교육과정 수립과 교수학습, 평가 방식 개선에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그 핵심은 교육자라면 교육자답게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실제로 배움이 일어나게 할 수 있는지만 궁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식이 창의와 융합 역량과 전혀 대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미래교육의 불편한 진실’은 현재 주류를 이루는 미래교육 담론에 훼방을 놓거나 어기대려는 의도를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누군가는 희생해 민낯을 드러내고 불편한 진실을 언급해야 보다 건강하고 올바른 교육담론을 생산할 수 있다는 신념을 드러낼 뿐이다. 미래교육의 정답을 고집하며 일방적으로 주장하기보다는 교육당국자, 교육학자, 교사, 학부모에게 발상의 전환과 함께 각성·대화를 촉구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 하나하나가 바로 교육을 교육답게 만들고, 지성인으로서 또는 교육자로서 자긍심을 높이는 길이라고 저자는 확신한다.